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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과 순종에 대한 오해”

작성자chungsk|작성시간16.02.19|조회수663 목록 댓글 3

“맹종과 순종에 대한 오해”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예화입니다.

“당신이 얼음이 언 호수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얼음의 두께는 약 0.2센티미터이다. 당신이 얼음 위를 걸으면 얼음은 깨질 것이다. 얼음 위를 걸어서 호수를 건널 수 있다고 당신이 굳게 믿는다고 해서 얼음이 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면 얼음의 두께가 60센티미터인데, 당신에게 믿음이 아주 적다고 가정하자. 당신의 믿음은 적지만 얼음은 믿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얼음 위를 걸어서 호수를 건널 수 있다.”

 

이 예화는 믿음은 양(量)보다 대상(對象)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안전하게 호수를 건널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두꺼운 얼음입니다. 결코 두둑한 배짱과 깡다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아무리 크고 강력하더라도 그 대상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은 헛된 믿음일 뿐입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철야기도를 하면서 애를 쓴다 해도, 구원에는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닌 “정성”이며, 일종의 “자기의(自己義)”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의로운 생활을 한다고 해서 참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순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합당한 결정이며,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그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결정” 또는 “목회자의 말”로 바꾸어 가르치기도 합니다. 설교를 하면서 은근슬쩍 혼합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제대로 분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순종의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경 말씀, (2) 교회의 결정, (3) 목회자의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1)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것을 정면으로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는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교회의 결정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러한 상황에서의 분별력을 기르기 위함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은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의 결정”을 보면서도 “교회에서 하는 일은 부족한 것이 보이더라도 묵묵히 따라라”는 식의 설교를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치리하신다”는 말을 우리의 비겁함과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는 말씀처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는 것은 성도들의 교회(지도부)에 대한 신뢰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교회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순종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의 결정에 따르는(순종하는) 문제는 성경적 의미의 순종 문제가 아닌, 교회 지도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다음은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는 문제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말에 따르는 것은 성경에서 명령하고 있는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의 리더십에 관한 문제입니다. 웬만한 성도들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를 존경하고 어려워합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보통 정도의 리더십만 발휘하더라도 성도들은 목회자의 말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 순종이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과는 다른 것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 목회자의 리더십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그 대상(對象), 즉 “누구에게 순종하느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잘못된 대상(對象)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런 순종은 이단(異端)과 사교(邪敎)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다르거나,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2.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에는 성령이 거하시며,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처럼 무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질서가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에는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에 대한 순종은 선택적이며 조건적이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분별력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3. 목사의 말에 대한 순종

 

목사의 말에는 더 많은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에 대한 순종은 더욱 제한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나 신약시대의 사도가 아닙니다. 목자가 교회의 중요한 직분임에는 틀림없지만, 목사를 선지자나 사도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나아만은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은” 엘리사의 말에 순종했고, 그로 인해서 문둥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했던 아이들은 곰에게 찢겼습니다(왕하 2:23,24). 우리는 이 사건들을 평가할 때,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엘리사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선지자와 사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한다고 소개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입니다. 자신의 말과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목자는 스스로를 선지자와 사도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2016.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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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밝은미소 | 작성시간 16.02.19 “교회에서 하는 일은 부족한 것이 보이더라도 묵묵히 따라라”는 식의 설교를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치리하신다”는 말을 우리의 비겁함과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는 말씀처럼,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상당수 성도들이 이 부분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기에, 불의한 교회(목회자)의 결정이 하나님 뜻에 반하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체 하거나 애써 눈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은&진 | 작성시간 16.02.19 순종에 대한 분별력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순종과 신뢰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신의 | 작성시간 16.02.19 분별하지않는 분별없는 순종이 맹종 아닐가요
    무작정 사랑 무작정 맹종 양같아보이는 이리에게 당하는 위험엉이 있습니다.
    두터운 얼음이라면 믿음없어도 안전하다 셀로판지같은 얼음을 믿음으로포장하는 교회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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