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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월요시편지_659호] 무어라는 것 [허림]

작성자JOOFE|작성시간19.06.05|조회수170 목록 댓글 2

[소통의 월요시편지_659호]

무어라는 것

허림

무어라도 돼라

그게 엄마의 좌우명이었다

콩나물 키워 열두 가지 반찬 만들고

아구든 아귀든 강냉이든 옥씨기든 올갱이든 고디든

먹도록 만들어 상 위에 올리는 것

그게 엄마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

노상 소핵교만 졸업했어도

무엇이든 됐을 거라는 말

게우 소핵교 이학년도 다니다 말고

부엌떼기로 들어섰다가

위안부 소녀들 공출해 간다고

한동안 도광동에 숨어 살면서도

콧구멍이 새까맣도록 고골에 불을 피워 상을 차렸다는

그 먼 날들을 들려주며 뭐든 돼라 했는데

돌아보니 온 길도 없고

내다보니 갈 길도 아물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시인은 되는 게 아니라고

엄마는 말할 뻔했는데

뭣 땜에 그랬는지

엄마가 간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엄마도 생각이 참 많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 『엄마 냄새』(달아실, 2019)

*

홍천 내면 사는, 홍천 내면 하면 떠올리게 되는, 허림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지요.

『엄마 냄새』에서 한 편 띄웁니다.

「무어라는 것」

산에서 나는 것이든 강에서 나는 것이든 바다에서 나는 것이든

그게 무어가 됐든 식구들

"먹도록 만들어 상 위에 올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람이지요.

"그게 엄마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고 아들인 화자(시인)는 말하지만,

"소핵교만 졸업했어도 / 무엇이든 됐을 거라" 엄마도 자조하지만,

세상의 엄마들이 세상의 모든 재료를 사람이 먹도록 만드는 그 신비한 능력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어려운 '살림'의 능력 아니겠나 싶기도 합니다.

엄마가 자식들이 되기를 바라는 세상의 '무어라는 것'은 또 알고보면

세상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타락한 능력에 다름 아니겠다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 화자인 아들이 마침내 시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차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썩은 것들, 상한 것들조차

한 줄 시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 상 위에 올리는 것이니

시인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게 살림의 길인 줄

엄마는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겠지요.

아니 말씀은 안하셨으나 '장하다 내 아들' 그리 생각하셨겠지요.

아니라면 엄마가 간 하늘이 왜 저토록 붉겠습니까.

화자도 알았겠지요.

허림 형의 생도 참 생각이 참 많구나

그리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2019. 6. 3.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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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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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OOF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6.05 박제영시인이 출판일로 바쁘신가 봅니다.
    주페가 대신 올려드립니다.

    허림시인은 마주 앉아있자면 거의 한마디도 말씀을 안하시는 수줍은 중년입니다.
    그래도 정이 아주 많으시고 좋은 시인이십니다.
    일곱번째 새 시집을 축하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제영 | 작성시간 19.06.10 형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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