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나의 속알머리가 빠진 이유~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7.14|조회수521 목록 댓글 6

오래 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나더러 머리칼이 빠진다는 말.

 

누구나 싫어하는 말이 있겠지만,

머리가 희어진다, 머리가 빠진다, 나이가 들어보인다. 늙었다, 등...

 

여자들은 그런 고민이 없을 지 모르나

머리를 감고나면 세면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진 나의 분신들...

주워다가 논에 모심듯, 꼭꼭 심었으면 좋으련만,

한번 빠진 머리카락은 이미 엎질러진 라면발이다.

 

그렇잖아도 점점 엷어져 가는 머리숱을 바라보면

세상에 왜 거울이란게 생겨서 사람의 마음을 상심시키는지...

그래도 거울을 보면 인춘이 형이 나를 때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머리칼을 바라보면 맥이 빠진다.

그래도 인춘이 형을 이길 수는 없다고...

 

알고보면 내머리에 머리칼이 적은 것은 내탓은 아니다.

조금 전에 내옆에서 잠자다가 지멋대로 뒹굴어 나가

새우잠을 자는 마눌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욕하겠지?

'저인간은 지 마눌하고 무슨 웬수가 졌길래

허구헌날 마눌 욕하고 원망하고 헐뜯는 말을 하냐'고...

 

이왕 뜯어먹는 말 하는 김에 뼈에붙은 잔챙이 살점까지 뜯어먹을란다.

 

왠만하면 이런말 안하고 그간 나랑 같이 살아준 의리를 생각해

참고 넘어갈려고 그랬는데 거울만 보면 열받는 사연이 있다.

 

아마 이글을 읽고나면 사람들이 또 커피를 내뿜고 뒤집어 질지

혹은 쪼잔한 잔챙이가 지마눌 욕하고 앉았다며 나를 손가락질 할 지

모를 일이지만, 거울만 보면 열이 뻗쳐올라서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나더러 도대체 무슨놈의 인생이 사연도 많고 사건도 많고

시비거리도 많고 쓸거리가 많냐고 하는데 사는게 전부 사건이 아니던가?

 

때는 꺼꾸로 거슬러거슬러 올라가 11년 전의 일이다.

 

드디어 군둥내 나는 총각의 딱지를 떼고

남들 어차피 다하는 결혼도 하고 남들 다하는 아기도 낳고 살기는 하지만,

큰아이 낳던 때는 그야말로 무덤 속에 들어가

백골이 진토되어도 잊지못할 일이다.

 

집사람이 첫애를 가지고선 병원에 몇번 초음파검사하러 다니는데

의사가 늘 하는 말이 몸이 약해서 자연분만이 어렵고 제왕절개를 해야한다며

빈혈이 있고 체력이 약하고 어쩌구저쩌구 왈가왈부설왕설래를 해댄다.

 

병원에만 갔다오면 의사의 반 공갈, 반협박에 징징거리며 울어대는 마눌을 보며

애낳을 데가 병원밖에 없냐며 큰소리를 치다가 집에서 낳지, 머 했다.

집에서 낳는 거야 예전에 시골에서 산부인과도 없고 산후조리원도 없고

조산원도 없던 시절에나 가능했지, 때는 바야흐로 1999년도인데...

 

해서 조산원에서 낳기로 하고 출산일만을 기다렸다.

이글을 읽는 엄마들이야 유경험들이시니 진통이 어떻고 줄산증후가 저떻고는

생략하고 출산과정을 말하련다.

 

하여간 아내에게 예정날짜에 진통이 오기에 모시고 조사원에 갔다.

조산원이란게 무슨 병원이 아니고 산후조리원도 아니고

그냥 일반 주택에 의료도구 몇개 갖춘게 전부인게 별거 없지만,

아기만 낳으면 됐지 머...

 

아내는 분만실에 있고 나는 밖에 있고 장모님도 와계셔서

정말 아내는 천군만마(千軍萬馬)의 지원군이 있던 것이다.

장모님도, 나도 분만실 밖에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아내의 진통소리가 들린다.

 

그때까지 들어온 말이

아내가 출산을 할 때 남자가 밖에 나가 술을 마시거나 딴 짓을 하거나 하면

아내가 평생 한을 품고 산다나 뭐라나 하기에 그러지는 못하고

밖에서 아내의 출산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용기를 주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내의 진통소리가 더욱 커지고 나오라는 애는 안나오고

(이것이 안나올려고 버티는 건지, 확!)

하기에 아무래도 내가 옆에서 힘을 주어야겠다 싶어 조산원원장에게

안에 들어가 아내거들어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되고말고~~

하기에 침대에 누운 아내의 양손을 꼭잡고

출산을 하느라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그랬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사실 나는 중학교 시절에 응원도 하고 응원단장도 한 경력이 있어서

아내가 힘을 내고 출산을 하도록 용기를 주는 거야  식은죽먹기였다.

 

나의 손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던 아내는 더욱더 힘을 냈고

드디어 아이가 나오려던 참이었다. 정말 그랬다.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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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내가 솥뚜껑같은 손으로 내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야!!! 이샥히야!!!!!"라는 것이다.

 

나는 깜짝놀라,

"어어어어어???????  이거 왜이래???????

이거놔!!!! 머리카락 빠진단 말야!!!!!"

소리질렀다.

 

아내는 더욱 소릴 높힌다.

"야!!! 이샥히야! 내가 너땜에 죽을 고생한단 말야, 나쁜놈아!!!"

 

"내가 뭘!!! 언제 고생시켰다고 그래!!"

 

"내가 애낳기 싫다는 데 니가 임신시켰잖아!!!!! 도둑놈아!"

그러면서 더욱 내머리칼을 억세게 움켜쥐곤 잡아당긴다.

 

"그래두 그렇지 머리카락 빠지게 잡아당기면 어떡해!!

대머리되면 어떡할려구!!!" 

 

옆에 계시던 장모님도 화들짝 놀라시며,

"애! 니 신랑 머리카락 빠지면 어떡하라고 머리를 잡아당기니!

니신랑 대머리되겠다.  빨리 두손놔!"

 

장모님도 아내의 손을 뿌리치려 잡았지만,

그힘이 보통힘인가?

 

나도 할 수 없이 아내에게 임신을 시켜 미안하다며

다시는 안그런다며 정말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라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랬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힘내라힘!"하며 외치다가

갑자기 아내는 내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분하다며 소리지르고

나는 졸지에 당한 일에 얼굴을 침대바닥에 처박고 머리칼 빠진다하고

장모님은 옆에서 아내의 손을 뿌리치려하고

조산원장은 어떻게해야할 지 안절부절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아이가 나왔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고 앙칼맞은 지

무슨 불만이 있었던 모양으로

귀청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기운이 다했는지 침대에 누웠다.

두손에 무슨 승리의 전리품이양 내머리칼을

한웅큼 부여안고...

 

어흑~ 아까운 내머리칼, 나의 분신.

차라리 내얼굴을 쥐어패던가, 아니면 잡아뜯던가...

그렇잖아도 한올한올 빠져나가는 모습에

심장이 덜컥거리는데...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내머리칼을 잡아뜯었냐고...

그랬더니 내가 그렇게 밉더라나?

자기는 애낳느라고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나는 그런 내색도 없고 편안해보이는 얼굴이

정말 얄미웠다나?

 

그래, 맞아.  나는 나쁜놈이야.

나같은 놈은 대머리가 아니라 뺀질머리가 되어도 마땅해.

 

정말 나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조산원을 나온 날부터 아내에게 해다바쳤다.

미역국이며 밥이며 몸에 좋다는 음식을 여기저기 물어서

만들어주고 청소며 빨래며 심부름이며...

 

서너달 동안 그랬는데 그리고는 못하게 되었다.

머리칼이 움푹 빠진 것만도 억울한데

매일 해다바치는 것도 못마땅해서 대들었다.

 

그랬더니 아내왈,

"아니! 해다바치는게 그렇게 대단해?

나는 애도 낳았잖아.  그건 대단하지 않아?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를!"

 

딴은 그렇기도 하고 말해봐야 질 거같고 해서

그후로는 시키는대로 하고 왠만하면 속도 안썩힐려고

노력은 한다.

종종 혼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한번빠진 머리카락은 안나는 법인데

왜 남의 멀쩡한 머리칼은 잡아뜯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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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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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높은음자리표 | 작성시간 09.07.14 그때의 아내 맘 이해가 갑니다.일은 같이 저질러 놓고 왜 혼자만 고통을 당해야 되는지.. 저도 남편이 만약에 옆에 있었으면 머리털 확~ 다 뽑아 버렸을지도 몰라요.
  • 답댓글 작성자깜짝이 | 작성시간 09.07.14 ㅋㅋ 넘 재밌습니다, 모두들,,,
  • 작성자상근이네민박 | 작성시간 09.07.14 ㅠ.ㅠ; 그래도 부인들의 고생은,... 우리마눌 애낳을때 보니,....둘째때는 그냥 째고 낳았습니다.(첫째때 고생하는것 보니 너무 맘아파서,...-_-;) 그리고난후에 후회를 ,...산후 회복기간이 너무 길어요-_-;
  • 작성자건방진프로필 | 작성시간 09.07.14 저도 정말 자연분만을 목표로 애쓰다 이놈이 나올 생각을 안해서,,,결국 마눌 수술실에 들여 보내고,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란 걸 해 봤습니다...애 울음 소리가 들릴때까지 정말 몇 년이 지나간 것 같더라구요...가장 안 좋은 점은 애기의 세상 첫 울음소리를 남편 혼자 들을 수 밖에 없는 거겠죠.
  • 작성자용기각시 | 작성시간 09.07.15 전 애 둘 낳을 때 비명도 안 질렀는데(전 좀 지른 것 같은데 분만과정을 같이 한 울 신랑이 안 질렀다네요...ㅋㅋ) 그래서 애기 아빠 머리카락은 잡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요새 슬슬 신호가 오네요. 정수리 부분이 살살 비어가는 것이..... 시골버스님! 머리 빠지는 건 머리 뽑힌 후유증이라기 보단 유전입니다......애궂은 아내 탓하지 마세요....출산이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일이라곤 하지만 정말 힘들어요...... 이 글 보고 아내 분이 속상하실까봐 걱정되요...(괜한 걱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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