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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제갈량의 북벌. 그 당시 삼국의 상황은 어떠하였을까?

작성자조상필|작성시간09.11.20|조회수1,294 목록 댓글 26

 

 

 

 

 

 

 

이건 당시 중국 대륙의 상황.(227년 공명의 북벌 당시) 

파랑이 , 빨강이 , 녹색이

 

 

당시 촉은 남만을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하였고 오나라도 교주를

 

장악하여 크기를 확장시켰다. 그러나... 위는 여전히 유주, 병주,

 

기주, 청주, 서주, 연주, 예주, 사주, 옹주, 양주, 그리고 형주의

 

북부, 양주의 일부인 회남지방을 차지하여 압도적인 국력을 과시

 

하였다. 촉은 달랑 익주 하나. 그리고 오나라는 양주와 교주 그리

 

고 형주의 남부지방 뿐이었다.

 

 

 

애초에 제갈량의 북벌은 한 나라와 한 나라의 싸움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제갈량의 북벌에 중원이 위협당한 적도 없고... 낙양은 커녕 장안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위나라가 촉나라의 북벌군을 상대로 옹주와 양주 군사 이외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중앙군이 나선 적도 없는 위나라 입장에서는 그저 소소한 지방의 반란 정도였던 것이다.

 

 

 

촉나라의 최전성기 시절 영토.

 

애초에 제갈량의 생각도 본인이 직접 익주에서 군대를 이끌고 나와 관중지방을 거쳐서 장안을 점령하고 낙양으로 쳐들어감과 동시에 형주에서 상장군 한 명을 뽑아(여기서 상장군은 형주 도독 관우가 될 것이다.) 완성을 거쳐서 허창으로 쳐들어 가는 것이었다. 오나라에게 형주를 뺏기는 순간... 촉나라의 모든 계획도 물거품이 된 것이다.

 

 

공명의 북벌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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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22 삼도 카페 가고 파성 카페 가봐도 공명이 설령 옹양주를 차지했다고 해도(그것이 불가능하지만) 곧바로 다시 빼앗겼을뿐 절대로 지킬 수도 그것을 바탕으로 위나라를 치기에도 국력에서 절대 열세라는게 지배적이다. 너야말로 좆도 모르는 새끼가 깝치지 ㅉㅉ
  • 답댓글 작성자조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23 병신새꺄 그 때 전국시대 관중이랑 삼국시대 관중이랑 같냐 미친놈 ㅋㅋㅋㅋ 그 당시 관중은 계속되는 전란으로 피폐해지고 피폐해져서 백성들도 거의 살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 똘추년아... 아 조또 모르는 새끼까지 이렇게 깝치지 내가 돌아버려 ㅣㅡㅡ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22 그리고 병시나 유방이 중원을 통일한 이유는 다른 제후들이 같이 호응을 해줘서지. 나라가 갓 생겼을 때는 원래 상대방 나라의 분란을 조장해서 치는 거고 나라가 위나라 처럼 3대에 이르러 기틀이 다져졌을때는 국력싸움인거 모르냐?? 아오 이 새끼는 어떻게 유방과 유비의 상황을 비유하고 있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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