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론자들이 매번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거북선의 기동성입니다. 거북선은 방주나 성이 아니라 <돌격선>입니다. 이 돌격선의 생명은 아시다시피 그 기동성에 있습니다. 물론 적 포화로 부터 선원들을 지켜줄 배 자체의 방어력도 중요하지만 적의 전열을 유린할 기동성이 더더욱 중요시 됩니다. 방어력을 위해 어떻한 추가장갑을 사용한다면 배의 전체 배수량에 영향을 주게 되고 이것은 직간접적으로 기동성의 저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가 누누히 말하는 것이지만 거북선이 추가장갑의 증대로 인해 기동성을 버려야 할 만큼의 방어력이 약한 배는 아닙니다. 전상용님이 주장하시듯 당시 왜군이 포락등의 무기를 사용했었으나 이것이 대량으로 전술적인 운용이 되었다 보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그 포락의 한계에 대해서는 전상용님이 더 잘아시는 듯합니다만 왜 포락을 언급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식의 위험정도는 충분히 거북선의 기동성과 높이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그나마 타당성이 있는 단지 2mm정도의 철판두께만으로 어느정도의 장갑증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도 문제입니다.
해군사관학교나 김재근 교수의 이론으로 32mm의 철판을 증가시켰다면 그것은 남천우 교수의 말대로 물위에 떠있는 관일 뿐입니다. 당시 동력원이 인력이었던 배들로 격군 100명의 거북선이 그정도의 추가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어렵습니다. 이런 것을 다 무시한다해도 애초 의문점인 '굳이 철갑을 추가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또한 복원력 문제에 있어서도 남천우 교수에 의해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점이 제기 되었고 그 에 따른 반박이 요근래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나 단순항해시 혹은 정박시의 복원력의 문제를 떠나 전투시, 결정적으로 기동포사격시의 복원력의 문제는 여전히 난점으로 남을 뿐더러 기동성의 저해라는 원초적인 문제부터 논파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측 기록을 봐도 그 어디서도 거북선이 철갑선이란 자료는 나오지 않습 니다. 후기의 귀선철개란 기록이 나오지만 이것이 곧 거북선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다음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사무담당이며 이순신의 조카인 이분의 기록입니다.
'또 전선을 만들었다. 크기는 판옥선과 같으며 상부는 목판으로 덮었는데, 판상(板上)에는 십자형 세로(細路)가 있어 사람이 위에서 걸어다닐 수 있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 곳을 꽂았다'
저는 솔직히 왜 철갑설이 나도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장중요한 거북선의 구조입니다. 신재호님의 2층반설은(신재호님의 주장하시는 2층 반설을 제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부분에 대해 신재호님의 자료나 혹은 직접 설명을 듣고싶습니다. 혹 가능하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격류에 나온 구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1934년 호레이스 H. 언더우드라는 미학자에 의해 처음 거북선이 복원된 초기구조에 영향을 받은 구조입니다.
이 구조로는 도저히 항해자체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1979년 해군사관학교에서 거북선을 복원 할때는 결국 남천우씨의 주장대로 한국식 노를 써야만 했고 이것만으론 해결되지 않아 단순 전시용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거북선의 구조자체는 이미 밑의 자료에 설명되어있듯이 상장2층구조인 일반적으로 3층구조 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자 그럼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남천우씨의 논문에도 나오듯이 <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의 스펙설명에대한 몇가지 문제점들인데 이것이 자료 그 자체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해석상의 문제인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남천우씨는 당연히 이것을 우리의 해석상의 오류라 주장하고 그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충무공전서>의 기록중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난간이란 1층바닥 측면을 둘러싸고 있는 신방을 뜻합니다. 그럼으로 언더우드를 비롯한 이하 지금까지 학자들은 이것을 1층 바닥에 포판(鋪板)이 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포판을 동사가 아닌 명사로써 오늘날의 갑판으로 인식했고 이것이 2층구조의 거북선을 만듭니다.
허나 이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라는 문구뒤에 포판 상하에 대한 설명이 다섯군데 더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포판이라 함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단지 1층바닥인 포판을 말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해석되었지만 그렇게 해석되는 것으로 이미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뒤의 기록을 이어서 보자면 처음의 포판(鋪板). 그렇니까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에서의 포판은 펼포(鋪), 늘어놀 포(鋪)에 의해 동사로써 사용된 반면 뒤의 포판(鋪板)들은 명사로 서의 포판인 깔판을 의미하며 이것은 여기서는 갑판으로 해석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명한 것이며 지금까지는 단지 이 1층포판을 바닥으로만 해석해서 그위에 존재하는 2층상장을 인식하지 못했었습니다.
이것은 남천우씨의 '유물의 재발견'에도 설명되어 있으며 아주 상세히 기재되어 있기에 다시 한번 정독해보시길 권합니다.
위의 그림과 같이 거북선은 판옥선위에 나무덮개를 올린 형태입니다. 저 형태가 아닌 신재호님이나 기타 세간의 2층구조설이라면 전투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격류에서도 나오듯이 전투시 격군과 전투인원이 같은층에 존재할 수 밖에 없기에 기동사격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것은 돌격선으로써의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상장2층구조의 3층설이라야 격군은 격군대로 2층에서 노를 젖고 3층에서 사부와 포수가 기동 성에 저해를 가하지 않고 마음놓고 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거듭말하지만 지금까지의 거북선의 복원에 대한 수많은 오해들은 잘못된 자료해석 및 초기 언더우드의 실수에 의한 영향이 크며 이것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p.s 마지막으로 이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고 싶으신분들은 남천우씨의 '유물의 재발견'을 권 해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책 외판원이 아니며 간만에 좀 글다운 글 써본다고 진지하게 글을 쓰다보니 손과 안구에 졸라게 스트레스 박힌다는 점과 야동 다받아 놓고 옮겨놓지 않은 찝집함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학교 단대 축제로 인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리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제가 그린것으로 혹 잘못이해 하실듯 하여 남천우씨의 책에 나온 그림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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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전상용 작성시간 06.09.21 흠 그러니까 일본식으로 발음하자는 것입니까??그럼 하우라쿠라고 쓴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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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크킬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9.21 또한 무장공비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복합장갑이라하여 2mm정도의 추가장갑은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해양전선의 쇠로된 구조가 해양의 환경에서 어느정도의 보수를 필요로 해야하는지는 잘아실겁니다. 쇠못과 칼정도의 도선방지용이 아닌 전체를 코팅한다는 것은 실용적이다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비록 조선측 기록어디에서도 입증되고 있지는 않지만 철갑유무에 관해선 어느정도 견해를 넓혀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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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상용 작성시간 06.09.22 신재호님은 남천우 교수의 자료를 반박하면서 3층설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왜 생돈 들여가며 말하면 왜 구키는 생돈 들여가며 철갑선을 만들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증거를 댄다는 남천우 교수는 자기 계산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것때문에 말이 안된다면서 이충무공 전서의 내용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더군요(물론 대체적으로 자기 설계와 비슷하다면서 아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그리고 이 충무공 전서의 그림을 자세히 보고 또 선조에 보고가 올라간 거북선에 대한 설명을 보면 화포를 분명히 아래층에서 쏜다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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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크킬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9.22 남천우교수가 반박했던 내용은 당시 <충무공전서>가 배의 전문가가 아닌이에게 기록되었다는 점을 들어 기록상의 오류를 지적한 것입니다. 물론 약간의 자기중심적 해석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거북선의 덮개가 충무공전서에 잘못기록되어 있는건 맞는 것 같습니다. 옮겨적는 과정에서 필요없는 글자가 들어가게된 경우가 있습니다. 한자의 특성상 단 한글자의 오필만으로도 뜻이 심하게 바뀐다는데 주의를 필요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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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상용 작성시간 06.09.22 그 用자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충무공전서의 대체적인 모양 묘사는 통제영 거북선 그림과 거의 비슷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