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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스크랩] [한국사]조선군의 무장이야기

작성자극동 토탈워|작성시간06.03.21|조회수1,746 목록 댓글 68

첫 순서는 활입니다

활은 기병 보병 수군 모두 사용하는 다재다능한 무기였지요

특히

"중국은 창, 일본은 도, 한국은 활"

이라 할정도로 우리 조상님들의 활제작능력이나 운용능력은 뛰어났습니다.

 

중종18년의 일본과의 해전기록에 보면

서로 활을 난사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별 피해가 없었는데

방패로 전신을 가린채 싸우던 일본은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는 웃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일본활은 위력이 떨어져 거리가 떨어져 있던 조선사수들은 맞아도 큰부상을 입지않았으나

왜군이 활을 쏘기위해 방패에 뚫린 총안구로 내다볼때마다

조선군이 그 사이로 화살을 날려 "저격"해버린 것이죠;;

역시 지금의 태극낭자들이 양궁에서 카메라 맞추기 놀이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을까요?^^*

-출처 : 중종실록

 

 


 

▲ 조선시대에는 화살에 종이화약통을 달아 이처럼 불을 붙여 쏘았습니다. 화전(火箭)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화약을 묶은 화살을 쏘는 것이지요. 사극처럼 결코 화살에 큰불이 붙어 날아가는 것이 아니랍니다. 작은 심지에 불이 붙고 공격목표까지 날아간 후 터져서 불꽃을 일으키지요. 저 화약통 안에 쇳가루를 섞어서 파편효과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활은 아주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예로부터 활을 만들고 쏘는 능력이 탁월하여 주변 나라의 칭송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조선의 경우 각궁이라 하여 무소의 뿔과 다양한 소재의 재질로 활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활을 만들어냈습니다.



 

▲ 명적(鳴鏑) 일명 우는 살이라고 불리는 화살촉입니다. 조선시대에 여진족은 명적이 울면서 날아오면 악마(귀신)가 우는 소리라 하여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편전과 짝을 이뤄 조선의 궁술을 널리 알린 화살이지요.

 

 

▲ 조선의 대표적인 활 각궁입니다. 소 힘줄과 무소의 뿔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복합궁의 형태이지요. 사진은 각궁의 부린활 모습으로 아직 시위를 올리기 전입니다. 양끝을 잡고 반대편 원으로 휘어 활 모습을 갖춘 후 쏠 수 있습니다.

 

그 중 일명 애기살이라고 불리는 편전은 그 무기 자체로도 북방의 오랑캐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였습니다. 편전은 그 길이가 짧은 것은 30센티 정도로 통아라는 살받침에 올려 놓고 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북방을 지키는 조선병사들은 편전을 쏘는 기법을 금비책으로 묶어 놓고 그 사용에 신중을 기하였습니다.

 

▲ 각궁의 중요한 재료인 소 힘줄입니다. 이 소 힘줄에 민어 부레풀을 먹이고 각궁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중 곡선부분에 겹겹이 붙여 활의 탄성을 증강시켰습니다. 각궁 하나에 들어간 소 힘줄을 모으면 화살을 백 여개를 만들 수 있었기에 부서진 활은 곧바로 분해되어 재 활용되었습니다.

▲ 수노궁(手弩弓)입니다. 활틀 위에 탄창을 올려 붙인 후 여기에 짧은 화살을 여러개 넣고 손잡이를 잡아당겨 시위가 자동으로 당겨지게 만든 일종의 기계식 활입니다.탄창에 장전되는 화살은 20발이며 발사속도는 1초에 한발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연발로 쏘기에 적합한 활입니다만 명중률과 위력은 별로였던듯합니다(심지어 사정거리가 20보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 다음은 기병의 편곤입니다

조선기병은 한때 여진기병들이 덜덜덜 할정도로 강력한 포스를 지녔었지요..

(이괄의 난 땜시 북방군이 와해되서 병자호란에선 별 포스를 못보이긴 하지만..)

흔히 탄금대전투로 인해 삽질의 대명사로 알려진 신립장군이지만 기병운용능력은 발군이라

300~500의 조선기병으로 여진기병 1만~3만을 상대하여 격파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진족은 신립얼굴만 확인되면 도망가기 바빳다죠;;

(실록에 나오는걸로 아는데 자세히 아시는분은 알려주세요^^*)

 

 


편곤과 편전으로 무장한 베이직한 조선기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 마상편곤은 제대로 타격하면 방패로 막는다해도 방패가 깨져나갈 정도의 위력이라 하더군요

-네이버 헑(giyoon0927)님 작품

 

 

 

 

 

 

 

 

 

 

 

 

 

 

 

 

 

 

 

 

 

 

 

 

 

 

 

 

 

 

 

 

 

 

 

 

 

 

 

 

 

 

 

 

 

 

 

 

 

 

 

 

 

 

 

 

 

 

 

 

 

 

 

 

 

 

 

 

 

 

 

 

 

 

 

 

 

 

 

 

 

 

 


 

▲ 조선시대 기병들이 필수로 휴대하였던 마상편곤이다. 편곤은 일종의 쇠도리깨로 말을 타고 가며 적의 머리를 공격하는 강력한 타격형 무기이다. 일반적으로 기병이 보병을 상대할 때에는 칼로 베는 것보다, 타격형 무기로 치고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진은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 최형국 단장의 마상편곤 시범이다.

 

 

그 다음은 보병의 무장및 갑주입니다

드라마에는 포졸복에 당파창(삼지창)만 들고나오는경우가 많은데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거죠

분명 기록에는 갑주장비가 확인되고있고 당파창이라는게 임진란 당시로서는 다루기 힘든 신무기에다가 생산단가가 높은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당파창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수있는 무기입니다 당연히 숙련도가 높아야 효용을 냅니다

대신 일반 창 3개 만들 분량의 철이 당파창 한자루에 들어갑니다.

일반 창의 세배값이라는거죠

누가 생각해도 평민 군역자들이 구입하기에는 돈 아깝기 그지없는 무기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방위가 스나이퍼라이플들고  병으로 입대하는 경우라 할까요?

돼지목에 구슬인 셈이죠

기록에도 나오지만 보병들의 일반적인 무장은 보통 창이나 환도였습니다

 

 

 

조선군의 대표적인 기본무장 "환도"


 

 

 

 

갑옷은 단단한 가죽흉갑을 입고 있다 하였으나 그 모습이 기록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 피찰갑을 착용해주었습니다. 투구는 원주형 투구를 생각했는데, 유럽인의 쓰던 모자와 비슷한 철모. 라는 문구를 참조하여 참주형으로 고쳐보았습니다

 -네이버 헑(giyoon0927)님이 임진란 당시 선교사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본 조선군 총통사수

 

아래는 수원화성 장용영 행사 재현할때 의 모습인데 임란당시 갑주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수와 궁수
 
 


 


조총수 , 초관
 


 


황금수은갑, 포수
(수은갑의 경우는 선조가 신립장군에게 하사한 예가 있습니다)
 


 


교련관, 좌우별장
(교련관이 든건 설마 철퇴?;;)
 


 


선전관, 병조판서

 

 

 

흔히 서양의 갑옷이나 일본갑읏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우리갑옷의 방어력을 상대적으로 우습게 보시기도 하시는데

이 사진에서 일본갑옷과 비교해보세요 저 살벌한 내부철편;;;

일본갑옷의 약점이 허리부분으로 알려져있는데 비해 우리갑옷의 허리는 완전 통허리;;덜덜;;;

겉보기에는 약할것 같아도 내부에는 저런 구조로 되어 있답니다

보통 드라마같은데에서는 갑옷은 입으나마나한 걸로 보이지만 사실 갑옷을 제대로 입는것 만으로 공격을 직격으로 맞지않는한 왠만한 허술한 공격은 거의 막아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군역자의 경우는 포군이나 북방의 정예군이 아닌한은 자신의 무장은 자신이 사야했습니다

이거야 일본이나 유럽역시 마찮가지였지요

대체로 평민들은 종이로만든 지갑이나 천으로 만든 면갑등을 입었다고 합니다만 이게 생각보다 상당한 놈들이라 지갑의 경우는 조총탄도 막아낸 사례가 있다네요(화살이나 조총탄에 효과적이었답니다)

의외인 부분은 수군이 육군보다 무장상태가 좋았다는겁니다

수군에 대한기록에 따르면 수군은 대부분 제대로된 갑주를 걸치고 싸웠는데 비해 육군은 지갑이나 면갑등의 간소화한 갑옷을 입고 싸우는 예가 많았습니다

육군은 움직일 일이 많으니 활동성을 생각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뭐 현재도 해군이 육군보다 보급이 좋은데 조선시대도 마찮가지였던 것일까요?

 

이게 바로 면갑입니다..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유물인데

무명 30장을 덧대어서 무계가 장난아니라는군요...

무명 12장만되도 총탄이 뚫지 못했다는데;;;

보통은 13겹으로 만들었답니다

 

하지만 어떤이들은 임란당시 갑주가 모자라서 실제로 포졸복(?)을 입고 싸운경우도 있다고 보고있으며 그 이유로는 조선시대 병사들의 갑주장비부족을 활이나 화기류를 지나치게(?) 중시하던 조선군인지라 갑주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병자호란때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청의 기병대를 조총부대와 궁시부대만으로 상대하다 청군에게 한번 사격하고 짓밣혀버리는 사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군적의 문란으로 이름만 올라있던 군적이라 그에 대비해 비싼 갑옷을 사는일도 드물었을거구요.

그래서 임란당시의 조선군중 실제로 드라마와 같이 포졸복을 입고 싸운경우도 있었을걸로 보입니다

 

 

이 정도 수준이 수군무장의 기본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보병이 사용한 원형 방패>

 

흔히 팽배수로 알려진 병사들이 사용하던 방패입니다

임진왜란당시 조선환도의 길이는 50~80센티밖에 되지않는 글라디우스 수준의 칼이었습니다

당연히 방패가 없으면 애로사항이 꽃피겠죠...

 

실록에는(태종 실록이었나? 아마 그럴겁니다.) 이들의 전투 방식도 묘사가 되어 있는데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으며 보조를 맞추어 전진과 후퇴를 하고 대 기병전에(아마 여진의 기병을 말하는 듯....) 탁월했다고 합니다.

 

이후 임란에서 왜군의 장도에 허벌나게 데인 이후로는 환도도 일본도만큼 길이가 길어집니다만 조선후기로 가면서 다시 짧아졌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선군이 맨손일때는 왜군과 어떻게 싸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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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박천군에 이르니, 평양에서 온 사람이 말하기를,

“어제 윤두수ㆍ김명원이 장사 4백여 인을 얻어 밤에 강을 건너 적의 병영을 돌파하여 들어가 적을 많이 죽였습니다. 다만 새벽녘에 싸움을 돋워 일진일퇴하면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적에 날이 이미 밝았고, 적의 대군이 밀려들어와서 우리 군대는 질서없이 배를 타고 건너는데 적이 추격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장사 임욱경(任旭景) ㆍ민여호(閔汝虎) 등이 대동강변에 이르러서 적 한 놈을 거꾸로 잡고 좌우로 마구 휘두르니;;;, 적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습니다. 격살한 적이 10여 명이나 되었는데, 끝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도원수는 연광정 위에서 이것을 목격하고 통탄하면서 대대적으로 밤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기재사초 하(寄齋史草下) 임진일록 2(壬辰日錄二)
선조 25년 6월 15일

 

;;;;;;대단하신 조상님들;;;;;;;ㅡㅡ;

 

출처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200&no=196631&rel_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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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초록마르스 | 작성시간 06.03.23 감사합니다. 좋은 글이에요.
  • 작성자KOGURYO_SUNBEE | 작성시간 06.03.24 째영님..근데 탄금대 전투의 검은 찰갑.. 그거 진짜입니까? 흉갑정도로만 알고잇는데.. 진짜라면 그거 정말 중요한건데요.. 아니 그도 아닐경우 부산포의 조선군이 검은 흉갑을 입었는데 탄환이 관통하지 않다면 그 또한!!
  • 답댓글 작성자쨰영 | 작성시간 06.03.24 '철갑'이었구요, 부산포 얘기였습니다.
  • 작성자청4대황제강희제 | 작성시간 06.03.24 째영// 부산포이야기 어느구절에서도 철갑은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쨰영 | 작성시간 06.03.24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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