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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T-21 작성시간10.12.30 근데 확실한 사실이 잇죠.
문제없는 나라가 없다는거.. 북쪽변방에서 여진족과 분쟁이 많앗습니다. 후금(청)이 일어나고..
그 막강한 세력이 조선으로 처들어온게 아니라 명을 먼저 멸망시킵니다. 왜일까요. 명이 더 허접햇기 때문이죠.
명이 임진왜란에 국력을 소신햇다고 생각하는사람도 많은데 당시 명의 원군의 실테 찾아보면 나옵니다 가관도 아닙니다.
단 8번의 전투에 전패하고 도망가죠. 광해군때 원군으로 청과에 전투에 참여햇을때 오히려 청이 화친을 제의해 올 정도로 나름 조선군이 막강햇습니다. 인조반정으로 막장이 된게 문제죠. 우리의식에 식민사관이나 사대주의의 뿌리는 깊다고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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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12.30 아- 이거 다른 분들이 가루가 되게 까주실 거지만, 몇자 적죠...^^;
1. 청은 이미 조선을 [제압]하고 나서 명나라와 전쟁을 치릅니다. 그나마도 체급이 아주 달려서 결정적으로 건들지 못하다가,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일단 망한 뒤에 혼란에 빠진 중원으로 들어가죠. 즉 '이자성의 난'이라는 잭팟이 안터졌다면, 청의 중원진공은 어림없었다는 거...ㅋ 청이 명으로 가기 전에 제압당한 조선이 더 허접한 겁니다...헐~
2. 왜란때 명군이 병신짓 많이 한 것은 맞습니다. 근데 그때 명군이 안왔으면 조선은 꽤나 애를 먹었을 겁니다. [시간벌기]에 결정적인 조건을 제공한 것이 명이었고, 왜군에게 심리적 부담도 주었죠. -
답댓글 작성자 e-데빌리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2.30 죄송하지만, 저도 이 댓글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맞춤법 좀 어떻게 안될까요. 잇이 아니라 있이고, 앗이 아니라 았이고, 햇이 아니라 했이고, 소신이 아니라 소진이고, 실테가 아니라 실태입니다. 그리고 해동천자님이 말하시는 것처럼 인조를 불쌍하게 평가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광해군이 선정을 펼친 임금이라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중국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 것까지 물을 타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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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12.30 e-데빌리안// 인조정권을 좋게 평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임란을 수습하고 체제안정 및 국제관계 조율 등 '왕조중흥'을 위해 힘썼어야 할 이 시기에 광해군은 무리한 [토목공사]와 북인 밀어주기로 나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국력을 소모했습니다. <광해군일기>에 보면, 창덕궁 영건당시 겨우 3개월 동안 미 6830석, 포 610동, 당주홍 600근(값은 포 60동), 정철 10만근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당시 호조의 1년 전세가 겨우 8~9만석이었고, 군기시에서 1년동안 거두는 공철의 양이 1만근이었습니다. 공사비용 조달을 위해 '결포(결포, 정식세금 외에 1결당 포 1필 징수)'의 시행과 조도사 파견 등의 악정이 계속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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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12.30 때문에 인조정권은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체납된 원곡 11만석을 일체 탕감합니다. 이전 정권이 이미 재정을 파탄냈고, 민생도 이미 빼먹을 대로 빼먹은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광해군이 죽어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반정]으로 집권하다보니 핸디캡도 엄청났죠.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의 책봉을 받고자 광해군이 마련한 '은퍼주기' 관행을 들어주면서 또한번 엄청난 재정이 소모됩니다.
즉 광해군은 쫒겨나 마땅한 인물이었다는 것이고, 인조정권은 광해군 정권이 싸놓은 똥더미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 출발했다는 것이죠. 인조정권의 부담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지- 그들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 유럽제패 작성시간11.01.06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따지면 서인이나 북인이나 사상적 기반이 약한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더 따지자면 북인계열이 훨씬 심하죠. 덕분에 학문적 공통서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인물들도 북인으로 들어가서 정권을 쥐기도 하고요. 그리고 적장자 상속으로 봐도 광해군 또한 적통 적자가 아니잖습니까? 임란 이후 전후 사회를 복구하는데 있어서 사상적, 윤리적 예학의 강화를 특징으로 꼽는다면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는 큰죄가 될 수 있지요. 광해군시기의 실정이 이이첨의 폭정때문이라고 핑계 댈 수 도 있겠으나 그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느순간부터 광해군 정권은 자주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칭찬받는데 그건 또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