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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불멸의 ‘원수폭금지선언’ 55주년

작성자다사랑|작성시간15.09.07|조회수1,030 목록 댓글 5

불멸의 ‘원수폭금지선언’


지금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핵실험, 원수폭실험에 대한 내 태도를 오늘 확실하게 성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적어도 내 제자라면 오늘 내가 하는 성명의 뒤를 이어 전세계로 이 의미를 관철하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세계 민중은 생존의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를 침해하는 자는 마물(魔物)이며 괴물(怪物)입니다.

그것을 이 인간사회,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원자폭탄을 사용해 승리한다 하여도 승자이지만 사용한 일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주장합니다.

만약 한나라가 원자폭탄을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고 한다면 그 민족,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악마이며 마물이라는 사상을 전세계에 넓히는 것이야말로 전일본 청년의 사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원수폭금지선언’ 중에서


1957년 9월. 요코하마 미쓰자와 경기장에서

#


평화와 희망의 위대한 철학을 용감하게 말하라!


울려 퍼져라 / 오, 민중의 / 황금 같은 목소리


우리는 외친다. 반드시 평화를! 부전(不戰)의 맹세를 만대에!

어떤 권력자의 공감보다도 평화를 바라는 풀뿌리 서민의 용감한 외침이 더 강하다.

(중략)


우리 히로시마 청년부가 믿음직스럽게도 부전의 맹세를 계승하려고 실시한 ‘히로시마학 강좌’는 이번 여름에 150회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지난 7월 말에는 유엔군축담당 고위대표를 지낸 세르지오 두아르테 씨가 강연했다.

‘평화를 여는 첫걸음은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

이런 신조로 행동하신 두아르테 씨는 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세계의 일류 식자는 모두 철저히 대화의 힘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날도 말은 참가자가 질문을 희망했다. 그러나 시간 관계상 도중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장내는 큰 박수에 감싸여 그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아르테 씨는 맨 앞줄에 있는 청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을 들었지만 마지막까지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었다.

두아르테 씨는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계속 손을 들었지요. 무엇을 묻고 싶었습니까.”

청년은 예기치 못한 질문에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일본의 청년이 핵무기 폐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자리에서 두아르테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이 좋은 지도자를 뽑는 일입니다.”

그 말에는 ‘평화로운 미래를 촉구하는 층은 젊은 세대’라는 뜨거운 기대가 담겨 있었다.


역사적인 사자후(師子吼)


그 날은 1957년 9월 8일 일요일이었다. ‘젊은이의 제전’(제4회 동일본체육대회)이 열린 요코하마 미쓰자와 육상경기장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맑은 가을 하늘에 감싸여 있었다.

도다 선생님의 사자후가 제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청년을 중심으로 한 약 5만 명 앞에서 이 ‘선언’이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우리 세계의 민중은 생존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를 위협하는 자는 마물(魔物)이고 사탄이며 괴물입니다.”


당시 수폭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실험으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경쟁이 격화 되었다. 핵전쟁 등으로 인류가 멸망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세계종말 시계’도 멸망 직전 2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의 스승은 인류의 생존조차 단절시킬지 모르는 원수폭의 본질을 국가와 정치체제 그리고 인종과 민족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혁명’이라는 깊숙한 내면에서 고발했다.


어느 참석자는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한 친구를 떠올리며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스승과 함께 굳은 마음으로 걸어가겠다고 새롭게 결심했다.

학회가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의 모임’이라고 비난을 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은사의 외침은 어려운 상황을 전부 꿰뚫고 모두를 ‘광선유포’ 즉 ‘세계평화’로 향하는 사명에 눈뜨게 하는 위대한 빛이 되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실은 이 위대한 선언에 이르기까지 도다 선생님은 몇 번이고 사색을 거듭하셨다.

1년 전(1956년 6월), 도다 선생님이 후쿠오카의 야하타시민광장(당시)에서 열린 질문 회에 참석했을 때, 핵전쟁이 염려되는 세계정세를 언급하자 “원폭 따위를 사용하는 인간은 최대의 악인이다!” 하고 대단히 분노하셨다.

또 선언 2개월 전인 7월 12일에는 잡지사와 나눈 대담에서 이렇게 잘라 말씀하셨다. “원자폭탄만은 용서할 수 없다.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어느 쪽이라도 원자폭탄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 발언에는 불법의 생명존엄 철리를 바탕으로 핵 폐절을 향한 확고부동한 사상적 기반이 있었다.

성훈에는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一切)의 재보 중에 제일의 재보로다”(어서 1596쪽)라고 씌어 있다.

이런 존귀한 생명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마성의 폭력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동서냉전 하에 세계 위기의 분단과 대립이 깊어진 1952년, 은사는 결연히 ‘지구민족주의’를 제창하셨다.

국경과 이데올로기의 벽을 뛰어넘어 인류를 잇는 선구적인 사상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의 적(敵)이라고 외친 점도 여기에 귀결된다.


1955년에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서명하고 핵무기로 인한 인류의 위기에 즈음해 전쟁의 폐절을 호소한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이 발표되었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의 사람들도 절대로 희생되지 않는 세계 구축이라는 은사의 이상에 호응하듯 핵 폐절을 향한 국제여론은 높아갔다.

게다가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의 서명자요, 발표에 온 힘을 다한 로트블랫 박사가 중심이 되어 2년 뒤(1957년)의 7월, 그 정신을 이어받은 과학자의 연대 ‘퍼그워시회의’가 발족되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9월에 은사의 ‘원수폭금지선언’이 발표된다. 엄연한 역사의 각인을 확인할 때마다 도다 선생님의 선견지명에 깊이 감명한다.

로트블렛 박사는 도다 선생님을 뜻을 같이하는 ‘평화의 영웅’이라고 찬탄하셨다.


나는 스승이 선언하신 중대한 의의를 직감했다. 그러므로 기록에도 애를 쓰고 흑백영상이 주류였던 시절에 컬러로 촬영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취했다.

오직 이런 위대한 선언을 후세 영원히 남겨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중략)


세계는 ‘자신이’ ‘지역에서’ 바꿀 수 있다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긍지로 전진!

 

행복성(城) / 평화성이 바로 / 창가산(創價山)


은사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가장 중요한 유훈’이라고 말씀하신 평화사상을 모든 청년에게 그리고 전 세계의 민중에게 전하기 위해 제자는 기원하고 대화하고 집필하고 움직이고 말했다.

1957년 9월 8일에 발표한 ‘원수폭금지선언’ 1주년을 맞아, 나는 ‘화택(火宅)을 빠져나가는 길-원수폭금지선언을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세이쿄신문에 기고했다.


기고문에는 법화경<비유품>의 “삼계가 불안함이 불난 집과 같아서 중고(衆苦)가 가득 하니 매우 두려워할지어다”(법화경 191쪽)라는 내용을 통해, 절대 평화의 법리인 불법을 세계에 넓히자고 주장했다.

또 같은 <비유품>에는 “중생을 안온하게 해주려고 세상에 나타났느니라”(법화경 196쪽)고 설해져 있다.

중생의 불길 같은 고뇌, 끊임없는 비참한 전쟁, ‘화택’ 같은 현실사회에 출현해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람이 부처이고 이러한 스승과 같은 마음으로 일어선 애제자가 지용보살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지하게 철저히 기원하고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계속 격려했다.

“항구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용의 벗이여, 끊임없이 계속 뛰어나와라!”

“나와 함께 은사의 ‘선언’을 단호히 실현하지 않겠는가!”


‘사명’에 온 힘을 다하다


나가사키에 / 우리 벗 있기에 / 영원히 /

평화의 종은 / 드높이 울리는구나


나가사키에서 피폭을 당한 어느 장년은 반세기 가까이 생각하는 것조차도 말하는 것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체험을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것은 당시 나가사키문화회관에서 본 ‘원수폭금지선언’ 전문(全文)이었다.

“전 세계에 넓히는 일이 바로 일본의 모든 청년 남녀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사명’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

완고한 장년은 그렇게 결심했다. 그 결심은 바로 용기를 내어 ‘대화하는’ 일이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간 원폭의 땅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대화의 꽃을 피우자. 그 일이 살아 있는 사람의 사명이다’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계속 대화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항구평화는 협박이 아니라 진지하게 상호간의 신뢰를 쌓는 노력 속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평화의 직도인 대화의 열매를 맺으려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우정을 맺고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듣는다’” “상대를 ‘존경한다’” “상대에게 ‘배운다’”는 세 가지가 가치 있는 대화의 철칙이다.

성훈에는 “교주석존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어서 1174쪽)라고 씌어 있다. 우리의 성실함과 진지한 행동으로 평화의 조류도 넓어진다.


“내 제자라면 오늘 내가 발표하는 이 성명을 이어받아 전 세계에 이 뜻을 두루 알리기 바랍니다.”

은사가 ‘원수폭금지선언’에서 지적한 점도 끈질기게 신뢰를 얻고, 사회에 평화의 철학을 두루 알리는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도 세계를 뛰어다니며 각국의 지도자들과 우정을 맺고 공생(共生)하는 세계를 구축하려고 대화를 거듭했다.

(중략)


버팀목이 된 체험


나와 아내가 잊을 수 없는 벗 히로시마의 한 부인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화운동이라고 해도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평화운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는 상냥함의 표현입니다.”

이 부인은 폭발의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약 1.3킬로미터에 있는 메이지바시에서 피폭당한 분이다. ‘히로시마를 이야기하는 모임’의 일원으로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전하고 있다. 간사이소카학원의 학생들도 신세를 졌다.


그 부인은 원자폭탄증의 고통에다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시절의 체험이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체험은 집단 괴롭힘을 당했을 때 옆에서 한 친구가 감싸준 일이었다. 어깨를 감싼 그 손의 온기를 잊지 못하고 ‘오직 그 하나의 사건 덕분에 내 마음 속에 있는 슬픈 기억이 얼마나 지워졌는지 모른다’고 회고하셨다.


누구나가 평화를 바란다. 어떤 사람에게도 타인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 아주 작은 용기가 벗을 지키는 힘이 된다. 무심코 한 말이라도 인생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양심과 용기를 한 사람 또 한 사람 되살아나게 해 지역과 사회 그리고 인류 전체를 감싸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리셀‧ 아인슈타인 선언’에 서명자로도 유명한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인류 중에서 선택된 소수자에 따른 것이 아니라, 대부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인류의 양심 또는 양식(良識)이 추진력이 되어 핵시대 이후에 더 좋은 시대가 실현되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가 전개하는 나날의 학회활동을 때로는 평범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벗을 위해, 지구를 위해 격려하는 헌신적인 행동이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희망으로 빛나고 얼마나 환희가 되어 빛나는지 헤아릴 수 없다.


굴하지 않는 ‘의지’를


지금 지구상에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총수는 약 1만9000발로 추정된다.

핵전쟁은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이고 인류를 멸종시키고 지구를 파괴한다.

양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원수폭의 사용과 핵실험을 금지하고 핵을 폐절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아무리 정의를 외쳐봤자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하고 무관심과 무기력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리셀‧ 아인슈타인 선언’의 기초자인 영국의 철학자 러셀이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참사(慘事)를 향해 달려가는 경쟁을 고집하도록 운명을 부여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참사를 일으킨 것도 인간의 의지고 참사를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의지입니다.”

또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절망하는 일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인간에게는 공포와 증오만이 아니라 희망과 인애(仁愛)를 발휘하는 힘도 있습니다.


‘창가’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한 사람 한사람이 지닌 정신의 가치를 창조한다.

그 가치는 절망을 부수는 ‘희망’이고 공포와 증오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용기’다.


1271년 9월 12일은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발적현본’하신 다쓰노구치법난일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9월, 대성인은 유배지인 사도에서 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관철한 가마쿠라의 여성문하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육천의 마왕이 열 종류의 대군세로 싸움을 일으켜, 법화경 행자와 고뇌가 소용돌이치는 바다 속에서 성인(聖人)과 범부가 함께 있는 사바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다. 니치렌은 그 제육천의 마왕과 대결해 대병(大兵)을 일으킨 지 20여년이 되었다. 그 동안 니치렌은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이다”(어서 1224쪽, 통해)


이 연조(蓮祖)의 진심에 직결하기에 우리 창가의 사제도 평화와 정의로운 대투쟁에서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고 외치며 끝까지 싸웠다.

창가의 어머니들이 바로 위대한 모범이지 않은가!


‘평화연구의 어머니’ 엘리스 볼딩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현재 많은 사람이 지역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려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본디 서로를 좀 더 알고 마음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SGI 여러분의 활동을 보면 한 사람 한사람이 사회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세계의 지성은 창가의 전진에 한없이 기대하고 있다.

자, 우리는 ‘대화의 가을’ ‘우호의 가을’을 위풍 당당히 전진하자!

생명존엄과 인간공화(人間共和)의 아름다운 평화의 세기로!

인간주의가 빛나는 희망의 신시대를 목표로!


두려워하지 말고 / 이 인생을 / 함께 /

단호히 승리하라 / 평화의 깃발을 들고



☞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 (53) 불멸의 ‘원수폭금지선언’ 55주년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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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우리가 나아가는 승리의 길 (53) 불멸의 ‘원수폭금지선언’ 55주년 -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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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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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라이즈 | 작성시간 15.09.07 정의는 악과 싸워 이겨야 빛난다.
    불법(佛法)도 같다. 단, 확인해 두고자 하는 것은 본래 불법에는 피로 얼룩진 증오에 찬 복수는 없다는 점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다면 결국 원한은 멈추지 않는다. 원한을 버려야 멈춘다.”
    이것은 초기 불전(佛典)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다.

    니치렌 대성인도 가장 심한 박해자에 대해서 “원컨대 나를 해치는 국주 등을 최초로 이를 인도하리라”(어서 509쪽)고 말씀하셨다. 대해(大海)와 같은 관용이셨다.

    그러나 그것은 선악을 불분명하게 하고 악을 결코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 작성자선라이즈 | 작성시간 15.09.07 “악인의 적이 될 수 있는 용자가 아니라면 선인(善人)의 벗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은 군부 정부의 탄압과 싸워 옥사하신 초대회장 마키구치 선생님의 외침이다.

    악과 철저하게 싸우지 않으면 선은 있을 수 없다. 악을 방치하는 행위는 무자비이며 겁쟁이고 결과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과 같다.

    대우주에 가득한 제육천의 마왕과 싸우고 자신의 생명에 내재한 악을 타파하는 대투쟁을 우리는 ‘광선유포’라고 하며 ‘인간혁명’이라고 말한다.
  • 작성자선라이즈 | 작성시간 15.09.07 그날(1957/9/8) 태풍이 지나간 높은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부는 속에 도다 회장은 5만의 동지 앞에서 ‘제일의 유언’으로 원수폭금지를 선언하시고 이 사상을 세계에 넓히도록 청년에게 의탁하셨다.

    그 선언의 핵심은 원수폭을 사용하려는 발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발톱’, 즉 인류 속에 깃든 ‘마성의 생명’에 날카롭게 메스를 가한 점에 있다.
  • 작성자선라이즈 | 작성시간 15.09.07 “원자폭탄 사용자를 사형에 처하라!”
    본래 선생님은 생명 존엄을 제일의 의의로 삼는 불법자로서 사형제도에는 절대 반대였다. 그렇지만 일부러 “사형에 처하라”고 외치셨다.

    그것은 원수폭을 보유하고 사용하려는 인간의 기심에 깃든 마성 그 자체를 봉쇄하는 쐐기를 박기 위함이었다.
  • 작성자선라이즈 | 작성시간 15.09.07 원수폭을 ‘절대악’으로 단죄한 사상은 말하자면 ‘방비지악(防非止惡)’의 제방을 인류의 흉중 깊이 세우려 하기 위함이었다.

    ‘생(生)’을 지키기 위해서 그 대극인 ‘사(死)’라는 말로 악마의 마성의 움직임을 부수려는 생명엄호라는 절대 정의를 실현하는 신념의 행동이었다.

    수필 신·인간혁명(233)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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