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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무식한 놈 /안도현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5.01.26|조회수924 목록 댓글 9

[소통의 월요시편지_432호]

 


무식한 놈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그리운 여우』(창비, 1997)

 

 

 

*

겨울비가 봄비처럼 내립니다.


지난주에는 어린 소나무(松)와 어린 잣나무(栢)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쑥부쟁이와 구절초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무척 오래 된 시(오래 되어도 좋은 시는 결코 낡아지지 않는 법이지요) 한 편을 띄웁니다.


무식한 놈!!!!


좋은 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이름 모를 들풀, 이름 모를 새, 이름 모를 꽃"으로 뭉뚱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생각하면 그게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지요... 봄날 산과 들에 한 번 나가 보면 담박에 알 수 있지요... 지천의 수많은 풀과 나무와 꽃과 나물들이 저마다 저의 이름을 갖고 피어나고 자라고 있는데... 그 이름 하나 하나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산 사람도 아니고 식물연구가도 아니고... 그쵸?


자기 자신을 보면서 무식한 놈이라고 하면서... 나여, 나는 지금 너하고 절교다!... 자기를 나무라는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 그까짓 거 구별 못 한다고 그게 무슨 대수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름 모를 들풀이 막상 그 이름을 붙여 불러주면 놀랍게도 그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겁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겁니다... 그동안의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지요...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식한 놈!이란 것은 아무래도 조금 심했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주변에서 만나는 들풀들 들꽃들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그 이름 한번쯤 확인해서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들풀 이름 하나 알고 불러주면 그만큼 세계가 깊어집니다.

들꽃 이름 하나 알아서 불러주면 또 그만큼 세계가 깊어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요?


 

2015. 1. 26.


강원도개발공사 대외협력팀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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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늦은안부 | 작성시간 15.01.27 솔잎이 한 포기에. 우리나라 소나무는 두 잎. 왜송이라고 부르는 리기다소나무는 세 잎. 잣나무는 다섯 잎. 이렇게 구분하시면 됩니다. 제가 숲해설가거든요 ㅎ ㅎ 자랑질 좀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제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1.29 그렇군요... 두 잎, 세 잎, 다섯 잎... 고맙습니다^^*
  • 작성자heartbreak | 작성시간 15.01.30 소나무하고 잣나무...속시원한 가르침..고맙습니다...^^
  • 작성자지학 | 작성시간 15.02.03 시인이 한낱 들풀의 식별이 서툴다고 무식한 놈이라고 했을까요.
    불의도 헤아리지 못하고 껄렁거리는 심보가 미웠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세태가 한스러웠을 겝니다.
  • 작성자사박사박 | 작성시간 15.02.08 겨울을 이겨낸 봄들이 소리도 없이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나올텐데 걱정이네요^^
    저 시인은 애기똥풀도 모르고 서른다섯해나 살었다고 쥐어박고 야단법석도 떨었습니다.
    지난 연말 시인의 강연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막 여물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손짓 발짓없는
    동작도 없는 것들에 대한 말걸기라고 할까요?
    시인 특유의 물고기 비늘같은 힘있는 언어로
    모두를 감동시켰던 강연이었습니다.
    저는요~ 이름몰라도 무조건 인사하며 봄을 맞이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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