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된 일상의 폭력을 말하다. – Mona Hatoum 전시 리뷰
2016년 6월 17일 새롭게 단장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그간 감춰진 베일을 벗는 날. 말 그대로 현장은 핫! 했다. A Post Modern / Tate Modern 이라는 문구가, 그리고 ART CHANGES, WE CHANGE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곳은 예술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분출하는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뜨거움 그 이상을 가지는 그 공간에 Mona Hatoum의 설치 작품들이 기획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전시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A post Modern / Tate Modern 문구와 새롭게 단장한 테이트 모던 외관 및 조형도.
조형도에서 보여지는 왼편의 피라미드형 건물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
Mona Hatoum 그녀는 누구인가?
1960년대 시작된 여성의 몸, 신체 미술, 퍼포먼스 아트, 제3세계 타사정의 미술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던 모나 하텀(Mona Hatoum). 1952년 팔레스타인 태생의 모나 하텀은 레바논 전쟁으로 인해 1970년대 들린 런던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는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것과는 다름을 보여주는 강력한 힌트가 되어, 예술을 현실로 바라보는 채널을 하나 더 추가한다. 즉 작가가 지닌 태생적 배경에서 나오는 정직한 시선들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어 더 이상 사회는 단일 구조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나 하텀은 거대한 규모의 설치작업과 조각을 주로 선보이며 미니멀리즘과 초현실주의가 보여주는 모순과 갈등의 시각언어에 도전한다. 그녀는 인간 신체가 지니는 취약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생하는 탄력에 집중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1979년과 1981년 사이에 Slade School of Art에서 공부한 그녀는 젠더와 인종문제를 발전시켜 퍼포먼스를 통해 정치와 개인간의 관계를 노출시킨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모나 하텀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것들은 사회 시스템과 신체의 통제를 의미하며 종종 격자 혹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보여진다. 그녀는 가정 내 일상의 주방 용품들을 확장시키거나 낯선 장소에 떨어뜨려 놓아 친숙함과 동시에 무서운 공포를, 편안함과 동시에 적대적인 환경을 선사한다. 미와 공포와 같은 정반대의 성질을 가져오면서 그녀는 우리를 열망과 혐오, 공포와 환희의 감정에서 갈등하도록 밀어 넣는다.
<Mona Hatoum과 그녀의 Tate Modern 전시 카다로그/ 전시는 퐁피두센터와 협업으로 지난 2015년
파리에서 처음 전시가 있었다. 이후 런던 Tate Modern으로 장소를 바꾸어 전시가 진행 중이다>
2. Mona Hatoum의 작업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들은 연대기 순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수평한 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다. 아래는 전시에서 보았던 그녀의 작품들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Performance Still 1985 / 1995
이 사진은 Roadworks을 위해 진행한 퍼포먼스의 사진이다. Roadworks 는 1985년 Stefan Szczelkun에 의해 조직된 Brixton Artists Collectie Group 전시다. 런던 내부의 인종차별 폭동에 반대함을 보여준 이 퍼포먼스에서 모나 하텀은 자신의 발목에 닥터마틴의 신발을 매단 채 맨발로 Brixton을 걸어가고 있다. 이는 당시 경찰과 폭도들이 닥터마틴을 신고 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인데,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 속에서 당시 모나 하텀 자신이 팔레스타인 어린 여성으로서 한쪽에서는 경찰에 의해 다른 한쪽에서는 skinhead 폭도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경험을 눈치챘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사회사 속에 밀어 넣어 시대를 고발하고 있다.
Corps etranger, 1994
모나 하텀은 의학적 바이오 이미징 방법을 이용한 비디오 설치 <낯선 몸 corps etranger>(1994)을 통해몸 외부보다 내부의 장과 위, 기타 기관의 이미지를 통해 일종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영어로 Foreign Body를 의미하는 corps etranger에서 작가는 자신의 몸을 손이 타지 않은, 탐색되어지지 않았던 영역으로 간주하고, 카메라를 집어 삼켜, 위장 속 움직임을 따라가게 해 녹화된 사진을 영사한 작업이다.
새하얀 원기둥 부스 안 바닥에 영상을 영사하여, 작가의 심장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함께 설치되있다. 자신의 몸을 생생한 재료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강력한 육체적 고통의 체험을 당하게 만든다. 하텀의 '낯선 몸'은 하나의 위치로 존재한다. 작가의 신체는 장소로 표상되어 관람자의 몸을 들여보낸다. 이 때 '낯설다'라는 단어는 작가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작가의 신체와 관람자의 신체는 서로에게 낯선 것이 된다. 그리고 관람자의 몸은 다시 위치, 장소가 되어 그 피부 위로 하텀의 피부가 맞닿는다. 하텀은 두 낯선 몸이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어느 한 쪽도 일방적으로 대상화 하지 않았고, 작품이 이미지와 사운드의 비물질적인 형태로 명확한 시각, 청각 이미지를 해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Light Sentence, 1992
이 작품은 사각의 철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하나 닭장과 같은 동물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높이는 공간에서 그 자체로 공포감을 형성한다. 두 개의 커다란 철제 구조물 사이에서 비추는 전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여 철제의 그림자를 움직이게 한다. 이것이 공간 자체를 흔들리게 하는데 이는 모나 하텀의 가장 초기 작업 중 하나이다. 분명한 선과 산업용 재료, 미니멀 아트의 격자를 전복(?)시키면서 Light Sentence 는 상처와 정치적인 주제를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제목이 감옥의 관대한(?) 형량을 충분히 의미하는 것 같다.
Grater Divide, 2002
종종 일상에서 정돈되지 않은 가구와 다른 집안의 물건들의 확장은 모나 하텀의 주된 작업 특징이다. Grater Divide 역시 빅토리안 시대의 치즈 강판을 방 안의 공간 구역을 나눠주는 파티션과 같은 크기로 제작하여 얼핏 보면 공간의 구역 정리가 공격적으로 이루어져 뒷걸음 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모나 하텀은 일상에 내재된 폭력성을 작품으로 드러내며 관람객들에게 낯설고 불편함을 보여주고 있다.
Present Tense 1996
처음 예루살렘 Gallery Anadiel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2200개의 팔레스타인산 전통 올리브 비누로 제작이 된 블록들이다. 비누 블록 위에 빨간 구슬로 작품을 선보인 모나 하텀은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 사이에 이루어진 오슬로 평화 조약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를 묘사하고 있다. 구슬은 팔레스타인들에게 되돌아가야 하는 영토를 묘사하고 있지만 각각의 블록은 통일되지 못한 채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
Homebound, 2000
주방 용품과 가구로 구성된 Homebound는 전기선을 연결해 불빛이 깜박이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하게끔 작업을 하였다. 벽면에 걸린 앰프를 통해 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는 위협을 가하고, 관람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설치한 와이어들은 새장 모양의 케이지 혹은 우리 안에 갇힌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설치 타이틀이 충분히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작품에서 가택 연금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본다.
Hot Spot, 2013
분쟁 지역을 의미하는 hot spot. 작가는 섬세한 붉은 네온을 사용하여 대륙의 아웃라인을 잡아주었다. 전체를 붉은 색으로 노출시키며 작가는 지구상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갈등과 분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and -1994-2004
이 운동 역학 작업에서 중심축은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둥근 원 속의 모래 표면에 모양을 만들고, 지우는 반복을 거듭한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힘의 영역이 형상화 되었다. 순환하는 연속성에서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거대 축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결국 이 안에 속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Impenetrable, 2009
<작품의 전체 모습과 세부 디테일>
3미터 길이의 철사가 천장에서 큐브 형상을 띤 채 매달려 있다. 마치 바닥에 놓여져 있어야 할 것이 거꾸로 메달린 모습이라고 할까. 멀리서 보면 단순한 철사의 선들이 가까이 가보면 오른쪽 사진과 같이 가시가 있는 막대기의 모습이다. 이 또한 갈등과 폭발 직전의 모습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면서 직접 만지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웅크리게 하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Over My Dead Body, 1988
전시가 끝나고 전시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아트샵 벽면에 걸려있던 작품이다. 영국에서 진행한 프로제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맨체스터, 쉐필드, 런던, 글라스코 등의 지하철 역 벽면을 장식하였다. 작품 속 모나 하텀은 자신의 코 위에 서 있는 장난감 군인을 응시하고 있다. 장난감 군인과 작가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크기에서 우리는 그녀가 전통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힘, 권력을 다시 한번 묻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파리와 같은 작은 존재로 축소
시킴으로서 그들은 언제나 탈탈 털어서 없어져 버릴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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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많다. 그래서 살아남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너무 오만한 것일까. 테이트모던에서 처음으로 접한 모나 하텀은 자신이 가진 배경과 시대 상황을 정직하게 풀어내며 자신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보라고 관객들에게 이야기 한다. 내재된 일상의 폭력성, 무심코 지나치는 무자비함. 작가는 관람객에게 경험하지 않았다하여 남의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축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한 과정 위에 있다. 시대를 고발하는 그 이상의 작가 자신만의 무엇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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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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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시 작성시간 16.06.29 글을 읽다보니..필자의 시각이 늘 보다 만 것 같은 아쉬움이 남죠?
눈을 충분히 활용한 것 같지 않네요.
이렇게 리뷰나 후기를 쓰는 까닭은 1) 본 것을 회고하며---2) 자료를 찾아 다시 그것을 끄집어 내어
3) 눈으로 본 것을 다시 머리로 환기시켜 다시 보는 과정으로 4) 본다는 것을 5) 의식화하고 6) 이것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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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공이 천을 짠다고 짰는데...촘촘하지 못하고 엉성하게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주니..글이 힘이 없고 당연 설득력이나 공감력도 결여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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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다!라는 비속어도 글쓰기와 비평 연습 중엔 가능한 안 쓰는 것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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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U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6.29 말씀 감사합니다. 눈으로 본 것이 말로 표현되지 않음에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보지 못한것과 마찬가지네요.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