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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다시 돌아온 무장공비의 뻘글]금산전투 (1)

작성자무장공비|작성시간07.08.06|조회수1,026 목록 댓글 17

안녕하세요 토탈워 카페인 여러분.

 

이 덥고 습하고 짜증나기 쉬운 여름철에 기체후일향만강.... 아....이게 아니구나...... ㅅㅂ


근 1년을 정신동결 상태로 있다가 오래간만에 글쓰며 긴장한 본인이 않하던 짓을 하다 삑살냈다. 이해 하시라 독자제헌이여. 알만한 분은 이~미~ 자~알~ 아시겠지만 본인이 꼬리대가리 없는 소리 하는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 긍께 오늘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를 충실하게 따라서. 이 무장공비 본인 걍 하던데로 썰을 풀겠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라 독자제헌이여.

 

 

 

<어쩌라고 씨바야!>

 

흠흠;; 뭐 하여튼간에 -_-;;;;;;

 

오늘 본인이 동양사 게시판을 빌어 다시 찝쩍거릴 얘기는 조헌 야그가 되겄다.

 

물론 알 만한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 쓰고자하는 글의 원문은 무장공비 본인이 한 2~3년전에 끼적거리다대략 그만 둔 잡문이 되겠다ㅡ,.ㅡ;;;; 뭐 본인이 그리 썩 근성이 넘치는 성격은 아니기에 군복무도 있었고 이사도 다니는등 이런저런 일로 시나브로 마무리 짓지 못한채 미완성이 된 글이다.

 

주변일이 정리된 이후에도 집에서 부지런히 뒹굴거리고 꿈뻑 거리며 방구석에 쌓인 먼지의 수를 헤아려 보느라 바빠서 글을 쓸 엄두를 못내었......어??!!

 

 

 

어흠! -_-;;; 뭐 하여튼간 모자라기 짝이 없던 졸문을 읽고 격려와 조언을 주셨던 카페인들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본인 무장공비 이제라도 늦게나마 이 졸문에 마침표를 찍어 보고자 한다.

 

 

그러니 님들하 젭알....

 

 

 

<이쁘게좀 봐주시면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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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제헌 너거들도 알다시피 충남 금산군에는 임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의병장 조헌 휘하 의병들을 모셔 놓은 합장묘가 있다. 요거시 바로 그 유명한 [칠백의총]이 되겄다.

 

 

<요거이 칠백의총 이다!>

 

 

"아아 꼴랑 칠백명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하셨도다. 가슴이 애려온다"

 

라고 벌써부터 코끝찡 눈물샘에 습기가 맺히시며 감동하는 독자제헌이여.

 

하지만 이 사실은 엄밀히 말하자면

 

"엄마 아기는 어떻게 나와"라고 물어보는 순진한 아이의 질문에 당황해서 
"응 다리밑에서 주워와."라고 대답해주는 엄마 수준의 뻥구라가 되것다.

 

구라? 뻥? 무슨 뻥이요 무슨 구라냐 하문!

 

<조헌의 칠백의총>은 진실을 깍아내렸다는 점에서 뻥구라라는 것이다.

 

본인이 구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7백이라는 숫자이다. <칠백의총>에는 꼴랑 7백명이 묻힌게 아니다. <칠백의총>은 보통 알려진 이야기 대로 순국한 의병 칠백명만 묻혀 있는것이 아니라 칠백명 외에도 영규대사가 이끄는 오백명의 순국 의승군이 더 있다.

 

그런대 왜 <오백+칠백의인총>이나 <천이백의인총> 또는 이거도 저거도 아니면 <조낸 많이 묻힌 의인총>도 아니냐고?

 

정 다 마땅치 않으면 걍 <의인총>이라고 이름 붙이고 앞에다 [조헌선생 만쉐이. 개호로쉽알작것불개똥쌍노무 왜놈들] 하는 식으로 비석 세겨서 세워 놓으면 될꺼아니냐고 생각하는 독자제헌이여.

 

혹시 옛 사람들이 산수에 약한게 아닐까 슬며시 생각하시는 독자제헌이여.

 

당시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던 승려계급은 조선에서는 7가지 천한계급, 즉 소위 말하는 칠천(七賤) 중에하나였다. 유생들은 노골적으로 승려들을 밥버러지 거지 취급을 했으며, 기생보다 천시했고 무당과 백정처럼 캐무시를 했다. 심지어 승려는 조선시대 내내 서울 사대문 안에는 들어갈 수 도 엄써따.

 

이런 칠천계급이 나라를 위해 목숨버리고 싸웠다는거.....

 

왜놈들 쳐들어 오자마자 불알에 딸랑딸랑 소리나게 도망간 양반들로서는 조낸 쪽팔리는 거시어따. 의승군 또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었음에도 이런식으로 의도적으로 무시 된 거시란 말이다. 이런 이유로 본인은 <칠백의총>을 뻥구라나 다름없는 반쪽짜리 진실이라고 말하는 거시다.

 

뭐....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법 아닌가.

 

조선시대라고 한심한 양반들만 더글더글 했던것은 아니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대쪽같은 사람들 또한많았다. 무조건 [양반&유교=썩은것들]이라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양반이란 계급이 다스렸던 조선은 개호로쉽알작것불개똥쌍노무 쪽발이 녀석들이 쥐랄을 틀던 말던 5백년이란 긴 세월을 버텼던 나라고 지금 우리시대의 기준으로 재단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과거의 나라'인거시다.

 

독자제헌들이여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우]를 범하시지 마시라.

 

사실 임진왜란 중에는 제2차 금산전투만큼 특이하고 알쏭달쏭한 전투도 엄따. 조선의 선비정신의 표상같은 조헌 선생과 함께 스러져간 1200명의 조상들. 이 무장공비가 일천하나마 디벼볼 생각이다.

 

독자제헌들 눈 똑바로 뜨시고 아니다 싶으면 가차없이 짱돌을 투척하시라.

 


<독자들도 다 아는 야그 -개전전 그리고 개전초기->

 


독자제헌 너거들도 임진왜란 초반 꼬라지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구구절절 설명 않해도 잘 아리라 생각한다.

 

전쟁전 일본에 보낸 통신사는 동인과 서인이 나뉘어서 입씨름 하기 바빴다. 쩍발이 넘들이 붕당정치에

대해 무쟈게 까댔지만 붕당정치란 사실 뒤집어 보자면 전제정보다 훨씬 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의 정치구조가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역시 당시 조정신료들이 '국방'을 담보로 파워게임을 했다는데 있다ㅡ,.ㅡ) 비러머글

 

서인 : 임금님하 풍신수길이가효. 생기긴 덜 떨어 지게 생겼는데. 눈깔딱찌가 빤짝빤짝하니 꽤 똘똘한 놈같아염. 걔 금방 처들어 올꺼에염.
동인 : 님하 구라즐염. 풍신수길이 죠낸 못생겼으셈 ㅋㅋㅋㅋ 쥐새끼 처럼 생겼삼 ㅋㅋㅋㅋㅋㅋㅋ
서인 : 님 젭알 자제효. 그러다 전쟁 나면 어쩔라 그러삼? 우리도 빡씨게 군발이들 굴려야함.
동인 : 그렇다고 막 떠들어 대면서 준비하면 백성들이 겁먹어염.  님 그리고 풍신수길이 정말 못생겼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죠낸ㅋㅋㅋㅋ못생겼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양쪽 다 일견 맞는 논리를 가지고 주장을 펴니...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것만 본다고 누가 그랬던가 똘똘한 선조 여기선 잠시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다.

 

선조 : 뭐 설마 쳐들어 오겠냐? 근대 풍신수길이 진짜 얼꽝이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타... 우리의 선조 신하들이랑 옹기종기 둘러 앉아 [일본은 쳐들어 오지 않습니다. 레드썬~]해버렸다.

 

 

<일본은 쳐들어 오지 않습니다~ 뢰드썬~ @_@>

 

하지만 시시각각 하나씩 날아드는 첩보들과

 

[남해안으로 삼나무 쪼가리랑 톱밥들이 엄청 떠내려 와염. 일본애들이 배를 잔뜩 만들고 분명해염.]
[올해는 세견선이 않오는데다 일본애들도 왜관에서 다 철수하네염? 이것들이 배때기가 불렀낭? ㅋㅋㅋ]

 

당시 전야의 흉흉한 민심을 반영한 듯한 헛소문들

 

[허걱. 돌미륵이 피눈물 징징징... 님 이거 뭐삼?]
[나도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왜 우물에서 통곡소리가 나능겨?]

 

그냥 쌩-_-까기엔 불안했는지... 선조랑 신하들 다시한번 모여서 의논했다.

 

선조 :  아이 씨바 임금짓 못해먹겠네. 야 쪽발이 쳐들어 오는거야 안 쳐들어 오는거야.
신하들 : 글쎄염.. 이거 뭐 쳐들어 올수 잇을지도.....?
선조 : 하지만 이일과 신립이 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신하1 : 이!
신하2 : 일!
신하3 : 신!
신하4 : 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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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나온다... 빌어머글.... 결국 보다보다 못한 몇몇 대신들 현실도피가 극에 달한 선조를 설득하긴한다.

 

[님 뭐하삼? 님 김화뷁? 일본이 쳐들어니까 우리도 군발이 빡빡 굴리고 성 쌓아야함]

 

이제야 안드로메다로 정신이 가출한 선조가 살짝 정신이 돌아왔는지 김수와 윤선각 이광등을 남부지방으로 내려보내서 성을 중건하고 훈련을 감독하게 했지만, 후일 임란 당시 한결같이 일본군에 박살 나거나 (이광) 혹독한 노역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일선 지휘관과 마찰을 빚거나(김수) 현상유지에 급급했던(윤선각) 인물들인 것을 보면 그나마 인선도 썩 그리 잘된 인선은 아니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전쟁준비는 만성적 평화로 AGS말기 환자가 되버린 향촌 사대부들의 극렬한 반대로 흐지부지 무산. 지대로 막장테크를 타버린다.

 

< 주1)AGS란 후천성 귀차니즘 신드롬(Acquired Guichanism Syndrome)의 약자입니...아악!>

 

 

 

[님하 자제효. 귀찮게 왜 자꾸 우리를 괴롭히나염? 삼가지방만 봐도 정암나루터가 떡하니 가로 막고있는데 개호로불개똥쌍노무 왜놈들이 뭔 재주로 건너오겠삼? 만약 뽀질뽀질 건너오면 힘쓰는 애들 몇명 나가서 장대로 박통을 부수면 그만임ㅋㅋㅋㅋㅋ 무조건 성만 쌓으면 다임? ㅉㅉ 머리 안 굴러가는 냥반들 같으니라규]

 

임란 당시 전시수상이었던 유성룡은 징비록 속에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넓디넓은 바다를 두고도 못 막은 왜적을 그까짓 시냇물로 막을 수 있다고 하다니...이건 너무 하잖아? 내가 짬밥;;아니 녹봉을 똥꾸녕으로 쳐 먹은줄 알아? 제발 골 좀 흘리고 다니지 말라규]


[젝일 쌓아놓은 성 이래봐야 죄 크기만 크고 허술하기 짝이없네..... 그나마 진주성이 좀 쓸만하니 ㄳ]

 

그리고 1592년 임진년. 선조 즉위 25년째 되던 해. 이런 난장판 속에 일본의 대대적 침공이 시작 되었다.

 

글타. 조선군? 처음 한 5~6개월은 개박살을 면치 못했다.

 

긴 평화기와 조정의 무능력으로 오뉴월 말자지 꼴로 늘어진 조선군이기도 했지만 역시 기습과 병력의 집중이라는 공세측이 가지는 어드벤테이지는 대단했다. 상륙 당일날 부산진이 절딴났고 바로 다음날은 동래성이 떨어졌다. 두 성 모두 나름대로 싸워봤지만 병력이 쨉이 않되는데 별 수 있겠는가? 전부 다 가망 없는 싸움하다 한두시진. 그러니께 . . . 2~4시간안에 함락됬다.

 

그나마 이 두 성은 잘 싸운 축이었다. 경상수군 절도사 원균과 박홍은 배 밑창에 구멍내고 도망갔고 밀양성에서는 초계군수 이유검은 순찰을 간다며 도주를 했다. 그런데 더 웃기는것은 김해부사 서예원 또한 그런 이유검을 잡겠다고 핑계를 대며 또 도망을 갔는것이다-_-;;  물론 이유검 같은 경우에는 후일 적전도주죄로 처형당했지만 이는 드문 경우고 서예원의 경우에 보이듯이 가벼운 문책 후 멀쩡히 돌아다닌 놈들도 꽤 많았고 원균이나 김명원의 경우처럼 선조 눈에 띠어서 거꾸로 총애를 받고 공신이 된 친구들도 꽤많다... 나라 꼴 잘 돌아 간다...ㅆㅂ

 

하여당간에 일본군이 [부산 동래 밀양 김해 찍고~ 터닝~♪] 하자 일본군의 진격로 앞에 있는 조선의 경상도 읍성들 마치 소드맛스타 김억추의 검기에 왜선 박살나듯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로 무너졌다. 그리고 우리의 똘똘이 선조. 자다가 일어나서 수북히 쌓여있던 패전과 함락 보고문에 염통이 쫄깃해 지도록 놀랐다. 그리고는 발랑발랑 놀래서는 신립과 이일을 불렀다.

 

-어어, 너거들이 가서 힘 좀 써야 쓰겄다.

 

결과는?

 

독자제헌도 아시지 않는가. 일본군의 출동을 보고한 한 평민을 '헛소리 즐' 하면서 용감무쌍하게 참수시켜 버린 이일이는 초병도 안 세우고 있다가 상주에서 일본군의 급습에 박살났다. 그리고는 문경세제 부근에 진을 치고 있던 신립에게 도망갔다. 

 

선조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었던, 니탕개의 난을 단번에 진압해버린 용장 신립(일마는 선조와 사돈 관계이기도 했다.)이는 탄금대에 배수진 치고 8천군사 몽땅 꼬라 박았다. 몽땅 꼬라박고 상심한 나머지 달래강에 입수 해버렸다. 이일은 어찌됐냐고? 일마 도망갈 길이 없는 배수진이라는데 어찌어찌 잘 도망 나왔다. 대단한 근성가이다.

 

여튼 똘똘한 선조. 자기가 믿던 비장의 카드마저 날려먹자 투덜거리며 후딱 짐 챙겼다.


-신립 이노무 색히!! 쓰-_-바, 왜 쓸데 없는데 올인해서 죄다 꼬라박고 난리인겨.


짐 다꾸린 똘똘한 선조. 청계천 수표교 폭파하고 방송국에 행진곡 레코드판 걸어놓은체 서울을 버렸다.그리고는 평양성으로 홀랑 튀었다. 임금이 버린 서울. 성난 민중들이 노비문서를 관리하고 도망친 노비를 혹독하게 잡아들이기로 악명 높았던 장예원부터 시작해서 두루 깨빡치는 바람에 선조가 버린 한성은 정작 일본군이 들어오기 전부터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수비가 불리한 한양이라 전략적으로 포기할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정말 알쪼가 아닌가. 결국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군 제 1군은 조선의 수도 한양에 무혈입성한다. 고니시 유키나가 일마도 아마 쑥대밭이 된 한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을것이다.

 

- . . . . . 어??!! 우린 손도 안 데었는데-_-?

 

적의 수도 점령이라는 위업을 이루는 영광을 가지기는 했지만(그것도 무혈입성으로!) 왕이라는 알맹이가 빠진 수도는 껍대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기도 승세를 타고 얼떨결에 오긴했지만 애시당초 반전론을 펼쳤던 조심스러운 성격의 고니시는 고민을 한다.

 

- 우짜쓰까.... 갈까? 말까?

 

이럴까 저럴까 우짤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본국에서 왕초로 부터 고니시에게 지령이 날아왔다.

 

- 그대의 전공을 치하하노라....근대 너 거기서 뭐허고 자빠졌냐?
- 아.. 왕초.. 그러니까 그게요..
- 당장 뛰쳐나가지 못혀어어어어어---!!
- 아 저기 그게요. 보급선도 길어지고 말이에요. 후방도 불안한데...
- 왕 만 잡으면 끝난다. 보급품은 배에 실어서 서해로 보내줄테니 닥치고 가라-_-+
- 곧 겨울도 오는데요... 우리 싸우지 말고 말로 하자고요. 예에~? 왕초~
- 더 헛소리 징징거리면 죽여버린다-_-+
- 히이이이이이익!!!
- 평양으로 가라. 10초주겠다. 8초나 9초 이런건 소용없다. 정확히 10초다. 지금부터 지켜보겠다. 10초다. 1초라도 늦을시엔 한강 굴다리 오사카 천수각에서 죠낸 맞는거다.
- 옛 썰!! -0-)/

 

뭐.. 침략을 당한 우리로서는 다 쌍쌍바가 ㄱ자로 부러질 놈들이지만 인정할건 인정 해야겠지 않는가?

 

 

<이런 놈들이라도 인정할껀 인정해야지 뭐.. 아냐? 아님 말규-_-;>

 

 

왕초 히데요시는 걸물은 걸물이었다. 괜히 운이 좋아서 전국시대를 끝 마친것은 아니어따. 제1군 오야 고니시와 제2군 오야 가토 사이의 알력을 알아보고 이를 살살 긁어서 자신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만들었다. 뛰어난 용인술이어따.

 

1군 오야 고니시는 사실은 사무라이 출신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상인이었고 히데요시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면서 자신의 아들 고니시를 히데요시의 충복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고니시는 전통적인 가문 출신의 무장들에게 '약장수'라는 비아냥도 얻곤했다. 하여튼 무사라기 보다는 상인이나 문인에 가까운 그의 기질은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꽤나 순딩이틱한 것이기도 했다.

 

첨언이지만 고니시 일마 임란 끝나고 낭중에 다 망해가는 히데요시가문 끝꺼정 붙들고 있다가 참수 당한다. 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관계로 할복자살을 거부했데나 뭐래나 . . 하는 뒷얘기도 있지만 . . . 여튼 그의 평생 라이벌이라고도 할수있는 가토가 히데요시 가문을 버리고 도쿠가와 가문으로 전향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그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것 같지도 않은가?

 

하여튼 각설하고.

 

임진년 조선출병이 무익함을 잘 알고 있던 고니시였지만 자기도 지금까지의 기세가 아깝긴 하고 어떻게 생각해보면 빨리 왕을 잡는 것이 전쟁을 빨리 끝낼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위에서는 후방이나 보급품,걱정 말고 빨리 가라고 쪼아대니 [딸랑딸랑 예스맨] 고니시는 이대로 평양성까지 밀고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가토와 함께 임진강 방어선 돌파하고 평양성에서도 의외로 쉽게 깽판을 부리며 이겨버린 고니시...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뿔싸 -ㅁ-!! 우리의 똘똘한 선조는 이미 또 의주로 돌 맞아 가며 튀어버린지 오래였다.

 

뜬금없이 돌은 왜 맞으면서 도망 갔냐고? 평양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후퇴하는 바람에 일본군이 돌 던지며 따라 붙어서 그런것이 었냐고? 그러면 우리의 선조가 아니다. 선조를 우습게 보지 마시라. 서울에서 레코드판 걸어놓고 도망가던 선조가 또 도망가려고 짐 싸니 존내 꼴 받은 백성들이 몰려가서 길막고 돌 던졌다. 옘병허구 왕 참 싸구려다-_-;;

 

 

<화낸 백성과 선조 어린이>

 

여튼 국토의 반을 남쪽에서 부터 횡단하여 평양성을 점령한 고니시가 대충 평양성에서 지지고 뭉개는 것을 기점으로 일본군의 전후무후한 전격전(=조선군의 전후무후한 삽질)은 대강 끝이난다. (당시 가토는 함경도와 만주로 신나게 북진하는 중이었지만..뭐 글마도 금방 도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후로 부터는 서로 밀고 밀리는 지리한 힘싸움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헌의 제 2차 금산전투는 일본군의 기세가 한풀 꺽이고 장기전화 되려는 때에 일어난다.

 

그렇다면 왜 하필하고 금산인가?

 

우리는 이 의문에 답을 얻기 위하여 당시의 전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따..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누마>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군 수뇌부 신나게 평양성까지 진격을 해서 전후무후한 전공을 세웠지만 슬슬 전격전의 문제점과 부작용이 하나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일본군의 전략적 오판이었다. 왕만 잡으면 장땡이여~ 하고 흥얼거리면서 평양까지 밀고 갔는데 문제는 선조 이 넘아가 도망을 너무 잘 갔다는 점이었다. 역시 도망의 달인. 선조. 도망만 쳐서 쪽발이들을 물 맥이다니 훌륭하다. 그러니 낭중에 나 좀 개인적으로 보자.

 

여튼 고니시는 이렇게 의주로 도망간 선조한테 협박장이나 보내면 소일하고 있었다.

 

-ㅋㅋㅋ 님 의주서 뭐 하셈. 아직도 통군정에서 징징거림? ㅋㅋㅋ 죠낸 굴욕이네염. 조금 있으면 10만 대군이 서해로 밀고 올테니 알아서 기셈 ㅋㅋㅋㅋ

 

글타. 여기서 독자제헌들도 짐작 했겠지만 두번째 문제점이 생긴다.

 


두번째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였다.

 

고니시가 그토록 기다리던, 심심하면 선조한테 협박장 보낼때 주제가로 써 먹던 ,보급품 날라 주기로한 일본 수군은 이순신 장군에게 신나게 박살나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포구에 배 묶어 놓고 분탕질 치다 아조 처절하게 뒷치기 당했다.


 

<어째 뒷통수가 서늘하다?>

 

한두서너대여서닐곱번 그렇게 개관광 타더니 매우 꼴 받은 일본넘들, 핏댕이들 몽땅 긁어 모아서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맞짱떳따.


결과는?


에이~ 독자제헌들께서도 잘 아시지 않는가?


유인과 학익진에 걸려서 한큐에 박살났다. 져도 보통진게 아니라 아주 깨작살 초특급 안드로메다 캐관광을 탔다. 총대장 야스하루가 배를 버리고 무인도였던 한산도에 올라가 솔잎과 해초를 먹으며 연명 하다가 땟목을 타고 간신히 탈출할 정도로 말이다.

 

 

<무모한 싸움의 최후>

 

여튼 일본넘아들 이순신 장군의 존재로 서해로부터 보급품과 병력을 수송 받는다는 애초의 계획 틀어져도 크게 틀어졌다.


세번째는 의병의 준동이었다.

 

쾌속진격의 부작용은 여기에도 이써따. [왕잡기]라는 당면과제를 떠 안은 일본군은 시간들여 조선군과 숨박꼭질 해가며 색적,섬멸하기 보다는 그냥 무찔러 와해시키는 정도로 만족 했던것 이었다. 덕택에 패잔한 조선군들은 지휘체계도 보급체계도 박살난 유병(流兵)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거의 보존 되곤했다.

 

 

<아잉☆ 나 떡실신~ 잇힝~ 일본군 무서벙♡>

 

능력있는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이들을 규합한다면 이들은 다시 한번 당당하게 싸울수 있는 전력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재규합 하는데는 지방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향반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혹자는 후기 조선의 폐쇄적이고 교조화된 유교 정치 시스템에 대하여 비판도 아닌 비난을 가하지만 이렇게 국난에 임해서도 왕에게 충성하고 토착민들에게 신망을 잃지않는 튼튼한 지방세력을 길러낸것 또한 유교 아니겠는가? 문,무반으로 관직 경험도 많았던 이들은 의병이 일어나는 구심점이 되었다.

 

더욱이 일본군의 쾌속진격은 점령한 주요 읍성과 읍성을 잊는 간선도로. 즉 점과 선의 형태로 일본군의 점령지가 유지 되도록 했다. 한마디로 커어어다란~ 땅 덩어리에다 일직선으로 말뚝 박고 줄쳐서 [이 땅 내꺼~] 해버린 샘이란 말이다.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요상한 유전자라도 있는건지 아니면 뇌에 주름이 좀 부족한건지-_-;; 300년후의 일본군 대본영도 이거 벤치마킹했다가 관동군이 중국에서 녹아 없어졌다(...) 

 

이런 일본군의 행동에 조선군의 대답은 당연히 다음과 같겠다.

 

 

 

<누구 맘대로! 조까!>

 

당연히 점과 점을 이어주는 선은 매우 취약한 것이어서 자기 고향의 지리에 익숙한 의병들의 치고 빠지기에 쉽게 농락되곤 했다. 게다가 일본군의 전통적 마인드로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무지랭이 평민까지 죄다 들고 일어나는 우리나라 전래의 향토방위 시스템(?)이 매우 생소한 것이기도 했다.


사설이 길었다. 아무튼!!

 

왕 못잡아 전쟁은 장기화 되고 서해로 가는 길은 이순신 장군이 꽉 잡고 있어 일본넘아들 본토로 부터 보급품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부렀다. 육로로 보금품을 실어 나르자니 별로 효율적이지도 못하거니와 의병이라는 때도둑의 준동이 심해서 어림도 엄써따.

 

그러니 어쩌겠는가. 현지조달 하는 수밖에.

 

그런대 곡물은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땅을 파면 샘물 맹키로 솟아오르나? 한참 논밭 갈아 엎고 씨 뿌릴때인 따땃한 4월에 쳐들어 오는 바람에 놀란 점령지 백성들은 농사고 뭐고 때려치고 피난을 간지 오래라 농사 반쯤 말아먹은 것은 물론 이거니와 조선군이 대삽질을 거듭하며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최소한의 청야작전은 (무기와 쌀에 불 질르고 도망가기 하나는 확실히 했다 그래도)실시해 현지 보급사정은 악화되었다.

 

게다가 일본군의 점령지라는게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평안도 정도, 그것도 일부가 아닌가.

 

군정을 실시하고 나름대로 위무정책을 펼쳐 피난민들이 생업에 복귀하도록 권장한다 해도 애시당초 이 지역들은 곡창지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군과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바보가 아닌 이상 곡창지대 전라도를 먹어야 했다.

 

그리고 일본군 수뇌부는 충분히 똑똑했다. 그리고 사태가 이쯤되니 평양성에서 조선군이 미처 소각 못한 곡식들을 다량 수거했다는 고니시의 보고를 들으며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던 왕초 히데요시도 통빡을 팽팽 소리나게 굴리고는 중얼거렸다.

 

-쓰바, 우리 전라도 먹어야 되겠는데....

 


<아.. 좋아!! 좋다고!! 근대 왜 하필 금산인데?>


어쨋던 일본군 검마들 전라도를 먹기로 결정한 이상 진입코스는 잡아야 했다. 독자제헌들이여, 만일 독자제헌들이 일본군의 장수라면 어떤식으로 진로를 잡았을 것인가? 당신은 현재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평안도 일부를 길게 대각선 모양으로 점령한 상태다.


대번에 입에서

 

-ㅋㅋㅋ 님 그것도 문제? 경상도에서 소백산맥 너머가면 되겠네효 ㄲㄲㄲ

 

소리가 나왔다면 훌륭하다.


글타,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미친놈이 아닌 이상 행동은 언제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쟁 개시후 김해와 부산,동래,밀양 일대 즉 경상좌도를 석권한 일본군의 애초 계획도 그러했다.

 

(당시는 남도와 북도가 아닌 좌도와 우도의 행정구역 표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모든것을 왕을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우도가 아닌 좌도로 표기된다. 왕이 남면하고 바라보면 어느쪽이 왼쪽이겠는가. 요컨대 왕이 기준이다.)

 

물론 [왕만 잡으면 땡~] 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어서 차선급 계획 내지는 전후 점령지 관리를 위한 계획 정도에 불과 했지만 말이다.


근디 문제가 생겨 부렀다.(두둥~)


가벼운 마음으로 경상우도에 발을 들여 놓은 부대들이 곽 머시기가 이끄는 잡병들에게 깨작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 개전이후 거의 처음으로 땅에서 두두려 맞기 시작했다.

 

글타. 천강홍의장군 곽재우가 바로 이 기적을 이루어낸 주인공 이었다.

 

경상좌도지역에서 남강을 넘어 경상우도로 진입하고 종내는 전라도로 향하는 문을 열려던 일본 제6군은 남강 상류 정암진 일대에서 의외로 강력한 곽재우군의 방어선에 걸려 박살 작살이 났다. 정암진 전투 이후에도 계속되는 곽재우와 기타 의병,관군들의 합동방어전에 눌린 일본군은 결국 경상우도를 통한 전라도 진공작전을 잠정적으로 보류한다. 그리고 제 6군 오야붕 안고쿠지는(이 사람은 승장이다. 한마디로 중이란 말이다=ㅅ=;; ) 김천으로 물러나 제 7군 오야붕 고바가와 다카가케와 합류한다.

 

아직도 곽재우 장군의 활약은 경상우도 일대의 민담에 잘 드러나 이따. 최소한 곽재우가 호환 마마 곶감보다는 무서웠나보다. 우는 애 달래는데 꽉쥐(곽재우)온다고 겁을 줄 정도였으니.

 

자 사태가 이쯤되고 보니까 일본군은 다른 진격로를 모색해봐야 겠다.

 

독자제헌들이여 경상우도를 통한 전라도 침공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소백산맥이라는 자연적 경계선으로 인해 우회는 힘든 상황에서 일본군 수뇌부는 어떤 결정을 내릴수 있을것인가?

 

-일단 충청도를 먹고 충청도에서 유턴해서 전라도로 치고 내려가자!!

 


<아! 금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 덕유산과 마이산 사이의 동서 여러고을의 내와 골짜기 물이 합쳐져 금강의 근원이 되는데, 이를 적등강이라고 한다. 이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 옥천 동쪽에 이르면 속리산의 물과 합쳐져 서쪽으로 굽어 흐르면 금강이 된다........(중략).....이중 장수,무주,금산,용담,진안은 전라도와 경계가 되고 옥천,보은,청산 영동,황간은 충청도와 경계가 된다. 무주,장수는 덕유산 아래에 있어 우거진 산림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산세는 답답하다......(후략)

 

글타 중봉 조헌선생이 최초로 궐기한 옥천지역이나 최후를 맞이하신 금산 일대나 모두 전라도와 충청도의 접경지대 여따. 현재도 이 지역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지역으로 사투리 또한 전라도와 충청도가 혼재된 양식을 보여줄 정도다. 물론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진공할수 있는 길이 금산 하나 뿐인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거론한 이중환 선생의 기록 뒷부분을 보자.

 

-무주,장수는 덕유산 아래에 있어 우거진 산림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산세는 답답하다

 

글타. 우거진 산림과 깊은 골짜기, 애시당초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기는 부적합한 지역이 아닌가. 앞서서도 한 말이지만 어느때고 사람은 자신이 고를수 있는 방안 중 제일 합리적으로 판단되는 방안을 고르기 마련이다. 당시 일본군 또한 전라도 진공을 위한 발판으로 금산을 점 찍는 것이 가장 최선이었던 거시다.

 

경상우도 일대에서 곽재우에게 제대로 물 먹은 일본군은 충청도로 발길을 돌린다. 임진년 6월경 고바야가와 다카카케의 7군은 성주, 성산 일대를 가볍게 점령하고 금산과는 엎어지면 코 닿을 충청북도 영동까지 점령 금산으로 시시각각 밀고 왔다. 금산 군수 권종은 확실히 도망가 급급한 밥통은 아니었는지 금산을 방어하기로 결심하고 현 금산 제원면의 천내강의 좁은 협곡을 틀어 막고는 나름 열심히 싸웠다. 강 건너의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조선군, 그리고 지휘관이 일단 결전의지를 굳히면 묘하게 간지폭풍(..)를 발하며 공격군을 캐발살내는 조선군의 특성 때문에 6월 22일 7군 오야 고바야가와와 똘마니들은 박터지게 싸워야겠다.

 

 

<방어전에 묘하게 폭풍간지를 발하는 조선군 때문에 답답한 고바야가와씨..(틀려!)>

 

 

하지만 전국시대란 난세에 능력이 없다면 30만석에 달하는 영지를 다스릴수 없는법! 임진년 당시 60에 달하는 나이의 고바야가와 다카가케 였지만 이런덴 잔뼈가 굵은 몸이었다. 공주목사와 여산군수가 약속한 지원군이 미처 도착하지도 못한채 적은 병력으로 악전고투한 금산군수 권종을 전쟁9단 고바야가와씨는 야습으로 밀어버렸다. 권종이 아들 권준과 함께 전사한 날이 6월 23일 새벽.

 

 

<오늘날의 천내강>

 

결국 금산은 함몰 되고 말았고 7군은 전라도와 바로 접경인 금산에 교두보를 마련함으로 전라도의 핵심인 전주를 넘볼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창원에 주둔하며 곽재우 때문에 낙동강 물 배터지게 들이켜 마시던 안고쿠지 에케이의 6군도 철수명령을 내려 경상북도 성주 일대로 집결 시킨다. 충청도 쪽으로 힘을 집중시켜 전라도로 밀고 들어가겠다는 심산이어따. 에케이의 6군은 성주 일대에 1500명의 군대를 나누어 놓은뒤 고바야가와의 7군이 금산을 점령하자 부리나케 쫓아가 합류한다.

 

(나중에 또 설명하겠지만 이때 6군이 떼어놓은 1500여명의 별동대는 6군과 7군이 웅치와 이치의 참패한후 지례-거창으로 지리산을 끼고 돌아 전라도로 진입하다가 7월 10일경 의병장 김면의 부대에게 우척현에서 또 손발이 오그라지게 쳐맞는다. 산에서 사냥하고 약초캐는 산척(山尺)....긍께 무서운 산사람들한테 완전히 안드로매다 직통 티켓을 끊어버렸다)

 

 

<낄낄낄>

 

 

이때가 7월초. 이미 개전후 3달이 지난때로 고니시는 이쯤 서울을 먹고 한참 평양성에서 깽판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바다에서의 패배와 용인 근처에 출몰한 조선군 5만명은 일본군을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물론 용인에서 5만이라는 조선군 대병력은 수-_-군대장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1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기습을 감행하자 깨박살이 나서 와해되긴 했지만 조선군이 그만큼 모였다는 자체가 조선군의 병력 동원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한번 더 보여 주었던 거시다.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으로서는 [ㅆㅂ 여기서 더 질질 끌다간 조땐다!]라는 압박감이 슬슬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초조해진 일본군은 2가지 승부수를 던진다.


첫째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도 수군와 일대 회전을 벌여 이를 섬멸하고 서해로 향하는 문을 여는것이니 바로 앞서서 얘기한 한산도 대첩이 되겠다.


그리고 둘째는 . . . .

 

제6군과 제 7군이 금산으로 부터 남진, 전주를 점령함으로 사실상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틀어잡고 조선의 자금줄을 끊는 한편 장기전에 대비하여 군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7월초. 금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 6군과 7군은 금산에서 부터 출정. 두갈래로 나뉘어 전라도의 핵심부인 전주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에 대항한 조선군은 각각 웅치와 이치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방어전 준비를 한다.


웅치와 이치, 곰고개와 배고개. 독자제헌들이여 뭔가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글타. 당시 전투의 양상은 조선군이 장기로 삼던 수성-고지 방어전의 형태로 흘러갔다. 정담이 지휘, 제 6군 오야붕 안고쿠지를 상대한 웅치전투는 사흘에 걸쳐진 큰 전투여따. 하지만 결국 압도적 병력 열세에 밀린 나머지 제 3차 방어선까지 붕괴하고 주장인 정담이 전사함으로 웅치는 결국 돌파 당했다. 쓰-_-바 쪽수로 미는데 별 수 있는가. 최후의 순간에 정담에게 후퇴를 권하는 병사들에게 정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 이 개념없는 새퀴들. 짬밥을 똥구녕으로 쳐 먹었냐!! 주둥이 그만 닫고 가서 싸워! 불알 두쪽 달고 난 사내놈이면 지금 한놈이라도 더 쳐 죽이고 죽어야지 물러나서 목숨부지 궁리하게 생겼냐? 야! 복남아! 복남아! 이복남 이 새퀴!!! 어디 도망가! 갈라면 화살이라도 놔두고 가! 아이 씨바.

 

그러나 웅치를 돌파한 일본군은 조선군의 주특기인 방어전에 휘말려 크나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 그 피해가 얼마였냐 하면 안고쿠지는 웅치전투 3일째 되는날 철수를 계획할 정도여따-_-;; 목책 뒤에 딱 자리잡고 앉아가 고갯길 기어올라오는 일본군에게 대포도 간간히 쏘면서 돌 던지고 화살을 뿌려대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었거덩-_-;;;

 

근대 참 어이 엄게도 조선군은 격전끝에 승리를 눈앞에 두고 한가지 실수로 인해 져 버리고 만다.

 

- 야~~ 우리 화살 다 떨어졌어~~!! 빨리 보내줘~~!!

 

라고 철수를 결심한 일본군이 다 듣게 큰소리를 질러댄 것이다=ㅅ=) 대략낭패..

 

- 옳커니! 전군 공격~ 쓰바!! 모두 공격~ 동작 굼뜨면 밥 없다~ 공격~ 다 뒤져도 좋으니까 공격~

 

라고 잽싸게 외친 에케이에 의해 웅치는 함락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같은 날 권율장군의 지휘하에 제 7군 오야붕 고바야가와를 상대한 이치전투는 승리했다. 이 또한 압도적인 수세로 일부 방어선이 뚫리는 지경에 처했으나 권율의 침착한 지휘로 방어선을 돌파한 일본군을 집중사격으로 제압한후 돌파된 방어선에 예비대를 투입함으로 무사히 버텼다. 하루종일 공격을 시도한 끝에 고바야가와가 전투를 포기하고 오후 4시경 철수 함으로 이치는 끝내 지켰다.

 

일이 이쯤되니 안고쿠지 뻘-_-쭘 해졌다. 자기는 3일 동안 죽어라 싸워서 갖은 피해를 입어가며 웅치를 돌파했는데.... 고바야가와는 하루 꼴랑 싸우고 금산으로 돌아가 버리다니...목표인 전주성을 코 앞에 두고 있건만... 안고쿠지 졸라 뻘쭘했다.

 

- 어이...고바야가와씨.....워쩔겨?
- 에이... 에케이씨....미안 하구로...쩝쩝. 권율이 야가 FM대로 까등마....
- 미안이고 안 미안이고 앞으로 워쩔랑가?
- 별 수 있남 댁도 어여 돌아오소. 금산으로 경명인지 먼지 하는 작것이 밀고 온다등마.
- 우리 핏댕이 할라 웅치에서 겁나게 많이 죽었는디... 전주성 방어도 단단해 뵈네.
- 아 긍께 싸게 돌아오소. 우물쭈물 거리다 두드려 맞기 전에.

 

결국 웅치에서 패배에도 동요없이 전주성을 단단히 수비하는 조선군의 침착한 대응과 웅치에서의 피해. 협공의 실패.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의 적절한 금산성압박 등으로 에케이가 이끄는 제 6군도 금산으로 철수하게 된다. 이로써 일본군이 던진 두가지 승부수는 모두 참패로 끝나게 되는거시어따.

 

바다의 한산도 해전에 이은 조선의 대승리였다.

 

하지만 아직도 금산에서 일본 제 6군과 7군이 또아리를 틀고 전라도를 넘보는 이상 방심은 할 수 없었다. 이들을 금산과 충청도 일대에서 모두 쫓아내지 않는 이상 조선으로서는 머리에 불화로를 올리고 있는것이다 다를바가 없었던 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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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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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자유로운 쏘울 | 작성시간 07.08.07 놔라 개씨발놈아 ㅋㅋㅋㅋㅋ
  • 작성자유틸라이넨 | 작성시간 07.08.07 간만에 재미있는 글 감사~!!
  • 작성자11:11 | 작성시간 07.08.07 글은 길어서 못 읽겠고 사진만 보고 많이 웃고 갑니다.
  • 작성자히틀러짱 | 작성시간 07.08.08 짤빵보고 아놔...털석 ㅋㅋㅋ
  • 작성자고기 | 작성시간 07.08.09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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