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당신이 이 책은 인간 가족이 직면한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다루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제 보기엔 제가 큰 놈을 때려눕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 아주 웅변 적이었고, 토인비에서 제퍼슨과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지난 몇백 년 동안 그 문제를 풀려고 애써왔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뒤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좀 지난 분야를 복습해봐야 할 것이다.
계속하십시오. 저한테는 그걸 다시 한번 더 듣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내게는 아무 "해결책"도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자. 이것은 내가 이중 어떤 것도 문제 상황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그에 관해 아무런 선호(選好)도 없다. 내가 여기에서 표현하는 것은 관찰할 수 있는 것, 누구라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좋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해결책도 가지지 않았고, 어떤 선호도 없습니다. 그럼 당신이 관찰하는 것을 제게 말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세상이 완전한 해결책을 제공할 정부 체계를 아직은 감당할 수 없음을 보고 있다. 비록 미국 정부가 그중 가깝게 접근하긴 했지만.
선(善)과 공평함은 도덕 문제지, 정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정부란 건 선을 명령하고 공평함을 보장하려는 인간의 시도다. 하지만 선이 탄생하는 곳은 딱 한 곳뿐이니, 인간의 가슴속이 그곳이고, 공평함을 개념화할 수 있는 곳도 딱 한 곳 뿐이니, 인간의 정신(마음) 속이 그곳이며, 진실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딱 한 곳뿐이니, 인간의 영혼 속이 그곳이다. 인간의 영혼은 곧 사랑이기에.
너희가 도덕을 입법할 수는 없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원을 따라 돌고 있다. 이전에 우리가 이 모든 문제를 다룰 때 그러했듯이. 그럼에도 논의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도록 계속 노력하라. 우리가 같은 분야를 두 번 세 번 포괄한다 해도 상관없다. 여기서의 시도는 그것의 밑바닥에 닿기 위한 것이다. 즉 너희가 지금 어느 정도로 그것을 창조하고 싶어하는지 깨닫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할게요. 법이란 건 단지 도덕 개념을 성문화하려는 인간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겁니까? "입법"이란 건 단지 "옳음"과 "그름"에 관한 우리의 결합된 동의에 지나지 않는 겁니까?
그렇다. 그리고 너희 같은 미개사회에서는 특정의 시민법들, 규칙과 규제들이 필요하다. (미개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그런 법률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규제하기 때문에.) 너희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대단히 기본되는 질문들을 너희에게 들이대고 있다. 거리 모퉁이에서 계속 진행하기 전에 일단 멈출 건가? 정해진 값대로 사고 팔 건가? 서로를 대하는 방법에 제한을 둘 건가? 하는 따위의 질문들을.
하지만 실제로는 온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법칙'을 그냥 따르기만 해도, 살인과 협박과 사기를 금하고, 심지어는 빨간불에서 주행을 금하는 이런 기본적인 법률들조차 필요가 없을 것이고, 너희 역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법칙'이란 신의 율법이다.
필요한 것은 의식의 성장이지, 정부의 성장이 아니다.
당신 말씀은 우리가 그냥 십계명만 따른다면, 다 잘 될 거란 뜻이군요.
십계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보려면 1권을 찾아봐라.) 신의 율법은 결코 율법이 아니다. 너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마지막 진술을 믿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 1권을 읽게 하라. 그 책이 완벽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이게 당신이 이 세상을 위해 제안하는 것입니까? 완전한 무정부 상태요?
나는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쓸모가 있는지 관찰하고 있을 뿐이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니다 나는 정부와 규칙과 규제와 어떤 종류의 한계지음도 없는 그런 무정부 상태를 쓸모 있는 것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배열은 오직 앞선 존재들에게만 현실적이다. 나는 인간 존재가 그렇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희 종족이 당연히 옳은 것을 당연히 하게 되는 지점으로 진화할 때까지는 일정 수준의 통제는 계속 필요할 것이다.
너희는 그 과도기 동안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명하다. 하지만 좀 전에 네가 제기한 문제는 너무 분명해서 논박할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재량에 맡겨지면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왜 정부가 그토록 많은 규칙과 규제들을 사람들에게 지우는가가 아니라, 왜 정부는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그 대답은 너희의 분리 의식과 관계가 있다.
우리 자신들을 서로 분리된 존재로 본다는 사실을 말하는군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라는 이야기이고, 이건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개인의 위대성을 발휘할 힘을 우리에게서 빼앗는 것 아닙니까? 제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니, 그럼 (공산당 선언)이 옳았군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얘기했듯이 대단히 고상한 사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자비하게 강행될 때, 그 고상함은 퇴색되고만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가 지닌 어려움이다. 견해가 아니라 그 실행이.
그런 견해는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립하기 때문에 강제로 실행되어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네가 바로 맞혔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천성이다. 작업이 필요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당신이 말씀하셨던 의식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요?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쳇바퀴를 돌고 있군요. 집단의식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자, 자세히 살펴보자. 이 행성에 사는 모든 사람의 기본 욕구가 충족된다면, 인간 집단이 인간답게 살 수 있어 유치한 수준의 생존 투쟁을 피할 수 있다면, 모든 인류가 좀 더 고상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개인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과연 개인의 위대성을 억누르는 것이냐?
게다가 개인의 영광을 위해 과연 우주의 존엄성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의 영광이라면, 그렇게 해서 얻는 영광은 과연 어떤 종류의 영광인가?
나는 너희 행성에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자원을 놓아두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마다 몇 천 명씩이 굶어 죽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해마다 몇백 명씩이 걸인이 되고, 몇백만 명이 기본 생존권을 달라고 절규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을 끝장낼 종류의 도움은 힘을 빼앗는 식의 도움이 아니다.
하지만 너희 부자들이 굶주리고 집 없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고 싶지 않으니, 자신들은 그들을 돕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너희 부자들은 위선자들이다. 남들은 죽어가는데 그들만 잘산다면, 누구도 진실로 “잘사는" 것이 아니기에.
한사회의 진화 정도는 그 사회가 자신의 구성원 중 가장 못한 사람들을 얼마나 잘 대우하는가로 잴 수 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남을 돕는 것과 해치는 것 사이에 균형점을 찾기란 어렵다.
내놓을 만한 무슨 지침 같은 게 있습니까?
불확실할 때는 틀리는 한이 있어도 언제나 자비 편에 서는게 대강의 지침일 수 있다.
그리고 너희가 남을 돕고 있는지 해치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 동료가 네 도움을 받고 나서 더 자랐는가 아니면 줄었는가? 그들이 더 커졌는가 아니면 더 작아졌는가? 더 유능해
졌는가 아니면 무능해졌는가?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뭐든지 다 준다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해서 그것을 얻으려는 경우는 대폭 줄어들 거란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굳이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을 얻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그냥 모든 걸 얻기 위해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왜 꼭 "일해서 얻으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닌 어떤 특정의 것이어야 하는가?
인간의 기본 생존권은 만인의 타고난 권리가 아닌가? 아니 권리여야 하지 않는가?
누구든 최저 수준 이상을, 즉 더 많은 음식과 더 큰 집과 더 좋은 의복을 추구하고 싶다면,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과연 기껏 생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까?-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존재하는 행성에서.
이것이 바로 인류가 직면한 중심 화두(話頭)다.
과제는 만인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인간다운 기본 생존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 그런 다음 각자가 그 지점에서 출발하여 자신들이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그걸 붙잡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주장도 있죠.
그들이 정확하게 관찰했다. 그래서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에게 제시된 기회를 붙잡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또 다른 기회, 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의무를 지는가?
아니요.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아마 너희는 영원히 지옥을 헤매게 되지 않겠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신의 세계에서 자비는 끝이 없고, 사랑은 그침이 없고, 인내는 다함이 없다. 오직 인간 세상에서만 선이 한정된다.
내 세계에서 선은 무한하다.
우리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더라도.
너희는 언제나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가 당신의 선함을 당신 면전에 도로 집어던진다 해도.
그럴수록 특히 더 그래야 한다.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네 왼 뺨마저 돌려대고, 누가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같이 가주어라."[<마태복음> 5:39-41-옮긴이]) 너희가 내 선함을 내 면전에 도로 던질 때(여담이지만, 인간 종족은 몇천 년 동안 신
에게 이렇게 해왔다), 나는 너희가 그냥 오해하고 있을 뿐임을 안다. 너희는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너희의 실수는 사악함이 아니라 단지 무지에서 비롯되었기에, 나는 그것을 용서한다.
하지만 본래 사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성 자체가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네게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
저 스스로 관찰한 겁니다.
그렇다면 너는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다. 전에 네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세상형에서 볼 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달리 말하면 누구나 주어진 순간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누구든, 그 사람의 행동 전체는 손에 쥔 자료에 달려 있다.
나는 앞에서 의식이 전부라고 말했다. 무엇을 깨닫고 있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공격하고, 해치고, 위협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요?
내가 전에 말했다시피, 모든 공격은 도와달라는 외침이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덧붙이면 너희 정부들까지 포함하여-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잘못 자리 잡은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다.
나는 이미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한 수준 높은 해결책이 어떤 것인지 대강 설명했다.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마라. 선호는 갖되, 욕구는 절대 갖지 마라.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존재 상태다. 그것은 선각자들의 자리다.
그러나 지정학적인 차원에서, 왜 너희는 모두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어 함께 일하지 않는가?
우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인간 역사가 몇천 년이나 지난 지금 너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이것이냐?
진실은 너희는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희는 여전히 “만인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미개한 심리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다.
너희는 지구를 약탈하고 지구 자원을 강탈하며, 지구 사람들을 착취한다. 그러고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대해 너희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과격파"라 부르면서, 그들의 시민권을 체계적으로 박탈한다.
너희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 그것은 너희가 다른 식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생활 양식을 발달시켜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해마다 몇백만 에이커의 나무들을 잘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신문을 받아볼 수 없다. 너희는 몇 마일의 두께로 너희 행성을 감싸고 있는 오존층을 고갈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헤어스프레이를 가질 수 없다. 너희는 너희의 강과 개울들을 돌이킬 수 없게 오염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더 크고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산업을 지닐 수 없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중에 가장 못한 사람들, 즉 가장 불리
한 사람들과 가장 못 배운 사람들, 가장 덜 깬 사람들을 착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그리고 불필요한) 사치를 누리면서 최상층의 인간 등급으로 살 수 없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부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없다.
너희한테서는“다른 사람들도 소박하게 살 수 있도록 소박하게 살려는" 심성을 찾을 수 없다. 자동차에 붙이는 지혜의 스티커 따위는 너희한테 너무 소박하다. 그것은 너무 소박해서 청할 필요가 없고, 너무 소박해서 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너희가 그토록 힘들여 일한 건 지금 지닌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너희는 그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설사 나머지 인류가-너희 손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말라 비틀어진 바나나라도 얻으려고 고심하게 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너희는 생존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했다-그리고 그들도 똑같이 할 수 있다. 결국 누구나 자신을 위
하기 마련 아닌가?
이런 진창에서 벗어날 무슨 묘안이 있습니까?
그렇다. 다시 한번 이야기해줄까? 의식을 바꾸어라.
정부 차원의 행동이나 정치 수단으로는 인류를 역병들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너희는 몇천 년 동안 그렇게 하려고 애써왔지만 허사였다.
필요한 변화는 오직 인간 심성이 바뀌는 것뿐이다
필요한 변화라는 걸 한마디로 말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이미 여러 번 말해주었다.
너희는 신을 너희와 분리된 존재로 보고, 너희 각자를 서로 분리된 존재로 보는 걸 그만두어야 한다.
이 우주의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극의 진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만물은 애초에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돌이킬 수 없게 서로 의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삶 전체라는 직물 속으로 짜넣어진다.
모든 정부, 모든 정치가 이 진리에 토대를 두어야 하고, 모든 법률이 이 진리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것이 너희 종족이 품을 수 있는 미래의 희망, 너희 행성이 지닐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당신이 1권에서 말한 '사랑의 법칙'은 어떻습니까?
사랑은 모든 걸 주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너희 종족의 모든 이가 모든 것을 다 내어놓을 때, 너희가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너희가 뭔가 요구하는 건 오직 다른 누군가가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움켜쥐길 그만둬라!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아무 쓸모도 없을텐데요.
사실 필요한 것은 세계 의식global consciousness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런 의식이 생기겠는가? 누군가가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너를 위한 기회가 있다.
네가 이 '새로운 의식'의 발단이 될 수 있다.
네가 영감(靈感)이 될 수 있다.
사실 너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제가 그래야 한다고요?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느냐?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순전 작성시간 18.04.12 선과 공평함은 도덕 문제지, 정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정부란 건 선을 명령하고 공평함을 보장하려는 인간의 시도다. 하지만 선이 탄생하는 곳은 딱 한 곳뿐이니, 인간의 가슴속이 그곳이고, 공평함을 개념화할 수 있는 곳도 딱 한 곳 뿐이니, 인간의 정신(마음) 속이 그곳이며, 진실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딱 한 곳뿐이니, 인간의 영혼 속이 그곳이다. 인간의 영혼은 곧 사랑이기에.
'사랑의 법칙'이란 신의 율법이다.
필요한 것은 의식의 성장이지, 정부의 성장이 아니다.
신의 세계에서 자비는 끝이 없고, 사랑은 그침이 없고, 인내는 다함이 없다. 오직 인간 세상에서만 선이 한정된다.
내 세계에서 선은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