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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질문]묵가사상의 소멸원인?

작성자무장공비|작성시간06.12.28|조회수1,455 목록 댓글 23

얼마전 영화 '묵공'이나 모리 히데키씨의 묵공등 원작만화를 구해 보면서

(...물론 어둠의 경로입니다만;; 개인적인 변명을 하자면 하나는 아직 미개봉이오 하나는 절판입네다;;)

 

개인적으로 묵가사상에 관심이 참 많아졌습니다. 겸애,비공,비악,절장등 참 흥미로운 사상이 많더군요.

하지만 얼마전 술라 펠릭스님과 리플교환을 나누며 묵가의 최후에 대하여 의문이 생겼습니다.

 

물론 지금 제가 대형서점이나 도서관에 갈만한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기숙사가 삼수갑산 입네다. 밤중에 나오면 보이는것은 산그림자뿐 ㅇㅈㄴ)

 

굉장히 한정된 자료들(인터넷과 브리테니커 사전, 그리고 몇권의 책 뿐입네다 ㅠㅠ)의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제껏 수집한 정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묵가는 유가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2.일반적으로 유,묵이라고 묶어서 통칭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손꼽히는 사상이었다.

3.거자의 인솔아래 일종의 종교집단적 색채까지 띄었으며 주된 추종자는 하급무사나 기술자와 같은 중,하층민들이었다.

4.묵가의 사상은 실용성을 강조한다.(이론을 검증하는 3가지 단계와 4가지 기준,  호화-환락성 음주가무를 폐하자는 비악, 장례를 간소히 하자는 절장등)

5.침략전쟁을 반대했다.(비공사상)

6.[다른사람 다른나라]를 [내몸 내나라]같이 평등하게 사랑하자는 겸애사상을 주장했다.(아울러 이 겸애사상은 유가의 맹자와 같은이에게는 위아래도 모르는 불개똥쌍놈..이라는 평을 들었습네다.)

7.초나라 양성군영지 방어전 당시 180여명의 묵가인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자결한후 일대 타격을 입는다.(당시 묵가인들 사이에서도 이대로가면 여기서 전멸하고 묵가의 맥이 끊기니 성을 버리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타격이 컸습니다.)

8.이후 조교화와 본질을 벗어난 강대국 편들기등으로 치닫고 이에 반대하는 묵협집단들이 갈라져나가는등 사분오열 하다가 진나라의 전국 7웅 통일과 진한교체기를 전후로하여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묵가 집단이 자취를 감춰버린 이유는 뭘까요?

 

술라 펠릭스님께서는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너무 이질적 사상이었기 때문에'라면서 [자연소멸론]을 얘기하셨습니다만. 제가 열심히 찾아본 바로는(물론 제 능력이 일천하고 인터넷의 한계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주장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모리 히데키씨의 만화 묵공에서나 조금 찾아볼수 있는 주장이더군요. 그것도 [아닐까?]하는 식의 추측 정도의 수준으로요.

 

물론 술라 펠릭스님의 [법가계열이 주도한 분서갱유는 전국적이지도 장기적이지도 않았다]나 [사상이나 학문은 탄압한다고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사상이나 학문은 탄압한다고 쉬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거니와 겨우 2대까지만 해먹고 와장창 자빠진 통일 진나라에게는 애시당초 조직적인 학술-언론 탄압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자연소멸론에도 헛점은 있는것 같습니다. 학문이라는게 탄압한다고 없애기 쉽지 않은만큼 스리슬쩍 영거영거 사라지는것도 쉽지 않습니다. 묵가는 단순히 괴짜주장을 하는 괴짜집단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 당시만해도 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상집단으로 묵가 사상은 당시 중국의 약소국과 하층민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몇 광신자로 그런 세력을 구축하고 농성전이라면 천리길을 마다하고 아무런 이득도 약속받지 않은채-승패조차 상관없이- 참전하는 사람들을 모을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모리 히데키씨가 지적한대로 이질적인 문화라도 얼마든지 소화해내는 중국인들이었습니다.(여담이지만 사실 이게 중국인들의 무서운 점이긴하죠;;)

 

제 의문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정도 사상집단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소멸?]인거죠;;

 

글쎄요 이런 비유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2천년쯤 후 후세의 사가들이 20세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이질적인 사상으로 인한 공산주의의 자연소멸]이라고 평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느낌입니다.(물론 상당한 분량의 비약이 첨가되었습니다만. 20세기의 100년이라는 시간은 2천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죠. 어쩌면 후세의 사가들은 수많은 사상가와 운동가들이 목숨걸고 벌이던 일을 연못가에 생긴 작은 파문정도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실제 과거의 역사에 관하여 종종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묵가의 소멸원인은 이렇습니다.

 

1.종종 강대국의 침략정책(진나라의 통일정책 포함)에 적극적으로 반대항에 서곤했던 묵협들은 끊임없이 피해를 입었으며. 

2.후일 묵가사상의 조교화와 타락이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며 이반을 불러왔다.

3.사분오열된 상태에서 맞은 통일 진나라라는 체제는 묵가의 사상을 탄압했고

4.진한교체기라는 대규모 혼란기를 거쳐 들어선 통일 한나라는 통치의 용이성을 위해 유가를 장려했다.

 

물론 많은 추측과 비약이 첨가되었습니다만-_-;; 최소한 3,4항만큼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것 같습니다.수집한 자료들중에 [진나라의 탄압]과 [한나라의 숭유정책(심한경우엔 유가일존(一尊)정책이라고 지적하기 까지 하더군요)]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후대의 중국역사는 거의 모두 유학자들의 손으로 집필 되었으며 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묵가사상에 부정적이었다는 점도 한몫을 하는 듯 합니다.실제로 묵가 사상이 다시 빛을 보게되는것도 청나라 후기에 들어와서입니다.)

 

 

과연 묵가사상은 자연소멸일까요 고사일까요?

개인적으로는 고사쪽에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 고수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꼼므린코미사르 크베사공~ 나와주세요 -ㅂ- 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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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12.28 어 보입니다. 서로의 의견차이를 확인한 정도로 해두고 넘어가는게 좋겠군요. ps)그나저나 크베사공은 어딜 간건지-ㅅ- 좀 속시원하게 글이나 탁 써보지;; 쩝쩝;;
  • 답댓글 작성자한움쿰재 | 작성시간 06.12.30 서양사전공이신걸로 압니다.동양사.그것도 동양사전공이라 해도 묵가는 동양철학 전공하신 분이 더 잘 아실 듯..
  • 작성자김경택 | 작성시간 06.12.28 묵가의 사상은 정념보다도 이성에 바탕을 둔 사상같아요.
  • 작성자문휴 | 작성시간 07.01.07 묵가 사상이 없어진건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원인일 지도 모릅니다. 진시황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농서와 역법,천문 등 실용적인 책을 제외하고 사상이 담긴 책을 없애버릴라고 했죠. 나중에 유가나 도가 사상은 후학들이 발전 시킨거 겠죠. 그래서 고등학교때 배운 것처럼 한나라의 학문은 글자를 보고 뜻을 찾아가는 훈고학이고요 그리고 우리들이 익히아는 도교나 유교는 나중에 당, 송시대에 만들어 집니다. 묵가의 사상이 후예가 없어서 끊어진건 아닐런지요.
  • 작성자문휴 | 작성시간 07.01.07 그리고 묵가는 후에 유학의 성인으로 추대되는 맹자가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학파 입니다. 그렇다면 후대에는 거의 이단처럼 취급되었을 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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