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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민들은 성이 없었나요?.

작성자적그리스도| 작성시간09.10.13| 조회수1013|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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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이동준 작성시간09.10.13 고려 문종이후에 성씨제도가 정착됩니다.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급제할수없다는 법이 문종9년에 제정되어 그 이후 보급됩니다. 대부분의 양반가문의 시조가 이 시기에 집중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이후 조선시기에는 양민까지는 대부분 성씨를 갖게 됩니다. 천민,노비의 경우에는 1909년 민적법 제정까지 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조지건강검진 작성시간09.10.15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 작성자 이동준 작성시간09.10.13 신분상 양반이 아닌 중인계급도 (물론 관직을 가졌지만) 실록에 성이 빠짐없이 기록이 되어있고(오세창 등)..갑신정변때 처형당한 기록을 봐도 김옥균 집 하인 이점돌, 박영효집 노자 최영식 장사꾼 민창수 등 다 성이 있습니다.
  • 작성자 호로리 작성시간09.10.14 일반적인 평민에게 성씨가 완전히 확립된것은 조선시대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씨의 보급과정에서 그 지방을 통치하고 있는 지배층의 성을 따라하거나 아니면 가장 흔한 성씨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BERSERK_OhYes 작성시간09.10.14 그럼 주변에서들 흔히 말하는 "난 김유신의 후손이야" 등등 고려 문종 이전의 역사적 인물이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죠..? 즉, 성씨가 소수에게만 있던것이 고려 문종 이후 널리 퍼졌다라고 생각하면 되나요
  • 작성자 호로리 작성시간09.10.14 평민들의 성은 본관이 없습니다. 또 족보 역시 존재하지 않지요 족보라는 것은 결국 자기 가문이 대단한 가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평민들은 성씨가 보급 되었지만 조선시대 절반에 달하던 노비나 천민들은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천민들이 성씨 사용하기 시작한것은 조선 후기이고 노비들은 신분차별이 철폐된뒤에 성씨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와 식민지의 혼란한 시기에 족보를 사거나 만들어서 유력한 본관으로 편입되거나 대가 끓어지 가문의 후손으로 편입하면서 본관을 얻게 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작성자 적그리스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0.14 호로리// 답변 고맙습니다;.그럼 아마 제 조상은 대대로 문씨성 가진 농사꾼이었는데.. 조선후기~일제때 슬쩍 족보에 이름을 넣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 Temuchin 작성시간09.10.14 꼭 족보에 발을 들이밀어서 일이 일렇게 꼬였다기 보다는 양반집안이 벼슬을 하지못해 점차 몰락했을 가능성도 있답니다. 특히나 양반집 자제분들이 워낙 힘이 좋으시고 또 벼슬자리는 너무나도 한정돼있는터라;; 양반도 벼슬과 재산 없이는 결국 (당시 법적으로 봐서도) 서민이지요.
  • 작성자 명예의 장군 작성시간09.10.14 시대가 흐르면서 본래 족보를 가진 집안에서 주변사람들을 편입시키기도 한것 같더군요.
  • 작성자 드미트리대공 작성시간09.10.14 김해김씨 삼연파 갑봉자손 22대손......어렸을대 강제로 외우긴 했으나 그분들이 우리 조상일것이라는 증거는 족보(....)이외에 없는것이 현실임
  • 작성자 호로리 작성시간09.10.15 문제는 족보는 가장 오래된것도 조선 전기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 다는 점
  • 작성자 가후a 작성시간09.10.15 고대법대신영호교수님의 말씀에 의하시면 구한말까지 실제 성씨를 갖고있던 사람은 전국민의 30%에 불과했고 일제시대때 창씨개명을 통해서 전국민이 성씨를 갖게 되었다고... 뭐 이후 미군정 군령에 의해 창씨가 다시 우리나라 성으로 바뀌긴했지만...
  • 작성자 fmman8 작성시간09.10.15 현재 김씨 이씨 박씨가 많은이유도 명문가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족보구매시에 이 세 성씨를 구매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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