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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유문기// (1)에서 원나라 조정이 각 왕가를 견제할 목적으로 '다루가치'를 보냈다고 하셨는데, 이건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이 분봉왕가들이 자기 영지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관료임용에 중앙조정의 관리를 받았는가인데- 사실 [형식상] 중앙의 중서성을 통해서 임명하기는 했으되, 사실 분봉왕가들은 독자적으로 영지 내의 '인사행정'을 행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분봉왕가들이 금을 멸한 시점에서 받은(병신분봉) '한지식읍'의 경우, 현지 유력자나 지식층과 '혈연관계'를 맺으면서 유착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것이죠...^^; 남송을 멸하고 받은 '강남호'의 경우는 중서성에서 수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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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유문기 작성시간11.05.30 해동천자님//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우루스의 구조를 보면 분봉받은 모든 경제력, 군사력이 다 분봉왕가의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직활령과 나머지 4가문과 대칸의 우루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4가문만 아니라 무려 대칸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모든 분봉받은 우르스에는 대칸 및 나머지 4가문 및 왕가들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한 우르스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루가치도 이곳에서 나오는 공물을 받고 돌아오기 위해 보내는 것이고 따라서 분봉왕가가 독자적인 인사행정을 가지고 있던 말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다루가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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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Rothschild// "그런데 영지를 몰수당했는데 세력을 다시 어떻게 키웠던건지..." -> 애초에 동방왕가들은 영지를 깡그리 몰수당한 적이 없습니다...^^; 봉호를 줄이고 군사를 빼앗아 규모를 줄이는 정도였지만, 타격이 꽤나 컸어요. 또한 이런 조치를 취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일족에 대한 [징벌적 조치]이기 때문에, 나중에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 설사 이런 '감봉(減封)'을 당했다 할지라도 쥐어짜기를 이전처럼 하면 되는 거죠...-_-; 예컨대 원나라 중앙조정이 1319년에 대대적인 [봉호삭감]을 행하자 분봉왕가들의 식읍이 거의 반절이 줄어듭니다만, 세금을 두배로 물리는 방법으로 이전과 같은 재정을 확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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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5.30 글쎄요...-_-; 원나라 판도 안의 '동방왕가'들은 고려가 복속한 후로도 무려 황해도 서흥-평산에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심지어는 원나라 조정을 뒤로제끼고 '공물'을 뜯어가기까지 하거든요. 고려가 동방왕가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원나라의 [동방왕가 견제]때문입니다. 즉 원나라가 나서서 동방왕가가 고려에 손을 뻗치는 것을 막아준 덕에 고려가 [국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죠...^^; 원나라는 그에 그치치 않고 고려에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데, 이것도 역시 동방왕가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여러 제왕가들이 꽤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