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생(거듭남)

조나단 에드워즈 이신칭의론은 그릇됐는가? ⑱ : 존 머레이 <확정 성화의 독특성>

작성자카나리아 朴埰同|작성시간22.06.23|조회수180 목록 댓글 7

 

 

 

조나단 에드워즈 이신칭의론은 그릇됐는가? ⑱ :

존 머레이 <확정 성화의 독특성>

 

 

사계四季 (2020.12.05 11:58)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 가져온

확정(단번, 단회, 결정, 근본) 성화의 독특성 :

그리스도 ‘단번의 죽으심’과 ‘단번의 부활’ 시에

‘정말로’ 죄와 함께 죽고 의와 함께 살아난 우리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능히 그분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요 14:17)

 

제가 아버지 말씀을 그들에게 줌으로써

세상이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이는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까닭 때문입니다.

제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입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저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또한 그들을 위해 제가 저를 거룩하게 합니다.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요 17:14~19)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롬 1:14)

 

 

------------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이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분소유하면 동시에 그분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여러 조각으로 나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제3권} 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16장] <제1항>에서.

 

------------

 

    믿음은 그 근원이 되는 거듭남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믿음불어넣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하신다.

 

 ‘존 칼빈 {요한복음 주석}’ <1장 13절 주석>에서.

 

------------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우리 곧 본성이 불의한 우리가 그분 성령聖靈으로 거룩하게 거듭나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존 칼빈 <고린도전서 1장 30절 주석>’에서.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함을 받은 자들만을 썩지 않는 씨영원토록 거듭나게 하셔서(벧전 1:23) 그들 마음에 심은 생명의 씨가 절대로 죽지 않도록 하시며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제3권}’ [2장] <12항>에서.

 

------------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떨어지면 그 즉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화롭고 고요하며 은혜로우신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물론,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분을 분명히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속임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제3권}’ [2장] <19항>에서.

 

------------

 

    회개를 가리켜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킴”이라 부른다면, 반드시 거기에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 속에 일어나는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옛 본성을 벗어버려야만 비로소 본성이 새로워진 사실에 맞는 행위의 열매들이 생겨나는 법이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제3권} [3장] <6항>에서.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성화를 처음으로 고안하셨다는 뜻에서 예수님은 우리 성화의 창시자이시지만, 또한 예수님 자신의 성육신 삶, 죽음, 부활에서 성화를 이루셨기 때문에 성화의 ‘개척자’시다.≫

 

싱클레어 퍼거슨, ‘싱클레어 퍼거슨 외 4 인 공저 {성화란 무엇인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78쪽.

 

------------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 어떤 친밀한 교제도 나눌 수 없습니다.

 

…(중략)…

 

    성경은 참으로 거룩하고 은혜로운 원리가 어떤 사람의 마음 안에 실제로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죄인이나 악인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9)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씨는 영혼 안에 있는 참된 미덕 거룩한 성향의 원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러한 미덕의 원인인 하나님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 불필요한 일입니다.

 

…(중략)…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는 사악함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것입니다, 가장 작은 분량으로 존재하고 맨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거룩하고 신적인 성향들과 기질들도 죄를 범하는 상태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중략)…

 

    하나님께서는 중생의 역사를 행하실 때 사람의 마음에 신령神靈한 씨앗심으시는데, 다양한 종류의 씨앗을 심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의 씨앗만 심으십니다. 요한일서 3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중략)…

 

    영혼의 소생蘇生도 성령聖靈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중략)…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일어납니다. 에스겔 36장 26절,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조나단 에드워즈 {이신칭의론과 은혜론} 이태복 역 (서울: 개혁된 신앙사, 2002)’ 320쪽~366쪽.

 

============

 

    ‘구원의 서정에 확정 성화 위치를 존 머레이 목사님께서 선명하게 밝히시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이 주장과 함께 확정 성화 위치를 이신칭의 뒤에 두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유효한 부르심, 혹은 중생 - 회심(믿음+회개) - 이신칭의 - 확정 성화’라는 구원의 서정입니다. 합동신학원 조직신학 교수 시절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송인규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이 존 머레이 목사님이 확립하신 확정 성화 교리에 굉장히 감동하셨다.”는데,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께서는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거룩한 불신자: 하나님의 거룩한 씨로 중생했으나 회심하지 않은 불신자’ 개념을 가진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 가정假定중생론’을 ‘확정 성화’를 뜻하는 성령의 검劍, 요한 사도 구절들로 단칼에 베어 버리십니다. 다음은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 류호준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8)’ 168쪽에서 옮깁니다. 

    “중생이 회개와 믿음으로 연결되기 전에 여러 해 동안 중생이 한 사람 속에서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바 있다. ···(중략)··· 그러나 이 가능성은 우리가 방금 살펴본 요한의 구절들에 따라 받아들일 수 없다.

 

------------

 

    거듭남의 우선성을 말하면, 사람이 거듭나도 아직 회심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요한일서 이 본문들은 이런 오해를 불식한다.

 

‘존 머레이 {구속} 장호준 역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11)’ 155쪽.

 

------------

 

    (3) 중생과 성화의 관계 :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이 두 가지는 동일하다. 앞으로 보겠지만, 성화는 ‘단회(definitive)’적이다. ‘단회’ 성화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어떤 특정한 한순간에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죄 없는 완전한 상태로 살 수 있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죄의 영역과는 철저한 결별을 해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미로 성화를 이해할 경우 중생과 성화는 동일하다.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 177쪽~178쪽.

 

------------

 

    주입된 는 그것이 비록 완전하고 모든 미래의 죄를 제한다 할지라도 칭의에 포함되는 것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입된 는 과거의 죄와 불의를 없이하지 못한다. 그러나 칭의는 모든 죄와 사법적 책임의 사면을 포함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가 없다. 따라서 의는 미래에 대한 보증과 마찬가지로 죄 사함과도 관계되는 종류의 것이어야 한다. 주입된 는 이 필요에 미치지 못한다. 중생에서 주입된 는 결코 이생에서 완전하지 않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8)’ 221쪽~222쪽.

 

------------

 

    성령께서 직접 능력 있게, 불가항력으로 사람 마음과 뜻에 작용하셔서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드신다. 사람을 진리의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 그리스도 형상을 따라 새롭게 창조하신다. 혁명과 재건은 사람의 도덕적 영적 존재의 중심에서 일어난다, 죄와 오염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성체에서 퇴위당하고 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스테판 차르녹(Stephen Charnock)은 또 말한다. “중생은 성령의 능력 있는 역사에 의해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힘 있고 강력한 변화다. 그 가운데 생명의 원리새로운 습하나님의 법하나님의 성품이 마음 가운데로 주입되고 조형돼 그것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안에서 영원한 영광까지 자라갈 수 있도록 한다. ……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존재하게 되는 변화, 창조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말에 따르면, “새로운 종류의 활동을 위해 영혼의 본성에 놓인 새로운 기초가 존재한다.” 이와같이 깊이 뿌리내린 변화는 삶의 모든 관계 안에서 표현된다. 지배적인 성정마음과 뜻새롭게 된다. 따라서 이제 그 사람은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나님 소명의 특권과 복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182쪽.

 

------------

   

    워필드 말에 따르면, “새 생명은 필연적으로 그의  아버지의 용모를 가진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206쪽.

 

------------

 

    거듭남은 거룩한 일이 시작되는 것이고 성화는 그렇게 시작된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존 머레이 {구속}’ 125쪽.

 

------------

 

    이 교훈은 “물로 거듭난다.”는 표현을 통해 니고데모에게 가장 효과 있게 전달됐을 것이다. 죄에서 비롯된 부패에서 깨끗하게 된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과 같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에 포함된 정결케 하는 측면이다. 거듭남은 장래를 새롭게 일구는 일은 물론 죄로 얼룩진 과거를 무효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의로움으로 새롭게 창조될 뿐 아니라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존 머레이 {구속}’ 148쪽~149쪽.

 

------------

 

    (주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씀하신) 요한복음 3장 5절은 새로운 출생이 담고 있는 두 가지 요소(정결하게 하심과 새롭게 하심)를 제시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마음의 부패가 사라지고 생명이 새롭게 된다. …(중략)… 이런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다. …(중략)… 하나님과 척을 지게 하는 원수 된 죄를 없애고 하나님 아들과 나누는 교제에 합당하게 만드는 변화다. 

 

‘존 머레이 {구속}’ 151쪽~152쪽.

 

------------

 

    거듭남이 유효한 부르심보다 논리적으로 앞선다고 해도 신학적으로나 석의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구속이 적용되는 순서에서 부르심이 가장 우선한다고 여길만한 까닭이 있다.

 

‘존 머레이 {구속}’ 142쪽.

 

------------

 

    사람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고, 그런 그가 계속해서 죄의 지배와 권세에서 자유로운 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요한 사도는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본다. 죄의 지배 종식을 가져온 새로운 출생은 또한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존 머레이 {구속}’ 126쪽.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 생명은 우리를 죄의 지배 아래 묶어 놓은 결박이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존 머레이 {구속}’ 172쪽.

 

------------

 

   우리는 성화에 관한 용어들이 그리스도인 삶의 시초에 일어나는 어떤 결정적인 행위, 하나님 은혜에 의해 유효한 부르심을 받은 때 하나님 백성이라는 그들 정체성의 특징을 이루는 어떤 결정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화를 점진적인 역사役事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용어 사용과 개념의 성경적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290쪽. 

 

------------

 

    죄로부터 구원받기를 바라는 믿음은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갈망한다. 죄를 향한 이런 증오는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를 포함한다. …(중략)… 믿음과 회개를 행사함으로 거듭남이 우리 안에서 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존 머레이 {구속}’ 170쪽.

 

------------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구속을 적용하심으로 그들을 거룩하고 바르게 하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자기 형상을 따라 새롭게 하신다. 거듭나게 하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시고 성화의 역사를 통해 이어 가시고, 영화롭게 하심으로 완성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칭의는 아니다. 사람의 영혼에 은혜가 주입되는 것을 칭의로 여긴다든지, 실제로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성화를 칭의로 혼동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 주된 오류 가운데 하나다.

 

‘존 머레이 {구속}’ 177쪽~178쪽.  

 

------------

 

    부르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이 연합을 통해 하나님 백성은 거룩하게 하는 실제적인 덕과 효력을 얻는다. 거듭나게 하는 역사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요 3:3, 5~6, 8)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통해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은 신약성경 용어를 빌려 말하면 “신령하게spiritual” 된다. 하나님 백성 안에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의 이런 역사가 바로 성화다.

 

    부르심과 거듭남의 우선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효한 부르심을 입고 거듭난 모든 사람에게 죄는 더 이상 아무런 권세도 없다는 것이다. 부르심을 입고 그리스도와 연합한다(고전 1:9)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말이다. 죄에 대해 죽고,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죄의 몸은 멸했고,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롬 6:2~6, 14) 로마서 6장 14절 바울의 말은 단순히 격려의 말이 아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지 않다는 귀납적이고 논리적이며 필연적인 진술이다. 문맥상 수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강한 부정을 하고 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 문제를 거듭남 관점에서 보더라도 똑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 모든 거듭난 사람들 안에서 그들을 주장하고 이끄시는 주체는 성령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모든 사람이 가진 지배적인 성향과 근본적인 원리와 주도적인 성품은 거룩이다. 거듭난 신령한 사람은 그 속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기뻐한다(고전 2:14~15. 롬 7:22).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지을 수도 없다는 사도 요한의 말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요일 3:9, 2:1). 거듭난 사람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참조. 요일 1:8, 2:1).

 

‘존 머레이 {구속}’ 208쪽~209쪽.

 

------------

 

    유효한 부르심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로마서 5장 14절과 요한일서 3장 9절, 5장 4절, 18절이 말하는 승리를 가졌다.

 

…(중략)…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와 관련해, 죄의 권세에 대한 이런 승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이뤄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단번에 이뤄진다. 이 승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완전주의자들 주장만큼은 옳다. 믿음을 통해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이라는 주장도 옳다. 하지만 이들은 성화의 전체 구조를 어그러뜨리는 세 가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첫째, 거듭나고 유효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승리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이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존 머레이 {구속}’ 209쪽~210쪽.

 

------------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고, 거듭남을 통해 죄의 부패로부터 건짐을 받았다고 해서 신자의 마음과 삶에 남아있는 모든 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 머레이 {구속}’ 210쪽.

 

------------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새롭게 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존 머레이 {구속}’ 219쪽.

 

------------

 

    중생은 확정 성화에서 극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확정 성화를 ‘중생’이라는 주제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확정성화에서 매우 특징적인 것, 그리스도 죽으심과 연합함에 따른 죄에 대한 죽음, 또한 그리스도 부활과 연합함에 따른 새 생명은 성령에 의한 중생으로 적절히 설명될 수 없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298쪽.

 

------------

 

    사도 바울은 단번의 역사적 사건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가장 명백한 진술들과 신자에게서 죄에 대한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죽음에 관한 가르침을 끊임없이 교차해 말한다. 죄와 결정적이고 취소할 수 없는 단절, 새 생명으로 옮기심에 대한 바울의 논증들은 예수님 죽음의 단회성單回性과 결부돼 있다. “그분께서 죽으심은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심이요.”(롬 6:10)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304쪽.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단회의 역사 사건이다. …(중략)… 그리스도께서 죽고 소생하셨을 때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존 머레이 {성경과 기독교 윤리} 김남식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0)’ 248쪽.

 

------------

 

    바울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했다. 그 시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같이 단번에 이뤄진 완성된 행위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 가운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계신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욱이 이미 언급한 대로 바울은 이 문맥에서 죄와 결정적 결별을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도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에 따른 것이다.

 

‘존 머레이 {로마서 주석} 아바서원 번역팀 역 (서울: 도서출판 아바서원, 2014)’

<로마서 6장 6절 주석>에 담긴 글로서 이 책 304쪽.

 

------------

 

    바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들의 사랑의 나라로 옮겨진 일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신자들에게만 실재하는 죄에 대한 죽음과 의 안에서 사는 생명이다.

 

…(중략)…

 

    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죽고 소생하셨을 때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신자들은 참으로 갈보리와 삼 일만의 부활이라는 단회 사건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신자는 신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은 아니다. 또 이 죽음과 부활이 그들을 사실상 신자로 만든 것이 아니란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신자를 효과 있는 은혜의 작동 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고 또 인식해야만 하는 다른 측면들이 있다.

 

…(중략)…

 

바울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바는 사람이 복음의 유효한 소명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에 죄와 죄의 세력과 단번으로 결정적 단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의 인생사에서 발생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고 다시 사셨을 때 발생한 일과 비슷하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한 번 죽고 오직 한 번 다시 살아나셨다.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실현의 영역에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 이 경우 죽고 소생하는 것은 주님 경우와 한가지로 결정적이고 최후최종적인 것이다. 이 사실을 모호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존 머레이 {성경과 기독교 윤리} 김남식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0)’ 247쪽~252쪽.

 

------------

 

    그리스도께서 죄와 동일시돼 죽으셨다. 그리고 바로 오직 그 까닭 때문에 그분은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죽으신 것은 바로 그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죄에 대해 죽으셨다. 그분께서는 죄의 권능을 멸하셨으며 죄에 대해 심판을 집행하셨으며 의와 생명의 주로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영역을 설정해 놓으셨다. 그분의 백성은 그분께서 승리하고 심판을 집행하셨을 때 그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 또한 하나님의 구상, 지혜, 계산, 은혜의 경이로움을 나타내는 기이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죄에 대해 죽은 것으로, 새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은 것으로 인식돼야 한다. 기본과 중심은 바로 이 사실이다. 그것의 기이성奇異性은 하나님의 계산 속에서 그 실재성, 그리스도와 그분 백성과 연합 안에서 하나님에 의한 실제적 작정 속에서 그 실재성을 손상하거나 약화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나셨을 때 우리가 실제적이고 실존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와 동일화된 것은 오직 과거의 완료된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 덕분이기 때문에 그것은 기본이고 중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삶의 시초에 일어나는 죄와 결정적이고 확정적인 단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결정적이고 확정적이라는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취소하거나 반복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바로 그 까닭 때문에, 우리는 모든 신자가 죄에 대해 죽었고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살 수 없다는 교리에 관해 어떤 양보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죄는 더 이상 신자를 주관하지 못한다. 여기서 모호한 태도를 갖는 것은 그리스도 죽으심의 확정성을 공박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신자에게서 새 생명으로 결정적이고 확정적인 진입은 그리스도 부활이 결정적이고 확정적이라는 사실에 따라 요구된다. 부활의 취소나 반복을 용인할 수 없듯이 우리는 모든 신자가 새사람이며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죄의 몸은 멸해졌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 새사람으로서 그들은 성령의 거소와 성전이 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속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교리에는 어떠한 양보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305쪽~306쪽.

 

============

 

 

    {페북제 담벼락에서 옮겨옵니다제 담벼락에 올린 글은, 긴 글은 읽지 않는다는 {페북특성상핵심이 되는 중요한 글들을 옮긴 글이었습니다. 이곳에 올리면서 보충ㅡ특히존 머레이 목사님 글들ㅡ해 옮깁니다.

 

   제가 결정(확정) 성화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존 머레이 {구속론하문호 역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터 마스터스 {영혼의 의사손성은 역을 텍스트 비평하려고 존 머레이 {구속장호준 역을 구입한 2011년 12월이었습니다. ‘존 머레이 {구속}’에 실린 김광열 <해설의 글>’에서였습니다처음 알게 된 용어였지만, ‘성결(거룩)의 영이신 성령으로 태어나는 중생이란성령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자에게 거룩하신 하나님하나님의 거룩한 씨(믿음의 씨)를 심으셔서 거룩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다.’ㅡ염지웅 목사님이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을 저격하는 글을 {개혁주의 마을}에 올리시는데, ‘루이스 벌콥 {조직신학}’ 718쪽에 적힌 루이스 벌콥 목사님 말씀으로 적자면, “중생은 성령께서 새로운 삶의 원리를 사람에게 심으셔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일로서 하나님만의 사역이다.”ㅡ는 개념을 가진 저는 결정 성화’ 용어에 담긴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므로 저에게는 구원의 서정에서 확정(결정) 성화 위치를 잡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물론, {구속}에서는 결정 성화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 머레이 {조직신학}’이 우리말로 번역돼 출판됐다는 것을 안 것은 임진년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연중론 비평 토론 때였습니다. 이때 한국 교회 연중론 좌장 바로미 윤영상 목사님이 이 책에 있는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양무리 마을}에 올리셔서 알게 된 것입니다또한 연중론 비평 뒤 실직으로 고향에 갔을 때 존 머레이 {성경과 기독교 윤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막내 여동생 집 책꽂이목사님이신 매제 서재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해 얻어 온 것입니다.

 

    TR-RE 님이 언급하신 논문, ‘박재은 [결정적 성화 개념과 구원의 순서 사이의 관계성 고찰]’을 검색해 노승수 목사님 블로그에서 수박겉핥기로 읽어봤습니다지난 11월 28일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독한 것은 어제 낮이었습니다. 박재은 교수님이 존 머레이 {구속}만이라도 정독하셨다면아니 벌콥 목사님 중생은 성령께서 새로운 삶의 원리를 사람에게 심으셔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을 거룩하게 하시는 일이라는 가르침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셨다면, “존 머레이는 결정적 성화 개념과 구원의 순서 간의 관계성을 조직신학적으로 선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지 못하셨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 논문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실제 경험상으로는 중생 시 확정 성화를 의식할 수 없고성결의 영이신 성령께서 창세 전 그리스도와 연합한 예정된 사람에게 확정 성화의 씨인 하나님의 씨를 심으셔서 거룩한 자로 태어나는 중생, 중생이 발현하는 때는, 확정 성화가 우리 안에서 소리를 지를 때는 점진 성화의 시작이기도 한 회심 때라는 점에서또한 중생과 회심의 동시성 때문에 확정 성화는 회심 시에 있다.”ㅡ중생 - 회심 - 확정 성화 - 이신칭의ㅡ고 말하더라도이 말이 우리는 회심함으로써 중생한다.’ㅡ연중론: 수태 - 임신 기간 - 참된 회심 - 중생 - 확정 성화 - 이신칭의ㅡ나 연중론보다 더 나아간 주장, 회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함(이신칭의)으로써 거룩성을 주입(중생) 받는다.’ㅡ염지웅 목사님 주장: 회심 - 이신칭의 - 중생 - 확정성화ㅡ는 뜻이 아니라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무튼 TR-RE 님 이의제기로 확정 성화와 관련해 존 머레이 {구속}’ [2구속적용]과 {조직신학 제2} ‘중생과 확정 성화를 다룬 부분을 다시 읽게 됐습니다또한 지난 3일 저녁에 존 머레이 {로마서 주석}’ <6장 주석>과 존 머레이 {성경과 기독교 윤리}’ [9성경 윤리의 원동력]을 읽게 됐습니다이 점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 글 다음으로는 김홍전 목사님 강설을 어떻게 독해해야 할 것인가?’를 다룬 글을 쓰려고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카나리아 朴埰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23 저는 칼빈 선생님 이 말씀을 ‘존 머레이 목사님께서 죄와 결정적 단절을 뜻하는 중생(확정 성화)에 법정 칭의를 부여하실 수 있었던 까닭을 설명해 주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존 머레이 목사님 확정 성화론은 칭의에 성화를 뒤섞은 것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위 본문에 옮긴 글들,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221쪽~222쪽에서 옮긴 글과 ‘존 머레이 {구속}’ 177쪽~178쪽에서 옮긴 글은 이 오해를 차단합니다.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