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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경험

바닷가 절벽 아래에서의 하룻밤

작성자Hobo|작성시간12.09.26|조회수1,037 목록 댓글 29

저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습니다.

오클랜드라는 도시입니다.

인구 150만의 가장 큰 도시죠.

약 한시간 드라이브로 훌륭한 바닷가가 있어 자주 가곤 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바닷가 절벽아래 낚시터에는 우럭같은 물고기가 잘 잡혀

저는 좋아합니다. 비록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약 30분 내려가야 하고

올라올때는 더 긴시간을 허덕여야 하지만.

 

작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저는 작전을 하나 세웠습니다.

뭔고하니 그 바닷가 절벽에 길을 내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인고 하니,

매번 힘겹게 오르내리는 그 산길이 비스듬하게 약 3키로미터인데 절벽위에서 바로 내려가자면

불과 300미터도 안되는 거리인 탓입니다.

 

그 바닷가에서 바위를 타고 수백미터 이동하면 정말 아무도 발닿지 않은 비경과

나만의 낚시터로 삼을 수 있는 조그만 섬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 섬에 홀로 가서 조용히 낚시하다 올 수 있는 나만의 코스를 개발하자....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것입니다.

 

바로 그 바닷가 절벽의 지세와 그 섬을 보여주는 사진이 마침 있어 올립니다.

절벽아래 붙어있는 조그만 바위섬인데 물이 빠지면 절벽과 이어지고 물을 들어오면 잠시

섬이 되고 하는 그런 곳입니다. 섬이라고 불러주기에는 좀 뭣한...

 

 

 

가장 위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이 있어 그 위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와 도달하는 바닷가임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바닷가 바위를 타고 수백미터 이동하면 저 섬에 도달할 수 가 있는데

보시다시피 상당히 가파른 지세를 어째어째 잘 내려가면 절벽 위에서 곧바로 저 바닷가 바위섬에 도달할 수

있을것 처럼 보인단 말입니다.

절벽 위로는 등산로가 죽 이어져 있어 어디서라도 곧장 아래로 내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날 마침 마누라는 한국가는 비행기를 탓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거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게 단지 몇시간의 작업이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뭐가 잘못되면 까짓거 여름이니까 비박하지 뭐....이런 가벼운 생각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밤을 세울 준비를 갖추지 않은 것이죠.

 

그래도 배낭에 이것저것 넣어가긴 했습니다. 

3키로미터를 걸어 내려가서 도달한 그 바닷가에서 저는 곧장 바위 위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없습니다만 처음부터 약 2미터 넓이의 바위와 바위사이 깊은 수로를 두개 건너야 했습니다.

첫번째가 좀 힘들고 두번째는 약간 좁아서 그냥 건너뛰면 되는 수준인데 어쨌건 물이 들어오면 좀 위험해 보이는

그런 곳입니다.

 

첫번째 수로에서 저는 그냥 한 번 뛰어 보기로 하고 우선 배낭을 건너편으로 던졌습니다.

배낭이 무거워 그만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버린 것입니다.

저는 가급적 침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배낭안에 이것저것 잔뜩 들어있다보니 금방 물에 가라앉지는 않고 물을 따라 둥둥 떠서 움직이는 상태...

사력을 다하여.....아직 들고있던 등산용 아이스펙같은 도끼자루의 고리를 이용해서 가방끈을 걸었고

간신히 다시 건져 올렸으나 이미 가방속까지 바닷물이 다 들어가서 젖어버렸는데 그 사이에 벌써 시커면 뻘이

들어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핸드폰이 물에 잠겨 망가진것입니다.

잠시 당황하긴 했으나 까짓거 스마트폰도 아닌데....이 기회에 스마트폰으로 교체하자..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먹기로

했죠. 후라쉬도 두개를 들고 갔는데 하나는 먹통이 되었고 하나는 그래도 불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유사한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을 참고로 올려봅니다.

같은 바닷가인데 지금 제가 건넌곳보다 훨씬 넓죠. 이런데를 뛰어서 건너진 못합니다.

다만 저런 모양의 다소 축소판이다..는걸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지금 윗 사진에 보시는 지형은 뭍으로 작은 해변이 있어서 그리로 걸어가면 오히려 쉬울 것이나 제가 건너야 했던

곳은 모래밭이 있는 곳이 바위절벽이라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가방을 다 비우고 짐을 재정리해서 다시 짊어지고...나머지 도랑 하나를 또  조심스레 건넌 다음

바위들을 타고 기어이 그 바위섬까지 이동했습니다. 과연 그 바위섬은 너무 아름다왔고 정말 제 마음에 쏙 드는게..

그 바위섬은 이층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낚시를 하기 좋게 되어 있고 윗층은 아주 조그만 풀숲을 이룬 가운데

한쪽면이 약간 경사지게 편평한 지형으로 거기 일인용 텐트를 치거나 해서 쉴 수가 있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바다새가 알을 낳아서 새끼를 치고 나간듯 제법 커다란 바다새 둥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곳이란걸 말해주는 거죠.

 

저는 그날은 거기서 낚시를 할 생각을 못하고 곧바로 절벽을 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오르면 가장 쉽게 오를 수 있을까....하는 탐색인데

 

실은 이날 이렇게 바닷가에서 시작해서 절벽을 오르는 길을 찾으려고 시도하기 이전에

절벽위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시도를 두번 정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마지막에 가서 진짜 약 수십미터의 수직절벽이 막혀 단념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밧줄을 가지고 가서 그걸 나무에 달고 한번 내려갈까 생각한적도 있는데

쥐도새도 모르게 절벽에 매단 밧줄에서 말라죽은채 발견될까봐 신중히 생각하고 접었죠.

저는 발상은 무모한 가운데 막상 구체적인 행동은  생각보다 신중합니다.

 

아무튼...그 절벽 아래에서 요리조리 다녀도 보고 시도도 해보고 했으나 역시...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쪽 절벽을 오르다가 푸석바위가 깨지는 바람에

약 3미터 넘는 길이로 주욱 미끌어져 - 바위에 부딛혀 머리를 안깨려고 차라리 팔다리를

바위에 붙이고 긁어버리는 바람에- 팔과 다리에 상당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물론 그 정도 부상은 이미 예상했고 감당하겠다고 생각은 했지요.

 

그리고 한쪽 절벽의 사면을 따라 제법 올라갔는데 그만 약 4미터 정도의 수직절벽이 다시 나타났고

이젠 힘에 부쳐 - 또 푸석바위인지라 무너질까 우려하여- 도로 포기하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름은 잘 모르는데 이 절벽 온데 자생하고 있는 가시나무가 또한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계속 찔려가며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제대로 된 절벽길을 개척하는데 실패하고 이제 그만 돌아 나오려 하는데 밀물이 차올라

바위를 건너서 아까 들어올때처럼 도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천상 비박이구나.....생각하고 그때가 저녁 8시경이었는데 아직 해는 밝았지만 서둘러 잠자리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절벽 아래쪽에 난 식물의 길다란 잎들을 칼로 잘라서 바위위에 깔았습니다.

가급적 많이 나뭇잎을 깔려고 노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푹신하게 하려고...

잎들이 가늘고 길다보니 서로 흩어지고 잘 모이질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기둥이 될만한 튼튼한 나무가 없다보니 뭘 어떻게 얽어볼 수도 없고 그냥 나뭇잎을 바위위에

까는걸로만 만족해야 했습니다.

 

다행히...잠자리로 선택한 그 바위 바로 뒤쪽으로 자그마한 자연동굴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깊이 약 4미터인

이 동굴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식수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바닷가 입구에서 줏은 조그만 패트병을 잘라서 물을 받았지요. 식수가 있으니 그마나 살만했습니다.

 

이제 잠을 청해야 하는데...

갖고온게 없다보니 텐트도 침낭도 없어 저는 배낭을 비우고 그 배낭을 뒤집어 쓰기로 했습니다.

제 배낭은 수십년된 캔버스 배낭인데 쓰레기 내는 날 누가 내다버린걸 줏어다가 깨끗이 다시 빨고 녹을 닦아내고

하여 다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배낭이 제법 커서 속에 있는 비닐천까지 밖으로 끄집어 내어 머리로부터 뒤집어

쓰니 거의 무릎까지 덮어주었습니다.

 

편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불안하여...바로 옆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는 혹시나 갑자기 쓰나미나 너울성 파도가 덮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바닥의 바위가 그다지 편평하지 않다보니 등이 배기는 경향이 있었고 배낭을 뒤집어 썼으니

 갑갑했고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그래도..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서바이블 상황인가 싶어

어떻게 해서건 이 밤을 잘 견뎌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요.

 

다행히 남반구의 12월은 한여름이라 춥진 않았으나 복병은 모기였습니다.

그날 절벽아래 살아온 모기들은 난생처음보는 식사꺼리를 두고 온동네 잔치를 벌였던것 같습니다.

딴에는 캔버스배낭을 뒤집어 쓰고 긴 바지를 입었고 발에는 등산화를 신었으나 계속 모기소리가 들렸고

모기가 공격하는지 근지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걸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고

생각했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헤아려보니 대략 600방 정도 물렸더군요.

 

아무튼 도시의 각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그리고 짝이 있는 이들은 다정하게 그야말로

'거룩하고 고요하게' 보낼 크리스 마스 이브를 저는 마누라를 한국으로 보내놓고 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진 바닷가 절벽 아래에서 '거북하고 고약하게' 밤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밤새 귓전을 때리는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쫄며 제대로 잠도 휴식도 아닌 어정쩡한 버티기를

하고 있던 저는 한순간 파도소리가 좀 조용해졌다는 느낌에 푸대자루같은 배낭을 젖히고 일어나 후라쉬를 

켜보았습니다. 그때가 새벽 3시반경이었습니다.  바닷물이 벌써 저만치 내려가 있는게 보였습니다.

이제 썰물인거죠. 가장 가까이 물이 들어오고 있을때는 불과 3미터 앞에서 바위밑을 치고 있었지만 절벽이 막혀

더는 어찌 못하고 있었던 저는 이제 살만하다고  판단하고 물이 나갔으면 후라쉬를 켜서라도 어째도 이곳을

탈출하리라...작정했습니다.

 

주섬주섬 짐들을 다시 챙겨 배낭에 넣고 후라쉬를 켜니 그런대로 전진할만 했습니다.

의외로 후라쉬가 밤에는 아주 밝게 느껴진 탓이죠.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며 마치 낮인양 저는 이제 탈출하는 사실에 고무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 후라쉬 바테리가 다 되어 꺼져버렸습니다.

준비성이 강한 저는 혹시나 하여 후라쉬 바테리 여분을 가져가진 했으나 문제는 깜깜한 가운데 

AAA싸이즈 바테리 3개를 갈아넣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라쉬 불이 꺼지는 순간 멈춰섰던 그 바위위에 저는 조용히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이제 손의 감각에만 의존해야 했고 뭐라도 하나 떨어뜨리면 끝장이었기에

티셔츠를 바지춤에서 끄집어 올려 배앞에 펼치고 그 위에서 조심조심 손으로 후라쉬 조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날이 희안하게 별도 달도 없는 가운데 그나마 희미하게 뭔가가 보이는게 있었다면 멀리 바다를 건너

비춰오는 도시의 불빛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너무 멀고 희미하여 전혀 도움은 안되었지만 아무튼 없는것

보다는 위안이더군요.

 

실은 그 후라쉬를 산 뒤 처음으로 바테리를 갈아보는 탓에 후라쉬 내부구조를 알 길이 없었으나 온 몸의 감각을

손가락 끝에 집중시키고 그 작업을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천천히 진행했습니다. 약 30분 만에 성공했고 다시 불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다시 전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새로이 발견한 사실이지만 그 바닷가 바위위에 지천으로 바다게들이

있었는데 손바닥만하게 큰놈들이 후라쉬 불빛 아래에서는 움직이질 않더군요. 잡으려면 금새 한바께스는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오로지 그곳을 탈출하는데에만 쏠려 있었고 전날 들어서면서 배낭을 빠뜨렸던 그 수로의

물길이 어느정도일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그 수로에 도착했고 첫번째 수로는 가벼이 건너뛰고 두번째

문제의 수로를 보니 다행히 물이 많이 빠져있어 물밑에 있던 바위 하나에 발을 짚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체없이 실행했고 이번에는 별 어려움 없이 성공했습니다.

 

그 나머지 길은 일사천리였습니다. 늘 헐떡이며 걸어 올라가던 산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숲에 들어가니 후라쉬가 없으면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인데도 전혀 두려움도 없이 콧노래로 올라가서

밤새 저를 기다리던 제 차에 올라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모기에 물린 다리와 발목의 모습을 사진찍어가지고 한동안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했는데 얼마전에 지워버려

보여드릴수가 없군요. 예전에 정글의 법칙에서 정글에서 하루동안 실종되었다가 구조된 방송국 이사님의

다리모습을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저와 똑같았습니다. 너무 많이 물리면 그 전체가 다 물집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이제 다시 여름이 오는군요....

고통의 기억은 서서히 잊혀지고 다시금 도전정신이 도지는군요.

언제 또다시 혼자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때 실패했던 장소가 아닌 다른 위치에서...한군데 봐둔 곳이 있거든요...

다음에 가거든 사진을 좀 찍어서 성공담을 올려보겠습니다.

 

끝으로 문제의 그 바위섬은 아니지만 (그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크지만)

역시 그 바닷가의 한 바위섬을 찍어서 올립니다.

저 바위섬에도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없는데 저는 예전에 이미 올라가본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속의 바위섬과 제 글에서의 그 조그만 바위섬과는 약 500미터 거리입니다.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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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01 감사합니다. 님도...상당히 터프하시군요...저마다의 서바이블 경험들을 가지신것 같습니다. ^^
  • 작성자초보자(여수) | 작성시간 12.09.30 와우 디테일한게 흥미진진 탐험소설 보는 것 같아요..탐험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소질있으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10.01 아이휴~ 소설은 무신...그냥 자세하게 적었을 뿐입니다...ㅎㅎ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4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미련이 남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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