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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위한 소통

순전한 오목교(Mere Omukgyo)

작성자imagodei|작성시간14.02.14|조회수3,203 목록 댓글 36

기독교(Christianity)와 오목교(Omukgyo)의 중요한 차이는 기독교의 원전(original text)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기독교 설교자는 성경은 물론이거나와 기독교 고전을 진지하게 대하고 참조하여 설교한다. 반면 오목교 강단에서는 성경과 기독교 고전마저도 짜깁기 모자이크 설교의 대상으로 취급될 뿐이다. 인간 영혼의 비참함을 아는 기독교 설교자는 반드시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기에 부담을 가지는 반면, 오목교 설교자는 시간 때우기식 짜깁기 설교에다가 싫증나면 다른 사람을 자주 불러 땜빵 설교를 시키기도 하는 법이다.

 

오목교 설교자에게는 인간 영혼의 비참에 대한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회개의 긴급성과 중대성 문제가 항상 비껴간다. 오목교 설교자는 성경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고전에 대한 독서와 연구의 소명을 저버리고 만다. 오목교주는 성경과 기독교 고전을 끊임 없이 읽고 기도할 때 가지게 되는 영혼의 중압감을 알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한 가지 사례를 통하여 오목교주가 기독교의 고전을 대하는 태도를 잠시 살펴 보고자 한다. 

 

오목교주는 지난 주일(2014. 2. 9.) 설교에서 여호수아서 24장을 본문으로 "너희 섬길 자를 선택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이 설교에서 오목교주는 올바른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국의 문학평론가이자 기독교 작가 C. S. Lewis(Clive Staples Lewis, 1898~1963)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변증가인 C. S. Lewis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택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은 천천히 우리의 삶 전체를 천국에 속한 존재로 만들든지 아니면 지옥에 속한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는 거예요. 짧지만 상당한 경구의 말씀이죠... (책 읽어 주는 남자, 설교동영상 약 27분 45초 경과후) 

 

The Leader와 혼동해서는 안되는 The Reader, 곧 강단에서 책 읽어 주는 이 남자는 능숙하게 잘 읽어 주었다. 이번에는 이 책의 출처를 밝히는 예의(?)를 보여 주었다. 영국의 기독교변증가 C. S. Lewis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C. S. Lewis의 '어떤 책'에서 읽어 준 것일까? 

 

책 읽어 주는 남자는 C. S. Lewis의 책 제목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 인용은 <Mere Christianity>라는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홍성사에서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다(2001년에 번역본의 초판 출간됨)

 

 

<Mere Christianity>의 영어 원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Every time you make a choice you are turning the central part of you, the part of you that chooses, into something a little different than it was before. And taking your life as a whole, with all your innumerable choices, all your life long you are slowly turning this central thing into a heavenly creature or a hellish creature: either into a creature that is in harmony with God, and with other creatures, and with itself, or else into one that is in a state of war and hatred with God, and with its fellow creatures, and with itself. To be the one kind of creature is heaven: that is, it is joy and peace and knowledge and power. To be the other means madness, horror, idiocy, rage, impotence, and eternal loneliness. Each of us at each moment is progressing to the one state of the other. (Lewis, p.92)

 

위에서 볼드체로 강조한 영어원문이 오목교주의 인용 부분인데, 우리의 The Reader는 장경철 & 이종태가 번역한 한국판(홍성사 간) <순전한 기독교> 번역판을 읽어 주지 않았다. 홍성사 번역판(A)과 오정현씨가 읽어 준 부분(B)을 비교해 보자. 또다른 번역(C)을 동시 비교해 보자.  

 

A: 저라면 오히려 여러분이 매번 선택을 내리는 행위는 여러분의 중심, 즉 선택을 내리는 그 부분을 조금씩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수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이 중심부를 평생에 걸쳐 천국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든지, 지옥의 피조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홍성사 번역본, 151~152쪽)

 

B: 변증가인 C. S. Lewis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택은 우리의 삶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은 천천히 우리의 삶 전체를 천국에 속한 존재로 만들든지 아니면 지옥에 속한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는 거예요. 짧지만 상당한 경구의 말씀이죠...  (책 읽어 주는 남자, 설교동영상 약 27분 45초 경과후)

 

C: ...선택은 삶의 일부분을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은 천천히 우리의 삶 전체를 천국에 속한 존재로 혹은 지옥에 속한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또다른 번역)

 

오목교주의 C. S. Lewis 인용(B)은 홍성사 번역본(A)보다는 또다른 번역(C)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두번째 문장은 거의 일치한다. 원문의 innumerable choices, a heavenly creature, a hellish creature를 번역한 부분이 완전히 일치한다. 오목교주 인용(B)이 또다른 번역(C)을 따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번역 작업에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번역자마다 천차만별의 번역이 생기며 똑같은 우리말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번역은 반역이다"란 말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반역도 천차만별인 셈이다.

 

홍성사 번역본이 C. S. Lewis의 <Mere Christinity>의 유일한 한국어 번역판임을 감안한다면, 한가지 궁금함이 생긴다. 오목교주가 읽어 준 번역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또다른 번역(C)의 출처는 어디일까? (우리는 때로 설교자가 외국 작가를 인용하는 경우 어떤 번역본을 사용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오늘날 오목교 설교와 기독교 설교의 본질적 차이를 바르게 분별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목교주가 채용한 또다른 번역(C)은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의 <선택>(The Choice is Yours)이란 책의 서문인 '들어가는 글'에 나오는 번역이다. 번역자가 번역작업을 하다보니 '들어가는 글'에 적혀 있는 맥스웰 목사의 C. S. Lewis 인용부분을 번역하였던 것인데, 아주 짧은 이 부분을 굳이 홍성사 번역본과 일치하게 번역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당 문장들의 또다른 한국어 번역(C)이 생성된 것이다(2008년 번역).   

 

 

그렇다면, 오목교주나 그 설교준비를 돕는 추종세력이 존 맥스웰의 <선택> 서문에 나오는 C. S. Lewis 인용부분을 직접 읽어보고 지난 주일설교문을 작성했다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존 맥스웰의 컨설팅 책인 <선택>의 '들어가는 글'을 직접 읽어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가능성은 이것이다.: 인터넷 검색(web search)을 통해 설교자료를 모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위에서 언급한 또다른 번역(C) 전문을 copy하여 포털 등 검색엔진에 넣어 보면, 존 맥스웰의 <선택>의 책 소개 page를 지시해 주는데, 그 웹 페이지에서 오목교주가 사용한 또다른 번역(C)을 그대로 볼 수 있다.

(http://mall.godpeople.com/?G=9788904157990)

 

오목교주가 C. S. Lewis 저작물인 기독교 원전을 대하는 태도는 기껏해야 그 정도이다. 영어 원서나 한국어 번역본을 직접 대하는 '경건하고 신실한' 자세가 아니라, 기껏해야  리더십 컨설팅 하는 맥스웰 목사의 서문을 봤거나 웹 검색을 통해 얻은 간접적 자료, 곧 2차 자료(the secondary data) 획득에 급급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이런 것이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의 인용부분을 읽어주는 <순전한 오목교>(Mere Omukgyo) 설교자의 자세이다. <순전한 오목교>의 설교에 기독교인들은 만족하지 못하며 견디지도 못한다. 오직 오목교인들만 <순전한 오목교>를 용납하는 것이다.

 

인간 영혼의 비참에 대한 무게로 신음하는 기독교 설교자는 성경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고전에 대한 독서와 연구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아니, 저버릴 수 없다. 반면, 오목교 설교자는 그런 신실한 영혼의 중압감을 알지 못하기에 기독교 설교자의 이런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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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실버벨 | 작성시간 14.02.15 Im샘께 너무 감사하고 애쓰신다는 말, 꼭 남기고싶습니다.건강 잘 챙기시고 전 기도로 돕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Poet | 작성시간 14.02.15 저도 기도로 후원하고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imagodei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2.15 실버벨님. Poet님. 성도의 기도로 동참하심 최고 최선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순장반 | 작성시간 14.02.15 설교자 본인은 출처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써준대로 읽기만 하는데...언제까지 이렇게 할건지? 설교 대필자가 동생이라는데 그 사람은 또 왜? 남의 것 베끼는지. 믿음의 명문 가문이라고 본인 입으로 자랑하지 않았던가요?
  • 답댓글 작성자김다움 | 작성시간 14.02.16 그 사람의 실력이, 그 사람의 양심이 겨우 그 정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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