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리
김세명
싸리문가에 돼지막이 있다. 말목을 박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지붕은 까대기로 덮은 곳에 장날 사온 새끼 검정 돼지를 구정물과 딩겨를 주어 어머니는 몇 개월간 정성껏 거두셨다. 암돼지는 발정을하여 ‘공 선생 가축병원’에서 엄청 큰 수퇘지를 맞나 교미를 한 뒤 수개월 후에 열두 마리의 새끼 돼지를 순산 하였다. 새끼돼지가 꼬물거리는 게 귀엽다. 그중에 한 마리는 유달리 적었다. 어머니는 ‘무녀리’라고 일러 주셨다.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이 지만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새끼돼지는 어미젖도 잘 먹어 정상이지만 ‘무녀리’는 항상 젖꼭지도 차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면 죽겠다 싶어 나는 ‘무녀리’를 따로 떼어 우유도 먹이고 정성껏 보살폈다. 내가 ‘무녀리’에 관심을 보인 건 나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다. 숫자 면에서 같았고 처음 태어난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사변 후 피폐한 살림이 짐승이나 사람의 처지가 비슷하고 오히려 짐승이 잘 자라야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니 짐승을 잘 거두는 것은 학교의 월사금을 낼 수 있어 나와도 연관이 있다. 돼지 뿐 아니라 소와 염소 닭을 놓아기르니 집안은 온통 돼지우리와 비슷하다. 돼지 새끼 젖을 뗄 때 쯤 이면 거간이 들락거렸고 흥정이 되면 무녀리는 덤으로 팔려갔다.
새벽 닭 우는 소리에 잠 깨어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일을 거드는 것은 당연하여 소와 염소를 풀을 뜯게 하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교에 가서는 영농 장학생이 되어 학교의 축사를 돌보아야 했다. 그 때는 ‘무녀리’ 라는 단어가 나와 동일시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언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못난 ‘무녀리’로 체념하면서 살았다.
‘무녀리의 삶’은 어머니의 삶이고 아버지의 삶이었다. 전쟁의 고통에서 죽지 않았다는 게 희망이요 한줄기 빛이었다. 나 또한 청춘의 시절을 무녀리로 살았다. 당시의 농사일은 끝이 없다. 누에를 키우고 담배 농사도 하였고 일년 내내 일속에 파묻혀 살았다.
징집나이가 되어 공군에 입대하여 보니 오히려 그 곳이 좋았다. 의식주의 해결은 물론이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희열을 보았다. 그 후 공직에 들어가 그 틀에 짜인 실타래처럼 엉키고 풀리며 나처럼 무녀리도 권력의 맛도 보고 감히 남들을 법의 이름과 공공의 안녕 질서유지를 핑계로 호령도 해 보았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나 공평하여 이순의 고개를 넘고 보니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세월이 빠르다"고 탄식하며 "눈 깜박할 사이에 벌써 청춘은 다 가고 백발이 되었다"는데 공감하며 살고 있다. 흐르는 물처럼 빠르고, 한번 가면 다시 되돌아 올 줄 모르는 것, 그것이 곧 시간이요 세월인가 ? 이제는 다시 무녀리가 되었다. 늙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 뿐이다.
잔디 덮인 산, 적은 소나무 새로 납작 납작 한 묘들이 쭉 깔려 있다. 임자 없는 고총들 가난한 농사꾼들이 되는 대로 살다가 되는대로 죽어 파 묻인 것이리라 무명의 인간들이 남긴 흙덩이조차 불쌍해 보인다.
무녀리의 삶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는 이런 고총 들이 나의 마지막 길인 양 넘겨 다 본다. 노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가난의 고통과 고독의고통과 할 일없는 고통 그리고 몸이 아픈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무녀리로 태어난 몸의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김세명
싸리문가에 돼지막이 있다. 말목을 박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지붕은 까대기로 덮은 곳에 장날 사온 새끼 검정 돼지를 구정물과 딩겨를 주어 어머니는 몇 개월간 정성껏 거두셨다. 암돼지는 발정을하여 ‘공 선생 가축병원’에서 엄청 큰 수퇘지를 맞나 교미를 한 뒤 수개월 후에 열두 마리의 새끼 돼지를 순산 하였다. 새끼돼지가 꼬물거리는 게 귀엽다. 그중에 한 마리는 유달리 적었다. 어머니는 ‘무녀리’라고 일러 주셨다.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이 지만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새끼돼지는 어미젖도 잘 먹어 정상이지만 ‘무녀리’는 항상 젖꼭지도 차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면 죽겠다 싶어 나는 ‘무녀리’를 따로 떼어 우유도 먹이고 정성껏 보살폈다. 내가 ‘무녀리’에 관심을 보인 건 나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다. 숫자 면에서 같았고 처음 태어난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사변 후 피폐한 살림이 짐승이나 사람의 처지가 비슷하고 오히려 짐승이 잘 자라야 가계에 보탬이 되었으니 짐승을 잘 거두는 것은 학교의 월사금을 낼 수 있어 나와도 연관이 있다. 돼지 뿐 아니라 소와 염소 닭을 놓아기르니 집안은 온통 돼지우리와 비슷하다. 돼지 새끼 젖을 뗄 때 쯤 이면 거간이 들락거렸고 흥정이 되면 무녀리는 덤으로 팔려갔다.
새벽 닭 우는 소리에 잠 깨어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일을 거드는 것은 당연하여 소와 염소를 풀을 뜯게 하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교에 가서는 영농 장학생이 되어 학교의 축사를 돌보아야 했다. 그 때는 ‘무녀리’ 라는 단어가 나와 동일시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언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못난 ‘무녀리’로 체념하면서 살았다.
‘무녀리의 삶’은 어머니의 삶이고 아버지의 삶이었다. 전쟁의 고통에서 죽지 않았다는 게 희망이요 한줄기 빛이었다. 나 또한 청춘의 시절을 무녀리로 살았다. 당시의 농사일은 끝이 없다. 누에를 키우고 담배 농사도 하였고 일년 내내 일속에 파묻혀 살았다.
징집나이가 되어 공군에 입대하여 보니 오히려 그 곳이 좋았다. 의식주의 해결은 물론이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희열을 보았다. 그 후 공직에 들어가 그 틀에 짜인 실타래처럼 엉키고 풀리며 나처럼 무녀리도 권력의 맛도 보고 감히 남들을 법의 이름과 공공의 안녕 질서유지를 핑계로 호령도 해 보았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나 공평하여 이순의 고개를 넘고 보니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세월이 빠르다"고 탄식하며 "눈 깜박할 사이에 벌써 청춘은 다 가고 백발이 되었다"는데 공감하며 살고 있다. 흐르는 물처럼 빠르고, 한번 가면 다시 되돌아 올 줄 모르는 것, 그것이 곧 시간이요 세월인가 ? 이제는 다시 무녀리가 되었다. 늙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 뿐이다.
잔디 덮인 산, 적은 소나무 새로 납작 납작 한 묘들이 쭉 깔려 있다. 임자 없는 고총들 가난한 농사꾼들이 되는 대로 살다가 되는대로 죽어 파 묻인 것이리라 무명의 인간들이 남긴 흙덩이조차 불쌍해 보인다.
무녀리의 삶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는 이런 고총 들이 나의 마지막 길인 양 넘겨 다 본다. 노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가난의 고통과 고독의고통과 할 일없는 고통 그리고 몸이 아픈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무녀리로 태어난 몸의 한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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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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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치부 작성시간 08.08.15 옛날 우리네 인생이 대부분은 그처럼 살았을겁니다.되돌아 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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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림물감~ 작성시간 08.08.16 이글을 읽다 보니 갑자기 이 효석님의 돈이란 소설이 생각나네요. 식이라는 주인공이 조그만 암 돼지를 길러 씨붙이를 해서 새끼를 낳아 살림에 보태려 하는데. 그 돼지란 녀석이 넘 작아 자꾸만 퇴자를 맞구 되돌아 와야 하는 식이의 암담한 심정을 그려준. 아니 그때 당시의 우리 실정을 그려준 소설이랄까 모시기랄까...ㅎ 여기 위에 올린 글 처럼 돼지새끼를 길러 우리 가계에 보탬이 되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잘 보구 갑니다. 건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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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들국화 여인 작성시간 08.08.15 무녀리....처음 들어본 단어지만 왠지 정감이 가네요.....무녀리로 태어 나셔서 무녀리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인생인가봐요....ㅎㅎㅎ그래도 우리 무녀리끼리 당당하게 살아요....무녀리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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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파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8.15 무녀리의 관심에 뒤돌아 보는 세월이 우리의 삶이었나 봅니다. 8.15 건국 60주년을 맞아 기적을 이룬 발전에 공감 하면서 뒤돌아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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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리운 고향 작성시간 08.08.16 많은 사람들이 무녀리의 삶을 살아왔지요. 무녀리의 삶속에서도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지요. 앞으로 신나고 당당하고 멋지게 사는 무녀리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