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392년에 건국해서 1910년에 망했다고 하는 나라입니다.
지금와서 보기에는 껄끄러운 점도 있고 재미있는 점도 많죠.
몇가지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조선은 과연 병신이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뭐 조선이 병신짓을 했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사실 굉장히 뻘짓이 많았죠. 당시 세계는 산업화니 뭐니하면서 근대화를 한창 하던 시긴데 조선은 성리학만 껴안고 살았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유럽사도 좀 보고 중국사도 좀 보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병신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영훈 교수님이 자주 드시는 예를 하나 살펴보죠. 18세기에 환곡의 규모가 천만석인데 이게 인구당으로 따져보면 중국의 7~8배랍니다. 즉 실질적으로 중국이 만든 제도는 물가를 통제하고 어느 정도의 재고를 보유하려는 것이지 적극적으로 기아를 구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죠. 훨씬 더 작은 조선만도 못한 보유량으로 어떻게 기아구제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시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 이었던 중국이 못했다는 건 세계 어느 나라도 못했다는 거고, 이 환곡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을 때에는 조선은 그야말로 굶어죽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는 놀라운 나라였습니다. 나중에 환곡이 조세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심한 게 제도가 아예 말로만 존재했던 게 아니라면 나름 그 성과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하는데 나중에 막장으로 변한 모습만 다른 나라하고 비교하니까 뭔가 다 뻘짓같아 보이는 겁니다.
다음으로 환곡이 왜 조세로 변했는지 한번 살펴보죠. 임진왜란때 조선이 망했어야한다는 말 자주하는데, 실제로 조선은 그때 한번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왕실 적통은 이미 선조 전대인 명종에서 끊어져서 선조는 왕세자 책봉도 못받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서양쪽에서 보자면 그냥 왕조교체나 다름없는 일이죠. 뭐 어쨌든 다음왕인 광해군은 둘째 아들, 인조는 반정, 효종도 둘째라 임진왜란 이후의 왕들은 대체로 즉위의 정당성이 다들 상당히 빈약했던 것 같습니다. 뭐 이건 잡설이고요. 실제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뭐니뭐니해도 의정부와 육조가 중심이 된 견제의 원리가 존재했고 흔히 조용조체제라고 불리는 수취체제가 자리잡고 있었죠. 그러나 큰 전란을 거치면서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 중심의 권력집중의 체제가 생겨났고 조세도 상당부분 통폐합되어서 중앙정부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지방재정이 고갈되었고, 이전에는 기아구제를 착실히 하던 환곡이 점차 지방재정의 재원으로 전용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군비를 늘리게 만들었고 상비군의 유지비용이 전근대국가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차 국가재정이 고갈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단순히 탐관오리의 행태가 삼정의 문란을 가져온 건 아닙니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했고 그 때문에 상당한 누수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에 상당히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수준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중국을 보면 행정체계가 상당히 잘 정비되어있었지만 그 깊이를 보면 상당히 얇습니다. 지현(知縣)이라는 계급이 중앙에서 파견한 가장 낮은 직책인데 이 계급이 대충 감당할 인구가 약 30만입니다. 우리나라는 흔히 말하는 사또 즉 현감(縣監)이 한 5만명을 담당했으니 행정의 밀도가 다르죠. 일본이야 행정이 중앙집권이 아니니 아예 논외로 쳐야겠죠. 당시 서유럽과 비교해봐도 재미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후에 유명한 토크빌이라는 분이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거기에 나오는 그 유명한 루이왕의 ‘절대왕정’의 행정수준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당시 프랑스는 현단위는커녕 도단위로도 통치가 제대로 안되서 왕권의 제약이 엄청 심했다고 하더군요. 절대왕정이라고 해봤자 고려시대 수준이라고 보는 게 어쩌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여서 의외로 많이 놀랐습니다.
그럼 이제 의문이 드시겠죠. 아 이사람 조선빠인가. 국수주의 쩌네. 이런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제가 말하는 건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들을 비교해본 결과입니다. 실제로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중앙집권화가 잘된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 그런데 왜 근대화를 못했냐구요? 그 답은 중앙집권화가 잘되서입니다. 원래 유럽에서도 영국은 왕권이 제일 약한 나라였다고 합니다. 뭐 절대왕정운운해도 그건 그냥 걔들 입장에서 그런 거고 중국이나 한국에 비하면 절대군주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근대화를 위해서는 자유시장경제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정부가 시장에 간섭을 못할 정도로 약하든 아니면 정부가 시장주의를 강력하게 옹호하든 해야합니다. 문제는 조선은 강한 정부에 반시장주의였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경제적 잉여가 철저히 정부에 의해서 재분배되는 체제가 조선 후기에 성립했고, 그 체제는 그 내적으로 이미 ‘완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추구할 이유도 할 여력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조선은 역시 병신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대화도 못하고 나라 말아먹었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게 조선이 못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미 조선은 유럽보다 일찍 완결된 체제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게 사회를 보수적으로 만들어버렸을 뿐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조선에 대한 비난이 부당한 것이 당시 세계를 비교대상으로 했을 때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보다 잘한 나라는 유럽에 있는 나라이거나 혹은 지금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그 나라 뿐입니다. 뭐 일본도 잘하긴 했지만 상당히 간발의 차였죠. 근대화가 이미 세계의 선택이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 과거를 평가하면 당연히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냉정하게 따져 봐도 순수하게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나라는 오직 영국뿐이고, 다른 유럽국가들은 영국의 질주 이후에 ‘추격’하는 이점을 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영국 빼고는 다 따라쟁이이고 그 따라쟁이의 순서가 지리적인 근접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존재할 뿐입니다. 조선은 세계의 변방이었고, 그래서 뒤쳐진 것뿐입니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자학한다면 그것은 지나칠 뿐 아니라 부당합니다. 특히 일본이 한국보다 나았다 운운 하는 개소리가 있는데, 그래봤자 영국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깁니다. 근대화에 자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나라는 유일하게 영국이었고, 그건 어디까지나 특이케이스지 보편적인 역사발전의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공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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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문기 작성시간 10.12.30 한나라와 송나라와 명이 들으면 울겠습니다. 이들은 유럽 로마에서 일어나 중앙아시아를 건너서 위수를 건너고 낙수를 넘어 장강을 지나서 중국을 제패했나봅니다. 그리고 겨우 동방왕가 군대에게 쩔쩔매서 전쟁자체를 포기해버린 고려는 엄청나게 칭찬하면서 대칸이 직접 거느린 4가문의 군대를 거의 40년가까이 막아낸 남송은 왜 그렇게 평가하는지 모르겠네요. 중국이 버틴 적은 무지 많고 널렸으니 최소한 중국전쟁사연표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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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Rothschild 작성시간 10.12.30 당은 혈통론으로만따지자면 외부세력이긴한데 완전히 한화된 선비족이고 당태종외에는 외가쪽이 다 한족출신이고 흠... 진나라는 서융이라고해도될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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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e-데빌리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12.30 아 글에 댓글이 150개가 넘었네요. 저도 일일히 댓글 찾아서 읽는 게 힘들 정도로 반응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다른 떡밥을 챙겨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런데 이글 내용은 조선이었는데, 왜 절대왕정 이야기가 더 많은 걸까요. 차라리 조선을 까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힛 1000을 기원합니다. 아 그리고 이 글에서 주장한 대부분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이영훈 교수님의 논리를 따랐습니다. 결론만 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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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Rothschild 작성시간 10.12.30 조선까는 사람이 위에나타났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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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문기 작성시간 10.12.30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절대왕정과 조선과 비교해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오랫만에 서양사논문도 뒤지고 그랬네요. 그래도 여전히 왕권자체는 절대왕권이 조선보다는 강했다는 입장이니 언젠가는 이 주제를 가지고 채팅방에서 한번 토론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