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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실존實存

작성자Minnie|작성시간16.04.01|조회수463 목록 댓글 17

미국에서 대체근로자의 비중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근로자는 휴가 등에 따른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되는 근로자로,
수입이 들쭉날쭉해 사회적 안정을 헤칠 수 있는 요인이다.
대체근로자에는 우버 기사처럼 온라인 앱을 통해 그때그때 일을 하거나 구인회사와
계약을 맺고 한시적으로 일하는 사람, 전화를 받고 바로 근무에 투입되는 사람, 그리고
임시직 근로자 등이 포함된다. 성별로는 여성의 대체근로 비중 증가가 돋보였다.
대체근로자는 전통적으로 공연행사, 건설공사 등에 주로 투입돼, 남성의 비중이
여성보다 높았으나 이제 역전됐다.
업종별로는 엔터테인먼트·미디어가 10년 새 7%포인트 증가해 37%가 됐다.
건설업종은 10년 새 증가 폭은 크지 않았지만 25%로 여전히 2위를 마크했고,
지역·사회보장서비스 종사자의 23%도 대체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컴퓨터·수학, 교육훈련, 법률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20% 안팎이 대체근로자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경제를 흔드는 이른바 '긱(gig) 근로자'가 우버 기사만은
아니다"면서 "일반 기업은 비핵심 업무를 떼내고, 정부는 예산을 줄이면서 전통적인
산업에서조차 대체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긱(gig)'은 임시로 하는 일을 뜻하며, 대체근로자들이 만드는 경제는 '긱 경제'로도
불리고 있다. 대체근로자의 증가는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지표상의 효과는 있지만,
이들의 고용은 불완전하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아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AP통신, 3-27-2016

직업과 가정의 조화로운 그림을 그려내지 못해 신음하고 온갖 후유증을 앓아가면서도
예술에 매달려 그 대상에 자신을 투영시켜 불멸이 된 카프카를 소개합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요셉보이스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 주변에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적합여부를 떠나 생활전선에서 불안정한 수입으로 살아내는 힘겨운
사람들의 증가 기사를 접하고 나서,
생활과 예술의 병행 속에서 고통의 점철이었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아름답고 진실된 작품과, 사진 속의 그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서 입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1년 프라하 카렐대에 진학, 문학, 예술사에 흥미를 보였지만,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학 전공. 법률고문으로 14년간이나 오후 2시 퇴근하여 밤늦게까지 글을 썼다. 1917년
결핵을 앓기 시작, 우울증, 편두통, 불면증, 변비, 부스럼과 불안정을 겪다가 결핵이
악화되어 빈교외의 키어링 요양소에서 사망한다.
혼인에 거듭 실패한 독신자로 결핵을 앓으며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삶을 고립시킨 예외적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록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Gregor Samsa(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Transformed (Metamorphosed)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벌렁 누워 있었다.
여러 개의 다리는 그의 눈앞에서 불안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커다란 몸체에 비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가늘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

카프카의 [변신 Metamorphosis]에 나오는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변한 모습의 묘사에서,
제 맘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스Wols'의 비정형 추상화인 아래 그림입니다.

불스Wols, [거대한 앞모습], 1941년경, 잉크와 수채화, 17× 9.5cm.
전후 추상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한 앵포르멜 작가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억눌린 인간
내면의 극한성을 실존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 중심의 추상미술로 아시아에까지 세력이 확장된 1950-
60년대 미술사조인 앵포르멜 Informal(비정형)은 미국의 액션페인팅과 비교되며,
회화가 단순히 외부적 요소인 선, 색체, 형태의 배치로 한정되어버린 것을 거부한다.

폴락의 액션페인팅도 마찬가지지만, 21세기 최고가에 팔리는 리히터의 밀대로 밀어
'계산된 우연'에 의한 색의 향연은 화려한 반면 감동이 적어, 저는 오히려 리히터의
사진과 회화가 서로 넘나드는 작품들과 '촛불과 해골' 등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걸로 몇 작품 ...

Sphere 2, 1992, Diameter : 5cm, Stainless steel sphere

Kassel, 1992, 아주 기분 좋은 이국 도시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색감과 눈내린 차갑고
쌀쌀한 미지의 도시 풍경은 흥겨움과 동시에 식욕을 자극해 뜨끈한 독일붕어빵?이라도
사먹고 싶게 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진을 구기고 찢고 겹치고 회손하여 비현실적으로 뒤틀어 그
괴이한 파괴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고 모사模寫한 반면,
리히터는 사진을 캔버스로 이용하여, 사진 자체보다 한층 강렬하고 조화로운 추상적
이미지를 사진에 결합하여 사진과 회화의 공존을 실현했다. 또한
사진을 보고 사진과 구분이 안되게 똑같이 그리고, 그린 그림을 또 사진으로 찍고,
리히터는 사진과 회화를 별개로 보지 않았다. 난 그가 둘 모두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병행시켰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기 직전 서쪽으로 넘어온 리히터는 병적으로 구분짓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그의 예술의 양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예술가에게 그가 자란 토양이 거름이 되어 작품 속에 철학으로 담겨 있어
여러 분야의 각양각색의 예술가가 다양한 관객의 취향을 여러모로 만족시키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니 관객으로서는 행운이고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인생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현미경일 수 있다.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정신의 지평을 넓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예술만큼 고마운 게 또 있을까?

Drei Kerzen(Three Candles)1982, 125 x 150 cm, Oil on canvas
Sotheby's, New York, 15 May 2001
Estimate:USD 4,000,000 – 6,000,000, Sold For:USD 5,395,750=62억 정도.
촛불이 서 있는 주변 공기의 흐름에 각자 몸을 맡기고 있는 흔들리는 불꽃과 닿아
있는, 그 공기마저 느낄 수 있게 하는 넘실대는 착시현상을 이 그림을 힐끗 보기만 해도
매번 경험하며,
미끄러질 듯한 질감의 촛대와 촛불 주위의 분위기는
경건하면서 현실적임과 동시에 환상과 몽환으로 끄는 힘이 과히 언어도단입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의 Skull with Candle,1983, 100 cm x 150 cm,
Oil on canvas
예술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제, 생명과 시간의 한계ㅡ촛불과 해골.
'지금'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현재에 몰두해서 살면 시간의 한계에서 오는 허무감은
사라질거라고 가르치는 선현들은 진심이었을까요. 시간 개념도 컨셉이니까.
결국 되돌아오는 이 주제에 홀로 대면하길 반복하는 회원님과 저..!
깊이 오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오히려 현실적 존재(실존實存)에의 사유思惟 속으로
빨려들어가 차분해진 자기와 만나게 되는 그림.


Six Photos ( May 2-7, 1989), 1991, 리히터가 아직 젊은 모습, 그의 다작의 에너지는
예나 지금이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선지, 이혼 후 예쁜 부인을 재빨리 얻기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Cloud, 1971, 흐릿한 70년대 초의 사진에서 시원하고 정겨운 소금기 머금은 해풍에 밀려
공중에 뜬 솜사탕같은 구름 속에, 오동통이 얼굴과 가필드의 얼굴과 헷세의 산책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Seascape, 1970 ,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진은 정말 좋아요.
예술가가 있어 덜 괴로운 세상, 아무리 바빠도, 발밑만 내다보려해도 예술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영감을 주니, 구경꾼 자격만으로도 행복하다면 너무 이기적인가요?
리히터의 사진들은 똑 떨어지는 무엇이 아닌 무궁무진한 세계를 열어주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보고 싶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그의 정열에 감염됩니다.


다음으로는, 시대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모은 사진들로 꾸민 그의 Atlas 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시각이 머문 곳과 역사속의 인간의 광기와 실존이 드러난 사진들.

Zeitungsfotos, 리히터가 신문과 앨범에서 모아 붙인 Atlas Sheet:11, 1963


Photographs from Books,1967, 66.7 cm x 51.7 cm, Atlas Sheet: 17
작은 사진 한 장 한 장, 안장 두른 자와 총 가진자의 표정과 그들 앞에 희생의 제물인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수치를 아는가 모르는가 종이 한 장의 차이 밖에 보이지 않는
무력감입니다. 뭐 맛있는 걸 먹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지구 한 편에서 아직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하루를 사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Photographs from Books,1967, 66.7 cm x 51.7 cm, Atlas Sheet: 18
인간의 관념이 증오와 욕심을 따라 극단으로 치우칠 때, 인간을 이렇게 [변신]시킬 수
있다는 '실존'을 증명하고 기록하는 '사진예술'을 리히터는 아주 높이 평가 했습니다.
역사의 치부를 기록하고 모아 전시하는 것은 늘 깨어있는 자의 몫이고
화가가 되고 싶던 히틀러가 순수하게 예술의 길을 갔더라면 인류의 오명과 상흔이 훨씬
줄었을 것이며 히틀러 하나의 문제가 아닌 그를 추종하고 침묵한 인류가 예술혼에
사로잡히지 않고 망령에 사로잡힌 결과가 위의 사진 속에 켜켜이 들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며, 유대인이며 몸이 안 좋던 카프카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병으로
사망한 것은, 측은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누이들도 수용소에서,
위의 사진 속의 낯선 외계인처럼 [변신]하여 가당찮게 죽었습니다.
인간만큼 정신나간 존재가 또 있을까요.

카뮈와 카프카 두 사람은 '실존문학'의 선구자들입니다. '實存문학'이란 세상을
부패하고 부조리한 것으로 파악하고, 반성하는 태도,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해결방안을 찾는 태도입니다.
카프카는 독일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존재의 불안, 고독 그리고 광기를 숨긴 현대인의 이야기를 놀라울 큼 잘
녹여내고 있어서입니다.
카프카는 소심하고 나약한 개인의 일상이, 가정내에서 사회에서 일방적,
폭력적 권위와 힘에 맞서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을 위해 일벌레로 살다가 더이상 돈을 못버는
'진짜벌레'가 되어,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죽지만 남은 자들의 삶은 바쁘게 또다시 흘러갑니다.

카프카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권위적이고 돈만 신봉할 뿐, 자식에게는 모진 상처를 주는 아버지를 둔 카프카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권위의 천박하고 잔인한 속성을
자세히 보여 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사건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생각과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개개인의 내면과
속성이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카프카의 서정敍情과 서사敍事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교차하는 묘미는, 인간의 추하고 어두운 이면(裏面,속내)와 인간적인
감정의 흐름을 독자 앞에서 조금도 숨길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풍부한 비유로 이루어진 초현실주의적인 소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여 우리 생활을 비추고, 돌아보며 반성하게 한다.
당시 소수의 독일인이 지배하던 프라하에서, 유대인인 카프카가 이방인으로서 받은 멸시,
황금만능주의의 표본인 아버지로부터 유년시절부터 생애 내내 받아 온 억압,
20세기 초 산업 발달(미취학 아동의 12시간 이상 노동착취가 만연하던 시대, 현재도
빈국에선 여전한 실정)에 따른 인간 소외와 인간 실존에 관한 복합적인 자아성찰과
사회비판이 그의 문학적 재능과 그의 헌신을 만나 위대한 꽃을 피웠다.

예술가의 개인적, 시대적 배경이 '실존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를 탄생시켰고, 작가를
기려 프란츠 카프카상이 2001년 제정되고, 이후 카프카 문학상을 받은 많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어, 카프카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좋은 의미에서 '권위'있는 이름이
되었다.

"절망하지 마라.
설사 당신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절망하지 마라. 이미 끝장이 난 듯싶어도
결국은 또다시 새로운 힘이 생겨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이 정말로 끝장이 났을 때에는 절망할 여유도 없지 않은가?"
-프란츠 카프카



리히터의 Small Door, 1967, 75 x 65 cm, Oil on canvas
Sotheby's, London, UK: 10 March 2015
Sold For: USD 1,558,410 (약 17억 8천만원)
그림을 처음 본 소감이 "와~비싸겠다"였고, 소더비에서 작년에 17억 8천에 낙찰된 걸
보고, "내 감상이 맞았는 걸...!"이라고 느꼈습니다.
카페 회원이 된 이후의 제 변화입니다.
그전에 그림을 보고 가격으로 가치를 표현한 적이 없어서, 전 제 소감에 당황했습니다.
웃어야 할 일이죠? 가치를 알아봤으니?


5 Doors (II),1967, 5 parts, each panel: 235 x 110 cm, Oil on canvas
2012년 런던 크리스티에서 약 39억 6천만원에 팔렸습니다.
돈! 돈! 돈! 실존의 문제이니 오늘 주제를 여기서 매듭지어도
삼천포로 빠진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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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은시 | 작성시간 16.04.04 Minnie 글쎄요. 문학 콘텐츠에 관해선 각자의 해석이 다르지만...
    카프카의 변신은 작년에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있는
    명작인가? 전 회의가 생기더군요.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은 상징정이고 우화적으로
    정신적인 변신을 의미하는 것이지....실재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리고 과연 그것을 객관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칼융의 용어인 개성화과정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현실이나
    보편적 세계와 맞부딪쳐 자신의 온전한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님이 쓰신..
    객관적의 상대적 용어로 개성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또 실존주의란 의미는 다르게 쓰이고요. 사르트르에서 나온 의미는
  • 작성자은시 | 작성시간 16.04.04 보편성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의 의미로...
    객관화나 카프카의 변신에 사용하는데 무리가 있는 것 같네요.
  • 답댓글 작성자Minni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4 카프카의 다른 작품은 차치하더라도 '변신' 속에서의 벌레는 사회와
    가정속에서 일벌레로 살다가, 그러지 못할 때의 사람구실 못 받는 부적응자의
    단순한 비유로써, 그런 자아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벌레로 상정하여 자신을 '객체'로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관념에서 벗어난 (실존) 실상을 보여준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관념적 인식과 결별하고, 자신을 회복 못하고 소멸해가는 부조리의 현실을 보여준 소설이니까요. 은시님과 저의 카푸카 해석은 정반대군요.^^ 카프카는 양보 못해도
    실존주의는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은시 | 작성시간 16.04.04 Minnie 양보하실 것도 없지요.^^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견해는 당연하니...
  • 답댓글 작성자Minni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4 은시 은시님, 제게 걸림돌은 학문이 아니라 자유로운 견해에도 저항감을
    느꼈던 미성숙이었음을 인정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음을 느낍니다.
    자유롭기 원하며 반대의 아집을 움켜쥐고 먼 산 바라보던 원시인이 이제
    조금 자유로운 호흡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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