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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회화(2)

작성자Minnie|작성시간16.01.30|조회수837 목록 댓글 9


모노크롬 monochrome

다색화(polychrom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
색채뿐만 아니라 내용, 주제, 선, 형태를 거부한 모노크롬은 구성의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 미술 개념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전체주의적(wholistic)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노크롬의 기원은 20세기 초 절대주의 화가인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의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과 러시아 구축주의 작가인 로드첸코Alexandre Rodchenko(1891~1956)의
<검정 위의 검정>을 들 수 있다.
1945년 이래 만조니Piero Manzoni(1933~1963),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
클랭Yves Klein(1928~1962),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
맨골드Robert Mangold(1937~ ), 라이만Robert Ryman 등의 작가들이 단색회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1946년 최초의 단색 실험을 시도한 클랭은 1957년 일명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
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불리는 그의 고유한 청색 모노크롬을 고안하였다.
그는 청색이 가장 '비물질적이고 절대와 무한을 표상하는 색'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통해 '비물질적인 실체'를 추구하고자 했다.
클랭은 청색 이외에도 금색(monogolds)과 장미색(monopinks)의 모노크롬을 말년에 제작하였다.
'청색'이 '정신성'을 의미한다면, '금색'은 '절대', '분홍색'은 '삶'을 상징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모노크롬 색상을 창조하였던 클랭은 더 나아가서 그것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한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은 특히 1960~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주요한 추상회화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배경으로는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가 말하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매체 순수성과
환원주의 미학, 평면성의 대두, 미니멀 아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색면회화에 있어서 색에 대한 사고의 판단 정지를 추구했던 비색주의 경향들은 그 예라 할 수 있다.
-출처:세계미술용어사전,1999

모노크롬은 작품의 내용과 미적가치의 측면에서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주관의 표현을 배제하는 경우, 지워가는 경우, 중화시키는 경우 등 그 방법은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표정에 있어선 소박, 단아하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킨다.

70년대 중반까지의 흐름이 그 방법적 측면에서 서구 문맥에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말부터는 이러한 축적의 기반위에 우리의 독특한 문화가 '한지작업'이라는 또다른 형태로 맹아되기 시작한다.
*맹아:식물에 새로 트는 싹, 사물의 시초가 되는 것
균질적 평면 속에서는 자아와 세계의 일원론적 관점을,
한지작품에서는 선험적으로 승화된 민족정서를 만나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이같은 동양전통을 발견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70년대 작가들의 지적 토양이 '직관적'이고 평면 검증에 있어서 '내성적 통찰'이 강력했다는 것과 관련된다.

이로부터 모노크롬은 한국적 정서에 더욱 걸맞는 미적 형식으로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지를 매재로 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매재나 바탕으로 그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일개 재료에 불과했지만 재료 이상의 것으로 의미가 부여되어졌다.
그것은 한지가 수공예적 예술품의 성격을 지닐뿐만 아니라 여기에 덧붙여질 수 있는 또하나의 사실,
한지의 텍스처 자체가 고유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것이 예민한 감도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어
얼마든지 다양한 양상으로 변모할 수 있는 성질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적 특성의 발현이 단지 한지라는 재료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보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지 자체가 독특한 재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의 얼과 맛을 갖고 있기는 해도
순화된 정신과 결합된 작품으로 고양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지 하나의 물질덩어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하에 한지작업을 '한지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한지를 재료로 삼기보다는
자연과 접속할 수 있는 마당으로 여겼다.

가령, 한지가 무형의 질료이자 독자적인 택스처를 갖는다고 보았을 때 그 속성에의 순응과 그리고
한지와 그 자신이 행위의 완전한 일체화를 통하여 자연적 이치를 터득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종이를 원생적인 상태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것을 시발점으로 회귀시킴으로써
시공 너머의 정신공간으로 진입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또하나의 이유는 캔버스와 한지의 차이, 즉 매재의 속성을 면밀히 파악하는데 기인한 것이었다.
즉 캔버스가 반발력과 저항력이 세고 그 바닥의 천이 표현을 위한 밑바탕에 머무는데 비해 한지는
작가의 몸짓을 허용하며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바탕과 혼연일체를 이루게 하여
'내재적 여백'으로서 명상적 공간성을 획득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성이 단순한 재료 차원에서의 '종이그림'도 아니고 '유화'와도 구별되는
미적 가치를 지니게 할 수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70년 대 중반의 백색 모노크롬과 함께
한지작업을 한국적 미감으로 현대화 시키는 작업에 성공한 또 하나의 사례로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외형상 서구 미술의 양상과 유사성을 보이긴 했지만 우리 현대미술에서
바람직한 미술유형을 꽃피워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얼과 혼을 담아내는 결실을 빚어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미술이라는 커다란 구도내에서 보면 70년대 현대미술은 모노크롬의 등장으로 인해
'주류'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양식의 걷잡을 수 없는 획일화, 작가들의 맹목적 집단화, 중단된 활력 주입 등의
이유로 인해 생명력을 단축하게 되는 모노크롬회화의 독자성을 세우고 발전적인 전개를 해야한다.

우리 모노크롬회화가 갖는 독자성의 근거인 '비물질화' 경향 또는
'범자연적 세계'의 지향은 반드시 우리의 회화에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각을 달리해
그러한 특징이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겠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에는
'독자성'의 확립이라는 열의에 휩싸인 나머지 보편성의 획득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한계를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구 미술의 영향을 소화해서 역으로 그들의 미술에 나타난 문제나 한계의 돌파구를 제시한다는
그런 역동적인 관계의 모색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것에 대한 자각이 아닌 진정한 독자성의 확립이라는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그러한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를 미니멀 아트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견해는
비록 양자가 지향하는 세계에서 유사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가
평면과 그 평면의 회화화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에서 보여진 관심사는 그린버그가 주창한 '모더니스트 회화'에 근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모노크롬 회화의 특성과 보편성의 차원에서 본 그 독자성의 기반은
'모더니스트 회화'이념과 '동양사상의 만남'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다 분명하게 해명될 수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20세기의 한국미술2: 변화와 도전의 시기』(김영나, 예경, 2010)


모노크롬의 선구자
20세기 초 절대주의 화가인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 1878 ~ 1935 ) 의 < 흰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 >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Black Suprematistic Square, 캔버스에 유채 79.6×79.6cm, 1914~ 1915

《절대주의 絶對主義》 Suprematisme(프)
지상주의(至上主義)라고도 번역한다.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에 의해 시작된 기하학적 추상주의의 한 흐름.
원래는 입체주의의 미학에서 파생한 것이다.
말레비치는 1913년 가을에 [태양에 대한 승리]라는 미래파적인 오페라의 조형적인 연출(장식과 의상들)
작업을 하는 동안에 구상 작업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약적인 진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회화를 모방적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2년간의 힘든 작업을 필요로 한다.
1915년 6월 말레비치는 회화의 단면으로 나타낸 하얀 바탕의 작품 위에 하나의 검은 사각형을 그린다.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상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이 사각형은 자율적인 실재를 가지고 있으며
역동적인 무게와 함께 율동감을 지니고 있다.

그의 첫번째 시리즈 작품들은 이차원적 색채의 형상을 지닌 구상들로 순수한 색감들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이것들은 수많은 면들의 율동감을 보여준다.

회화 외의 대상 세계와의 관계를 거부하면서 말레비치는 이 미술을 ‘비객관적’이라 명명하며,
절대주의라는 순수한 색감들의 절대성에 대한 시스템 정의를 내린다.

또한 같은 해에 시인 마야코프스키Vladimir Vladimilovich Mayakovsky 등의 협력을 얻어 기초된
‘절대주의 선언’이 발표, 절대주의에 대한 이론적 기초가 이루어졌다.
그 선언의 첫머리에서
“절대주의에 의해, 나는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감상이 절대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것은 추상주의라 해도 단순히 현실적 감각 세계를 거부한 것이 아닌,

순수한 감성의 극점으로서의 추상, 즉 주관주의적 추상이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신조형주의보다 훨씬 앞서
기하학적 추상의 한 국면을 전개한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
-출처: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검은 원, 1913, 105×105cm

말레비치Kasimir Malevich,검은 사각형, 1920s 추정, Oil on Canvas, 106×106 cm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Suprematism, 1917~1918, Oil on canvas, 106×70.5cm

말레비치Kasimir Malevich, Suprematism, 1915, oil on canvas, 88×68.5cm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918, White on White

이브 클라인( Yves Klein), Untitled monochrome blue I.K.B.67, 캔버스에 유채, 92×73 (cm), 1959

단색 회화에 매료되어 있었던 이브 클라인의 푸른색 모노크롬은
그의 고향 니스(Nice)의 바다 지중해의 색깔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물질성에서 벗어난 순수한 감성을 중요시 여긴 그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애드 라인하르트 (Ad Reinhardt) 추상회화 제 5번, 캔버스에 유채 152.4×152.4 (cm) 1962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 Untitled, 캔버스에 에나멜, 25.72×25.72×3.81 (cm), 1965

-----이들의 작품은 단색회화가 형태를 버림으로써
더욱 풍부한 감각의 차원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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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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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Minni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1 면의일상님 최근 작품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면의일상 | 작성시간 16.02.01 이 작품은 가장 최근의 무아지경에서 나온 춤추며 그린 그림입니다.
    가장 활동량을 요구한 대형작업으로 아직 마무리 못했어요.
    갑자기 나를 보이고 싶다는 충동에 거의 90% 진행된 작업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안 좋네요.
    완성 돠면 다시 이미지 올려드리갰습니다.

    많이 변한건 사실입니다.
    여러 방향은 작가를 의심합니다.
    이런 그림은 재가 그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우주와 통한 어린에가 명령을 내려 저는 따랐을 뿐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Minni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01 작품 배경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흥분되어요

    엄청난 열기로 작품에 몰두 하시니
    느긋한 일반인도
    흠모하는 작가에 발맞춰 하루를 더 소중히 다루게 됩니다^^
  • 작성자면의일상 | 작성시간 16.03.31 제가 숙제가 있었군요.오늘 저는 조용히 앉아
    제 예술을 점검하면서 우연히 모노크롬을 다시 읽게 되었어요.
    제가 영국 워크삽을 다녀 온뒤 글을 올리겠다고 했군요.
    아주 귀여운 여인이네요. 숙제를 잊어버릴뻔 했어요.
    반가움이 앞서네요.공부할 것이 있었군요. 좀 기다려 줘요.
    특히 김영나선생의 한지화에 대한 언급이 신경을 자극하네요.
    한 선생의 개인전의 의미가 더욱 굳어지는 기분이네요.
    공부~ 공부를 해야 겠어요.
    반갑고 고마워요.
  • 답댓글 작성자Minni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3.31 예술가란 멈추지 않고 스스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정열이란 이름의 활화산임을
    진정 보여 주십니다.
    이미 일상에 진입하여 달리고 계시니...
    아웃사이더도 함께 달리자고 손 내미시는 그 온기가 제게 당도했어요.
    귀여운 여인은 제가 면의일상님께 붙인 별명인데 오늘은 빼앗겼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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