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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중국사]제갈량 북벌 요약정리.

작성자bookmark|작성시간09.08.03|조회수1,418 목록 댓글 37

1차 기산행(228) - 동원전력 7~8만, 최대 10만. 조운의 별동대와 제갈량 본대로 나누어 별동대가 야곡쪽으로 시선을 끄는 사이 본대 진격.

                         3군의 항복을 받아내나 급히 달려온 장합이 가정에서 삽질한 마속을 격파, 이후 후퇴.

 2차 진창행(228) - 동원전력 수만.(추정 2~3만) 군량부족과 학소의 선방, 장합의 빠른 대응으로 후퇴. 왕쌍군을 격파해 체면치레.

 3차 무도, 음평행(229) - 동원전력 수만. 위연, 오의, 진식의 선봉에 곽회가 대응했지만 제갈량 본대가 뒤를 받치자 곽회가 후퇴함. 한중서남지역의 음평, 무도 2개군 획득

 4차 기산행(231) - 동원전력 6~7만. 선비족 숫자미상의 지원군. 상규지역 보리쟁탈전에 성공하고 노성에서 사마의 발랐으나 이엄의 조작극으로 후퇴.

                          도중 장합이 추격했으나 목문에서 사살.

 5차 오장원행(234) - 동원전력 10만. 손오와 동시 북진. 오장원에서 백여일간의 대치. 교전은 있었고 이민족 연계도 시도했지만 실패.

                             제갈량의 병사로 촉한군 후퇴

 

3차와 4차 사이인 230년 8월에 조진이 자오도를 통해 남정을 개시했으나 장마로 인해 후퇴. 이것을 북절에 넣는다면 여섯차례. 안넣는다면 다섯차례의 북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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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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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광신교주 | 작성시간 09.08.05 유비가 이릉 효정에서 말아먹은 여파가 큰듯.. 거기서 무수한 장수들이랑 병력을 말아드셨죠..
  • 답댓글 작성자게이볼그 | 작성시간 09.08.05 병력 말아먹은건 사실 별로 안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비는 퇴각하면서 몇 차례 병력을 수습했고, 여전히 백제성에서 웅거하면서 손권을 견제할 정도로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사실 인명 피해보다는 장수와 책사진의 피해가 훨씬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광신교주 | 작성시간 09.08.06 전사자는 1만여안팎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포로도 어느정도 될거지만 풍습, 장남, 황권, 마량 같은 인재들이 사라진게 참 크리티컬이였죠
  • 작성자Forester1987 | 작성시간 09.08.05 이랬거나 저랬거나, 유비의 이릉삽질로 장수&책사가 골로간 덕분에 제갈짱(!)은 과로사, 촉은 골로간거죠 뭐...
  • 작성자유럽제패 | 작성시간 09.08.29 위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사마의와 1,2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맞상대했으면서도 사마의도 없는 위군을 상대해서 성과를 내지도 못한 오나라 ㄷㄷㄷ. 융중에서의 계책에 비해서 오군이 너무나도 소극적이었죠. 둘이 적극적으로 치고 올라가도 상대 될까말까하는데 한쪽은 건국 슬로건 자체가 한실 부흥, 다른 쪽은 너도 황제하니 나도 황제, 현상 유지만으로도 본전이라는 것이 대세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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