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누님댁에서 지샌 바퀴벌레와의 전쟁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08.22|조회수639 목록 댓글 5

저는 형제가 많습니다.  무려 6형제~

어려서는 동네방네 날렸죠.  이름하여, 6형제파.

푸헐!  *^^*!

 

예를 들어 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얻어터지고 들왔다.

그랬다간 동네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다가 7형제파나 8형제파랑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으휴~ 우리 어른들은 먹을 것도 별로 없었을텐데

어찌들 아이는 쑥쑥 잘들 낳는지...)

 

쪽수로는 당근 우리가 밀립니다.  덩치도 딸리지만요...

저는 본래 뒤로 몰래 들어가서 몽댕이로 뒤통수가 깨지라고

후려치고 도망가는게 특기였습니다만,

 

하여간 그럴 때마다 누님이 나서서 7형제파, 8형제파들에게

일갈대성 질러댑니다. 그것도 삿대질을 하면서...

그러면 7형제파나, 8형제파들은 머쓱해 하며 입을 삐죽거리곤

돌아갑니다.  그랬던 누님입니다.

이른바 6형제파의 공주~

 

여하튼 남자들이란 동서고금을 통해서 미인에게 약하긴~

 

그간의 일들은 생략하고...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누님댁에 하룻밤 잤습니다.

하룻밤이길 다행이지 이틀밤이었으면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일인데 바퀴벌레들에게

잡혀 바퀴벌레 왕국 동물원에 갇혔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나이들어 혼자살게된 누님은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그럴싸한 아파트에 살면

누이좋고 동생좋고 얼마나 바람직하겠습니까?

혼자사는 년이 좋은데 살면 돈밖에 더 깨지냐며

내일모레 재개발이 시급한 8평짜리 아파트,

그것도 서민아파트가 아니라 빈민아파트에 사십니다.

 

요즘 서울 아니, 한국의 날씨는 얼마나 덥습니까?

두말하면 잔소리고 세말하면 북조선 선전원이죠.

 

지방에서 서울오던 날

저와 몸이 부실해서 비트적거리는 아내,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중국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이렇게 4명이서 피난민보따리같은 이고지고메고들고 하면서

서울엘 올라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누님에게 전활 드렸습니다.

강남터미날로 갈거니까 마중나와달라고...

누님이 그럽니다. 총맞았냐? 거기가 어디라고?

정말 이건 누님도 아닙니다.  올만에 만난 동생에게 무슨 망발을??

저더러 알아서 오랍니다.

 

그날 저는 강남터미날에 도착했고

누님댁은 송파구 **동 하고도 빈민촌 같더군요.

그런데 저희들이 들고올라온 짐이 장난이 아닙니다.

 

디오스냉장고 크기의 가방 한 개.(32키로그램)

디오스 냉장고 절반크기의 가방 두 개.(각기 27킬로그램)

등산용 배낭 한 개.(23킬로그램)

등짐(일명 backpack)가방 3개(각기 15킬로그램)

도합 일곱개인데 전부 터져나갈 듯이 짐이 꽉꽉 찼습니다.

 

저는 등산용배낭을 메고 디오스크기의 가방과

디오스 냉장고 절반크기 가방을 끌고

아내는 디오스냉장고절반크기의 가방을 끌고

아들은 등짐가방메고 디오스절반크기 가방을 끌고

딸은 등짐가방하나 끌고

강남터미날에서 지하철을 타고 역을 갈아탈 때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곳에서는 배낭메고 등반하는 심정으로

계단 위아래를 번쩍 가방을 들어나르고~

 

그렇게 해서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탔습니다.

덕택에 K1격투기 시합에 나가도 될 만큼의 체력이 튼튼해졌습니다.

아들은 어린몸에 무거운 가방메고 끌고 하느라 며칠동안

어깨가 아파 끙끙앓고~

 

머~ 그런 건 다 괜찮습니다.  운동삼아 하는 극기훈련도 있으니까...

 

누님댁에서의 하룻밤.

정말 극기훈련의 극치이자 최악이자 극악지경이었습니다.

 

8평짜리 아파트.

꼴랑 주방겸 방 하나, 어린아이 몸땡이하나 들어갈 화장실.

끝.

 

그런 곳에 7개의 짐덩어리와 5명이 틀어박혀지냈습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말이 나왔으니 거국적으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찜통이었습니다.

경남 진준가 울산인가가 38도가 넘고

서울은 머? 34.5도?????

그야말로 "으악!!" 그자체였습니다.

그런데도 누님댁엔 선풍기도 없습니다.

누님왈,

"시골뻐스야~ 혼자사는 집에 선풍기가 필요있간?"

부채하나면 완전 신선이지. 밤엔 얼마나 시원한데~"

 

우린 정말 거품물고 뒤집어졌습니다.

부채하나로 5명이 더위를 이기라니...

그래도 어쩝니까? 제가 선풍기노릇을 했습니다. ㅠㅠ

 

그리고 말입니다.

하도 더워서 저랑 집사람, 아이들 모두 최소한 가릴 곳만 남겨두고

홀라당 발라당 벗었습니다.

다행히 방충망이 되어있고 나무로 가려져서 밖이 전혀 안보이더만요.

밖에서 혹시 안이 보인들  상관있겠어요? 우리만 밖이 안보이면 되죠, 모...

 

머~ 그것까지도 이해하고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극한상황을 살지도 모르니 한번 견뎌보는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대여섯마리의 새끼손가락 굵기의

벌레가 천장을 기어다닙니다. 

처음에는 귀뚜라미가 기어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집사람이 기겁을 하며 바퀴벌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천장을 기어다니느라 기운이 빠진놈이 방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우리가족 모두는 기겁을 하며 벌벌 떠는데 

누님은 "지저분하게 어딜 떨어져~"하며 아무생각없이

휴지로 바퀴벌레를 짓이기더니 툭하고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제가 어케 이런 데서 사느냐고 하자,

누님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럽니다.

"니놈이 배가 부르구나, 응?  옛날 이보다 더한 데도 살았던 기억안나?"

이럽니다.

 

그날밤, 그렇게 지냈습니다.

아이들이 덥다고 하니 제가 선풍기가 되고

벽이며 천장이며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에

아이들이 기겁을 할까봐 일일이 잡아 없애고~~

 

해서 평생에 그렇게 무섭고 지루하고 기나긴 밤을

지새워본 적이 없습니다.

누님은 참, 편하게 잠도 잘 잡니다.

 

어릴 적 반경 48킬로 이내에서는

감히 상대할 미인이 없을 만큼 

예쁘고 깜찍하고 귀여웠던 누님이

바퀴벌레에 눈하나 깜빡이지 않는

무감각 무덤덤아줌마로 변신한 까닭이 무엇일까?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지 그렇게 예쁘던 누님이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살 생기는 것이

몹시 안타깝고 속상하고 마음이 아플따름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지샌 다음날,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고 중국으로 돌아간다며

인사를 하자 누님이 언제 준비했는 지 흰봉투를 줍니다.

가다가 아이들 맛있는 거 사주고 필요한 거 사라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님의 눈에맻힌 이슬을 보고

가슴이 또 쓰렸습니다.

저한테는 가장 잔소리를 많이해서

별명을 "잔소리"로 붙인 누님인데

저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누님...

 

그깢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방에서

하룻밤 지샌들,

사랑하는 누님과 지내는 것이 대수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열흘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에게나 나에게나

조금은 기억에 남을 일이 있었습니다.

재미있었지만,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그러나 가족의 사랑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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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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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yunee | 작성시간 09.08.22 중국에 나와서 살면서 늘 한국의 부모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재미있게 글 보다가 마지막에 누님의 흰머리, 주름살 내용을 읽으면서 제 눈에 눈물 맺히게 하는군요. 늘 건승하세요~
  • 작성자화차이 | 작성시간 09.08.22 은행잎을 따다가 장농밑이나 싱크대밑등에 넣어두면 바퀴벌레 없어졌었던....옛날 기억이 있네요...^^
  • 작성자높은음자리표 | 작성시간 09.08.23 동생 나이가 40이 되었건만 제 눈엔 아직도 어설퍼 보이고 맘이 안놓이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누나야"하고 질기게도 나를 따라다니던 껌딱지..동네 형아들 한테 한대 터지고 들어오는 날이면 날카로운 두 손톱을 세우고 어김없이 응징하러 갔던 나.." 내 동생 건드리면 다죽는다".. ㅎㅎ 그게 형재애 겠지요. 형제자매가 있는 우리 세대는 그래도 행복 합니다.
  • 작성자작은기다림 | 작성시간 09.08.29 형제 자매지간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죠.... 나이가 들어도 그들 사이에서는 말투도 안변합니다. ^^;
  • 작성자TWINS | 작성시간 09.09.02 님의 글을 잃고 처음 댓글을 남깁니다. 가슴이 애잔해 집니다. 댁네 두루 항상 건강하시길,,,,, 좋은 글 잘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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