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왕梁惠王 상
1.1 이익보다는 인의仁義가 먼저
맹자가 양(梁*註1)나라 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梁惠王章句上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만약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아래 있는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선비[士]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다투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만승(萬乘*註2)의 부유함을 지닌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부유함을 지닌 가문에서 나오게 마련이고, 천승의 부유함을 지닌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부유함을 지닌 가문에서 나오게 마련입니다. 임금이 지닌 만승의 부유함 중에서 천승의 부유함을 봉록으로 받거나 임금이 지닌 천승의 부유함 중에서 백승의 부유함을 봉록으로 받았다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만약 의리를 뒤로 돌리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더 많은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王曰何以利吾國 大夫曰何以利吾家 士庶人曰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 而國 危矣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 不饜
“사람됨이 어진데도 자기의 어버이를 버리거나, 의로운데도 자기의 임금을 경시하는 자는 없습니다.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니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옮긴이 박경환의 해설*
『맹자』 전편을 일관하는 인의仁義 중시의 사상이 잘 드러난 구절이자 맹자 사상의 강령을 제시한 부분이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혈연적 결속력에 기초한 종법적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분열성이 심화되던 시대다. 정치의 구심점인 천자의 힘이 약화되어 권력의 원심분리 작용이 가속되는 상태에서 패자覇者의 지위에 이르는
빠른 길은 부국강병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부국강병의 추구라는 현실적 수요에 부응해 독자적인 방안을 가진 여러 이론가들이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구매해
줄 제후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맹자는 그들 중에서도 정치가이자 이론가로서 두드러진 명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공자 이래 유학이 지향하는 정치의 요체는 도덕적 사회를 목표로 하는 어진 정치 혹은 덕치德治이다. 그것은
곧 통치자가 도덕적 인격을 갖추고 모범이 되어서 백성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맹자 역시 이러한 유학적
입장에서 당시에 풍미한 이익 추구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모든 제후들이 한 결같이
관심을 둔 것은 부국강병이라는 목표와 그것에 도움이 되는 현실적 이익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관되게
이익보다는 인의라는 도덕원칙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워야 함을 강조한 맹자에게 돌아온
반응은 한마디로 ‘참 좋은 말씀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상론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장은
인의도덕의 이상론이 부국강병을 위한 이익의 추구가 지배하던 현실 속에서 처할 운명의 전주에 해당된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맹자의 길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왜 맹자는 당시 상황에서 인기 없는 인의仁義 중심의 유학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현실에 뛰어들어서 팔아보려고 그처럼 분투했을까?
또 당시에는 그처럼 인기 없었던 유학이 어째서 중국을 포함한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
정치와 사상에 있어서 주도적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유교문화연구소가 풀이한 글의 요지*
이 장에서 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과 의이다.
이익을 물리치고 인의를 말한 것이니, 이는 맹자의 일생 학문이고 일생 경영이므로 머리 편에서 말한 것이다.
전국戰國 때의 생민이 도탄에 들어 왕도를 실천할 사람이 나올 때가 지나고 상황이 할 만한 즈음이기 때문에
나아가 양혜왕과 제선황을 만나 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굽혀 사람을 쫓으면 다만 자신만 잃어버리고 세상을
건지기 못하기 때문에 버리고 가서 마침내 유학의 떳떳함을 지켰다. 그 학문의 순전함과 나아가고 처함에
바른 것과 일생의 인과 의의 본령을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 의의 두 글자는 이 장의
큰 뜻일 뿐 아니라 실상 『맹자』 일곱편의 강령이 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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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9.02 *註1 : 양혜왕(梁惠王)이란 양 땅의 혜왕이라는 의미이다
양 땅은 진(晉)을 삼분해서 세운 세 나라 중의 하나인 위(魏) 나라의 수도 대량(大梁), 곧 현재의 개봉(開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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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9.02 *註2 : 승(乘)은 전투용 수례[兵車]를 세는 단위이다.
고대에 한 나라가 동원 가능한 병거의 수는 곧 그 나라의 부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유향(劉向)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 따르면 전국 말기으 제후국들 간의 세력 판도는
만 대의 병거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만승지국萬乘之國]가 일곱,
천 대의 병거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천승지국千乘之國]가 다섯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