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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난 허접 장수가 아니다..나도 맹장으로 인정해 줘라.

작성자서량의 금마초|작성시간04.04.08|조회수351 목록 댓글 7
난 허접 장수가 아니다..나도 맹장으로 인정해 줘라.

(* 전적으로 연의 기반으로 씌여진 글입니다.)


1. 인중 여포 마중 적토.

삼국지에는 수 많은 무장들이 등장하여 저마다 자신들의 무용을 뽑냈다. 그 수 많은 무장 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비장(飛將)"이라 불리는 여포일 것이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근왕군이 호로관에 모여 들었을때 당시 호로관의 수비대장이었던 여포를 상대로 무용이 둘째 가라면 서러운 관우,장비가 제각기 청룡도와 사모를 번뜩이며 달려 들었지만, 여포는 당황하거나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복양전투에서는 조조는 여포의 무용이 대단함을 알고 당시 자신의 휘하에서 가장 뛰어난 "육원맹장" 전위,허저,하후돈,하후연,이전,악진 등 여섯장수를 동시에 투입시켰다. 조조의 여섯장수는 그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장수들이다. 그러나 한명을 상대로 여섯이서 협공하였으나, 생포하기는 커녕 털끝 하나도 건들이지 못했다.

호로관,복양전투에서 여포는 비록 패하긴 했지만 일대일의 정당한 대결이 아닌 일대 다수의 불리한 싸움을 했다. 그럼에도 상대 장수들을 농락하면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그것도 삼국지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맹장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게 일반 장수들로는 감히 상상이나 될법한 일인가...아니, 일류라고 손꼽히는 장수들도 상당히 버거울 것이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여포가 싸움에 있어서 어떤 인물인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인중 여포 마중 적토" 란 말이 과연 헛말이 아니었다.


2. 공융의 부장 무안국.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여포의 무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런 엄청난 괴물같은 여포를 상대로 어느 이름없는 장수가 당당히 겨루고도 목숨을 건졌다면? 혹시 공용의 부장 무안국을 아는가? 어느 정도 삼국지에 정통하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무안국의 데뷔 무대는 공교롭게도 여포가 자신의 무예를 한껏 뽐내던 호로관 전투에서 여포와의 대결이였다. 여포가 관(關)에 의지하여 근왕군의 진격을 저지하자, 각 제후들의 상장(上將)들이 여포를 맞아 싸웠다.

하내태수 왕광의 부장 방열, 상당태수 장양의 부장 목순이 덤벼 들었지만 연달아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이어서 출전한 장수가 바로 북해상 공융의 부장 무안국이다. 그는 철퇴를 잘 쓰는 장수였다. 철퇴를 휘두르며 적토를 타고 방천화극으로 대적하는 여포와 어우러져 아슬아슬 하기는 했지만 무려 10여합을 견뎌내었다. 그러나 후에 여포의 일격으로 왼손이 절단이 되었고 그 길로 철퇴를 버리고 달아나 목숨을 건졌다.

위 내용만 보면 "뭐~~ 그냥 3류장수네."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안국이 상대한 장수가 누구인가? 바로 신장(神將) 여포다. 삼국지에서 유일하게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절대 강자였다. 이런 여포를 상대로 이름 없는 장수가 10여합을 당당히 겨루었다는게 사실상 불가사의나 다름없다. 더욱이 10여합을 겨루고도 목숨을 건졌다는 자체는 더욱 더 기적이라고 밖에 말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이다.

삼국지에서 여포와 대적해서 십여합을 당당히 겨루고도 목숨을 건진 장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무명장수로서 말이다. 무안국이 물러난 후에 선비족이 "백마장사"라 부르며 두려워 떨던 공손찬 조차 여포를 상대로 몇합을 견뎌내지 못하고 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을 쳤다. 북방의 효웅 백마장사 공손찬마저 저 지경인데 이름없는 무안국이 여포를 상대로 한 선전은 실로 대단한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3. 나도 맹장(猛將)이다.

동탁의 도독(都督)인 화웅은 사수관에서 손견의 부장 조무를 비롯해서 무명장수를 여럿 베었다는 이유로 맹장으로 대접 받는다. 북해의 황건 잔당의 수장(首長)인 관해는 관우와 수십합을 겨루었기 때문에 역시 싸움 좀 하는 맹장으로 인식된다. 원술의 상장(上將) 기령은 역시 관우와 30여합을 버텨낸 이력이 있어서 역시 칼 좀 쓰는 맹장으로 기억한다. 마초의 부하였다가 조조에게 귀순한 방덕 역시 관우와 막상막하로 겨루었기 때문에 맹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장수들이 무(武)에 소질이 있는가를 가늠하게 된 배경은 대부분 상대한 장수가 얼마나 뛰어나냐에 따라 비례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이들 말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많은 장수들이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하기는 하지만...

앞에 나열된 장수들은 유명 무장과 수십합씩 겨루고 난 뒤에 모두 죽었다. 하지만 대등하게 싸웠다는 이유로 맹장으로 대접한다. 그러나 신장(神將)으로 불리는 여포와 10여합을 겨루고도 살아난 무안국은 어떤가? 여전히 3류 엑스트라 무장일 뿐이다. 누가 진흙속에 감춰진 무안국의 무용을 알아주는가...

이쯤되면 무안국도 일류는 못되라도 힘 좀 쓰는 맹장이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무안국은 한칼에 나가 떨어지는 다른 3류장수들과 동급이 되기엔 억울하다. 물론 단순히 이것 하나로 무안국이 맹장이니 3류니 하는것이 어찌보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남아 있는게 내용은 그것 뿐이니 어쩌랴..다만, 그의 활약상이 호로관 전투 이후로 전무한 실정이라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4. 악조건에서의 사투.

사실 싸움이란 것이 그날의 컨디션과 주위의 조건에 따라 결과도 어느 정도 유동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기본이란 것이 있는법. 제아무리 컨디션이 나쁘다고 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있다. 더구나 당시 여포는 이미 상대할 장수가 없는 지존의 경지에 이르렀고 더우기 연합군의 여러 장수들을 베었기 때문에 컨디션과 기세는 이미 200% 이상인 상황이었다.

반면에 무안국의 경우 앞선 장수들은 모두 힘없이 죽어 나가고 사기는 바닥을 쳤으며 더 이상 나설 장수가 없었다. 제후들은 두려움에 떨며 좌불안석이었다. 대책없이 점점 무너지는 군대를 지켜보고 사태를 안정시키고자 스스로 출전한 무안국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모두 갖춘 최악의 상태에서 이미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최상의 여포를 상대로 대등하게 겨룬것은 정말 대단한게 아닌가.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여포를 맞이하여 침착하게 10여합씩이나 겨루었던걸 보면 평범한 실력을 지닌 장수로 보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더구나 당대 최강의 명마 "적토"를 탄 여포를 부상당한 몸으로 따돌리기까지 하였다.

당시 무안국의 무용으로 봐서는 여건만 허락이 되었다면 능히 수십합을 겨루었을 법도 하다. 그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 한 무안국의 용기와 무용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덧붙여 황소의 부하인 하만도 대단한 놈이다. 조홍과 대결에서 대등하게 겨루고도 진것은 머리가 둔해빠져서지 실력이 한 수 아래이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힘만 쓰는 시골놈이 병법이니 검법이니 하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당연히 타도배감에 속아넘어 갈 수 밖에..(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속담의 전형적인 모범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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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동윤 | 작성시간 04.04.10 여포가 봐준게 아닐까요. 그리고 무안국이 팔한쪽이 짤려나가 도망갔는데. 여포가 안쫗아 게 아닐까요? 왜 쫗아갑니까.. 그럼 '백마장사' 라 불리는 공손찬은 왜 안쫗아갔죠..?
  • 작성자제갈상 | 작성시간 04.04.16 그럼 앞에 방열, 목순은 뭡니까? 그들은 몇 합 되지 않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 작성자옥황상제 | 작성시간 04.05.10 좀 봐줬을수도 있었겠죠. 첨에 장비를 만났을때도 졸병이라 그냥 무시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사기가 떨어지는건 병사들의 처지지 무안국은 공을 세우려는 생각에 보이는게 없었을겁니다. 팔이 잘리자 무기를 떨구고 도망가는 무안국을 여포는 쫓아가 죽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던것 같은데요;
  • 작성자공손찬 | 작성시간 04.05.16 누가 아니랍니까....무안국도 쎄긴 셉니다.
  • 작성자공손찬 | 작성시간 04.05.16 그렇다면,형도영,능조도 맹장해야하고,특히 미방은 진짜 억울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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