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남항의 고양이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은유 ― 이병화의「갈남항에서」 평론

작성자빗새|작성시간26.06.21|조회수533 목록 댓글 3

갈남항에서 / 이병화
 
 
 
불빛에 묻어있는 냄새 쫓아
좁혀오는 검은 무리들
고기 굽는 냄새가
그들의 눈 그물에 걸린다
처음부터 3대 17은 아니었다
고기 굽는 사람들과
비린내에 물린 길냥이들의 접전
 
굼뜨게 앉아 있는 할미 고양이
어미젖을 물고 있는 새끼 고양이
남의 일인 양 쳐다보는 아픈 고양이
그들에게 먼저 먹일 양으로 한 점 던지자
새로운 냄새에 헐떡이는
힘센 눈동자들 잽싸게 가로챈다
챙겨줘도 못 먹는 자들과
남의 것도 빼앗아 먹는 자들
서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의 고기 파티가 끝나자
그림자 끌며 숨어드는 고양이들
그들도 물러설 때를 아는데
모르는 척 시침 떼는 인간들 참 많다
처음부터 모든 걸 지켜본
갈남항의 파도와 등대
보고도 못 본 척
귀 닫고 입 다물고
비겁함을 무관심으로 잘도 감춘다
 
 


 
 
갈남항의 고양이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은유
― 이병화의「갈남항에서평론

 
 

「갈남항에서」는 표면적으로는 항구 주변 길고양이들의 먹이 경쟁을 그린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곧 이 시가 단순한 동물 관찰기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와 약육강식의 현실을 비추는 우화적 시편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갈남항이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풍경을 통해 인간 사회의 불평등과 무관심, 그리고 위선의 문제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시는 후각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불빛에 묻어있는 냄새 쫓아
좁혀오는 검은 무리들
여기서 고양이들은 단순히 먹이를 찾는 동물이 아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냄새를 좇는 존재들이다. "불빛에 묻어있는 냄새"라는 표현은 매우 감각적이다. 빛과 냄새라는 서로 다른 감각이 교차하면서 밤 항구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 독자는 이미 이 첫 장면에서 생존의 긴장감을 감지하게 된다.
 
이어지는
처음부터 317은 아니었다
라는 구절은 흥미롭다. 숫자는 단순한 개체 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힘의 균형이 이미 깨져 있는 상황, 다수와 소수의 구도를 암시하며 경쟁의 불공정성을 예고한다. 시인은 고양이와 사람의 대립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배치한다.
 
이 시의 중심은 중반부에 있다.
굼뜨게 앉아 있는 할미 고양이
어미젖을 물고 있는 새끼 고양이
남의 일인 양 쳐다보는 아픈 고양이
이 세 마리의 고양이는 모두 약자의 표상이다. 늙음, 미성숙, 질병이라는 조건은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를 의미한다. 시인은 이들을 단순히 불쌍한 존재로 묘사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얼굴로 제시한다.
 
그러나 더 인상적인 것은 다음 장면이다.
그들에게 먼저 먹일 양으로 한 점 던지자
새로운 냄새에 헐떡이는
힘센 눈동자들 잽싸게 가로챈다
여기서 시는 자연의 질서를 넘어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 도움은 약자를 위해 주어졌지만, 실제로 혜택은 강자가 가져간다. 이는 현대 사회의 복지, 기회, 자원 분배 과정에서 반복되는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다음 두 행은 이 시의 핵심 명제라 할 만하다.
챙겨줘도 못 먹는 자들과
남의 것도 빼앗아 먹는 자들
이 구절은 단순히 고양이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 사회의 냉혹한 풍경을 압축한 사회학적 진술에 가깝다.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미 충분히 가진 상태에서도 더 많은 것을 독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후반부에서 시는 더욱 노골적인 사회 비판으로 나아간다.
그들도 물러설 때를 아는데
모르는 척 시침 떼는 인간들 참 많다
여기서 고양이는 오히려 인간보다 윤리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고양이들은 배가 부르면 물러날 줄 알고, 상황이 끝나면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시인은 동물과 인간의 위치를 역전시킴으로써 문명사회의 위선을 풍자한다.
 
 
마지막 연의 갈남항 풍경은 매우 상징적이다.
갈남항의 파도와 등대
보고도 못 본 척
귀 닫고 입 다물고
파도와 등대는 원래 길을 비추고 방향을 알려주는 존재다. 그러나 시에서는 침묵하는 증인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물이라기보다 사회적 양심의 상징이다. 모든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제도, 권력, 관찰자의 태도가 이 이미지에 투영되어 있다.
 
특히 종결부의
비겁함을 무관심으로 잘도 감춘다
는 한 줄은 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비판 의식을 집약한다. 시인은 악보다 더 위험한 것이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불의가 발생하는 현장에서 침묵하는 태도, 약자가 밀려나는 장면을 외면하는 태도야말로 사회를 병들게 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설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인은 고양이를 관찰할 뿐이다. 그러나 그 관찰은 인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독자는 갈남항의 길고양이를 보다가 어느새 자신의 사회를 보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갈남항에서」는 생태시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우화이자 윤리적 성찰의 시다. 작은 항구의 밤 풍경 속에서 시인은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 약자에 대한 배려의 실패, 그리고 무관심의 비겁함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갈남항의 고양이들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고, 그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까지 침묵하는 파도와 등대는,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도 외면하며 살아가는지를 묻고 있다. 이는 단순한 풍경시를 넘어, 시대의 윤리를 성찰하게 하는 깊이 있는 사회시라 평가할 수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소화 | 작성시간 26.06.21 빗새 선생님의 날카로운 심도있는 시평으로 저의 졸작시가 재탄생한 것 같네요. 꼼꼼이 평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빗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늘 평을 쓰면서도 작품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운 평을 올리는 건 아닐까, 가슴 졸이고 있습니다.

    부디 노여움 안드시는 평이었기를 마음 졸였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소화 | 작성시간 26.06.21 빗새 전혀 염려않으셔도 됩니다. 최근에 디카시집을 출간했어요. 보내드리고 싶은데...받으실 주소 좀 ...비밀댓글로 주시겠어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