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이글은 삼국지에 어느정도 통달한 분이라면 가치가 없다시피 합니다. 새로운 해석도 없고 장료 저 자신의 개인적인 칼럼의 형식의 글 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셨다면 바로 "뒤로" 혹은 타 링크를 클릭하여 안 보시는게 시간을 더 값어치 있게 쓰는 길 입니다,.
# 2.이글을 타 사이트 혹은 다른 곳으로 퍼가실때는 카페명과 출저를 확실히 해주십시오, 특히 지식 in 이런곳에 자기가 쓴 글인냥 올리다간 지옥 끝까지 추적하여 응징을 하겠습니다. (이미 한번 당했습니다.) 비록 못난 글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글 입니다. 저번에 제가 쓰던 글, 네이버 지식in에 올렸던 분, 조만간 방법들어갑니다. (활동도 안하지만 처절한 응징을 가해주겠습니다.)
# 3.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칼럼입니다. 제가 보는 인물상을 논하는 것이지 하나의 의견 피력하는 글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두겠습니다.
장료의 삼국지 기행
<1>
"꺾이지 않는 신념의 영웅, 유비"
중국 삼국시대에는 중국역사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개성적인 인물들이 많이 선보였다. 허허실실의 명수 "사마의". 견실한 용병과 고금의 명 재상이라고 찬사받는 제갈량, 그리고 여포, 장비, 조운과 같은 장수들까지, 다양한 개성과 인간관계가 엮어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몸을 바쳐 싸운 군주들 또한 하나같이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능률위주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조조, 수성의 대가이자 외교의 독보적인 수완을 보이는 손권, 그리고 인의의 군주이자,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지닌 인물 유비, 나는 여기서 삼국지 기행을 연재 그 첫번째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물, 유비를 가장 먼저 말하고자 한다.
#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매력
유비를 말하는데 역시 가장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은 바로 유비라는 인물의 매력이다. 유비의 기행을 천천히 살펴보자, 유비는 탁군에서의 첫 거병을 이래로 대륙에서 그가 거치지 않는 세력을 없을 정도로 많은 방랑의 세월을 보내었다. 이 때문에 배신자 라고 사람들에게 잘못알려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비가 거쳐온 곳을 보면 공통점은 하나같이 유비를 환영을 하였다는 점과 그를 높게 평가하였다는 점이다.
조조 "유비는 걸물이다. 훗날 분명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 200년 유비를 공격하면서..
유비를 평하는 말은 많다. 이미 정사를 집필한 진수가 유비를 한고조의 유방에 비견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보다 더 위로 올라가서 동승모의사건이 발각되고 나서 주저없이 나서며 내뱉는 저 조조의 말이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유비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신세였음에도 원소를 제쳐두고 주저없이 유비를 공격하는 것을 선택한 조조의 말은 당시 유비의 인물됨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쩌면 유비의 인물상 즉 매력(?)이라는 요소를 어쩌면 가장 극명하게 들어내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유비가 평원을 다스리던 시절이다. 평원의 유자평이라는 이가 유비를 섬긴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여겨 자객을 지켜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유비는 자신을 찾아온 이가 자객이라는 것을 모른체 그를 겸소한 자세로 극진히 대접하였는데 이를 본 자객이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말하고 사태의 경위를 솔직히 털어놓았다는 일화이다. 이 일화 전의 기록에도 유비의 성격은 겸손하고 말이 적고, 감정을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고 되어있다. 위의 일화아 묘하게 일치하는 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러한 자세야 말로 유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자세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자세를 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점이다. 이를 유비의 간교한 자세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나 역시 이런 말에 대해서는 부정을 가하지는 않겠다. 허나 한가지만 꼭 강조하고 싶다면 위에서 말 하였듯이 결코 유비는 자신의 이런 신념을 단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는 점 이다. 이 이후의 평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한다.
# 신념 하나로 일구어낸 기적
라이벌인 조조, 손권과 유비의 최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물론 각자의 개성적인 것도 차이점이라면 분명한 차이점이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 그들의 출발이다. 조조는 하후씨의 일가로 알다시피 조조의 윗 세대가 환관의 양자로 들어간 까닭에 나름대로 최소한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손권은 이미 손견-손책의 안정된 기반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유비는 맨 손 그 자체였다. 분명한 황가의 일족이기는 분명하나 유비의 윗 세대에서 급작스럽게 몰락하여 유비가 태어나고 그가 자란시기는 돗자리로 집안살림을 연명하는 지경의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유협의 무리외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유비로서는 당연히 그의 젋은 시절에는 방랑으로 세월이 흘러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서주를 여러사람의 추대에 의해 처음으로 자리를 잡게되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해 간교한 여포의 배신으로 끝나버렸다. 여포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비육지탄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낼 정도의 시간마저 흘러버리고 만다.
이처럼 유비는 최소한의 기반이 없이 단지 의협의 무리를 이끌고 맨손 하나로 하나의 왕조를 창조해냈으니 이보다 더한 인간드라마도 없을 것 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우리에 어떤 것을 시사할까? 그냘 생각 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한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 근대사와 경제사에 빠 질수 없는 인물, 바로 古정주영 명예회장이다. (이하 古정주영 명예회장의 명칭을 정주영으로 서술)
(왼쪽이 정주영, 오른쪽이 유비)
가장한 농가의 아들 /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난 가난한 이
아무런 자본도 없이 막 노동부터 시작한 사람 / 의협의 무리 하나로 시작한 거병
여러 굴곡이 있었으나 결로 포기하지 않음 / 생명의 위협도 있었으나 결코 신념을 굽히지 않음
대충 저 3가지로 대표적인 것을 압축하였는데 보는대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일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한 가지 대목이 완벽하게 일치하는데 바로 결코 변치않는 의지다. 유비나 정주영이나 결코 앞에 직면한 위기에 굴한적이 없다. 이는 불가능을 현실로 이루는 다른 경우에도 별 차이가 없을 것 이다. 이들은 아무리 배경이 없고 시련이 와도 자신의 신념만은 꺾이지 않는다. 유비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유비의 이러한 자세는 우리가 반드시 교훈삼을 만한 미덕이다.
# 낮은 곳에서의 출발과 성공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유비가 맨손으로 이루어낸 성공의 결과는 유비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활도 하였다고 본다. 판타지 소설을 보자, 가장 고전적인 서술의 형태가 어떤 것인가? 평범한 청년이 지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게 되면서 성장하고, 공주와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바로 이러한 줄거리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성이다. 유비는 이와같이 삼국의 군주중에서 유일하게 이러한 노선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똑같은 하위층에서 있던 유비의 성공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전형적인 영웅담의 일치감을 느끼게 했던 요소가 아닐까? 또한 그의 유일한 밑천이다 시피 하던 유협의 무리들 또한 이러한 배경에도 한 몫하였을 것 이다. 사기의 유협열전에도 잘 말해주고 있듯 그들은 의리라는 것 하나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출신도 그렇거니와 중심세력 또한 서민과 가까운 집단이라는 것은 당시 백성들이 유비를 그토록 따랐던 가장 밑바탕의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 가장 이상적인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유비
진수는 유비를 이렇게 평가했다. "도량이 넓고 관후한 군자, 한고조에 비견되는 영웅, ." 이미 당시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던 한고조 유방에 비유한 것으로 이미 더이상 말할것이 없다. 하지만 진수가 유방과의 비교하는 핵심을 짚어봐야 옮을 것이다. 유비가 유방과 닮은점은 단순하게 출신적 근원과 과정만이 닮아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의 통치이념과 다스리는 방법까지 매우 비슷하다. 특히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주목할 만하다. 유방은 자신 스스로 말하듯이 자신의 휘하의 인재들을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게끔 토대를 만들어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유비도 또한 아낌없는 신뢰를 토대로 인재들을 아낌없이 신뢰를 주면서 재능을 발휘하게 한다. 그리고 유방에게는 없는 또다른 장점이 있다, 바로 자신을 어김없이 낮추어 상대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유비는 언제나 상대방이 자신의 위라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맞이하는 측면이 강한데그 대표적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삼고지례가 첫 손에 꼽힐 것 이다.
당시 유비는 비록 방랑의 세월을 보냈으나 천하의 명성이 두루한 백전노장 유비가 아니던가? 반면에 형주지방에 방통과 더불어 최고의 인재로 손 꼽히는 제갈량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유비의 입장이나 중앙의 무대에서는 일면 백면서생에 불과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허나 유비는 이에 개의치 않고 그를 3번이나 찾아가는 수고로움의 끝에 제갈량을 맞이한 것 이다. 이러한 명 장면은 유비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다스리고자 (이게 비록 간교한 속셈이라고 해도..)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또한 유방에게 있는 노회함이 없다는 측면도 역시 이같은 배경에 플러스가 되는 분명한 요소일 것 이다. (하지만 유방가진 노회함이 없기에 그가 많은 것을 손해봤다는 견해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짐나 나는 이 점에 있어서 만큼은 유비는 유방을 앞서간다고 단언하고 싶다.
# 끝없는 분투의 노력가, 유비
유비의 인생은 말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이곳에서 죽어간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쪽의 비호를 받으며 살아나고 평생을 유랑의 끝에 제갈량을 만나게 되고 적벽대전 이후 극적으로 도약하는 과정, 그리고 이릉전투후의 그의 운명적인 죽음까지,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를 보는 만큼이나 사람들에 많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의 실질적인 후계자 제갈량 마저, 최후에는 진중에서 죽는 비장함을 엿보인다.) 그 만큼 유비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인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바보라고 생각될 그의 행동마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비록 많은 곡절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신념을 꺾지 않는 그의 의지에 찬사를 보내며 이글을 마칠까한다.
2004년 8월 4일 수요일 새벽 1:05:46 - 장료의 삼국지 기행 <1> 집필완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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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小喬 작성시간 04.08.04 이건 만약의 경우이지만, 어쩌면 유비는 사람들에게서 인력과 신망을 얻기 위해 '한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입질로 삼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저의 지나친 망상 중 하나일 뿐이지만요 ^^;; (증거로 내세울만한 건 하나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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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諸葛武侯 작성시간 04.08.04 잘 봤습니다. 간만입니다 장료님 ^^ 아 그런데 퍼가는 거 방지하려면 복사방지탭을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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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인 작성시간 04.08.07 똑같은 하위층에서 있던 유비의 성공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전형적인 영웅담의 일치감을 느끼게 했던 요소가 아닐까? <- 좋은 말이네요. 정말 유비라는 인물의 성공은 인간드라마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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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맹덕 작성시간 04.08.25 유비가 덕을 소유했다는것은 인정합니다만 군주로서의 자질은 조조가 뛰어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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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09.03 군주로서의 자질이라, 조조,손권,유비 하나같이 다른 개성을 소유하고 있지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군주의 자질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어떠한 군주의 형태를 선호하게 됨에 따라 갈릴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