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선조가 관련된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임진왜란이 터지기 10년 전에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그 때 시점에서
일본을 갔다온 통신사가 선조에게 말을 했는데 통신사가 했던 말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을 볼품이 없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
이거더군요 ㄱ-;;; 그런데 더욱 놀랄것은 선조가 이 말에 솔깃했다는 소리 ;;
역시 한 나라를 망치게 하는 망군의 정신세계는 뭔가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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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위대한개척자 작성시간 07.01.05 제가 알기로는 이이가 신하들과 지나가는 말로 10만 양병설을 하면 좋겠다 라고 한것을 지금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전폭적으로 주장했다라고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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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전상용 작성시간 07.01.05 선조수정실록에만 10만 양병설이 나옵니다 현재 서인들이 자기들 합리화를 위해서 쓰느라 조작된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수정실록에보면 황윤길이 일본 침략 준비한다고 주장했는데 서인들이 분란 일으키는 거라며 동인들이 안 받아들였다며라는 식으로 말하고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반대했던 류성룡이 나중에 가서 이이의 지략에 감탄했다고 나오는 등 조선 왕조 실록 같지 않은 서술이 많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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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빌리븜 작성시간 07.01.05 음......그렇다면 조선 조정은 오판(규모)으로 인한 탁상공론식의 준비(숫자만 채우는)를 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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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전상용 작성시간 07.01.05 더 정확히는 지휘관들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봐야합니다 이일의 경우 초병도 안 세우고 전진했다가 된통당하기도 하고 원균은 초반에 빨리 대응했어야 하는데 자침시키는 뻘짓을 보였거든요 분명 전라도 위주로 대비는 했지만 경상도의 군사 움직임을 보면 경상도도 어느 정도 대비는 했지만 예상보다 일본군의 움직임이 빨랐고 또한 일본군이 얼마나 쎈지 모른게 문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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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욱 작성시간 07.01.06 십만양병설의 경우는 왜군보다는 윗동네의 여진을 의식해서라는말도 있는듯합니다. 아닐수도 있지만요 ;; 그리고 여기에 조선이 준비가 없어서 밀렸다는분들 많은데 그보다는 체계에 문제가 있는게 더 맞는거 같습니다. 2차대전당시에도 프랑스는 준비 잘하고 병력도 많았지많고 장비도 괜찮았으나 뒤쳐진 체계로 인하여 완전 박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