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멸망에 대한 얘기는,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저런 지엽적인 분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렇게 흘러간 역사의
그 필연성에 대한 부분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조선 멸망에 대해서 직접적인 의견을 내기 보다는, 이제까지 그러한 여러 의견을 내면서 우
리가 무엇을 간과해왔나..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써보자 합니다.
조선의 멸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다면 최소한이나마 다뤄야 하는 논점들만 해도;
1) 세계의 근대화 및 자본주의화의 문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필연이었을까?
2) 세계체제 경쟁에서의 서양과 동양의 문제: 서양의 무력정복이 없었다면 동양만의 대안이 있었을까?
3) 조선과 유교의 문제: 조선 중기 이후 유학의 '폐단'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경직된 학자들로 인해
유학이 본연의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자정능력을 잃은 결과인가, 아니면 유학 그 자체의 이념적
한계인가?
4) 조선멸망의 과정: 조선 멸망의 과정은 그 총체적인 내부 시스템의 해체로 인한 결과인가, 아니면
그러한 해체가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의식적으로 가속화된 결과인가? 내우인가, 외환인가?
5) 조선을 평가하는 문제: 조선은 근대화의 기회가 있었을까? 아니면 근본적으로 근대화가 막혀있는
체제였을까?
이렇게 5가지나 됩니다.
위 문제를 모두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전문적인 학자들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조선멸망에 대한 이제까지의 '통상적인' 의견들을 보면 대체로;
* 1)번과 2)번의 고민이 무시됨
* 3)번과 4)번은 지나치게 과장됨
* 5)번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단정적
...이와 같은 특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소위 '식민사관'의 타율성 이론을 따라가는 냄새가 너무나 짙고,
정작 바로 이 부분에서 극복되어야 할 '식민사관'은 전혀 극복되지 않은 채 엉뚱한 분야에서 반대급
부를 찾아다니는 그러한 경향들이 너무 큽니다. 조선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가 한결같이 부정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위에서 언급한 5가지 논점 중에서 이제까지 줄곧 무시당해온 1)번과 2)번 논점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지금껏과는 달리 조선에 대해 어느정도 균형잡히고 동정적인 의견을 낼 여
지가 훨씬 커지기 때문입니다.
좋든 싫든 어쨌든, 실제의 역사는 어쨌든 서구적 근대화, 서구적 자본주의, 서구적 제국주의의 승리
로 끝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러한 근대화의 과정을 지나치게 필연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
니다. 즉, 역사에 어떠한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전개과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근대화를 이루었어야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결과론적인 자세로 조선을
바라보기 때문에 지나치게 부정적이 된다는 것이죠.
역사는 분명 서구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승리로 끝났지만 19세기 당시만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자
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냉전기 역사서술 등의 영향으로 인해 종종 무시되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급팽창하는 시기인 동시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시기이기
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한편으로는 서구 제국들의 미친듯한 확장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이나
서구 열강의 내부에서는 세계체제 그 전체를 뒤흔들 만큼의 혁명과 저항의 기운이 고조되기도 했으
니까요.
따라서, 서구적 근대화를 통해 서구 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을 '필연'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면 우선 조선에 대한 한가지 "원죄"를 벗겨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무조건 근대화를 이뤘어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한 못난 국가.."라는 그런 인
식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는거죠.
반면, 1)번과 2)번의 논점을 통해 제기된 '서구적 근대화의 필연성'의 문제와는 달리, 3)번과 4)번에
제기된 조선과 유교의 문제, 그리고 조선멸망의 문제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
습니다. 사실, 이거야말로 식민사관 중 오리지널 식민사관입니다. 조선은 자체적으로 발전할 가능성
이 막힌 타율적인 국가이며, 그러한 제약의 제1요소가 낡고 구닥다리인 유교를 신봉하는 것이고, 그
것을 누군가가 깨주어야 비로서 조선은 발전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인데.. 식민사관에 대한 수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는 놀라울만치 적었
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쪽은 전공분야가 아니라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유학을 신봉하던 조선이 망한 이후 아주 오랜
세월동안 유교를 조선멸망의 원인으로 꼽는 경향이 존속했기 때문에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아
직도 부족한 편이라고 알 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에는 한문학자들도 있고,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사
람도 있지만, 정말로 옛 유학의 학문적 흐름을 이어가는 학자로써의 '유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거
의 절멸 상태입니다.
문제는, 교조화된 정치이데올로기가 국가의 멸망을 불러온다는 사실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과연 유교가 그 자체로 그렇게나 타파해야 했을 대상이었는가, 정말로 유교는 변화할 가능성이 없었
는가, 시대에 따라 유학자들도 정말로 다양한 해석을 해오고, 여러가지 다른 삶의 자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어째서 우리가 인식하는 유학은 조선중후기 사림들의 경직된 모습으로만 다가오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시원하게 답해줄 전문적인 유학자가 없다는 것이죠.
예컨데, 교조화된 이데올로기로써 발전을 저해하던 것이라면 서구에서도 크리스트교가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유교처럼 정치철학의 원리도 아니고, 아예 신의 이름을 걸고 있는 종교인데도 불구하고
크리스트교는 분명 여러가지로 변해왔고, 근대에 들어 서구인들의 근대화 과정을 돕는 방향으로 변
화해나갔습니다. 유학은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까요?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조선
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참으로 아쉽지만, 적어도 "실학"의 등장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시사하기는 합
니다.
즉, 조선 멸망은 유교의 탓이 아니라, 결국 어느 나라이든 마찬가지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고쳐
나가지 못하게끔 각 정치세력들을 얽어매는 혼돈이었으며, 어떠한 점에서도 유교 그 자체에서 조선
멸망의 원인을 도출해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실학이라는 자그마한 단서만 갖고 조선이 자체적으로 유교를 기반으로 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유교가 자체적으로 꽉막힌 이념이라 조선멸망을 가속해왔다고 생
각하기 또한 마찬가지로 힘들 것입니다. 조선멸망에서 '유교'라는 원인은 빼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
니다.
즉, 대충 정리를 한다면, 오늘날, 대중적인 레벨에서 조선에 대한 폄하와 경멸이 정말 이해할 수 없을
만치 지나친 경향이 있습니다. 사대주의, 고루한 유학, 당쟁의 이미지 등등...
결국, 그러한 의견들이 얘기하는 것을 따르자면, 조선은 스스로 조선일 수 있는 모든 정체성을 포기해
야만 목표로한 근대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 조선인이라는 국민
이 자체적으로 영위하던 생활의 방식 모든 것을 다 해체해야만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하
자면 "조선"이라는 그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입니다. 즉, 그야말로 조선은 총체적으로 근대화에 적합하
지 않았다는 소리가 되고, 그야말로 누군가 와서 점령해줘서 강제로 근대화를 해주지 않으면 근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세요.
일본도 조선 못지 않은 정치적인 혼란과 근대화의 고통을 겪었고 (아예 수차례 내전을 치뤘죠)
일본을 일본이게 해줄 수 있는 문화적, 이념적 정체성을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유사근대화'를 이루었
습니다. 상공업에서의 차이라든지, 지리적/경제적 관계의 차이도 물론 있었지만, 일본 고유의 조건
들을 바라볼 때 "천황제"라든지 "신토" 같은 것들이 서구적/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것과는 얼마나 어
울리지 않는가를 또한 알아야 된다는거죠. 즉,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근대화를 이룰 수 있
었고, 조선은 근대화를 이룰 수 없었다면 결국 조선이 지닌 내재적, 내부적 한계를 지나치게 과대평
가하여 조선 고유의 가치들이 지닌 가능성을 함께 죽이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아 젠장..글 쓰면 꼭 말이 길어지고 두서없어지는데..
어쨌든 이정도만 쓸게요. ==; 나도 내가 무슨 소리 했는지도 모르겠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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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inoche 작성시간 06.12.29 일본 근대화의 가장 큰 행운은 강제 개항 이후에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일본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등의 열강이 딴데 신경 안쓰고 제대로 빨아 먹었으면 인도나 중국 수준으로 전락 했을 테고, 조선은 그런 위기를 거친 일본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조선을 아주 지대로 빨아 먹었다는 차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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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inoche 작성시간 06.12.29 그리고 유교는 아주 정교한 정치 시스템으로 발전한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원래의 공맹 사상이라는게 작은 단위의 향촌이나 중소 규모의 제후국에 적용할 만한 이념 체제이고 이게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듬어 지긴 했지만 본연의 한계를 극복하기엔 무리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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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Binoche 작성시간 06.12.29 뭐 조선도 열강들의 침략 없이 적당한 자극정도를 받으면서 문물을 받아들인다면(지도층의 문화적 충격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한 4~50년 정도의 텀을 가진다면 모를까 그 시기에 독자적으로 근대화를 이룰수는 없는 여건이죠. 한마디로 일본은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이었고 조선은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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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ecuritad 작성시간 06.12.29 역사학도와 오타구는 확실히 생각의 깊이나 수준이 틀리네요..역시 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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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이사르씨 작성시간 07.01.02 크웨사(아)찌께선 사학도이셨군요. 다시 한번 당신의 실력에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