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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등불기도회(금)

작성자송길똥|작성시간20.12.03|조회수85 목록 댓글 6

 

대림절 등불기도회(금)

 

“굿모닝!”

 

⁋ 묵상- 이사야 62:3-5

 

⁋ 찬송- 99장

 

⁋ 기도- 남태양 집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며, 목말라하고, 그리워하는 대림절 등불기도회 마지막 날을 맞이 했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상처를 감싸 치유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사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우린 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 바울과 같은 순교자의 여정을 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쉼 없이 기도하고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끼치며, 사랑하는 이웃을 위하여 천국 복음 전하기에 힘써야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주님과의 만남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 되고 그 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주님 오심을 기념하는 대림절을 맞이 했음을 고백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을 경험하고도 불평불만에 쌓였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의 한 해의 삶이 그러했음을 고백합니다. 이기적이고, 눈앞의 실리에 눈이 먼 인간의 삶이기에 우린 내년 아니 그 이후에도 반복해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의 어리석은 삶 가운에서도 깨우쳐 주님 닮는 등불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늘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며, 주님 닮은 낮아짐을 갖게 하사 순간 순간 우리의 부끄러움을 참회하게 하시며,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눈물의 기도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대림절 기다림의 촛불을 켰습니다. 

내 안의 등불만이 아닌 우리 이웃의 아픔과 불행, 슬픔과 눈물, 외로움에 대하여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길 소망합니다.

 

올 한해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운 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가정 가정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 순간 마다 우리와 동행하시어 우리의 힘이 되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사 새롭게 하시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며, 고통 가운데에서도 견딜 힘을 주시는 주님의 돌보심 믿으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이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기다림 속에서 사랑과 기쁨을 전염시키고 일상화 하길 소망합니다.

대림절 기다림의 절기에 빈 구유가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듯, 마음의 보금자리를 준비하여 새 희망을 예비하게 하시며 내 마음을 따듯한 둥지로, 내 삶을 기쁨의 둥지로 준비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기대하며 우리를 찾아오실 주님을 위해 따듯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기쁨의 대림절이 되게 하옵소서.

 

인간의 끊임 없는 탐욕에 의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이 땅에 주께서 주시는 평안이  내려지길 간절히 바라며 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의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으로 우리로 하여금 이 힘든 시기에도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하시며 주님 앞에서의 겸손과 성도 안에서의 사랑과 이웃과의 화평을 통하여 새로운 희망의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의 꿈과 기쁨을 채워가는 새로운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시는 평안의 은혜가 대림절 이 새벽 주의 전에 나와 머리 숙인 색동의 식구들과 지구촌 곳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녀들 위에 그리고 특별히 북녘의 땅 어느 깊은 곳에서 주의 찾으심을 소망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주의 자녀들 위에 함께 하시길 간절히 바라오며, 우리가 기다리고 목말라 하며 그리워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 교독- 창세기 42:36-38, 47:7-10

 

⁋ 말씀- ‘희망의 등불’

 

어느새 등불기도회 마지막 시간이다. 이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등불에 담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희망과 절망이다. 희망과 절망을 비교하면 절망이 가지는 힘이 훨씬 크다. 희망은 늘 겨자씨 만해 보이고, 절망은 항상 코끼리 만해 보인다.

 

절망은 그 때 그 때 닥칠 때마다, 언제나 ‘코앞의 일’처럼 보이고, 희망은 멀리 ‘아득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희망은 무엇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는 것이다.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하는 가운데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지닌 믿음과 용기이다.

 

야곱 이야기의 후반부이다. 그는 전반부의 야곱이 아니다. 위대한 족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생의 투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지팡이의 사람이었다. 야곱은 목자요, 나그네로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창 32:10).

 

그러던 그는 문제를 축복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 역시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복의 전달자로 거듭났다. 평생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를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축복과 희망은 처음부터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본문은 근심 많은 야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야곱의 근심은 모든 아버지의 근심이요, 인간의 염려를 대표하고 있다.

 

가나안땅에 기근이 들어서 야곱의 아들 10명이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갔다. 그때 총리로 있던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형들의 속마음을 시험해 보려고 그들에게 정탐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그래서 시므온을 볼모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한 것이 사실인 줄 증명하도록 하기 위해 가나안에 남아 있다는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러면 믿어 주겠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야곱에게 이러한 정황을 말씀드렸더니 야곱이 펄쩍 뛰었다. 야곱은 탄식한다.

 

그의 태도를 보면 야곱의 불신앙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불신앙의 첫 번째 특징은 원망이다.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 42:36).

 

원망은 불신앙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특징이다. 원망에는 자기반성이 없다. 모두 남에게 탓을 돌리고, 심지어 제 운명과 팔자 그리고 하나님까지 탓하게 마련이다.

 

불신앙의 두 번째 특징은 최악을 가정하는 것이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창 42:36).

 

신앙이 늘 최선을 가정한다면, 반대로 불신앙은 늘 나쁜 결과를 가정한다. 그의 마음속에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설사 요셉이 죽었다고 치더라도, 그렇다고 지금 시므온마저 죽은 것은 아니며, 아직 베냐민은 아버지 곁에 있다.

 

불신앙의 세 번째 특징은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창 42:38).

 

불신앙은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과도 마찰을 피할 수 없다. 남을 피곤하게 한다. 불협화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긴장을 가져온다. 결국 큰일을 가로 막는다.

 

위대한 조상인 야곱 역시 위기의 순간 신앙의 혼란을 겪는다. 원망, 최악 가정, 고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렇듯 불신앙은 늘 사실을 왜곡한다. 말이나 행동이 부정적이다. 또 미리 겁을 먹는다. 그들은 보이는 현상만을 바라볼 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무신경하다.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보다 불신이 전염성이 강하게 마련이다. 희망보다 원망이 전염성이 훨씬 강하다. 긍정하기보다 부정하는 일은 얼마나 손쉬운가?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남다른 삶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기에 작은 복은 자신에게 달렸고, 큰 복은 하늘에 달렸다고 말들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희망적이다. 믿음은 언제나 긍정적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원망에서 희망으로 변화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야곱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애굽의 왕궁에서 바로의 앞을 들어가며, 또 나가며 축복을 하던 사람이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창 47:7)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 47:10).

 

야곱은 불확실한 미래의 조건 속에서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며 그 손길을 의지하며 살았던 결과 은혜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탄식하던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와 삶의 꼴이 너무나 닮았기에 늘 위로를 주고 있다. 탄식하는 야곱은 축복하는 야곱으로, 원망의 사람 야곱은 희망의 사람 야곱으로 바뀌었다.

 

희망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느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등불을 켜는 사람은 희망의 사람이다.

 

그런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축복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

 

⁋ 주기도문

 

“주님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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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미녀할머니 | 작성시간 20.12.04 대림절 기도회를 통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준비하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기다림의 간절함이 있게 하시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원망과 불평 불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으로 늘 감사와 긍정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 작성자Dancing hippo | 작성시간 20.12.04 " 불신앙은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과도 마찰을 피할 수 없다. 남을 피곤하게 한다. 불협화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긴장을 가져온다. 결국 큰일을 가로 막는다. "

    나를 내어놓습니다 주님 .
  • 작성자이여리 | 작성시간 20.12.04 내 삶에 대한 해석을 불만과 불평이 아닌 감사와 희망으로 바꿔나갈때 주님의 은혜가 내게 충만했음을 기억하며 이 대림절을 더욱 기쁨으로 채워나가길 기도합니다.
  • 작성자싱그런바람 | 작성시간 20.12.04 주님, 믿음을 통해 매일 매일 희망의 등불을 켜고 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작성자송길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2.04 애초에 등불기도회를 비대면으로 카페에서만 해야할까 약간 고심했습니다. 기도자들은 원고와 함께 녹음을 올리는 방식이죠. 그러다가 그냥 평소대로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대림절 분위기가 자리 잡은 듯합니다. 등불을 켜기 위해 겉옷을 두르고 허리띠를 단단히 묶는 일은 당연합니다. 등불기도회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대림절, 날마다 주님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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