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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근위대 작성시간06.10.07 글쎄요 고구려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지마 고구려가 기근에 시달렸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중국기록에도 없습니다 고구려는 경제적으로 수레가 발달했다고 김용만작가가 주장했죠 그건 수레가 다닐 만큼의 도로같은 기반 인프라가 기본적으로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즉 도로가 존재했다는 말은 상업이 매우 발전했을것이란 추측이가능하죠 학계에선 고구려전성기 인구를 약 400만으로 잡고 있는데 고구려가 차지한 영토에서 나오는 곡물과 육류면 이정도 인구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을것 같은데요 물론 동천왕과 고국원왕때 관구검과 모용씨에게 수도를 공성당하고 백제에겐 왕이 전사하는 치욕도 당했죠 하지만 3세기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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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근위대 작성시간06.10.07 소수림왕에서 부터 시작된 고구려 국력강화가 결국 광개토태왕대서 결실을 맺어 남으론 백제 신라 북으론후연 거란을 정벌함으로 해서 고구려의 전성기를 맞이하죠 당시 상황을 보면 후연은 이미 멸망직전이고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 의 속국화되 광개토태왕부터 장수왕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중국은 남북조시대를 맞이하며 죽을쓰고 있던 상황 이었죠 하지만 고구려는 적극적으로 중국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지금 으로 말하면 동북아 균형자 역활을 하죠 북방민족의 강화라고 말씀하시지만 숙신같은 동쪽의 유목민은 고구려 멸망시 까지 고구려에 크게 위협이 된적이 없고 모용씨는 3세기 후반에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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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근위대 작성시간06.10.07 급속도로 멸망해가고 유연과는 거란 실 지두유 해 같은 군소 유목민이 완충지대로 있어서 크게 위협이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북방유목이 당시 중국에 들어가 왕조를 이룩한 일부세력을 제외한곤 고구려를 압박할 만큼 성장했던 세력은 그다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므로 북방민족의 압박으로 고구려가 중국진출을 하지 못했다 는건 무리가 있어보이네요 중국이 부유한땅이라고 해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중국땅을노려야 한다는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고구려에겐 고구려땅이 조상의 땅이고 자신들의 문화적역량도 충분한 상태였죠 굳이 부유하단 이유만으로 중국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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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muchin 작성시간06.10.07 풍부하기에 넓히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 큰 비약일까요. 외교적으로도 고구려가 강대국 반열에 들어간 5세기 이후 약탈과 정복은 이미 옛 일이 돼버린 정도로 정세적 균형과 미묘한 신경싸움이 동북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5세기경 장수왕이 (별것 아닌거 같은) 지두우를 정복해 유연과 분할해서 북위가 엄청난 위협을 느꼈음을 알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A국이 B국에 평화유지군 보내서 B국을 A국화 시키는 바람에 C국 외무부가 "유감이다" 라고 표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좀 아닌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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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ksmf 작성시간06.10.09 우리 한민족의 활동지역은 원래 만주와 한반도입니다. 고조선이 한아라에게 멸망하고 난뒤에 만주와 한반도에 수많은 부족이 생겨났고 그후 전쟁,흡수를 통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겼죠 고구려는 초기 만주지방의 세력과 고구려보다 앞선 백제와의 경쟁을 통해 대국이 되었습니다. 즉 중국세력보다는 한반도의 백제나 신라의 위협도 무시할수없었죠. 거란족이야 황하이북까지 내래가지 않았다고 치고 여진족때는 고려사회가 혼란할때이고,만주족은 청태종이 조선을2번이나 두들겼으니 말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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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막리지 작성시간06.10.11 영토크기가 국력을 나타내는 절대적 척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영토에 대하여 언급하자면, 고구려의 경우 직접 통치하는 영역과 간접통치 영역, 세력권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영토는 직접통치하는 지역으로 한정하여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에 기타 본문에서 언급한 국가들의 경우는 두리뭉실하게 유목민이 분포하던 모든 지역을 아무런 의문없이 인정합니다. 물론 어차피 그들은 유목민이고 유목민의 특성을 고려할 때 꼭 틀렸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단순비교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옳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