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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이야기

평택섶길 과수원길 ('23. 4. 9)

작성자황의수|작성시간23.04.10|조회수88 목록 댓글 2

클럭! 클럭!

옛날 상수도가 없던 시절 일명 '뽐뿌'라고 작두펌프가 물을 길어 올렸다. 클럭! 클럭! 은 작두펌프를 펌푸질 하던 소리를 필자가 의성어로 지어낸 소리이다. 첫번째 사진이 지난 겨울 과수원길에서 찍은 그 작두펌푸이다.

지금은 작두펌프가 그렇듯 펌프질 소리 또한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마음으로 듣는 소리가 있다. 저 깊은 땅 밑으로부터 나무끝 우듬지까지 나무가지를 흔들어 물을 길어올리는 봄바람의 펌프질 소리이다.

봄 볕에서 색 안료를 뽑아내어 깊은 땅속에서 봄바람이 펌프질로 길어올린 샘물에 잘섞어, 푸른하늘 도화지에 하양 초록 노랑 분홍 등등 형형색색의 봄을 그려내는 저 봄화가의 작품은 너무나 경이롭다. 어느 길벗님의 표현처럼 경배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말의 봄은 '보다'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봄을 표현하는 영어의 spring 또는 한자의 춘春보다 더 직관의 시각이고, 더 깊이를 들어가면 우리 언어에는 우리 정신의 혼이 담겨 있는 철학이 있다. 소설가 최명희가 말하듯 언어는 우리 선조가 남겨놓은 '정신의 지문'이라 하지 않는가.

말 걸음을 섶길로 옮긴다. 저 지난주 4월에 들어서면서 섶길을 사정상 참여를 못하게 되었다. 그간 섶길에서 여러 길벗님과 나눈 정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있다. 비록 같이 아름다운 동행은 못하더라도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시간이 허락되면 한 발 늦게 답사이야기를 남겨보려한다.

필자가 지난 겨울부터 시작한 섶길은 가을색이 짙게 남아 길의 쓸쓸함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섶길의 봄을 기대하곤 했다. 이번 과수원길이 그중 하나이다.

어제 일요일 교회를 다녀온 오후 시간상 출발점인 시청과 시내길을 생략하고 버스를 이용하여 기남방송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죽백동에서부터 시작이다.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 일을 서둘러 마치고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이조년의 시조 첫머리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려 죽백동에서 기남방송까지 야밤에 걸었기 때문이다. 전날 꽃샘 비바람과 구름에 가린 하루묵은 보름달에 비친 배꽃을 기대했지만 찬바람이 싫은지 달은 나타나지 않아, 가로등에 비친 배꽃밭 사진만을 담아왔다. 위 두번째부터 몇장의 사진이 그렇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공통된 마음의 고향이 있다. 어릴적 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 또는 '과수원 길'의 그림같은 그 고향 말이다. 그 동요를 어쩌다 듣게되면 가슴 뭉클해지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동구밖 과수원길..., 꽃대궐 새대궐...' 등 동요가 그려내는듯 과수원길은 한마디로 그 마음의 고향을 다녀온 것 같다. 섶길마다 녹아있는 정신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어 순위를 매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려니와 누굴 이쁘다하면 질투할것 같다. 다른 섶길이 혹여 내 이야기를 들을까 걱정되니 이 길이 이쁘다는 표현보다 '또 가고 싶다'고 둘러 말하고 싶다.

지난 겨울 원곡초등학교에서 출밤점으로 하여 시청을 끝점으로 하는 과수원길이 순방향이었다면 시내길에서 원곡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역방향이다. 역방향에서 홀로 걷다보니 빨강초록의 섶길리본과 표지판들이 든든한 등대가 되었다. 그러나 역방향에서 깜빡 두번이나 길을 잃었다. 다시 되돌아 등대를 찾아 제 길을 찾았다. 길을 잃었던 지점을 다시와 곰곰 살펴보니 모두 순방향에서의 표시였다. 역방향에서의 표시가 아쉬움에 남는다. 길을 잃거나 머뭇했던 지점에서 사진을 남긴다. 섶길에서 길을 잠시 잃었다는 여행자들의 후기를 본적이 있었다. 여행자에게 길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아찔한 일이다.

과수원길 내내 바라보는 봄을 즐기며 걷다보니 홀로라는 생각은 잊었다. 길에 빠져 들다보니 어느덧 원곡초등학교에 도착해버린 것이 아쉽다. 길의 끝에 도착하여 성취감보다 아쉬움이 자리한다.

어릴적 기지촌 골목에서 자라기는 했어도, 초등학교 교실 창문 너머로 동요의 길로 소풍가던 그 봄날 과수원의 꽃대궐을 다시 보아서일까.

다시 돌아가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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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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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금 | 작성시간 23.04.10 비록 섶길 길벗님들과는 아니어도 과수원길을 걸으셨다니 섶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져서 뭉클해집니다^^

    어릴적 우물가에서 펌프질을 하며 놀던 여름~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간신히 읽었던 날들(새로운 단어들도 많고 어려운 말도 많고ㅎㅎ) 아마도 다시 도전해 봐야겠죠~^^
    작가님 글 넘 반갑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10 아, 빠트린 글이 있었습니다.
    여느 섶길에 비해 직선보다 구부러진 길을 많이 품고 있더군요. 그래서 길이 더욱 제게 다가왔는지도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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