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지났습니다. 주중에 성탄 대축일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 놓여 있어서 레지오도 미사로 대신하고 합동으로 하여 몇 주 쉬셨지요. 저도 덩달아 몇 주 레지오 훈화를 쉬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강론 준비하고 전례 챙기느라 몸이 좀 힘들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다 마치고 나니 그만 감기가 왔습니다.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어제 주일에는 팔다리가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프다 못해 눈알까지 다 아팠습니다. 어제오늘 좀 쉬고 나니 몸이 한결 낫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무슨 불안증과 불면증처럼 안정되질 않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정세에 어떤 분들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하시기도 합니다. 정신 쇠약 같은 증세를 아마 온 시민이 다 겪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빨리 안정과 평온을 찾아,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평안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묵주를 들고 신천 강변을 걷습니다. 보통은 실리안 아파트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가는데 15분, 오는데 15분이 걸립니다. 빛의 신비 5단과 그날의 신비 5단을 바치면 무난하게 되돌아옵니다. 걷다 보면 묵주 들고 걷는 분들을 종종 스치며 만나는데 우리 본당 교우들도 있고 처음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창성당 교우인가? 봉덕성당 교우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우리 동네에 살면서 다른 본당 다니는 분들이기도 하겠지요.
어쨌든 산책 갈 때 입는 츄리링 오른쪽 주머니에는 묵주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양복바지에도 다른 묵주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묵주입니다. 어머니가 땅에 묻힐 때는 제가 쓰던 묵주를 넣어 드렸습니다. 츄리링 바지 주머니에는 제 손때가 묻어 있는 묵주가 들어 있고 양복바지 주머니에는 어머니 손때와 제 손때가 같이 묻어 있는 묵주가 들어 있습니다. 묵주의 맛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쁘고 앙증맞은 악세사리 같은 것이 아니라 손때가 잔뜩 묻어 기름칠한 듯이 윤기가 흐르고 닳은 묵주 말이지요. 가끔 어딜 다녀오시면서 성물을 한 아름 선물로 사 들고 오시는 분들도 있으시고 선물하려고 묵주를 만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되지만 묵주가 흘러넘쳐서 서랍장이나 책장 안에 가득 쌓여 있는 그것은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고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고양시키는 것들이 성물입니다. 성물은 악세사리가 될 수 없고 부적처럼 성물이 우리를 해치는 어떤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미신적이지요. 성물이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은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손때 잔뜩 묻은 그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묵주처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방을 지켜보신 십자고상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성물보다 오래된 성물이 더 아름답고 귀하고 소중하게 보입니다.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매일 매만지며 기도하고 매일 쳐다보며 묵상하고 하느님께 한 걸음씩 나아가는 매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아주 매서워진다고 합니다. 겨울다운 추위가 닥치는 모양입니다. 저처럼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가만 보니까 방에 습도 조절, 잘하는 게 관건인 것 같습니다. 건조해지지 않도록 젖은 수건이라고 걸어 놓고 주무시지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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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종식타대오 작성시간 25.01.07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집에 묵주가 여러 개 서랍에 있는데 뜨끔 합니다 묵주가 많아 질수록 더 짐이 되는거 같습니다 새로운 묵주를 사고 받기 보다 있는 묵주를 마르고 닳도록 기도 하면서 사용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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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마리나 작성시간 25.01.07 본당신부님의 빠른 쾌차를 빕니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무묵주,기도의 흔적이 묻어나는 닳고 빤질빤질한 나무묵주가 최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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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합 작성시간 25.01.07 저번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팔찌묵주를 여러개
만들어서 신부님께 축성해 달라는 저에게 조금 나무라셨지요.
그래서 "그만 좀 만들어요" 라고 해서 이제는 팔찌 묵주 5단짜리 안만듭니다.
내게도 수고 스럽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내 마음이즐거워야 한다고 합디따
지송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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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홍보위원회(김미카엘라) 작성시간 25.01.12 어머님이 기도하시던 묵주로 매일 기도를 하시니
늘 함께 사시는 거나 마찬가지네요..신부님..
제게는 돌아가신 지 10년이 훌쩍 넘으신 분의 기도하시던 묵주와 아끼시던 묵주가 있는데,,
그 묵주를 만지작거릴 땐..본당에서 사제의 어머니로 교우들에게 늘 조용히 기쁨과 위로를 전하시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를 떠 올리며 그분의 온유를 닮게 해 달라고 청하게 되는 걸 보면,
신앙인이 신앙인에게 남겨 주는 묵주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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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선희 작성시간 25.04.01 어머님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납니다 그애틋한 마음 하늘나라에서도 다지켜보고 있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