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492호]
동백을 꺾다
김효선
잘 지내냐는 안부를 물어올 때
홧김에 절벽으로 뛰어내리고 싶었지
허공을 뒤집으면 공허해지는
봄이 오고 있었으니까
우린 서로에게 여전히 맛있을까
넌 엉덩이를 뜯어먹어
난 살점 없는 갈비를 뜯을게
얼마 동안 풍경은 질리게 가쁜 숨을 뱉어내겠지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밤이었어
등이 가려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절벽을 알고 나면 꽃은 우스워져
붙잡을까손목을잘라버린너를
사랑한다 씨발-
목숨 걸고 뛰어내렸는데
아직 허공이야
-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16. 3월호
*
경칩도 지나고 춘분도 지났는데, 아직도 춥습니다. 봄이 참 더디게 오네요. 지금쯤이면 오동도에 동백이 활짝 폈을까요. 그 붉은 모가지들 뚝뚝 떨어지고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꽃들이 지고나면 한 겨울에 단단한 푸른 잎 위로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 시들기 전에, 꽃 핀 채로, 마치 목이 부러지듯 툭,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버리는 동백.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동백의 시적 이미지를 낙화(落花)에서 찾곤 하지요. 오늘 띄우는 김효선 시인의 시도 동백이 꽃 핀 채로 투신하는 그 이미지를 빌려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그려내고 있는데요... 구구절절 절창입니다.
"사랑한다 씨발-/ 목숨 걸고 뛰어내렸는데/ 아직 허공이야"
참 환장할 문장이지요. 더 무슨 말을 보탤까 싶습니다.
꽃샘추위를 잊을 만큼 환장할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6. 3. 28.
춘천에서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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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다래투 작성시간 16.03.28 환장하고,미쳐야 詩가 되나 봅니다.
환장하고 미칠것도 없는 세상입니다.
한 30년 더 연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랑하기에 너무도 빠쁜 지구입니다.
춘천에 벗꽃이 피었나요?
공지천에서 쓴 쇠주 먹었던 때가 가물가물 합니다.
다래투 첫 직장이 춘천이었죠.ㅎㅎ
수고하심에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다래투 올림. -
답댓글 작성자박제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4.05 답신이 늦었습니다... 춘천 벚꽃은 이제 조금씩 잎을 벌리고 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