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과 시온산 [히 12: 18~29]

작성자solejesus|작성시간18.11.20|조회수852 목록 댓글 5


[시내산 - 히브리서 12:18~21]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19장의 내용으로 시내산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보고 있던 장면이다.

출애굽한지 3개월이 되는 날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이르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백성들을 이틀간 성결하게 준비시키고 셋째 날을 기다리라 하신다.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보통 경계를 정함은 경계 안의 것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백성을 위하여하라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완전함과 거룩함으로 피조물인 우리가 행여 위험을 당할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이시지 위험과 극단으로 내모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짓고 분리하는 분이 아니시다.

 

[출애굽기 19:16~19]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셋째 날 아침 우레와 번개, 불과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다. 뿐만 아니라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고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

 

[19:21,22]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백성들에게 내려가서 경고하게 하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기 위해 호기심으로 경계를 넘어 들어 올 것을, 그리고 제사장들은 성결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하시는데 칠까(파라츠)’터져 나오다란 뜻이며, ‘하노라()’‘~하지 않도록이란 의미이다. 경계를 정하신 이유가 백성들이 다치지 않게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여기서 칠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죄인도 사랑하심에, 터지듯이 밀고 나오는 마음, 사랑하는 백성을 당신의 거룩하심으로 단번에 정결케 하고 싶으신 그 마음으로 와락 품에 안고 싶어하시나 당신의 거룩함 때문에 죄인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임을 알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산꼭대기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릴 이끄시고. 우리가 간구한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아는 자들을 가까이 두고 동역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단지 현상과 기적만 추구하거나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기웃거리는 자, 하나님이 두드리고 계심에도 마음 문을 열지 않고 경계만 하고 있는 자, 내 안에 아직 숨기는 것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경계를 두시는게 아니다. 내가 경계를 두고 거기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나에게 제거되어야 할 요소,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음에도 함부로 경계선을 넘으려는 자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미리 경고하신 것이다.

 

[19:23,24]

23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모세가 그러면 아무도 시내산에 못 올라오겠습니다.” 하니 하나님께선 너는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하신다. 아론은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었다.

 

[출애굽기 20:18~21]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히브리서 12:18~21]의 실제 장면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 붙는 산, 침침함과 흑암, 폭풍, 나팔 소리 등의 현상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떨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게 아니라 불을 두려워하였고 이어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인식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한다.

 

[신명기 5:4,5]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죄악 때문에 우레나 불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레나 불은 으레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는 나의 고정된 관념 때문에 하나님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이다. 그래서 두려운 엄위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놓고 이와 같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출애굽기 24:17,18]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모세와 백성 모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불 같이 보였고, 모세의 눈에는 불과 연기가 아닌 영광으로 덮인 구름으로 믿어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림자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나의 의지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경계를 허무는 자가 그분께 더 가까이 가게 된다.

 

[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아무튼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말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한다. 모세를 중재자로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으려 하였다. 이스라엘이 곧 모두의 모습이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오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만 하고,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게 하셨다.

 

다시 [12:18~21]로 돌아가서 보면 실제로 눈에 보이고 들리며 만질 수 있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으나 백성은 말씀하지 아니하기를 구했고 견디지 못하는 등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예수님도 유대인들 앞에 눈에 보이고 들리며 만질 수 있는 똑같은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였다.

[12:19]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기를 구하였으니

시내산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 전부 두려워하여 결국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여겼던 것처럼, 그들 안에 어떤 두려움이 있기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저 듣기 싫은 소리가 됐을 뿐이었다.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를 잊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가 자신이 잊혀지는 것을 말이다. 현재의 상황이 바뀌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허상은 자신이 잊혀지고 사라질 것을 두려워해 존재처럼 보이려 한다. 그러나 존재는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절대 잊혀질 수 없으시며 거부할 수 없는 분이시다. 대적들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여 나만 존재로 보게 만들려 한다.

 

다시 18절로 가 보자.

[20: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거룩하고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레와 번개를 동반하고 나타나신다. 사실 죄로 물든 이 땅에 그 완전한 거룩이신 분이 나타나실 때 반응하는 대기의 현상으로 보이나, 사실 우레와 번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이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들을 무섭고 두렵게만 볼게 아니다. 하나님을 진정 알고 그분이 모든 것에 존재의 이유를 갖게 하셨음을 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렇게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비록 모든 백내장과 불완전한 물건에 고유한 암영을 가지고 보고 판단하는 인간의 근시안과 교만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들을 유일한 완전이라고 믿고 상아탑 속에 외따로 들어가 있기를 원해서 스스로를 어두운 감옥 속으로 몰아넣는데, 이 어두운 감옥은 결국 부정(否定;그렇지 아니하다 단정하거나 옳지 아니하다 반대함)의 나라인 지옥의 나라의 어두움으로 이어진다. 신경을 피로케 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나날을 피로하게 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보람없는 의심에서 벗어나서 사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적인 훌륭한 이유로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괴롭히기 위해서 괴롭히겠다는 터무니없는 의향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또한 나팔 소리는 감추어진 것이 계시될 때 불어진다.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을 때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절 말씀하실 때의 그 목소리를 나팔 소리라고 하였으며, 예수께서 다시 공중에 오실 때 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깨어 준비된 자에게 이리로 올라오라!” 하심이 곧 나팔 소리인 것이다.

지금은 이 땅에서 참 복음과 참 진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세상에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곧 나팔을 부는 것이다.

 

그들은 잠든 사람들을 깨우는 나팔들입니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잊혀지고 소홀히 다루어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들을 상기시키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사람에게 전해 주어서 잊어버리고 무감각한 사람의 아들들에게 감동의 전율을 일으키는 목소리들입니다.”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두려워 말라고 한다.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너희를 지키고 인도하신 이를 기억하라신다.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내가 어떻게 행하였고 내가 어떻게 인도하였는지 너희가 보지 않았느냐. 그 재앙 가운데 어떻게 지킨 이가 바로 나 여호와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메마른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신 분이 여호와이시다. 모두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시내산에 강림하셨으나 그분의 지극한 거룩함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운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움이란 반대적인 속성으로 아는 범죄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20절에 녹아 있다.

 

히브리서 12장으로 다시 가서 보면,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과 하늘의 순서나 위치보다는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 ‘거역(파라이테오)’(파라+아이테오)의 합성어이다.

 

파라’ : 가까운/곁에/친구

아이테오’ : 구하다/바라다/갈망하다/마땅히 요청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은 내 안에 계신 예수이시다. 거역하지 말라는 것은 말씀하신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배반하지 말라는 뜻을 넘어 그분을 구하고 바라고 갈망하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는 것이다. 믿음의 길이신 예수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달리는 자 곁에서 함께 경주하시는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길 원하신다.

 

25절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가 멀리하고 외면한다면 너희들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

다시 말해 옛 언약 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죄의 길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소리(포네)’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질서와 거룩함을 다시 세우는 선을 이루시기에 흑암 위에 세워진 죄악 가운데 있는 땅은 진동하고 요동할 수밖에 없다. 진동하고 요동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와 두려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9:18]

시내 산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학개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지금은 땅에서 지진뿐 아니라 홍수, 화재와 폭력 등이 이전보다 빈번해지고 증가하고 있다. 땅을 진동하심은 당신의 영광을 보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하려는 것. 하나님이 집중하시는 곳은 물리적인 땅이 아닌 영혼육을 가진 나란 땅이다. 무엇이 죄인지를 말씀하시고 알려주시면 내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악임을 인정하고 내 안에서 제거되고 뿌리 뽑힐 때까지 의지를 가지고 습관까지 바꾸며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진동하셨을 때는 땅에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을 때이다.

 

[요한복음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또 한 번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죽은 자들이 육을 입는 부활이 있을 것이며, 역시 하늘이 진동할 때는 커다란 나팔 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오시는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에 임하실 때이다.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차이를 분명히 알자.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단수이고 진동할 것들은 복수이다.

 

또 한 번 흔드심은 하나님께 속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명확히 분리하시겠다는 뜻이다.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무엇이 실체와 허상인지 명확히 구분되는 때이다. 물질세계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흔들리고 진동하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계신 나라이기에.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는 땅이 무너져도 결코 진동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 자는 절대 요동치 않는다. 아무리 뒤흔들어도 중심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신뢰하여 하나님께 바로 서 있는 자 말이다.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땅으로 하늘을 사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소망사랑과 인격을 온전히 빼닮아 하나님의 속성으로 변화된 자 말이다. 그러므로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된 자이다. 하나님과 관계되고 일치된 상태이다. 공포와 요동, 혼란, 무질서와 상관없는 그 나라가 내 안에 있으니 왕이신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곳은 온통 사랑과 평화이다. 이렇게 된 자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것이다.

 

진동할 것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자기 중심에 무엇들을 두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땅을 계속 흔들어 보시고 진동시키신다. 여기에 내 안에 진동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흔들리고 부수어져 가라앉을 땅의 속성이므로 지금 나에게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것들이다. 내 가장 밑바닥이 세상 땅에 속한 것이나 자기 자신이었던 자는 땅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에 따라 나의 중심이 흔들리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 어느 때고 준비된 자를 데려가시러 공중에 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이 말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앞으로 있을 심판으로 여겨지나, 아니면 지금또 한 번 주시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붙잡아야 하겠는가.

 

나에게 있는 문제는 반드시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받침생각에서 출발한다. 내가 한 생각과 행동의 출발이 사랑이 아니면 두려움이란 것인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두려움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과 내 안의 나도 몰랐던 탐심이 드러나는 것들이다. 두려움의 특징이 무엇인가. 벌벌 떤다는 것(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정체가 발각될까봐.. 지금 남은 시간 동안 두려움의 정체는 빛에 다 드러나서 사라질 그림자이고 허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은 움츠러들고 달아나고 숨고 독점하는 에너지이다. 그에 비해 사랑은 펼치고 활짝 열고 풀어주고 머무르고 드러내고 나누고 치유하는 에너지이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결과를 내가 예상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생각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행하는 게 진심어린 사랑이다. 사랑으로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27절을 원어로 그 의미를 알아보면,

만드신 것들(포이에오)’은 본을 행하고 실천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빚으신 창조물이고 하나님의 결과이며 산출물이다. 그리고 이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메타데시스)’은 수동태로 사용되어 변모하다’, ‘승천하다’, ‘다른 곳으로 옮겨지다를 나타낸다. 또한 나타내심이라(델로이)’폭로하다’, ‘명백히 하다’, ‘보여주다라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후 영존하게(메노)’속하다’, ‘거하다’, ‘계속하다는 영원을 그분과 함께 함이 담겨 있다.

 

진동할 것들은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설명한다. ‘진동할 것들이 있으므로 곧 만드신 것이 변동됨을 나타낼 것(더 구별되고 두드러지게)이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이 진동할 때 더욱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로 더 두드러지고 환하게 보여질 것이다. 곧 있을 휴거의 때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지구를 새롭게 바꾸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을 변화시키고자 함이다. 영혼을 담고 있는 우리가 당신을 찾을 수만 있다면 피조 세계를 뒤흔들고 못살게 굴어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다. 18,19절에서 산이 진동하고 커다란 나팔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과 모세가 긴밀하게 대화하듯이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는 이런 것이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를 받았은즉(파랄람바노)’, 미래 수동태로서 미래 어느 시점에 ‘~에 의해 ~될 것이다의 형식으로 쓰여 거느리다’, ‘데리고 가다’, ‘영접하다’, ‘넘겨주다(인계하다)’라는 의미가 바로 받았은즉인 것이다.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살고있는 자들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수 있다.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거느림을 받고 데리고 감을 당해 하늘에서 영접받아 하나님께 인계 되어질 것이다.

 

은혜를 받자

우리가 받고 받을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는다(에코)’는 것은 그분의 일부만 받음이 아닌 전부를 받음이다.

에코가 가지는 뜻은 다양하다. ‘가지다’, ‘입다’, ‘지키다’, ‘붙잡다(매달리다)’, ‘기억하다’, ‘생각하다’, ‘함께 하다’, ‘(인격적 존재에 대하여) 좋다, 건강하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

시작서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때의 그리스도, 지금도 성부 하나님 곁에서 중보하심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모두를 인정하고 받은 대로 살아야 한다.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왜냐하면) (진실로) 우리(에고;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4:23,24]

2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 믿음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재물, 명예, 권력 등과는 거의 상관없어졌을 것이니 이것은 아니다. 바로 이다. 이 땅에서 묻고 스며든 인간적인 의가 된 나. 신명기 23절의 어떤 형상은 돌이나 나무를 새기고 깎아 만든 것이 아닌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인 나의 형상이다. 내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내가 잘못 바라보는 대상에게 질투하신다. 하나님께 가는 데 있어 내가 장애가 되면 내가 불살라지는 것이다. “나는 원래 그래. 난 본래 그런 사람이야...” 사람은 원래란 말을 할 수 없다. 나는 원래 그렇다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만유의 근원이신 스스로 계시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태우고 소멸하는 불이시다. 중심이 하나님으로 서 있지 않은 자는 땅을 흔드실 때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 세워진 중심을 소멸하셔야만 한다. 나를 꽁꽁 묶어 매 순간 제단 위에 나를 올려놓는 것은 내 의지가 해야 한다. 진정한 뉘우침과 나의 의지로 나를 그분께 맡겨드릴 때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불, 성령의 불로 나의 인간성을 불사르신다. ‘(에고)’라고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나라고 말할 수 없는) 나를 소멸하셔야 한다.

 

[출애굽기 24:10,11]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아닌 이스라엘 자손들 중 존귀한 자들(모세/아론/제사장/70장로)을 그 앞에 두시고 먹고 마시게 하셨다. 이들은 자기를 볼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자들이었으며 자신들의 의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려 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자유로이 누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두려움에 머물러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들도 많았다. 지금 나는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

 

[시온산 - 히브리서 12:22~24]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있으면 거하게 될 나라인 동시에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모습이다. 하나님과 새예루살렘 시온 전체가 내가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지금도 돕고 있다.

 

22~24절을 보면서 받은 은혜가 점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야 진정 은혜를 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은혜는 24절에 있다. 바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지고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랑을 그 은혜를 진정 알아 내가 죽고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로 사는 자들이 이르는 곳이 시온 새예루살렘이며 아버지의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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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알이랑이 | 작성시간 18.11.20 아멘!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인 나의 형상이다. 내가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내가 잘못 바라보는 대상에게 질투하신다. 하나님께 가는 데 있어 내가 장애가 되면 내가 불살라지는 것이다. “나는 원래 그래. 난 본래 그런 사람이야...” 사람은 원래란 말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태우고 소멸하는 불이시다. 중심이 하나님으로 서 있지 않은 자는 땅을 흔드실 때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 세워진 중심을 소멸하셔야만 한다.
    나를 꽁꽁 묶어 매순간 제단위에 나를 올려놓는 것은 내 의지가 해야한다.
  • 작성자빛의 사자 | 작성시간 18.11.20 당신의 완전함과 거룩함으로 피조물인 우리가 행여 위험을 당할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이시지 위험과 극단으로 내모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짓고 분리하는 분이 아니시다

    거룩하고 거룩한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레와 번개를 동반하고 나타나신다

    . 사실 죄로 물든 이 땅에 그 완전한 거룩이신 분이 나타나실 때 반응하는 대기의 현상으로 보이나, 사실 우레와 번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이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조건 다 옳으십니다.아멘
  • 작성자감사 | 작성시간 18.11.20 모세와 백성 모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불 같이 보였고, 모세의 눈에는 불과 연기가 아닌 영광으로 덮인 구름으로 믿어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림자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나의 의지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경계를 허무는 자가 그분께 더 가까이 가게 된다.

  • 작성자순전 | 작성시간 18.11.22 허상은 자신이 잊혀지고 사라질 것을 두려워해 존재처럼 보이려 한다. 그러나 존재는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이시다. 하나님은 절대 잊혀질 수 없으시며 거부할 수 없는 분이시다. 대적들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여 나만 존재로 보게 만들려 한다.

    우레와 번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모습이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들을 무섭고 두렵게만 볼게 아니다. 하나님을 진정 알고 그분이 모든 것에 존재의 이유를 갖게 하셨음을 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 답댓글 작성자순전 | 작성시간 18.11.22 ‘진동할 것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자기 중심에 무엇들을 두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땅을 계속 흔들어 보시고 진동시키신다. 여기에 내 안에 진동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흔들리고 부수어져 가라앉을 땅의 속성이므로 지금 나에게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것들이다. 내 가장 밑바닥이 세상 땅에 속한 것이나 자기 자신이었던 자는 땅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에 따라 나의 중심이 흔들리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결국 언제 어느 때고 준비된 자를 데려가시러 공중에 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된 자이다. 하나님과 관계되고 일치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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