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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고구려vs로마에 대한 비판.

작성자청4대황제강희제|작성시간06.02.24|조회수1,424 목록 댓글 45
 

고구려vs로마 에 대한 비판.                                                                                            글쓴이:강희대제

 

 

 

-서론.-

 

예전에 디펜스코리아 조의선인이라는 님께서 국토의 크기로만 병력의 숫자를 환산하는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국토인 만주는 평야지역이 반의 할을 차지하고 있다고해도 나머지 반할은 산악이다거나, 사람이 많이 거주하기에는 힘든 지역도 있을것입니다.  고구려는 형태상 제국이고 지리상으로도 사람이 많이 살수있는 지역과 아닌지역이 나뉘어져 있을 지언데 그런것을 고려하지 않은체, 땅크기만 가지고 군사숫자를 예산하는것은 조금 무리한 추산이라 생각됩니다.

 

 

 

-국가 총동원력에 대해..-

 

한가지 까봅시다.  순수 로마군이고 비순수 로마군이고 가릴것이 아니라 전쟁때 총원할수 있는 병력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제국이라는 이름아래 '순수'를 논하는게 아니라. 동원가능한 비전투병력 전투병력도 구분해둬야겠죠.. 뭐역사에 가정이라는건 어이가 없는짓이지만, 일단 비교를 할려면 제대로해야겠죠.  구지 예전에 디펜스코리아 고구려대 로마 본문을 쓰신분의 순수를 가리자면. 병역 연령에 해당하는 성인남성의 인구 75만명은  본국인 로마만을 기준으로 다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속주민지역이나 그지역에 긴급동원 가능한 용병들도 한번쯤 생각해야됩니다.

 

 

역사스패셜에선 고구려가 유리하다는점을 뭐 기병의 우위와 무장의 수준으로 에서 점쳤는데, 로마군에 기병이 증강되기 시작한건, 게르만족이 쳐들어오기 시작하기도 전인 포에니 전쟁때부터 그 중요성이 심각하게 부각되어서 였습니다. 단순히 특정 나라나 무리가 쳐들어와서 기병대가 증강되거나 햇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치뤄진 수많은 전투와 전쟁속에서 그것이 중요도가 부각되고 그 규모가 성장했다고 봐야됩니다.

 

현 서양학게에서는 로마제국을 현대적인 국가개념을 이룬 국가로 보고있습니다.  그것은 그이전이나 그이후에 나타났던 국가적인 특징과는 다른 형태의 정말 현대적인 구조를 지녀서 였습니다.  이 로마군의 총병력에 대해서는 고대역사에선 드물게 최대한 현대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 5천만명이 넘는 인구에 비해 그렇게 적은 숫자의 군대를 유지한 이유는 본국의 국민 개개인의 질적으로 높은수준의 삶 추구를 위해서인것도 있지만, 좀더 세밀하거나 효과적인 컨트롤을 하기 위해서 군사의 숫자를 일정한 규모로 유지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대게 컨트롤할수 있는 병력과 소규모 부대의 지휘관등 아주 채계적으로 짜여져 있죠. 대게 그당시 로마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전투의 아주 세밀한 내용도 자잘하게 기록되어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어서, 현재 사관학교에서 쓸만한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고 있고, 실제로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나 영국의 센드허스트 같은 곳을 대표로 삼아, 선진국에서 쓰는 육군사관학교 교과서는 로마군의 전술자료를 많이 포함해두는 편입니다.  그시대 전술이 특별하다기 보다도, 그시대의 기록이 아주 세밀 때문입니다. 부대규모나 명령채계등이 아주 채괄적인데다가, 정주국인 탓에 그 기록물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고구려의 총군사 동원력은 그 명령채계나 조직 채계의 소프트 웨어가 로마군의 것보다는 좀 불안하다고 평가를 해두어야 할것입니다.



(서론이지만, 몽골군의 경우도 부대의 채계적인 짜임세와 치밀한 명령채계를 보이지만.. 너무 개개인의 우월한 능력과 적보다 빠른 기동력에 바탕을 둔 상황에서의 전술들이라 아군이 압도적인 병력수준을 가진 전투가아니라면 실제로 적용하기는 힘든편입니다.  게다가 몽골군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대부분 그들의 적군에 의해 기록된것이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전투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전혀 전무한 상태라서. 페이지 적인 비중은 그다지 높지는 않은편입니다. )

 

 

-병과-


 

역사스패셜에서 로마의 병종에 대해서 너무 간과한점도 있지만, 고구려의 병종에서도 빈약한부분이 몇부분 보이는군요. 사실, 병종의 경우 크게 분류를 했다뿐이지, 아주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고구려가 로마군의 경우보다 병종이 많다고만은 할수 없을것입니다. 지역의 다양성이나 땅의 크기..에 따라 지역별로는 용병과 상비군 또는 징병등을 통해서 지역의 치안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을 전부 일정하게 환산해서 로마군이 경기병대 경보병대, 중보병대 단 3가지의 병종만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상당한 무리가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에도 중장기병은 있었습니다.

 

카르타고와의 일전인 포에니 전쟁에서의 수많은 육전과 한니발의 기병대를 이용한 포위전술이나, 이민족의 기병대와의 전투를 위해서 로마 자체에도 기병대의 중요성이 시대가 흐를수록 점점더 강조되었고, 그규모도 커졌습니다.  그결과의 산물이 바로 사진속에 나오는 로마의 중장기병입니다.  이놈의 존재는 전체 군단에서도 희귀하고도 보기 힘든 종류였지만, 로마기병은 경기병 뿐이다라는건 개허풍이 라는것을 아주 일편적으로 말해주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이외에도 용병으로 들여오는 이집트 시리아 궁사대는 고구려의 맥궁과 같은 종류인 복합단궁을 썼고, 게르만이나 갈리아의 용병대는 방패와 도끼 외에도 규격화되지 않은 무기를 쓰는 보병대엿으며, 그숫자와 규모는  전체적인 인구가 로마에 비해 적었음에도, "갈리아전기"에 나오는 그들의 규모나 말의 숫자는 늘상 로마군을 능가하는 날이 많습니다.

가끔 이런 모의전투 혹은 전쟁 구상을 해보았을때, 이 용병에 규모나 세력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야생화된 유목민은 정조직된 정주민보다  전투력이 높을때도.. 낮을때도 있습니다..)

 

또한, 활의 성능에 대한우위가 있었는데.. 이집트의 시리아 궁대는 물쇠뿔로 만든 복합단궁을 씁니다.  그들의 규모와 규격은 후에 보조병이라도 정식으로 편제되긴 합니다. 로마는 우수한 궁사의 부재를 투창의 보편화와 공성병기의 야전활용화로 이를 보완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기병대가 등자가 없지만, 고구려 전성기라는 3~4세기에는 용병대로 들여온 훈족출신들은 등자를 쓰긴합니다만.. 그것도 아틸라 이후 이야기죠.  그런데 문제는 그 아틸라도 동서로 갈라진 로마를 전부 먹지 못했습니다.



이런수준의 보병대를 상대로 말이죠.


 

 

이사진은 훈족이 쳐들어오던 시절 서로마군단을 재현한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긴 평화기를 누린 로마군은 결국 군사력의 필요성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되어 저수준까지 이르게 된겁니다 ㅡ,.ㅡ  고구려와 가장 유사한 기병편제를 가졌던 동유럽에 진출한 기마유목민족이 저런 군단들만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해왓다면, 이건좀 문제있는겁니다.  투창필룸은, 소투창 다트로 바뀌고, 철갑은 사라졌습니다..



그 등자가 존재하고 말타고 활을 쏘는 기병대를 대량으로 포함하고 있던 훈족의 기병대가 결국 서고트에서 로마장군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저런 사진과 같은 병종에게 깨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무장상태가 좋고 규격화 되있고, 더 제대로 훈련되어있는 전성기 시절 로마병종에겐 어떨까요? 아에티우스 같은 지휘관들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던 전성기 시절 사관학교 교육의 수준이였다면 어떨까요?


 

역사스패셜에선 로마의 궁대병력이 로마에 비해 형편없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였는데, 몇가지 정정해둡시다. 크레타섬 출신 용병대는 석궁을 썼고 시리아 출신 용병대는 맥궁종류의 합성궁을 써왔습니다. 또한, 궁대병력의 부족을 보병의 투창 보편화와, 공성무기를 야전에 활용하는 포병대를 추가양산해서 그 단점을 보완했다는 겁니다. 

또한, 고구려 중장보병의 숙련도나 사회적 위치 및 군사제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으나, 숫자로 전군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그 많은 숫자가 귀족이나 전문 무사들로 구성될 수는 없었으므로  일반 백성들로 이루어진 징집병일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항시 훈련을 받고 사회적 신분도 높았던 로마 군단병보다는 전투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단 아우구스투스의 상비군 창설 이전에는 로마도 징병제였으므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음)

 

 

 

-군대의 편제.-


 

 

백인대 라든지.. 부대원수당 지휘관의 비율은  보병과 기병.. 또 궁수와 창수에 따라 틀립니다. 훗날 몽골군의 경우 십부장재를 도입해서 10명당 지휘관 하나를 뒀는데, 부대원 하나당 표준 군마와 수송용 말 총 3마리와 개 2마리 이상을 표준적으로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계산하명 대략 한명의 십부장이 50마리가 넘는 전투용 동물들을 가지고 있는 10명을 지휘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이야기는 기병과 보병, 유목민과 정주민에 따라  한명이 지휘할수있는 최소숫자는 항시 달라진다는 이야깁니다.



전반적으로 한명이 컨트롤 할수 있는 병사가 적다고해서  비판할것도 아니고, 많다고해서 문제삼을것도 아닙니다.  다 제각각 그 환경내에서는 최적화된 편제이니 말입니다. 다만, 로마의 경우는 사병의 전투 훈련 외에도 장교들의 전술훈련을 담당하는 현대적인 개념의 '사관학교' 라는것이 따로 분류되어 보편적으로 운용되왔다는 점입니다.

 

 

-전면전에서의 전술.-

 

 

흔히 네이버 네티즌은...기병대의 돌파 포위...뭐 그로인해 고구려군우위? 정도로 생각하는데,  일단 전면전술부터 말해봅시다. 중앙열이 적의 공격을 끝까지 버틸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포위고 뭐고 없습니다.  전면전은 어느쪽이 더 많은 군대를 스크럼에 유지하게 하고고 오래 버틸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병대를 이용해 포위를 한다 하더래도, 중앙열이 그 시간까지 버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입니다. 이시절 기병은 보병과의 전투 보다 추격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기병대 전력으로 돌파할만한 수준으로 떨어질려면 보병은 대열을 이탈하고 후퇴하고 있을때가 가장 적절했죠.



대표적으로 로마의 카이사르가 아프리카에서 누미디안 기병대를 단순히 중보병인 레기온으로 도배를 시켜놔서 막었던 전래도 있습니다. 물론 누미디아가 중기병은 아니였지만. 체중이 500kg에 육박하는 경마가 부딪히는 파괴력을 군율과 참호병진으로 막아냈다는데에서 엄청의의가 있습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당나라 이세민 이 고구려원정을 가던시절  당나라군대는 고구려와의 야전에서 그 수많은 개마무사 중장기병을 손쉽게 궤멸시킵니다.  더이상 예전처럼 보병대열에 돌파만 하는 기병전술은 안통한단 말입니다.  즉, 보병무장이 증강화 된 군대에게는 추격전이나 기습이 아닌이상  기병이 보병대열을 돌파한다느니 라는것은 힘들어졌다는 이야깁니다. 이시절 유럽에서는 보병 개개인간의 무장이 증강화 되었고,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이르면  보병 하나당 철갑옷과 투창 2개와 글라디우스 한자루식의 보급을 해주게 됩니다.



반면, 로마가 멸망한 중세에 이르러선 정규화된 훈련을 받은 보병대가 없고 전투의 규모가 상당히 소규모화 되었기에(이시절 전투떄 동원댄 군사숫자를 보면 로마시절에 비하면, 경악적으로 조금이죠 ㅡ,.ㅡ), 전면전에서의 기병대의 위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서 '기사' 계급이라는게 새로 생길정도였죠.  이런 일도 보병무장이 강화되고 나서부터는 결별입니다. (ex:100년전쟁)

 

뭐 예전에 역겔에서는 기병대로 가장 약한적의 군대를 요리한다는. 손자(아마도 손빈)가 왕의 경마 내기에서 우리의 상마(上馬)를 상대의 중마(中馬)와, 우리의 중마(中馬)를 상대의 하마(下馬)와, 우리의 하마(下馬)를 상대의 상마(上馬)와 겨루게 함을논하는데..

말해둡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서로 비슷한 병력상황에서는. 같은병과 끼리 붙는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아군의 최상병종으로 적군의 최하병종을 요리할수 있는것도  적군이 아군에 비해 병력수준이 낮을때 이야깁니다.  서로 비슷했을때는, 눈에는눈  이에는 이여야 합니다.   즉 기병은 기병이 상대하고 보병은 보병이 상대하고 궁수는 궁수로 상대하는것이 전면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아군기병으로 궁수와 보병을 공격하려면  적군의 기병과 기타 대기병용 장애물을 다 걷어버렸을때 가능한 이야깁니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적군기병과의 정면대결은 필수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아군보병이 적군 보병과의 대결에서 아군 기병이 열심히 싸워주도록 시간을 끌어주고 주의를 끌어줘야합니다.  

만약, 기병대의 우위가 있더래도, 중앙열에서 기병대를 후원하고 있던 보병대가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면, 더이상의 전투를 진행하지 못합니다.  최종적으로 중앙열의 보병은 지휘관을 호위하는 일선군대 이니 말입니다.  전면전은 누가 오랜시간동안 스크럼을 유지하느냐 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전투입니다.

중국의 병법서를 뒤져보드래도, 적군의 요새화된 진지를 공격하는 공성전이나, 적군과 총력적인 병력과 맞서는 전면전을 최후의 수단으로 보고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보전과 기만전에서 우위를 접하지 않은상태애서 벌이는 전면전은 양측 모두에게 무모할뿐더러, 단순히 이런 모의전투가 전면전만을 생각한다고 하면 오산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세밀하게 평가한댑시고. 모의전투를 펼쳐서는 말입니다... 솔직히 세밀하고 복잡한건 오히려 동양쪽에서 밀립니다. 서양의 전투기록은 아주 혐오스러울정도로 세밀한편입니다.1명부상 1명사망 무슨부상인지까지 다적어두는 정도죠.  서양쪽에서는 자신들이 패배한 전투라도 그 내용을 전부 기록해두고 그것을 훗날의 두고두고 보존해두고 씁니다. 오죽하니 지금까지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나 영국의 센드허스트 같은 곳을 대표로 삼아 대게의 사관학교에서는 그고대의 로마군과 그리스군의 전투방식을 고스란히 배울수 있겠습니까? (한국 육군사관학교에서도 한니발의 초승달 포위전법은 꼭배웁니다 ㅡㅡ)


역사스패셜에선, 로마문명이 과장되었답시고 지나치게 간과했다는건 평생의 오류로 남을것입니다.  어찌 다른세계의 전술을 이런식으로 펌하한다는 말입니까.   서양의 명장이 이쪽으로 넘어오면 별거아니고 동양의 명장이 이쪽으로 넘어오면 불후의 명장입니까?  역사스패셜은 양쪽 일부만의 병과에 대해서만 졸렬하게 다루었지, 그당시 전시상황이나 국가 채제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두세계 간의 차이를 모르고 감히 비교라는것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불성실 하며, 무의미합니다.

 

 

p.s 역사스패셜 실험 생각해보면 지금생각해봐도 어이가없습니다. 5m거리에서 로마방패 고구려활로 쏴맞추기.. 안학고분도에있는 개마무사와 로마경기병 비교해서 고구려가 무장강도가 더높다느니.. 불멸의이순신 이후로도 역사스패셜은 순전히 민족주의 자국가위주의 역사로 돌아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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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K]Yas | 작성시간 06.03.02 js60 님 글 4개 삭제처리되었습니다.
  • 작성자우정의 날개 | 작성시간 06.03.04 어차피 우리나라에 고대자료가 로마자료보다 많은것도 아니고 훼손 당한것도 많다보니 알수 없죠 그리고 고구려군과 로마군을 비교해도 아무도 모르죠 싸우는 방식도 다를테고 지리도 그렇고 생각하는것도 그렇고..논쟁이 될수가 없을듯 하네요.역사스페셜이 너무 민족주의로 가는건 맞네요
  • 작성자게이볼그 | 작성시간 06.03.04 그런데 폰토스는 고구려의 포쓰에 비해서 지나치게 약하지 않습니까? 폰토스가 로마가 마음먹고 대군을 일으켜 공격해도 버틸만한 국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 작성자우정의 날개 | 작성시간 06.03.05 로마도 나중에 가면 그냥 정복 하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방위선을 생각하면서 정복 전쟁을 해야한다는것을 꺠달은것 같네요 그리고 대군을 모았다고 해도 야만족도 있고 다른 쪽의 국경선도 생각해야하기떄문에 맘대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 작성자Knight Hospitalers | 작성시간 06.03.10 자료 자세히 기록하는게 어떤 우월성의 줏대가 된다면 우리나라 공무원은 세계최고수준일겁니다. 과자하나 사먹어도 공문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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