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손님방

이상한 헛소리들 / 강인한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1.11.16|조회수815 목록 댓글 7

이상한 헛소리들

 

  강인한

 

 

 

   가령 다음의 이상한 헛소리 같은 산문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무것도 아닌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멋쩍으니 공연히 신비주의 같은 철학적 포즈를 취하는 걸까요, 아니면 혹시는 의미심장하게 립밴윙클의 시간성에 대한 기미를 슬그머니 독자에게 풀어놓은 짤막한 산문일까요?

 

---------------------------------------------------------------------------------------------------

 

   오늘 작가회의로부터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 <시인 최정례 부음 목동병원 영안실 203호 발인 30일.> 평소에도 늘 받아 보던 문자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었고 내 이름이었다.

   실수임을 인정하는 정정 문자가 다시 오겠지 기다리며 그냥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웃긴다고 말했더니 남편의 말이 그것은 시인의 죽음이지, 당신은 시인이 아니잖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딸애에게 내가 죽으면 제일 걱정되는 것은 자개장롱과 돌침대라고 했다. 딸애는 걱정 말라고 했다. 자기가 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다. 방 안 전체를 차지하는 이 무거운 구닥다리를 그 애가 쓸 리가 없다. 남 주거나 팔아버리지 말라고 했다. 딸애는 자기를 못 믿는다고 벌컥 화를 냈다. 작가회의에 전화해서 항의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회의에 참석한 적도 없고, 절친한 사람도 없는데 누구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어쨌든 나는 살아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살아 있다. 난 정말 살아 있다. 그런데 궁금했다.

   집 앞 문간에 의자를 내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들, 동남아시아 어디쯤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 나도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그러고 있다. 왜 벙깍 호수라는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 호수는 매립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그 호수에 데려다달라고 했더니 운전수가 한 대답이었다.

   벙깍 호수에도 못 갔고 플리즈 원 달러를 호소하는 애들에게 일 달러도 안 준 나다. 한 번 주면 오십 명은 달라붙는다고 해서 못 줬다.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나는 살아 있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살아 있다고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친구들은 바쁘고 헛소리는 들어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앉아서 지금은 사라졌다는 벙깍 호수만 그려보고 있다.

 

-------------------------------------------------------------------------------------------------------------------

 

   [필자는 자신의 부고를 받는다. 느닷없이 현실에 개입한 미래에, 자신의 죽음을 비웃듯 공지하는 이 메시지에 필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분노는 현재에서 출발하는 ‘미래지향적’ 감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당혹스러울 뿐이다.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하고 딸애에게는 고작 아끼는 가구 걱정이나 늘어놓는다. 이 희극적인 상황 앞에서 필자는 한편, 너무 진지하다. 이 ‘미래지향적’ 현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필자의 마음은 동남아시아 어디쯤으로 간다. 이는 달아남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남겨두고 사라졌다는 벙깍 호숫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건 사람의 ‘생’에 대한 우화가 되기도 한다. 현기증이 나는,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일. “다들 바쁘고, 헛소리는 들어주지도 않을” 정도로 바쁜 삶.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그저 멍하게 사라진 호수를 그려볼 뿐이다.]

 

   위에 두 문단은 출판사에서 이 글 '벙깍 호수'에 대하여 붙여놓은 친절한 해설입니다.  글 속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럼 이제 이 글에 대한 베일을 벗겨보겠습니다. 이 글은 최정례 시인의 새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P. 18~ 19에 실린 ‘산문시’랍니다. 원래의 이 시는 단락 구분 없이 전체 하나의 문단으로 붙여 쓴 ‘시’입니다. 다음은 이 시집을 소개하는 출판사의 글 첫 부분입니다.

 

   [최정례 시인의 시간은 늘 교착된 어느 지점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 지점은 과거와 과거들의 겹침, 반복과 반복들의 접점이었고, 이를 통해 의미는 재구성되었다. 시간에서 파생된 파편의 반복·겹침은 그녀의 언어에 밀도를 높여주었고(이남호), 이러한 이를 통해 생의 모순에 관한 실감을 구체화해내었다(이광호). 이렇게 쌓인 모멸의 시간들(최현식)을 견디는 것. 그것이 그의 시였다. 5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온 최정례의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문학과지성사, 2011) 속 4부 54편의 시들은 이러한 기억의 편린과 편린, 그 겹침의 통증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 시집이다. 헌데, 이전의 시집들과 다른 형태를 갖는다. “이제 그의 시계가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보게 되는 서평이나 해설은 텍스트인 시보다 어렵게 쓴 글이 너무나 많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시가 지닌 남모를 비밀을 끌러주는 열쇠 구실을 해야 할 비평가의 글(해설)이 텍스트로서의 시보다 더 알쏭달쏭하고 난해하다면 이게 무슨 해설일까요?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 위에 제시한 '벙깍 호수'에 대한 왈가왈부를 보고 누군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 무슨 말이야. 시가 본래 헛소리지 별 게야?  헛소리니까 저건 시가 틀림없네그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샤이 | 작성시간 11.11.17 이렇게 쓰면 문학과 지성사에서 시집 내주나 봐요.
  • 작성자물고기 | 작성시간 11.11.20 '귓속의 장대나무'의 최정례 시인을 좋아했었지만, 이미 반열에 올라섰다는 자만심때문인지 요즘 그녀의 시들을 읽기가 매우 피곤합니다. 발바닥과 대마도를 비유하는 시 등등 몇 편은 기억에 남지만 점점 더 읽기를 포기하는 일이 잦아집니다. 이건 시가 아닙니다.
  • 작성자또다른나 | 작성시간 11.11.20 시인이 어떤 시도를 하는 중? 아닌지...
    기존의 틀을 깨고, 독자의 반응도 알고 싶은...
    읽고 나서 매립되어 사라졌다고 하는 '벙깍호수'는 지명이 특이하여 콕, 들어옵니다
    시가 다분히 '산문적이란것' 엔 뭐...
  • 작성자초록섬 | 작성시간 11.11.25 벌써 몇 번째 흥미롭게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오산 | 작성시간 11.11.28 저는 시가 아니라고 봅니다 시를 포장한 그럴듯한 사유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