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당의집에 도착하니 제영법사와 운경행님은 열심히
바나나를 2개씩 봉지에 싸고 있었습니다. 바나나 250개를 다 싸고는,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 먼저 청계보살에게 들렀습니다.
우리가 청계보살이라고 부르는 이 여성은 인근 청계천에서
노숙을 하는 여성입니다.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가운데 가 보니,
청계보살은 벌써 이마트 앞 황학교 다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황학교는 지붕이 있어서 비를 피하기 좋은 곳입니다.
청계보살에게 보시를 하는 역활은 늘 운경행님이 맡습니다.
운경행님이 조그만 종이상자에 1,000원을 담아주면서 보니, 청계보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습니다. 주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나타내는 듯 합니다.
일전에는 추운 날씨에 맨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두꺼운 매트를
사다주었는데, 청계보살은 받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 보는 앞에서
매트를 한 쪽으로 던졌습니다.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남의 이목을
싫어해서인지 모르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청계보살의 속마음과 그 동안에
그녀가 겪었을 이런 저런 고통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하얗게 빛을 냅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만들어내는
자연을 보며, 고통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빛나는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바나나 280개, 백설기 250쪽 그리고 커피와 둥굴레차 각각 100여잔을
보시했습니다. 바나나는 크고 실한데다 맛도 좋았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적은 90여명이 오셨고, 그 중에 보살님도 세 분이 있었습니다.
날이 추우면서 따뜻한 둥굴레차를 찾는 거사님이 많아졌습니다.
어두운 굴다리에서 봉사자와 거사님들 사이에 다정한 인사가 오고 갔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는 않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가 전해졌습니다.
오늘은 운경행님과 거사봉사대의 해룡거사님, 병순거사님, 그리고
김종문 거사님이 보살행을 해주셨습니다. 이 작은 인연으로 모든 이들이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자비와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