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과 화학적 반응에 대한 지난 두 가지 이야기는 타인의 상승기류로 인한 에피소드였으니, 이제는 예의상 제 하강기류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맞선을 마흔일곱 번 보았습니다. 그 중 한 번이라도 제가 싫어서 거절한 적이 없었으니 그것은 다 스스로의 못난 탓 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잘 생기지 않은 몰골에 말조차 더듬고, 똥배를 슬슬 만지며 말술을 마다하지 않는 162센티의 단구. 양도세나 상속세를 내는 납세자가 될 가망이 전혀 없고 찬란하지 못한 직업을 가진 외아들. 황당한 잡설과, 기행을 일삼는 싹수없는 총각. 꼴에 '여자'를 무시 하는듯한 태도 등등. 이러한 악조건으로 인하여 결혼상대를 만나기 위해 맞선을 보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위대한 발상으로 치부될 정도였으니, 한창 콧대 높은 처자아이들 눈에 제가 신랑감으로 보이기나 했겠습니까? 마흔 일곱 번째의 마지막 맞선은 숙모님의 소개로 인하였습니다. 대구 대구백화점 옆문 도로 맞은 편 건물 지하에 "수'다방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맞선의 상대 아가씨는 다소곳하면서도 정면으로 마주 볼 때에 언뜻 눈에 총기가 엿 보이는 제대로 된 여자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거푸 마흔 여섯 번이나 딱지를 맞은 끝이라 선본다는 일도 지긋지긋하였고, 서로 탐문하는 듯 하는 객쩍은 분위기가 성미에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도 부모님의 성화를 피할 도리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휴일의 낮잠도 포기하고 억지로 끌려 나가서 보는 선이니, 상태가 유쾌할 턱이 있었겠습니까? 시큰둥한 기분으로 나선 저는 상대가 피하지만 않는다면 아무하고라도(물건만 틀리면) 결혼을 해버리라 체념한 터였습니다. 정말이지 맞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지요.
그날 맞선 자리의 들러리들이 대충 자리를 피한 후 둘 만이 남게 되자 그녀가 먼저 운을 떼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뭐 젊은 사람이 건강 안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꺼, 똥배가 좀 나와서 그렇지예(심드렁하게)"
"그거야 운동하시면 되지요.
“뭐 운동보다는 술 마시는 거나 만화 보는 거 좋아합니다.(역시 심드렁)”
“네~에! 철학과 나오셨다는데 사주팔자도 보시나요?"(무석하다 해야 하나?)
"쬐끔 봅니다만 뭐 궁금한 거 있습니까."(비꼬는 투로)
"아니오 오늘은 복채를 안 가져와서"(우스개라고~ )
"좋은 사주를 보면 복채를 안 받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사주팔자면 오히려 제 쪽에서 월급을 평생토록 주는 수도 있겠지요.(미끼 한번 던져 보았지요.)"
"아휴 철학자가 주시는 돈 얼마나 무거울까요"(이때 저는 갑자기 여자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말을 더듬고 사투리를 쓰는 안타까운 습성이 있습니다.)
"저 저~어 그렇게 무겁지는 아 안을낍니더. 머~어 히 희망은 높게 생활은 펴 평범하게 라꼬 카는 말이 안 있심니껴"(히~ 히)
"희망과 생활의 높이가 많이 차이 지면 불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아 예에 그라만 마 안되는데 그래도 마~ 아 사 사랑이라꼬 카는기 하능 일이 뭐 있겠심니꺼. 그 때사 마~ 그 빈 공간을 채와야 안 되겠습니꺼. 어~험"
이후 그 여자는 제가 말할 때마다 계속 웃어주었습니다. 저도 조금쯤 정성을 들여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하여 그녀는 마흔 일곱 번째 맞선 끝에 최초로 애프터를 받아 준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수성 못에서 보트 한 번 같이 타고, ‘오태석' 원작의 '초분'이라는 연극 한번 보고, 퇴근길에 만나 쐬주 몇 병 같이 먹고-이렇게 대 여섯 번을 더 만나고 나서 저는 정식으로 청혼 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사를 위하여 머리를 짜 내었습니다. 그녀 주위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저와의 사이를 기정 사실화 하여 그녀 주위의 다른 멋있는 놈들의 접근을 막은 후, 숙모님을 통하여 안면 있는 그녀의 집 어른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해서 그녀더러 '친구들에게 한 턱 내겠으니 가볍게 같이 만나 저녁이나 먹읍시다'라고 은근히 요구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습니다. 이후 저는 분위기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결정적인 선언을 하기 위한 '멋있는 말'을 준비하는 둥 그야말로 종족보존을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경주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D-day의 H-hour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 옆에 앉았고, 소개된 그녀의 친구들이 각자의 좌석에서 흥미진진하거나 깔보는 눈빛을 한 채 앉았습니다. 카페의 분위기 있는 음악도 흡족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에피타이저’가 끝나 분위기도 잡혀지고 '송아지스테이크' 가 서브되어 우아하게 창과 칼을 사용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그날 점심 때 차거운 콩국수를 맛있다고 두 대접이나 먹은 탓인지 속이 매우 불편하여 졌습니다. 쉬임없이 뱃속은 우글거렸고, 가스가 연신 뱃속을 가득 채워 가뜩이나 나온 배를 더 나오게 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허가 없이 가스가 외부로 누출 되려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라도 잠시 밖에 나가서 예의 없는 뱃속을 다스리고 와야 했으나, 바쁜 마음은 그러한 여유마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분위기를 주도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간 곳 없고 오히려 그녀의 짓궂은 친구들 공세에 시달리는 형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저의 태도를 본 그녀 역시 다소 불안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였고요. 해서 대사(大事)를 그르치겠다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분위기 만회를 위한 하나의 전기(轉機)를 꾀하였습니다. 즉 엉뚱한 소리를 한번 한 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저의 청산유수와 같은 장광설로 조무라기들을 압도하고, 이어 결혼예정일을 엉터리라도 공포하여 친구들의 박수를 유도해 내기로 심중을 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하기 위하여서는 잠시라도 뱃속의 거북함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었습니다. 즉 얼마만큼의 가스라도 방출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틈을 보아, 항문에 조금 힘을 주어 짧고도 빠르게 가스 배출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시도가 성공한 듯, 소리도 나지 않고 가스가 쫙- 잘 빠져 나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 수초 후 엉덩이 쪽이 뜨끈하여지더니 무슨 '겔' 상태의 액체가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 아! '방귀가 잦으면 똥을 산다'하나, 아아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설사! 설사를 하고 말았던 것 이었습니다. 정말 울고 싶어졌습니다. 얼굴은 흉측하게 찌그러지고 저의 몸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화장실 냄새는 식탁 위를 덮고 그녀와 그녀 친구들의 콧구멍 속까지 침투하여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 원통하고나 방귀여! 네가, 네가 여기서! “퀘바디스 도 미네(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오 솔레미오(하늘 아래 기적은 없다)” 흑! 흐~흑! 일순 저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으로 화하고, 고단한 창피가 설사냄새와 함께 그 자리를 뒤덮어, 두고두고 원통함이 떠나지 않는 통한의 방귀 한방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아! 미쳐버리고 싶었습니다. 흑 흑!.... 그 후 어찌되었느냐고요?
물을 필요조차 없소이다. 너무나 당황해 하는 그녀의 표정, 허둥대는 나의 몰골, 설사냄새,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에 웃지도 못하는 그녀의 친구들.
아니 당신들이라면 26세의 처녀로서 친구 앞에서 그런 낭패를 보게 한 남자를 계속 더 만나 주었겠습니까. 누구 약 올리지 마십시오. 지금도 약 오릅니다.
맞선! 흥! 이후 저는 더 이상 보지 않았습니다.
콩국수!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콩국수를 먹지 않습니다. 또한 이후 콩국수를 먹자고 하는 사람에게도 알 수 없는 까칠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소식 또한 그 이후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아마도 그때의 쇼크로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나무아미타불 ! 불쌍한 중생들...
이후 저는 방귀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뿌우~웅! 끝.
방귀와 이별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바이킹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