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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_빅터 프랭클

작성자시아 (서울)|작성시간19.07.27|조회수318 목록 댓글 2

저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며 로고 테라피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자유 의지와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는 저자의 자세가

요즘 사람인 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실제로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설득력이 있네요.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다.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이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젓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가의 내면이느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은 수많은 현재의 가능성 중에서 끊임없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을 무위로 돌리고, 어떤 것을 실현시킬까? 


인간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신경증환자나 노이로제 환자에게도 자유는 있다. 정신병도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곳까지는 침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능한가? 


다른 말로 하자면 중요한 것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를 받아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모든 가능성에 대해, 모든 희망에 대해 가리지 않고 낙관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비록 사정이 좋아질 확률이 천 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당신에게 어느 날 조만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단순한 유용성과 혼동하는 것은 개념상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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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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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인랑제(신월) | 작성시간 19.07.28 삶에 예스 하는게 아마 하나님께 아멘 하는게 아니었나 싶어요. 주예수님이 도우실 걸로 밖에 말씀드리겠네요. 나치에 살아남은 조현생존자, 유태생존자.
  • 작성자별마루 | 작성시간 19.07.28 영원히 긴장 없는 삶을 원했던 저는 한편으로 죽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삶의 의미를 모른다면 자유란 불안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슴 속에 터져 나올 것들을 견디며 산다.>
    그대로 생명이 흘러나올 수 없으니까..
    상담에 상담이 도움이됩니다.
    결국에는 자기에게 묻고 있다는 걸 압니다.
    일을 하고 사랑도 하며 견디지 못하는 부분은 상담을 받네요.

    요즘 책 한글자 읽지 않는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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