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5-6)
본격적인 빠스카의 신비를 묵상하는 성주간에 접어 들었다. 필자는 빠스카의 신비를 '내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라고 묵상하고 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루카 20,17)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내버린 돌'이 되셨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루카 20,9-19)에서 당신은 포도밭의 주인, 상속자이면서 소작료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죽임을 당하셨다. 이 비유를 들은 백성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항의하였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루카 20,16)라고 말하였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믿기는 커녕 죽이기까지 하는 이 일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을 예수님께서는 당하신 것이다. 사람들로 부터, 그리고 아버지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 완전히 내버린 돌이 되셨다. 그래서 당신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하게 느껴졌으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라고 절규하셨을까? 예수님은 완전히 버려진 존재가 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완전히 버리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다. 당신은 하느님이시면서 하느님이기를 포기하셨다. 자신의 것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시고 모두 버리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이 얼마나 '바보'가 되셨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그분이 얼마나 많은 수치를 당하셨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참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더 이상 바보같을 수가 없고 더 이상 수치스러울 수가 없고 더 이상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당하셨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5-6)라고 말하였다. 그럼에도 그분은 순순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 말없이 죽음을 당하셨다.
완전히 자신이 내버린 돌이 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백인대장이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고 고백하였고, 마르코 복음 사가는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기록하고 있다.
나도 예수님처럼 '내버린 돌'이 되지 않으면 '머릿돌'이 될 수 없다. 나도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나도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부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