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이 깊어 맺어진 섶길 인연
힘들면 잠시 쉬고 힘나면 다시 걷세
5백리 멀다하여도 함께라면 한걸음
지난주 사정상 참석치 못하여 미안함으로 '섶길인연'이라는 제목을 붙여 올렸던 졸시이다. 오늘 다시 꺼내보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우리 섶길에서 만남 자체가 분명 하늘의 섭리가 있음이랴. 섶길 길벗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깊어지고, 얼굴이 안보이면 허전해지고, 궁금해지는 걸 매번 느낀다.
오늘은 너무 큰 허전함이 다가왔다. 섶길의 안전을 앞장서 책임지던 대장님이 안보인다. 어느분이 "우리는 엄마잃은 병아리"라 할 정도였다. 위원장님이 버스 안에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설명한다. "집안 일이 생겨 이번주는 부득이 빠지게 됐다"고 이어서 여담으로 "25인승 소형버스를 타다가 45승 대형버스에 오르고 보니 소풍가는 느낌이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보니 그랬다.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봄소풍가는 느낌으로 창밖에 펼쳐지는 초봄의 파노라마를 본다.
아, 그리고 이 이야기는 뒤에 쓰려다 앞으로 옮긴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기사님의 인상이 너무 좋으셨다. 온화한 타입의 선비같은 인품이 느껴진다. 운전도 천천히 하고, 특히 오늘 섶길의 종점 수도寺 그 좁디 좁은 골목을 올라서 경내에 주차를 했다. 우리 일행을 모두 태우고 다시 그 좁은 골목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면서 내려오시는지 모두 감탄에 박수를 보냈다. 시청에 도착하고 모두의 인사를 정중하게 받아주고, 또 수고했다는 인사를 꼭꼭 싸서 주신다. '차고지 복귀 시간이 초과되었다'한다. 초과 시간임에도 너무나 감사하다.
오늘은 소감문이 아닌 제대로 한번 기행문을 써보려, 사진을 덜 찍고 되도록 선두에 서서 위원장님의 해설을 들으려 했다. 어디 들은게 있어야 살을 붙여 기행문이라고 폼을 잡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봄꽃의 유혹에 그만 붙잡혀 해설을 놓쳤다. 오늘도 역시 일정을 아우르는 어정쩡한 소감문에 그친다.
지난주 섶길의 비단길 코스 종점이었던 평택호 혜초비가 오늘은 다시 원효길의 시작점이다. 위원장님이 섶길 대장님의 공백을 이야기하며, 그 공백만큼 각자 안전에 각별 유의해 달라는 당부를 챙겨주며 길은 시작된다.
오늘 걷는 섶길은 원효길이다. 원효길에 부여한 정신은 깨달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길 깨달음을 도(道)라 하기도 하고, 걷는 길도 역시 도(道)라 부른다. 보이는 물질계인 길(道)과 보이지 않는 비물질계인 내면세계 깨달음(道)은 차원이 전혀 다르지 않는가. 옛 사람들은 차원이 다른 두세계를 어떤 관련이 있어 같은 단어를 사용했을까.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에서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 속을 지나는 움직임을 반향하거나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 속을 거니는 한 방법이다."했고, 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에서 "걷기는 (....) 인간의 내면속으로 난 길을 찾아 가게 한다"라 했다.
둘다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결국 길(道)에서의 걷기란 '내면의 길인 깨달음 (道)으로 걸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이라고 해서 주눅들거나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잘 이해하는 것' 그것 아니겠는가.
원효 대사가 걸었던 옛 신라 수도 경주에서 이곳 평택항까지 거리가 상당하다. 천리가 넘는 440km이다. 하루 10시간을 두발로 걷는다 해도 11일은 족히 걸어야 한다. 깨달음을 의지하여 불법을 구하려 길을 나섰던 원효 대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삼보일배의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마 최상근기 그도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내면의 길(道)을 걸었을 것이다. 깜깜한 밤중 해골바가지 물에서 유레카!를 한 그의 돈오돈수는 그냥 얻어진게 아니었으리라.
원효 대사 그의 경지에 감히 범접할 수는 없다. 다만 1600년전 그가 걸었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이 조금이라도 겹쳐졌다면, 오늘 적지 않았던 원효길 20km의 큰 보람이다.
논길, 산길, 도로길, 메타쉐콰이어길, 항만길, 평택의 산티아고길 등 여러 다양한 길을 걸어, 오늘 종점인 수도寺에 드디어 도착한다. 시공을 넘어 그의 법향이 수도寺 생강나무 꽃에 담겨 있는듯 정신을 맑게 한다. 수도寺 풍경(風磬)에 종을 치는 물고기는 만행을 떠나 비어있지만, 종소리는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있다.
오늘 처음과 끝까지 섬겨주신 섶길위원장님과 양미선총무남 이종익작가님, 후미에서 안전조끼와 안전봉을 들어 대장님의 공백을 메워주신 섶길해설사님, 운전기사님 그리고 섶길의 주인공이신 길벗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글중 도(道)에 대한 전개는 걷기예찬을 위한 어디까지나 섶길과는 무관한 제 짧은 개인적 소견임을 밝힙니다. 부디 논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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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3.19 네 우리 모두 부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서연 작성시간 23.03.19 오늘 섶길 걷기에
아침에 젤 첨 만나고
저녁에 젤 마지막 헤어진~~ㅎ
황의수 선생님의 멋지고 공감가는 후기 감사합니다^^~~
애써주신 운영진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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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3.19 서울 대방동에서
전철로 섶길에 오시는 것도 대단하시고,
걸음걸이 단단함에 매번 놀랍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지금 작성시간 23.03.21 안녕하세요 ~
섶길 카페에 가입하고 보니 황선생님 글이 보이네요~^^
진작에 깨달음의 길을 마음에 새기고 걸었다면 수도사에서 달라진 我를 만났을까요~^^
글구 잘 찍어주신 사진도 잘 받았습니다 ^^
후기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