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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동백을 꺾다 /김효선

작성자박제영|작성시간16.03.28|조회수1,533 목록 댓글 2

[소통의 월요시편지_492호]

 


동백을 꺾다


김효선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물어올 때

홧김에 절벽으로 뛰어내리고 싶었지

허공을 뒤집으면 공허해지는

봄이 오고 있었으니까

 

우린 서로에게 여전히 맛있을까

넌 엉덩이를 뜯어먹어

난 살점 없는 갈비를 뜯을게

얼마 동안 풍경은 질리게 가쁜 숨을 뱉어내겠지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밤이었어

등이 가려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절벽을 알고 나면 꽃은 우스워져

 

붙잡을까손목을잘라버린너를

 

사랑한다 씨발-

목숨 걸고 뛰어내렸는데

아직 허공이야

​-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16. 3월호 

 

 

 

*

경칩도 지나고 춘분도 지났는데, 아직도 춥습니다. 봄이 참 더디게 오네요. 지금쯤이면 오동도에 동백이 활짝 폈을까요. 그 붉은 모가지들 뚝뚝 떨어지고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지고나면 한 겨울에 단단한 푸른 잎 위로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 시들기 전에, 꽃 핀 채로, 마치 목이 부러지듯 툭,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버리는 동백.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동백의 시적 이미지를 낙화(落花)에서 찾곤 하지요. 오늘 띄우는 김효선 시인의 시도 동백이 꽃 핀 채로 투신하는 그 이미지를 빌려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그려내고 있는데요... 구구절절 절창입니다.


"사랑한다 씨발-/ 목숨 걸고 뛰어내렸는데/ 아직 허공이야"


참 환장할 문장이지요. 더 무슨 말을 보탤까 싶습니다.


꽃샘추위를 잊을 만큼 환장할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6. 3. 28.

춘천에서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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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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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다래투 | 작성시간 16.03.28 환장하고,미쳐야 詩가 되나 봅니다.
    환장하고 미칠것도 없는 세상입니다.
    한 30년 더 연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랑하기에 너무도 빠쁜 지구입니다.

    춘천에 벗꽃이 피었나요?
    공지천에서 쓴 쇠주 먹었던 때가 가물가물 합니다.
    다래투 첫 직장이 춘천이었죠.ㅎㅎ

    수고하심에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다래투 올림.
  • 답댓글 작성자박제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5 답신이 늦었습니다... 춘천 벚꽃은 이제 조금씩 잎을 벌리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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