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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배우는 것

작성자박태호|작성시간26.06.11|조회수28 목록 댓글 1

살다 보면 언젠가 마주하게 될 한 가지가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미루고 싶어도 미룰 수 없는 것.
바로 죽음이다.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젊을 때는 죽음이 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뉴스 속 숫자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멀리서 손짓하던 존재가, 어느새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가 된다.
"삶이 곧 죽음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쌓는다.
재산을 모으고, 관계를 넓히고, 이름을 남기려 애쓴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서면 그 모든 것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비로소 질문 하나가 남는다.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얼마 전, 불치의 병에 걸린 한 젊은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많은 환자를 지켜보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놀랄 만큼 담담했다.
그는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받아들였다.
피할 수 없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남은 시간을 원망으로 채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바쁘게 살며,
자신이 가진 것을 마지막까지 나누려 했다.

그의 모습은 묘한 질문을 던졌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리 관을 짜거나 유언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워할 시간을 줄이고,
사소한 일에 화내지 않으며,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웰다잉’의 시작일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죽음을 기억하면 오히려 삶이 또렷해진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하루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임을 알게 되고,
평범한 저녁 한 끼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깨닫게 된다.

메멘토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우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경고가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살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떠난다.
그날이 오늘 일지, 수십 년 후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라는 사실이다.

나는 화려한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잠들 듯이
내 삶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순간,
“괜찮은 삶이었다”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결론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문장인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부끄럽지 않게 쓰기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 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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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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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태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사십 대 젊은 의사 부부의 얘기입니다.
    남편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대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끝까지 자기 소임을 다 하면서 마지막까지 슬기롭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죽음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 해 사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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