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손성은 목사님은 이단들 앞에서 저리도 자신의 난독증을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요?

작성자풀핏|작성시간13.10.23|조회수366 목록 댓글 5

 

 

    1. 칼빈 선생님 그것은 이미 장성했어야 할 사람임에도 아직도 미숙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칼빈 선생님 이 문장에서 “장성이 연중론에서 말하는 출산: 단회의 일로서 회심을 뜻하는 말일까요?

 

    2. 칼빈 선생님 바울은 마치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수고를 하는 것처럼, 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으로 더욱이 그것은 그가 품고 있는 고뇌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처럼이라는 문장은 ‘똑같다.는 뜻일까요? {영혼의 의사} 49쪽에서 피터 마스터스는 육적 탄생은 영적 탄생을 말해 주는 정확한 비유(유비)이다.’는 뜻으로 성경에 나오는 새로운 출생의 비유를 사고 모델로 삼는다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자연적 출생은 회심 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말해 주는 예화입니다.”라고 서술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유비일 뿐입니다. 유비ㅡ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그와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로 설명하는 것ㅡ이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게라는 말은 이미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3. 칼빈 선생님 이제 저들이 타락한 후에는 다시 한 번 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이 저들의 첫번 출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저들이 아직도 완전한 형태가 이뤄지지 않으며 마치 제 시기가 차지 않은 태아처럼 다시금 태중에서 육성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처럼이라는 문장이 또 쓰이고 있습니다. “첫 번 출생(former birth)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생이라는 말은 연중론이 말하는 수태를 뜻할까요? 연중론에서 “birth”는 이른바 불완전중생으로서 제1중생인 수태를 뜻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완전중생으로서 제2의 중생인 출산을 뜻하지 않는가요?

 

    거듭나지 못한 지성을 가졌던 니고데모의 자기 어머니 뱃속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는 식 난독증을 가진 연중론자들 독해법은 태아태중이라는 말만 나오면, 연중론을 지지하는 해석으로 보이나 봅니다. ㅠㅠ. 하기야 지난해 여름 {연중론 비평} 존 파이퍼는 연중론자이다.”라는 연중론자들 주장에 대해

 

그레이스 님

<믿음이 거듭남의 원인이라 아니라 결과임: 존 파이퍼 {거듭남} [3]에서 발췌>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OgJY/295

라는 반론 글과

 

유명산 님

<“존 파이퍼 목사님도 연중론자이다.”??? 죄송하지만, 아닙니다!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OgJY/300

라는 반론 글이 있었습니다.

 

    ‘연중론을 지지하는 글로 가져온

동자 님

‘<존 파이퍼 {거듭남} [3부 어떻게 거듭나는가?]<7장 믿음으로 거듭난다.>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OgJY/293

를 두고 쾌재를 부르며 동자 님 이 글을 {양무리 마을} {공지사항} 게시판에까지 올리셨던 손성은 목사님······. 코메디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양무리 마을} {공지사항} 게시판에 동자 님 이 글이 아직도 있나 살펴 봤는데, {양무리 마을}{공지사항} 게시판이 보이지 않는군요.

 

    4. 칼빈 선생님 “원상대로 회복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때로는 젖을 주며 때로는 단단한 음식을 줌으로써 할 수 있다. 실로 복음의 사역자는 설교를 계속하는 동안 내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자기를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을 비유해 말했는데, 그것은 갈라디안이 아직 완전히 태어나지 않은 까닭이다.

 

    고린도전서 3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안이 아직 완전히 태어나지 않은 까닭이다.”는 문장을 읽은 손성은 목사님은 마음속 쾌재를 부르셨을 것입니다.  이 쾌재감으로 칼빈 선생님 갈라디아 4장 19절 주석을 연중론을 지지하는 글’로 {양무리 마을}에 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 선생님 원상대로 회복은 무엇을 뜻할까요? 3첫번 출생을 뜻하지 않을까요? “첫번 출생을 뜻한다면, 저는 위 1번에 적힌 장성이라는 말에 비춰 갈라디안이 아직 완전히 태어나지 않은 까닭이다.”라는 문장이 갈라디안이 아직 완전히 장성하지 않은 까닭이다.’로 읽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읽히십니까?

 

 

덧붙이는 글

 

    손성은 목사님이 <갈라디아서 4:19의 출생이 거듭남인가, 아니면 거듭남 이후 성화과정인가?>라는 아멘아멘 님 글에 다음과 같은 댓글 을 남기셨군요.

 

    holyjoy 09:56

 

    칼빈의 해석은 잘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먼저 칼빈의 성경해석을 좀 진지하게 읽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럴 마음이 없으시다면, 그런 관점만 일단 확인하고 더 이상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님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도 좋겠지만 앞의 선배들이 어떻게 성경을 이해하였는가 하고 궁금해 하는 것도 미덕이 될 것입니다.

 

    계속 댓글을 다시든지 하는 것은 자유지만, 칼빈의 성경해석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는 채로 댓글을 다시면 저는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한 시간들을 소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굵은 글씨로 쓴 손성은 목사님 댓글을 두고 이단 지방교회 아멘아멘 님에게 항복선언을 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비약이겠지요? 아무튼 쇠고집똥고집을 버리지 못한 나머지, 이단들을 {양무리 마을}에서 내쫓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단들과 참 잘 하는 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한아름 | 작성시간 13.10.24 풀핏님,
    1년이 지났는데 지난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시니
    그때의 생각이 그려집니다.ㅎ
    홀리죠이님의 토씨 한마디도 흘리지 않으시고 증거를 남기시네요.
    벌써 풀핏님 앞에서 백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얘기하신 공지사항은 연중론/순중론 방의 공지사항에
    아래 주소와 같이 걸려 있네요.
    동자님은 요즘 조용한가 봐요?ㅎ
    풀핏님의 수고로 감 잡으셨을텐데요..

    아무튼 지금의 수고가, 추후라도 연중론에 혹시
    현혹될 사람들에게 좋은 증빙자료가 될 것입니다.~^^
    풀핏님, 화이 팅!!!~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OgJY/293
  • 답댓글 작성자풀핏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4 아, {연속적/순간적 중생론 토론} ‘공지’에 있었군요. 저는 별도로 {공지사항} 게시판을 찾은 나머지, 착각을 했습니다.

    {연속적/순간적 중생론 토론} 게시판에 ‘공지’에 올라온 글만 읽으면, 칼빈 목사님이나 존 파이퍼 목사님은 모두 ‘연중론자’입니다. ‘반론’을 당한 그 글들을 여전히 ‘공지’로 둔다는 점에서 저는 ‘손성은 목사님 간교함’을 느낍니다. ‘이런 간교함 때문에 목사님이신 삶은 언제나 님이 연중론에 미혹돼 <연속적 중생론이 필요한 이유>라는 글을 {양무리 마을}에 올리셨다.’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풀핏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4 이 일은, 지난해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을 지켜보셨던 합신 출신 목사님께서 전화로 저에게 “순중론자들이 다 뒤집어 놓은 연중론을 구원론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노승수(바보새) 목사가 끼어들어 그르쳐 놨습니다. 노승수 목사 신학은 짬뽕신학입니다. 자기 신학이 짬뽕신학인 줄도 모른 채 합신에 침을 뱉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분노하시며 노승수 목사님을 안타까워하셨던 것처럼 안타까운 일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풀핏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4 {양무리 마을}에 얼마 전에 마우스 님이 <바보새 님 연중론 관련 논문 진행중이신가요?>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양무리 마을} 회원 분들 가운데, 지난해 여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특별 소명:수태→일반 소명:일반 회심→특별 소명: 출산, 즉 참된 회심>이라는 연중론의 도식을 <회심의 성격>이라는 글로 잘 설명하심으로써 ‘연중론은 그릇된 신학이다.’는 사실을 아주 명쾌하게 밝혀 주셨던 노승수 목사님에게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이’하기만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풀핏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24 마우스 님, 혹시 제 이 댓글을 보신다면, 노승수 목사님에게 미련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주님의 종’은 자신의 그릇된 성경해석을 지적당했을 때 ‘정말 그러한가?’라는 자세로 자신의 성경해석을 돌이켜 볼 줄도 알아야 하고, 그릇됐음을 깨달았을 때는 ‘그 그릇된 성경해석’을 ‘옳은 해석’으로 여길 사람들을 위해 ‘공식’으로 ‘인정하고 시정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굳이 노승수 목사님을 언급하는 까닭은, 아직도 연중론에 새로이 미혹당하는 분이 계신다는 점에서, 그것도 목사님이 미혹당했다는 점에서 노승수 목사님에게 ‘주님의 참된 종’으로서 자세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