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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눈의 소묘(素描)
눈 내리는 밤을
우리나라 시인 김광균은
'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
그런가 하면 중국 시인 백거이 즉 백낙천은
"이따금 들려오는 대나무 부러진 소리"
라고 했습니다.
김광균은 밤눈을 雪夜라 했고 백거이는 夜雪이라 했습니다.
뜻은 같은데 풍기는 뉘앙스와 정감이 다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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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夜雪) / 백거이(白居易)
已訝衾枕冷 이아금칭랭 이부자리 차거움에 이상히 여겨
復見窓戶明 부견창호명 다시 보니 창문이 훤하네
夜深知雪重 야심지설중 밤새 눈이 많이 내렸나 보다
時聞折竹聲 시문절죽성 이따금 들리는 대나무 부러진 소리

已: 그칠 이, 이미, 매우. 訝: 맞을 아, 놀라다. 이상하다. 已訝: 매우 이상하다. 衾: 이불 금. 枕: 베게 침. 冷: 찰 랭. 復: 다시 부. 時: 때때로, 이따금. 折: 꺽을 절.
자다가 차가움에 눈을 떠보니 봉창이 희미끄레 밝아 보인 것은 정녕 눈(雪)이 내렸다는 징표리라...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기로 대숲(竹林)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어 이따금씩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을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청각화한 시적 표현의 묘미... 미의 문외한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백거이(白居易 772 ~ 846) 당(唐)나라 풍류시인. 자(字)가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시호는 문(文). 허난 성[河南省] 신정 현[新鄭縣] 사람. 향년 75세로 생을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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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시집 「와사등」(1939)》<조선일보, 1938.1.8.발표>
이 시는 눈 내리는 밤의 정경이나 눈의 모습을 다양한 이미지(심상)를 통해 보여 주고 있음, 이런 이미지를 통해 회화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냄. 한밤중 뜰에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는 행위를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있다고 표현하고,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먼 곳에 있는 여인이 옷을 벗는’ 것처럼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형상화하여 시각적 요소를 청각화하고 있음.
김광균(金光均, 1914 ~ 1993)
夜雪과 雪夜 두 시는 雪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모두 청각적인 감정으로 표현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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