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Drawing): 표현이나 형태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선을 사용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기술.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예술의 기초를 형성하는 드로잉은 재작업이나 복제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탕재료(대개의 경우 종이) 위에 직접 제작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시각예술의 기본으로서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 되거나 완성할 작품의 밑그림으로 쓰인다.
드로잉에 관한 위의 설명을 누군가가 자신의 말로 고쳐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밑그림>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설명을 이어 나갈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한가지 방식으로 사물을 대하는데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러나 오늘, <밑그림>이라는 단어 앞에 위치한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시를 보고 난 후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자,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초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드로잉,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60)의 전시- <주변적 고찰, Peripheral Thinking >을 소개하고자 한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세계적 아티스트 윌리엄 켄트리지의 개인전 <윌리엄 켄트리지- 주변적 고찰 William Kentridge-Peripheral Thinking>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총 망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며2016년 3월27일까지 진행된다. 작가의 렉처 퍼포먼스 제목에서 따온 전시 타이틀 '주변적 고찰'은 한 주제에서 자유롭게 연상되거나 확장되어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뜻한다고 한다. 다방면에 걸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음악, 역사, 미술, 공연이 어우러진 그의 예술적 표현과 사유를 폭넓게 조망하는 전시는 [<망명중인 펠릭스>,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 <다른 얼굴들>, <블랙박스/샹브르 느와>, <시간의 거부>, <나는 내가 아니고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양판희에 대한 메모>, <간접 독서>, <더 달콤하게, 춤을>의 컷아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일부를 적어보고자 한다.
망명중인 펠릭스 Felix in Exile
아프리카공화국의 풍경과 사회상을 담은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소호와 펠릭스' 연작은 재료와 물질의 만남이 가지는 힘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같았다. 켄트리지가 태어나 자란 남아프라카공화국은 흑백 갈등하에서 광산 산업의 발달로 소수의 백인이 부를 독식한 상태였다. 켄트리지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소호와 펠릭스>연작은 백인자본가이나 부동산 개발업자인 소호 엑스타인과 그의 부인, 그리고 부인과 연인 관계에 있는 시인 펠릭스 타를바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와 풍경,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고뇌를 보여주는데 초점이 두어져 있다.
<망명중인 펠릭스>에서 부인이 떠난 집에서 소호는 자신이 일구어놓은 풍경을 내려다보며 쓸쓸함에 젖는다. 소호와 펠릭스 연작은 모두 원고나 스토리보드 없이 제작된 작품들이라고 한다. 처음 제시된 이미지나 장면을 지우고 또 새롭게 그려나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 전개되어 간다.
2.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 Casspirs Full of Love
캐스피어는 남아프리카에서 반란군을 진압할 때 사용된 무장 장갑차를 일컫는 용어라고 한다. 잔혹한 병기에 ‘사랑이 충만한’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붙어진 작품 속에는 처참하게 살해된 사람들의 얼굴이 쌓여있는 참혹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Casspirs Full of Love, 1989, Drypoint
Etching
켄트리지가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고발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그 장면과 순간들이 반영되어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디쯤인지를 보여준다. <시대인식>이라는 표현이 그의 작품에서 흘러 나온다.
3. 다른 얼굴들 Other Faces
켄트리지의 드로잉과 영상 속에는 그가 태어나 살고 있는 요하네스버그와 주위 지역이 많이 등장한다. 현대적인 대도시의 풍경부터 교외의 황량한 자연 풍경, 휴가지인 해변의 모습까지. 이러한 여러 풍경에 대해 켄트리지는 단순히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과 상처로 인해 황폐해진 심리를 담은 풍경으로 재탄생시킨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인종차별정책은 철폐되었지만, 사회는 기대했던 것처럼 달라지지 않았고 지도자들이 제시했던 문구처럼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되지도 못했다. 대평원에는 버려진 폐광의 잔재가 남아있고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황량하고 쓸쓸하다. 아파르헤이트(Apartheid, 인종 구분 목적의 분리발전정책)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 흔적과 기억이 사회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예전 학창시절 라디오 디제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상처가 난 부위가 많이 아프고 쓰라리죠. 그치만 그게 좋은거예요. 딱쟁이가 지고 잘 아물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거든요. 새 살이 돋아나 딱쟁이가 스스로 떨어질 때 더 건강해 지는 거잖아요. 삶이라는거, 인생도 마찬가지죠.” 별거 아닌 것 같았던 이 말이 시간이 흐르면서 빈번하게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직시>, <마주 바라봄>이 되지 않아서일까. 다 해결되었다고 후다닥 덮어버리는 삶의 습관이, 사회의 행정이 스스로를 얼마나 곪게 방치하며 아프게 하는지 우리는 미쳐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정부가 최근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떠오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용랑이 제한된 관계로 다음글에 이어 작성하기로 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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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늘-봄 작성시간 16.01.09 HUR- 좋아요!^^시간이 촉박해 보지도 못하고 퇴장당했어요.....ㅋㅋ
수요일은 9시까지 야간전시하는데 수요일 퇴근후도 괜찮나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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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HU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09 늘-봄 예압. 콜ㅡ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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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면의일상 작성시간 16.01.10 저는 이 전시를 3번이나 갔어요.
예술은 누구나? 무엇이던지 가능 한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재료가 어울려져야 가능한 것일까?
시대가 작가를 탄생시킨 것 같군요.
만화도, 영화도, 회화도, 아니면?, -
답댓글 작성자HU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1.10 선생님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말씀하신 모든것이 어우러져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게 아닐지요. 저는 이 전시에서 작가가 피하지않고 마주한 <자신의 시대>를 인식하고 있었다는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그 외에 다른것들은 몇번이고가서 봐야 머리가 깨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어난다는 보장도 없지만요. -
답댓글 작성자은시 작성시간 16.01.10 미의 영역의 확장과
미술의 주체가 개인으로 옮아가며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인 것 같더군요.
요셉 보이스가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세계를 배경으로 자신의 미학을 구축했다면
켄트리지는 욕망으로 인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잔재가 아프리카에서 마지막으로
부딪친 인종간의 갈등과 역사적 유산으로 배경으로 탄생한 미학으로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요셉 보이스와 바젤리츠 안젤롬 키퍼 등과 같이
역시 불합리한 인간 역사와 그 유산의 충돌 갈등이 빚어낸
미의식의 확장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