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말씀』 330(2016년 12월호), pp.128-141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갈라디아서 3장 5-9절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갈라디아 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여러 개의 교회들이었다(갈 1:2). 이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교회들인데(행 16:6; 18:23), 사도행전에 자세한 기록이 없긴 하지만 사도 바울이 이 지역에 가서 전도한 것은 분명하다.
갈라디아 교회는 처음에 바울이 전한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후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서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자 그만 미혹되어 복음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강하게 호소한다. 할례를 받는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이며,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이며, 은혜에서 떨어진 자이다(갈 5:3).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으려 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으려 하고 자기 공로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상관없으며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다.”고 말한다(갈 2:21).
I. 본문 배경
‘갈라디아’(Galatia)는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 지역) 중앙 내륙에 위치해 있었다. 서쪽에는 브루기아(Phrygia)가, 동쪽에는 갑바도기아(Cappadocia)가 있다. 갈라디아는 원래 브루기아에 속해 있었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이 주전 200년 무렵에 버가모 왕국의 앗탈루스 I세(Attalus I)에 의해 브루기아의 동쪽 지역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그들이 살던 브루기아 동쪽 지역이 ‘갈라디아’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행 16:6) 또는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행 18:23)이라고 말할 때, 관사 하나로 묶어서 마치 한 지역인 것처럼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란 지명은 ‘켈트’(Celt) 족 또는 ‘갈리’(Galli) 족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켈트 족은 처음에 서쪽으로 이주하여 프랑스 남부 지역에 많이 살았으나, 그 중 일부는 다시 동쪽으로 이주하여 마게도냐 지역과 데살리아 지역에 살고 있었다. 마땅한 정착지가 없이 떠돌고 있던 차에 비두니아 왕국에서 형제간의 분쟁이 생겼을 때에 니코메데스(Nicomedes) 왕의 요청으로 2만 명의 갈리(켈트) 족이 흑해를 건너와서 도와주고 나서는 브루기아 지역에 머물러 살았다. 이들은 후에 브루기아 동쪽 지역(갈라디아)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살게 되었다. 그 중심 도시는 ‘앙키라’(Ancyra)와 ‘페시누스’(Pessinus)와 ‘타비움’(Tavium)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일종의 ‘인종의 섬’을 이루게 되었는데, 머리가 검은 동양 사람들 가운데서 머리가 노란 켈트 족 사람들이 켈트 말을 하면서 살았다. 이들은 매우 감정적이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으며 손님 접대를 잘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처럼 대하였으며 눈이라도 빼어 줄만큼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갈 4:14-15).
그러나 감정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쉽게 떠나간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떠난 후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갈라디아 사람들은 쉽게 요동되고 바른 복음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갈 1:6). 그래서 바울은 이런 갈라디아 사람들을 향해 “어리석도다 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탄식하였다(갈 3:1).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다시금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II. 본문 연구
1. 5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질문한다(갈 3:5).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을 받았는데, 그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 모두가 체험한 것이며 논리가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해서 ‘성령’을 받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란 것이다. 그들이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들이 복음을 믿음으로 들음으로 성령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명백하게 복음을 믿음으로 들음에 의해써였다. 처음 복음을 듣는데 무슨 율법을 지켜 행하고 할 수가 없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으며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능력으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이 사실은 성령을 받음에 있어서, 즉 하나님의 약속 또는 선물을 받음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는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오직 은혜로 성령을 받고 구원받았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2. 6절
그러고 나서 바울은 이것은 창세기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6절) 이 말은 앞의 5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5절의 내용은 곧 6절에서 말하는 바의 것과 같다는 말이다(원문에는 6절 초반에 ‘~와 같이’에 해당하는 접속사가 있음).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 하나님을 믿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것(믿음)을 그에게 의(의로움)로 여기셨다.
이 말씀은 창세기 15장 6절의 인용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여기다’(λογiζομαi 로기조마이)는 단어인데, 이것은 ‘여기다, 간주하다’(count, reckon)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믿음’ 자체는 의(義)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뜻이다. 둘째는 그 의로 여김의 시기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여김 받은 것은 창세기 15장의 일로서, 그가 가나안 땅에 도착한 때(75세)로부터 하갈을 첩으로 취할 때(85세 이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가 할례를 받은 것은 17장에 나오는데 99세 때이다. 따라서 ‘할례’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고 나서 약 15년~20년 후에 있었던 일이다. 이로 보건대 ‘할례’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 받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7절
그러고 나서 바울은 하나의 결론을 유도한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7절)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hoi ek pisteωs)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 즉 믿음의 방법에 의한 자들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율법의 행위로, 즉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사람들과는 반대이다. 자기 공로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믿음의 방법을 따르는 자들,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문자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아들들’인데, 이들은 아브라함의 참 자녀들(영적 자녀들)로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기업(基業)을 얻을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기업’(유업)은 가시적으로는 ‘가나안 땅’이었으며, 이것은 또한 ‘영원한 천국’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 천국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자들만 들어가기 때문에, 바울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것과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다(14절).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야 가나안 땅(천국)을 유업(遺業)으로 얻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는 권리와 축복 모두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만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자기들만 이 복을 받는 줄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언약의 자손’이며, 언약의 표인 ‘할례’를 몸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할례’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며, 이 표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증거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도 바울도 회심하기 전에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으나 회심 후에는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바울은 회심 후에 새로운 각도에서 성경을 읽었는데, 그것은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에 관한 것이다. 이때 ‘자손’이란 말은 원어로는 ‘씨’라고 되어 있다. 구약에서는 ‘제라’이고 신약에서는 ‘스페르마’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후손’(씨)의 약속을 하실 때 항상 단수 ‘제라’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창 12:7; 13:15, 16; 15:5, 18; 17:7, 9; 22:17, 18; 24:7; 26:3, 4 등).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주목하고서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씨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씨)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였다(갈 3:16).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신 것인데 곧 ‘그리스도’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씨)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것’인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아브라함의 씨’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육적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곧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이며,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의 체험 이후에 깨달은 것이다.
4. 8절
사도 바울은 나아가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8절) 여기서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창세기 12장 3절 말씀이다. 개역개정판에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되어 있는데, 창세기의 ‘땅의 모든 족속’이 갈라디아서에서는 ‘모든 이방인’이라고 되어 있으나 같은 내용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로 말미암아’란 번역이다. 히브리어 원어나 헬라어 원어를 그대로 따르면 ‘네 안에서’로 번역해야 맞다. 히브리어 ‘브’나 헬라어 ‘엔’은 다 ‘안에’란 뜻이다. 칠십인역(LXX)이 이 부분에서 히브리어 ‘브’를 헬라어 ‘엔’으로 번역했으며, 그것을 강조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동사 앞에 ‘엔’을 덧붙여서 강조하였다. 사도 바울도 70인역을 따라 마찬가지로 ‘네 안에서’(εν σοi, 엔 소이)란 말과 함께 동사 앞에 전치사 ‘엔’(en)을 덧붙여서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ενευλογηθησονταi, 엔율로게떼손타이)고 표현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민족은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아브라함의 씨 안에서’ 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네 안에서 복을 얻으리라”(창 12:3)는 약속이 창세기 22장 18절과 26장 4절에서는 “네 씨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친다.”고 하였으며, 사도행전 3장 25-26절에서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너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는다고 말하였다(여기서도 개역개정판 번역은 잘못되어 있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네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전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아브라함에게 전한 것은 유대 민족의 복이나 세상적인 복이 아니라 ‘복음’이었다는 사실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복음’을 아브라함에게 전했다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유대 민족의 복’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신약 시대에 와서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확장해서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복음’은 예수님에 의해 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주어졌는데, 곧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이다. “땅의 모든 민족이 네 안에서 복을 얻으리라.”(창 12:3)는 말씀은 곧 ‘복음’이다. 여기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과 ‘모든 민족(이방인)’에게 미치는 복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한 것이다(8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저 자기 민족만 복을 받는 줄로 알았다. 자기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자기들만 하나님의 선민이며, 그 증거로 할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구약 성경을 유대주의적으로, 민족주의적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구원 얻는다는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을 받았으며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였다.
바울 자신도 전에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미리 계획하시고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그저 유대민족들에게만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제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자손’으로만 생각하고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인 유대 민족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씨’가 단수임에 주목하고 이는 곧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갈 3:16). 이로써 구약을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수건이 벗겨진 것이다(고후 3:13-18).
5. 9절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의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을 전하셨고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것이다(롬 4:11, 16).
아브라함은 육신적으로는 ‘유대인의 조상’이지만(아랍인과 에돔인의 조상도 된다), 영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육신적인 의미에서 ‘언약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만(행 3:29), 이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율법의 저주가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아브라함의 복(천국)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천국 백성’이다. 즉,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다. 따라서 ‘육신적인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유대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다.
III. 설교문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는 누구일까요? 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까요?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먼저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을 불러서 약속을 주셨습니다(창 12:1-3).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눈에 보이는 팔레스타인의 가나안 땅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천국’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그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런 약속을 받게 될까요? 어떤 사람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될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일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1.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
사도 바울은 7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자들’과 반대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율법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함 받으려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고 자기 공로로 구원받으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옳지 않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처음에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성령을 받고 의롭다 함 받은 것이지, 율법을 지켜 행했기 때문이 아닙니다(5절).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의롭다 함 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얻게 될 ‘가나안 땅’은 바로 ‘천국’의 예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줄 믿습니다.
2. 모든 이방인이
‘믿음의 방법’에 의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8절). 이것은 창세기 12장 3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거기서는 ‘땅의 모든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기의 ‘모든 이방인’과 같은 말인데,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유대 민족’만 받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민족’이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할례’가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함 받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어느 민족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신약 시대에 비로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8절).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은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음’이었으며, 단지 유대 민족만을 위한 ‘육신적 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미래 일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미리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3. 네 안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이 주어질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네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12:3). 그런데 ‘네 안에서’란 말이 안타깝게도 우리말 성경에는 ‘너로 말미암아’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어상 ‘네 안에서’(히: 브카; 헬: 엔 소이; 영: in you)가 맞습니다. 이 말은 곧 ‘너의 씨 안에서’란 뜻입니다(창 22:18; 26:4).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행 3:25-26).
그래서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미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 곧 ‘천국’을 유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우리 일생 최대의 행복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복을 주신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충성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바위섬 작성시간 17.01.29 아주 명확한 ! 해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전해졌습니다.
원래는 이스라엘의 구원의 약속이었다가 그들이 거절하므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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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풀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01.29 아멘... 단숨에 읽어 내려 왔습니다.
아브라함께 복음을 전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께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드리며
할렐루야로 올려드립니다! -
작성자애통하는자 작성시간 17.01.29 전에 갈라디아서 공부를 하던 중에 이부분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네 씨들(이스라엘)이 아니라... 네 씨(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실 것을 계획하셨지만...예수 그리스도 이전까지는 교회는 비밀이였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결론은... 표면적인 이유로는 이스라엘의 거절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넘어간 것이지만... 내면적인 이유로는 이스라엘의 실패까지도 미리 알고계신 하나님의 지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댓글로 표현하려니 좀 어렵네요... 잠깐 들었던 생각을 적어봤어요^^ -
답댓글 작성자바위섬 작성시간 17.01.29 그렇죠.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새로운 피조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존재들이 바로 교회인데 그것은 만세와 만대로 부터 감추어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온 세상에
그 비밀이 드러났고 바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 첫번째 피조물은 반드시 죽어야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풀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01.30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알게 하시고
아브라함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며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더욱이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에 감사가 넘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