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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경험

어느 아르헨티나 사람의 이야기

작성자스탠리(미국/대구)|작성시간12.06.14|조회수1,049 목록 댓글 12


안녕하세요.
이 글은 어느 게시판에 올라왔던 익명의 아르헨티나 사람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군사독재 시절,
엄청나게 국민을 많이 죽였던 나라라는 기억과 한 때 잘나가던 국가였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이야기라 흥미롭습니다.

 

원문은 화면에 빽빽하게 글을써서 20개가 넘을 정도로 길어서 축약을 했습니다. ( 축약을 하면
분위기가 전달이 안되서 안좋아하는데...어쩔수가 없군요 ) 긴 글입니다만 내용을 읽어보니 전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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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아르헨티나에서 무슨일이 있었는가 ?


-아르헨티나의 지난 수십년간 이야기는 정치만 해도 책으로 쓰면 수십권에 달할것임.
-옛날에, 스페인 애들이 들어와서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고 수탈을 시작함.
-주로 스페인 애들은 아주 원초적인 제품들을 내다팔고 부를 축적했음. 주로 곡식, 양털, 육고기 같은 것임
-그리고 그들은 원주민은 거의 아무것도 배려하지 않음

 

-다른 나라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사간 원재료를 조금 가공해서 몇배를 받고 팔아도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계층은 전혀 신경 안씀. 안그래도 부자니까. 돈이 모이니까.

-한 마디로 노예는 죽지 않을정도로만 먹을걸 주고 나머진 몽땅 내꺼다...그리고 뭐 세상이
 변하는 거 그런거는 신경 안쓴다...이런 상황. 자기 배가 부르니 변화를 싫어할 밖에.


-나라의 지배계층의 이런 정신상태는 1900년도 초기까지 계속 유지되었다고 함.
-그러니 다른 나라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판에 아르헨티나는 계속 농산품 같은것만 계속팔고
 있었고 아무도 나라의 미래는 신경을 안 씀
-오히려 다른 나라가 산업혁명을 하는 동안 생긴 1차 생산물의 수요로 경제적으론 호황기를 맞음

 

-1920년대는 정말 호황의 극치였고 몇 명안되는 사람들이 나라의 땅을 다 차지하고 있었음.
-이 호황은 가난한 자들에겐 전혀 관계없는 말이었고 부자들에겐 향략의 시대였음.

-그러다가 극심한 빈곤과 빈부차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혁명이 발생하면서 페론 대통령이 등장함
-페론에게 좋았던 점은 스스로의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점임.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앞에서 하던것을
 몽땅 다 지우고 다른 정책을 내놓곤 해서 어떤 정책도 정권이 바뀌면 살아남지 못함
-페론 역시 실패하자 76년도에 군사정권이 들어옴. 글쓴이는 이 군부인원들을 개XXXXXXXXX새끼라
 욕하고 있음. ( 아직도 군사 정권때에 죽은 사람들을 매립지에서 발굴하고 있다죠)


-군사정권은 국가의 빛을 수십배로 불려놓고, IMF자금까지 받아다 쓰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무너질려고
 하자 갑자기 화폐 디노미네이션을 해버림 (어느 정당 주장하고 비슷하네요)
-게다가 기업들이 도산을 하자 그들을 국영화 시켜버려 부채까지 국민들에게 떠넘김.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1982년 민주화 정권을 수립함.
-사람들은 당시 민주화 정권을 옹립한데 들떠서 한동안 경제나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음.

-그러나 그 때, 군사정권의 정책실수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함.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하도 심해서
 주급을 받기 시작함.

-하루에도 물건 가격이 몇배나 뛰어 올랐고 식당에 들어갈때와 나갈때 음식값이 완전히 달랐음.
-중산층은 삶에 지쳐 허덕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거의 포기한채로 나날을 연명하고 있었음.
-도처에서 하도 절도와 폭동이 심해 메넴 대통령은 원래 일정보다 4개월빨리 대통령직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함.

 

-메넴과 그의 경제관료들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1 Peso(페소) = 1 USD로 만들었다고 함.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행복해졌음.
-사람들은 수입품을 아주 싸게 (갑자기 돈의가치가 확 올랐으니)사용하면서 좋아했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메넴정권이 부패문제 해결과 경영상의 효율을 명목으로 모든 국가기관을 민영화하기 시작함
-당시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국가의 부를 이루는 기업들을 얼마나 우습게 건네줬는지 그 계약서를
 보면 아직도 글쓴이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라 함.

 

-그리고 무모한 디노미네에션의 결과가 슬슬 나타남.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해외 기업과 도저히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아(돈의 가치가 올라도 비용이 그대로니....거기다가 1페소=1달라니)
 물건을 만들어도 해외에서 달라로 너무 비싸게 되어 팔리지가 않음.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전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음. 일단 상점에서 수입품을 아주 싸게
 구입해서 풍족하게 살 수 있었으니...

 

-이런 상태가 10년이 지속되자 아르헨티나의 거의 대다수 공장과 기업은 파산을 했음. 그리고 다시
 1차 생산물을 만드는 나라로 전락했음.
-기업들이 망하자 중국이나 3세계에서 온갖 잡동사니 수준의 물건들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그걸로
 온 국민들이 살아가기 시작했음.
-자체 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없어 일자리도 줄어들고(자력조달을 수입으로 대체한 효과죠)
 이로써 한 때 실업율은 25%를 넘어갔음.

 

-메넴이 다음정권(메넴 반대파)에 바톤을 넘기고 나서도 이들의 무능력과 앞서 말한 경제적인 문제로
 나라는 다시 수렁에 빠졌음.
-이들의 무능력은 드디어 2001년, 온 나라에서 절도와 폭동이 일어나게 만들었음.
-사람들은 대통령궁으로 시위를 하러 모여들었고 경찰이 진압을 시도함
-결국 대통령은 헬기로 대통령궁을 떠나버림
-그 이후 일주일에 5명의 대통령을 갈아치우면서 혼란을 거듭함. 같은 당끼리도 서로 이익을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물어뜯는 사태가 매일 발생함.

 

-이 당시의 문제점은 정권에서 말하는 "국민"의 범주안에 당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함.
-글쓴이는 지금처럼 미국이 계속 가다간 90년대 아르헨티나와 완전히 동일한 길을 걸을것이라
 판단하고 있음 (글쓴이는 지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음)

 

2001년 사태(정권혼란) 이후 상황

-당시엔 유로와 금에 투자하는 것이 좋았음 은행의 모든 개인 자산은 거래중지가 되었고
-은행에 달러를 가진 사람들은 1.8peso/1$ 정도로 돈을 지급받았었음.
-국채를 샀던 사람들은 액면가의 50%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음

-파산해가는 은행들을 국영화하기 위해 국가의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기지를 내지 못해 집을 차압당하고 있었음

 

-글쓴이는 2001년도 이후 e-bay에서 물건을 이것저것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음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은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말임

 

물품들

 

좋은 품질의 후레쉬는 필수다. 배터리도 여분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LED 후레쉬가 매우 좋다.
여러 종류의 배터리를 모두 가지고 있어라. CR123(리튬망간전지) 같은 형태의 배터리를 벌크로 사 두어라.
이것은 보관연한이 10년정도 된다. ( 우린 태양광 충전기로 대체하는 것이 대세였던... )

 

아울러 라디오를 사용할 건전지도 필요하다. ( 역시 태양광 충전식이 대세죠 ) 그리고 MP3를 구동할
건전지도 고려하라. 음악은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집에 로프를
사두라.(낙하산줄도 포함해서 고려하십시오) 이것은 그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반드시 자신의 몸무게의
10% 이상의 여분을 두고 밧줄을 선택하라.

 

나는 집에 불이 나지 않는 이상 집에서 도망갈 이유가 없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를 포함해서 나의 로프는
충분히 감당을 할 수 있다.


식량

 

두 단어만 기억해라. 통조림 그리고 보존 연한.

 

이야기 하나 하자. 8~10년전쯤에 도시의 전력회사가 변전소에 폭발이 나서 완전히 전기가 나간적이 있었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새벽 2시경에 한 두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왔고, 그 동안 물펌프를 돌려서 고층에
물을 끌어올릴수 있었다. 게다가 급수차가 와서 정말 물이 공급이 안되는 집들에게 물을 나눠주기도 해서
그나마 물을 공급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저 문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기와 물 부족. 아마 수십년은 더 된것 같은데 나는
이 문명화된 나라에서 이런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당시 어머니는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해서 샤워를 하기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나는 집의 물을 아끼기
위해 그나마 물을 공급받던 먼 곳의 체육관에 등록해서 운동 후 거기서 샤워를 했다.

 

만약 당신이 쌀을 먹는 사람이라면( o_o 놀랍군요), 아파트에서 쌀은 정말 곤란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시골의
물과 불을 피울 연료가 풍부한 곳이라면 문제가 없을것이다.  쌀을 조리하려면 나는 냄비와 연료, 그리고 많은
물이 필요하다. 나처럼 아파트에서 살면서 물이 부족해지면 쌀은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수도 있다.

 

기껏해야 2시간 펌프로 물은 아무리 많이 저장해야 100리터 ~ 150리터인데, 좁은 아파트에서 사람이 살기에
필요한 모든 저장품을 모두 저장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마셔야 하고, 사람들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고, 화장실
을 처리해야 하고, 거기에 조리까지 등등...물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가 설겆이까지. (설겆이 대안은
좋은 아이디어 한두가지가 공유되었었죠. 1회용품 혹은 비닐 )

 

설거지를 안하면 당신은 몇가지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될것인데 그것은 파리와 바퀴벌레이다. 이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곧 집안은 벌레와 나는 것들로 어지럽게 될 것이고 위생문제가 심각해진다.

 

만약 당신이 어떤 목적지로 이동을 하고 있다면 쌀을 요리하기 위해 멈춰선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이동이 주 목적이지 먹는것이 주가 안되도록 해야하므로 캔음식이 베스트다. 뚜껑을 연다, 포크를 든다, 먹는다.
물론 먹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동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통조림이 답이다.

 

내 경우엔 참치캔을 선택하겠다. ( 기름에 든것 말고 물에 든 - 여긴 참치 통조림은 대다수 물에 들어있습니다 )
나는 "봄샐러드" 라는 통조림을 찾아냈는데 이것은 야채와 참치, 그리고 마요네즈가 약간 든 매우 훌륭한 음식
이었다.

 

이래서 나는 좀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혼자 사는데 저 샐러드 캔은 양이 많아 혼자서
먹기엔 부담이 되는 양이다. 그러나 나는 통조림을 열 때마다 다 먹을것인데 그리고 저녁은 안먹는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생활을 해 나갈것이다. 왜냐하면 냉장고가 없으니깐 ! 통조림을 먹다가 그냥 두고 다닐수가 없다.
음식물이 집안에서 상하게되면 그 후처리가 더욱더 어렵기때문이다.

 

나는 물에 든 참치캔을 열면 그 물까지 다 마셔버리는데 이유는 어쨋든 그것은 몸에 필요한 물이고, 설겆이가
필요없게 되고 그 물을 어딘가에 흘리게 되면 파리가 끓게 된다. ( ㅋㅋ 이 물은 일반적으론 절대 사람들이
즐겁게 마시지 않습니다  ㅎㅎ ...비릿한게....토쏠리는...모르죠 익숙해진다거나...물이 정말 필요하면야... )

 

아울러 냉장고가 필요없는 음식이나 조미료를 알아냈다. 따바스꼬(Tabasco)도 좋은데 냉장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통조림 중 대다수는 상온보관이 가능하다.

 

그리고 쿠키와 사탕도 좋은데 쿠키는 아침 대용으로 훌륭하며 아울러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상태에선
좋은 소일거리가 되고 무료함을 달래기가 좋다. ( 전기가 다 나갔을 때...뭘 하실건지요 ? )

 

 

물물교환 아이템 그리고 귀금속
( 이 부분은 주의깊게 읽으셔야 하는데 시대가 90년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당시 다른 나라의 상황은
  지금과 또 많이 틀립니다 )

 

나는 여기서 사는 동안에 귀금속이나 물물교환용 물품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그렇듯이, 현찰이 왕이다.

 

그래서 당신은 어딘가에 항상 현금을 놔둬야 한다. ATM이 정전으로 작동을 안하거나, 정부에서 뱅크런을 막기
위해 입출금을 정지시켜버리면 당신은 황당한 상황에 직면 할 수도 있다.

 

주요 대형 마트들은 절대 물물교환이나 귀금속을 받은적이 없다. 그들은 유로화나 달러는 환영했지만, 어느정도
수수료를 떼고 환산을 해주었다. 3%~5% 정도. (도둑놈들...)

 

작은 한국 음식점 혹은 중국 음식점에서는 금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그래본 경험은 없다. 아마
당신이 그렇게 시도했다간 내가 사례를 모르듯이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라.

 

내가 듣기로는 은은 너무싸서 그걸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었고, 금은 너무비싸서 그걸로 마트에서 생활용품을
살수는 없었다. 1 온스에 470불 가량되었으니. 내가 이정도의 현금이 있었다면 한달 생활비로 충분했다.
그리고 금을 은행이나 부로커에 팔면 시세에서 그들의 마진을 또 떼어줘야 하는 상황이라 좋지 않았다.
( 부로커 마진이 달러로 20$이면 그 돈도 매우 본인에겐 컸다는 말입니다 )

 

이런 경험으로 보면, 현찰이 왕이다. 장기투자를 하고 싶으면 금을 사라. 하지만 내가 보낸 시절같은 상황에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금의 달러나 유로로 나는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기에 미국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해외의 다른 강한 화폐를 집에 두라고 하고 싶다.
( 이게...지금은 좀 상황이 틀리죠..거기다가 이 사람은 당시 금이 USD로 바뀔수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환전성은 금이 더 낫지 않을까요 ? 지폐보단 ?  충고 부탁드립니다 )

 

 

------이 사람 글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시간나면 찾아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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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논산댁 | 작성시간 12.06.14 스텐리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작성자초애 | 작성시간 12.06.15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삽자루(구미) | 작성시간 12.06.15 좋은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장아찌(경북) | 작성시간 12.06.15 정말 도움되는 글이었습니다. 뭐랄까? 우리 나라와 가장 비슷한 문제들이 많았던 나라였군요. 부정부패.... 하지만 결론은 모두 생존용품들로 귀결이 되는군요. 장기재난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작성자스테파노(경기) | 작성시간 13.06.1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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