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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몽골이 고려점령후 고려왕실을 해체하지 않은 이유?

작성자미드나잇| 작성시간11.05.29| 조회수2739|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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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Rothschild 작성시간11.05.30 ㄷㄷ;;; 그런데 영지를 몰수당했는데 세력을 다시 어떻게 키웠던건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나하추외에 옷치킨 가 또한 원나라 멸망하고 명에 귀투하나요?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유문기// (1)에서 원나라 조정이 각 왕가를 견제할 목적으로 '다루가치'를 보냈다고 하셨는데, 이건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이 분봉왕가들이 자기 영지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관료임용에 중앙조정의 관리를 받았는가인데- 사실 [형식상] 중앙의 중서성을 통해서 임명하기는 했으되, 사실 분봉왕가들은 독자적으로 영지 내의 '인사행정'을 행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분봉왕가들이 금을 멸한 시점에서 받은(병신분봉) '한지식읍'의 경우, 현지 유력자나 지식층과 '혈연관계'를 맺으면서 유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것이죠...^^; 남송을 멸하고 받은 '강남호'의 경우는 중서성에서 수취하여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분봉왕가들이 "중서성을 통하여.." 세액을 받았지만, 화북의 한지식읍이나 몽골-만주의 식읍은 독자적으로 임명한 관료들이 관리했습니다. 예컨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집안]의 경우도 원나라 중앙이 아니라 동방왕가에 의해서 '현지관료'로 임용된 케이스죠...^^;

    (3)의 경우, 물론 나하추도 중요하지만- 만주의 동방왕가 후손들을 관리하기 위해 명이 설치한 [우랑카이 3위]의 존재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유문기 작성시간11.05.30 해동천자님//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우루스의 구조를 보면 분봉받은 모든 경제력, 군사력이 다 분봉왕가의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직활령과 나머지 4가문과 대칸의 우루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4가문만 아니라 무려 대칸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모든 분봉받은 우르스에는 대칸 및 나머지 4가문 및 왕가들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한 우르스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루가치도 이곳에서 나오는 공물을 받고 돌아오기 위해 보내는 것이고 따라서 분봉왕가가 독자적인 인사행정을 가지고 있던 말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다루가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Rothschild// "그런데 영지를 몰수당했는데 세력을 다시 어떻게 키웠던건지..." -> 애초에 동방왕가들은 영지를 깡그리 몰수당한 적이 없습니다...^^; 봉호를 줄이고 군사를 빼앗아 규모를 줄이는 정도였지만, 타격이 꽤나 컸어요. 또한 이런 조치를 취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일족에 대한 [징벌적 조치]이기 때문에, 나중에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 설사 이런 '감봉(減封)'을 당했다 할지라도 쥐어짜기를 이전처럼 하면 되는 거죠...-_-; 예컨대 원나라 중앙조정이 1319년에 대대적인 [봉호삭감]을 행하자 분봉왕가들의 식읍이 거의 반절이 줄어듭니다만, 세금을 두배로 물리는 방법으로 이전과 같은 재정을 확보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더구나 계속되는 내전과 쟁탈전에서 황제들은 분봉왕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봉호를 더해주거나 대규모로 '사여'를 행했기 때문에, 떨어지는 떡고물도 쏠쏠했습니다...ㅋ

    유문기// 그렇군요...ㅎㅎ;;
  • 답댓글 작성자 최하늘 작성시간11.05.30 유문기 님께 질문. 김호동 교수의 『몽골제국과 고려』를 보니, 쿠빌라이가 훌레구와 알루구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본래 대칸의 관할이던 정주지대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줬다고 적혀있던데요. 혹 쿠빌라이나 후대의 대칸들이 동방의 왕가들에게도 이 권한을 주지는 않았나요?
  • 작성자 신격카이사르 작성시간11.05.29 낚시의 타이밍?!
    자세하게 글을 한 분이 서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 작성자 카즈사노스케 작성시간11.05.29 무신정권에 대해 자세한 서술을 한 '고려 무인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충렬왕이 세자시절에 내전중인 쿠빌라이를 찾아가 항복하자 쿠빌라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고려는 먼리의 먼 나라다.' 라고 칸이 된 후에 고려를 후대하기로 약조했다합니다.. 그래서일듯하네요..
  • 작성자 게이볼그 작성시간11.05.30 사실 몽골이 고려까지 지배할 역량도 없었음요. 때려부술 역량이야 충분했지만 중국처럼 직접 지배할 필요가 있는 땅도 아니고 알아서 항복하는데 굳이 건들 필요도 없고. 모스크바처럼 말 잘듣기만 한다면야 몽골도 굳이 왕실까지 해체하면서 저항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없었죠. 물론 황금씨족과 결혼시켜주면서 나름 후대해준건 원종과의 개인적 친분도 있고 정치적 문제도 있고.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글쎄요...-_-; 원나라 판도 안의 '동방왕가'들은 고려가 복속한 후로도 무려 황해도 서흥-평산에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심지어는 원나라 조정을 뒤로제끼고 '공물'을 뜯어가기까지 하거든요. 고려가 동방왕가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원나라의 [동방왕가 견제]때문입니다. 즉 원나라가 나서서 동방왕가가 고려에 손을 뻗치는 것을 막아준 덕에 고려가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원나라는 그에 그치치 않고 고려에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데, 이것도 역시 동방왕가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여러 제왕가들이 꽤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동방왕가들이 고려 하나 '흡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미 한반도 북부의 평안-함경-황해도 북부까지 손을 뻗칠 정도였으니... 이렇게 동방왕가에 흡수될 고려는 동방왕가의 종주인 원나라에 [귀속]되므로, 최종적으로 보면 원나라가 고려를 없애고 자국에 편입하는 것과 다름없어요...ㅎㅎ;;
  • 답댓글 작성자 미드나잇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1.05.30 제 질문엔 이게 정확한 정답인거 같네요!
    단순히 타이밍과 친분문제보단 동방왕가 견제용으로 고려를 살려두었던것이 맞겠군요
  • 답댓글 작성자 el5311 작성시간11.05.30 많이 알고갑니다^^
  • 작성자 Flanken 작성시간11.05.30 결론은 직할통치 할 수 있었는데, 견제용으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니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 작성자 티와즈 작성시간11.05.31 보통 외국에서 작성하는 원나라시대의 지도를 보면 고려가 원나라땅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맥락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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