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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등불]

6월 3일 [법과 등불] 둘째 시간을 마치며 (바쎗타의 경/숫타니파타)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6.04|조회수36 목록 댓글 1

<바쎗타의 경>에 나오는 주인공 바라드와자는 7대 조상까지 거슬러

바라문의 혈동이 이어질 때 바라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반해 바쎗타는 계행을 지킬 때 바라문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살펴보면, 그 대화가 주로 바라다와자에게 집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바라문의 출생과 가계에 집착하는 젊은 바라문 학자 바라드와자에게

바라문이 누리는 모든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자유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출생이나 가계에 집착하는 것을 끊기 어려운 가죽 끈과 가죽 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라드와자와 바쎗타는 모두 재산이 부유한 바라문입니다. 당시 바라문은

제사를 지내주거나 주문을 지어주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따라서

제사나 주문을 관장하고 종교적 특권을 누리는 바라문의 지위를 버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바라문으로서의 권위를

버리는 것은 동료나 스승으로부터 비난이나 폭력 심지어 구속을 당하는

고통의 길입니다.

 

비난이나 폭력이나 구속을 성냄 없이 참고 견뎌야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처님을 보고 젊은 바라드와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부처님은 바라드와자의 마음 속 불안과 두려움을 이미 통찰하고 있습니다.

폭력과 성냄과 구속을 당해도 분노를 자제하고 인내를 가르치는 부처님은

당신 스스로 그 길을 걷는 분입니다. 부처님이 걷는 길은 자아의 견고한

갑옷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입니다.

 

<바쎗타의 경>에서 우리는 단순히 종교의 허물을 비난하는데 머물지 않고,

그 속에 갇혀 있는 바라드와자의 집착과 두려움을 일깨우고 자유와 해탈을

가르치는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진리로

이끄는 평화롭고 자비로운 불교의 특징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바쎗타의 경> 중 함께 감동을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나는 출생과 가계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어 있다면, 그저 ‘존자여(바라문이여)’라고 불리는 자일 뿐입니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착에 묶여있지 않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가죽 끈과 가죽 줄을 족쇄와 고삐와 함께 끊어 버리고

빗장을 밀어 올린 깨달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비난이나 폭력이나 구속을 성냄 없이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있고

용맹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분노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며, 계행을 지키고 파도를 일으키지 않고

잘 다스려진 궁극의 몸에 이른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바쎗타의 경, 전재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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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碧眼 김경숙 | 작성시간 15.06.04 부처님 법문을 대하면 늘 평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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